실학탐구 - 서평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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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제3부 「넘치는 폭력과 다산의 우려」에서는 정약용이 활동했던 정조 연간의 여러 ‘복수’ 사건들에 관한 판례와, 이에 대한 정약용의 논평들을 다루고 있다. 자력구제를 엄히 금지하는 현대 사회의 우리가 보기에는 언뜻 이해할 수 없지만, 정약용은 복수라는 개념을 배척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를 지배한 유교적 시대정신의 발현이랄 수 있다. 도덕적 훼손에 대한 응징으로서의 복수는 유교사회의 윤리를 유지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자력구제가 난립하면 사회가 혼란해지며, 사회가 혼란해지만 자연히 인민의 삶은 어려워진다. 이것 역시 유교적 지식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정약용은 중국 당나라 때 사람 유종원의 복수론에 기초한 복수론을 통해 딜레마를 해결하려 했다.

정약용의 복수의 원칙은 “정의로운 폭력”[殺而義]으로 요약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살해를 동반한 복수, 그리고 그 상위개념인 자력구제, 그 상위개념인 폭력은, 만일 그 폭력이 예컨대 아버지를 살해한 자에게 원수를 갚는 것처럼 ‘정의의 의도’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유교사회의 윤리를 유지시키는 데 이바지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이것을 탄압할 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윤리에 흠결이 가게 된다(최소한 그렇게 될 개연성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정의로운 폭력의 행사는 문제될 것이 없으며, 죄라고 할 수 없다. 심지어 공권력마저 불의를 저질렀다면, 그 공권력에 대하여 복수하는, 즉 저항하는 것 역시 정약용이 보기에는 정의로운 폭력이다.

그럼 정당한 복수, 정의로운 폭력도 존재한다면, 그 폭력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고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도로만 발현될 수 있게 제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정약용은 복수의 조건을 엄밀히 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복수 뿐 아니라 모든 폭력, 특히 스스로에 대한 폭력―자살과 같은 사례에서, 그 죽음이 의로운 죽음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소급된다. 폭력을 허용하는 “의(義”)의 범위는 엄밀해야 하고, 그 범위의 조건은 일종의 ‘원칙’으로서 지켜져야 한다.

예컨대 이런 경우가 있다. 명나라 때 한 장교가 간통을 하다가 내연녀의 남편이 방에 들어오자 숨었는데, 남편이 여자에게 춥지 말라고 이불을 덮어주는 것을 보고 남편이 돌아간 뒤 남편의 사랑을 배반한 여자를 칼로 찔려 죽여 남편의 “복수”를 해 주었다. 나중에 채소 장수가 그 집에 들어갔다가 범인으로 몰렸는데, 장교가 자신이 범인임을 자수해 간통한(불의한) 여자를 죽이고 억울한 채소 장수를 살렸다고 황제가 사면을 해주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정약용은 애당초 간통을 저지른 불의한 자가 저지른 복수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조선 후기에 범람한 열녀 포화 현상에 대해서도, 열녀, 즉 의로운 죽음을 당한 여자의 조건을 제한하여 남편이 편히 죽었는데 쓸데없이 슬픔(편협한 감정)에 겨워 자살한 경우라던가, 열녀문을 비롯한 보상을 노린 주위에서 자살을 종용한 경우는 의로운 죽음이 아니니 열녀라 할 수 없다 하였다. 이는 모욕을 당한 사람이 분사했을 때 모욕한 사람을 살인죄로 다스려야 하냐는 질문에 역시 똑같이 적용된다. 불의한 폭력을 당했거나 불의에 맞선 폭력이 아닌 이상, 자신이 행사한 폭력이 자기 자신을 향한다 하더라도 그 폭력은 불의한 폭력이며, 때문에 이때 분사한 사람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러 혼자 죽은 것이지 모욕을 범한 이에게 살인의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 정약용의 견해이다.

여기서 정약용이 폭력의 허용범위를 잡기 위해서 가지고 나온 조건은 도덕적 개념인 ‘의’이다. 정약용이 우려한 폭력의 난립은 곧 의롭지 못한 폭력으로 인한 폭력의 재생산이며, 이것은 곧 ‘의’를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정약용은 “편협한 부녀들이나 무식한 백성들”이 자신의 폭력이 의로운 폭력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유학의 기본 전제 중 하나인 인간의 선한 본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정약용에 따르면 인간의 선한 리가 발현하기 위해서는, 인의예지에 따르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고 그저 사람의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말로만 들먹여지는 인의예지는 무의미한 것이다.

정약용에 따르면 사람마다 도덕적인 정도는 차등이 있으며, 그에 따라 차별적 대우가 이루어져야 한다. 똑같은 복수살인이라 할지라도, 의로운 복수의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자는 살인죄로 다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당한 차별이 나쁜 것이지, 무차별은 곧 무질서를 의미하므로, 질서의 유지를 위해 차별은 존재해야 하고, 차별은 정당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정약용의 논의들을 살피며, 그럼에도 그가 보수적인 인물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약용은 성리학의 기본 공리인 인간의 선한 본성의 발현을 부정하지 않았으며, 도덕성 회복에 대한 신념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 선한 본성이 발현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현실의 냉엄함을 지적한 것이며, 성리학적 이상과 현실을 조화하기 위한 자신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나아가, 모든 인민이 도덕적 인간으로 거듭난 ‘자율적 도덕 공동체’‘정치주체’로서의 인민을 이야기하면서, 도덕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아랫것들로 인하여 유교사회의 질서가 위협받는 것을 시민의 자질 부족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위협받는 것에 비교한다. 그에 따르면 정약용은 아랫것들의 도덕성 회복을 위한 방법을 고민했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말한다.

정약용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 어떤 식으로 유의미한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다시 짚어본다. 이야기는 복수의 정당성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모든 복수를 금지하는 것은 도덕에 의해 유지되는 유교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전제였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당연하게 알다시피 사적 복수를 비롯한 일체의 자력구제는 금지되어 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그렇기에 복수의 권능을 비롯한 일체의 폭력의 능력은 국가가 독점한다. 복수는 국가라는 대리인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그 과정 역시 법률에 의거 공정해야 한다.

정약용은 ‘정당한 복수’의 존재를 전제하되, 복수가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당한 복수’의 조건을 붙인다. 예컨대 갑이 을의 아버지를 죽여서 을이 갑을 죽여서 복수했다. 이러한 경우 정약용은 이것을 정당한 복수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을이 갑을 죽였더니 갑의 아버지가 을을 죽여서 갑의 복수를 했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약용에 의하면 을은 정당한 복수를 했기에 죄인이라 할 수 없다(또는,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할 수는 없으므로 감형을 하는 것이 옳다). 그렇기에 갑의 아버지가 을을 죽인 것은 부당한 복수이며 살인죄이다. 그러므로 갑의 아버지의 복수의 정당성은 부정되며, 이 단계에서 복수의 연쇄가 끊길 수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정말 복수의 연쇄가 이것으로 끊어질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력구제와 폭력의 연쇄가 발생할 것이다. 동양에서 일찍이 유행한 연좌제는, 의와 불의를 막론하고, 복수를 당한 사람의 관계자가 복수를 반드시 할 것이라는 의식에서 유래하였고, 그것이 사실로 실현된 사례도 없지 않다. 본 책에서 ‘정당한 복수’의 사례로서 언급된 오자서의 사례가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모든 복수의 사례에서 이렇게 가 불가가 명확하게 나누어떨어진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정약용은 그렇기에 경우에 따른 융통성을 이야기하지만, 다시 말하면 그것은 그의 ‘원칙’이 적용되지 못하는 때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정약용이 부당한 폭력을 근절하고 정당한 폭력만 남김으로써 사적 폭력의 연쇄를 막겠다고 기획했지만, 그것은 실제로 쉬이 이루어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또한 애초 정약용의 차별적 도덕주체 이야기는 성선설을 믿으면서도 현실의 어려움에 타협한 결과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덕적 성인군자만이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기존 유교의 강령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유교사회에서는 사회의 기본 전제이겠으나, 오늘날의 국가경영에 있어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은 자명하다. 이러한 의식을 섣불리 적용해서 나올 수 있는 참사가 자신은 정치적으로 깨어 있는 시민이며, 다른 사람들은 생각없이 투표한다는 자아도취적 사고방식이다. 민주주의가 인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민이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 절대 다수는 평범한 인간이며, 모든 인간이 도덕적이거나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민주주의에서는 그 누구도 시민들을 도덕적으로 압박할 특권을 갖지 못한다.”1

정약용이 자신이 살던 시대와 자신이 체화한 사상을 기반으로, 어떻게 해야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점에서 유의미하거나 무의미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시대를 규정하는 기본적인 토대부터 골조에서 지붕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그의 고민과 성과를 살피되, 그가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든 시대와 사회는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고민을 굳이 하지 않는(폭력이 국가에 의해 독점되어 있고, 인간은 선해야 한다는 공리도 없기에) 오늘날의 시대와 사회는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살피지 않으면, 선현의 고민을 짚어보겠다는 시도는 단순한 현학적 놀음 또는 계급배반론과 같은 극단적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기에, 이를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