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유수원과 신분제개혁론

혐오스런 유수원의 인생

  • 청력을 상실함
  • 주요 저서 - 『우서』: 어리석은 책. 겸양.
  • 똑똑하다고 소문나서 영조가 불러옴. 근데 귀가 먹어서 대화를 못해서 필담
  •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되어 역적으로 목이 달아남
  • 그의 사상과 저서도 묻혀 있다가 현대에 와서야 발굴

유수원의 신분제 개혁론

문제의 원인 진단: 문벌의 폐단

  • 서얼은 양반 취급을 못 받음
  • 반정이나 역모가 일어났다 하면 1개 가문이 싸그리 천민화 되는 일도 왕왕
  • 결과: 보니 엘리트 계층 사이에 서로 통혼할 가문이 한정됨 → 카르텔화
  • 근본 원인은 벼슬에 목매서 그렇다
    • 사족으로서 엘리트 행세를 하기 위한 조건: 벼슬
    • 즉 사농공상에서 士가 가장, 절대적으로 중한 것

문제의 해결 방안: 사민의 분업

  • 현재의 구도는 사농공상에서 사가 가장 중하고 상이 가장 천한 것
  • 이 구도를 혁파하고 사농공상이 모두 평등(?)하게 만들자

지금 중국 사람들은 비록 농공상의 무리라 할지라도 모두 어려서부터 학교에 들어가 배운다. 재능이 부족하고 배워도 성취가 없다고 판단되면, 학교를 떠나 다른 직업에 종사한다. 이로 인해 농공상에 종사하는 자라 할지라도 어리석고 무식하여 문자를 전혀 모르는 자가 없다. 이는 삼대 시절 백성을 이끌던 방법이었다.

  • 중국에서는 평민들도 최소한의 기초지식을 익힐 수 있다
  • 그러나 조선에서는
    • 양반이지만 재산의 부족으로 관료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 그런데 양반이라는 쫀심만 남아가지고 일은 안하고 놀고먹는다
    • 그렇다고 먹고살자고 농사나 장사를 하자니 양반이 아니라고 손가락질당한다
    • 결과: 자폐적 엘리트의 양산
  • 유수원의 목적: 자폐적 엘리트를 쓸어버리자…는 것이 아니고 재활시키자는 것.

사농공상에 대한 인식의 전환

공업과 상업이 비록 말엽이지만 원래 비루한 것은 아니었다. [중략] 공상의 직업이 천하고 더럽다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이다. 이른바 공상의 자손들이 뱃속에서부터 모리를 일삼는 창자라도 갖고 태어났다는 말인가?

  • 요약: 맹자님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대!
  • 유수원이 주목한 것은 상업
    • 왜냐? 농업과 공업은 몸을 써야 함
    • 상업은 짱구를 굴리는 것으로 가능. 양반의 품위를 지킬 수 있음
  • 현대 학자들이 이걸 보고 이걸 봐라 이것이 바로 근대적 마인드다 라고 설레발

신분제 개혁론의 의미

  • 근대적 의미에서의 인간평등 그런 것이 아님
    • 자폐적 엘리트를 재활시키고, 엘리트가 엘리트답게.
    • 관료가 되는 것 말고도 엘리트 구실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기 위함
  • 국가의 역할 강조
    • 양천제의 명문 입법화 제안
      • 양인 = 국가와 직접 관계를 맺는 백성. 국가에게 어떤 혜택을 받고 대가로 세금을 납부하거나 역을 수행하는 자
      • 천인 = 뭐 양반이 먹고살라면 노비는 어쩔 수가 없음 :P
      • 아무튼 노비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명목상 평등
    • 학제와 관제 재정비
    • 관료 임용 규칙의 정비와 인사고과의 엄격한 시행
  • 두 유씨의 국가주도 개혁론에 대해 생각할 점
    • 성리학의 이상은 본래 작은 정치 (주희)
      • 그런데 두 유씨는 마치 왕안석처럼 큰 정부를 주장 → 착각 발생 원인
      • 하지만 두 유씨는 스스로를 성리학적 이상을 위한 것이라고 정체화하고 있었음. 자기정체화를 무시하고 외부에서 재단하는 것은 곤란
    • 국가 강조의 이유
      • 성리학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중국에서 만들어진 중국을 위한 이념
      • 조선은 이미 완성된 성리학이라는 이념을 그대로 전수받은 것
      • 때문에 이것을 사회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상층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음. 마치 조선 초 조준과 정도전과 마찬가지.
    • 중국과 조선의 차이
      • 중국은 땅이 존나 커서 지역사회의 자발주의를 기대해야 함
      • 하지만 조선은 땅이 작아서 지방에 대한 중앙의 장악력이 강함
      • 즉 중국의 역사적 경험과 달리 조선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면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