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리학에 대한 인식과 실학연구의 상관성

성리학에 대한 통념

통념:

  1. 태조 때 성리학을 이념으로 조선 건국
  2. 세종 ~ 성종 때의 관학파 시기의 발전
  3. 중종 때의 조광조 이상정치 좌절
  4. 이후 꾸준히 내리막 걷다 세도정치 때 시망
  5. 그리고 이게 다 성리학 때문이다!!

의문: 그러면 관학파 집권 100년동안의 성리학은 무엇인가? 그 성리학과 이 성리학은 다른가?
→ 아귀가 맞지 않는 설명. 그러다 보니 16세기 되어서 여말선초 때 그랬듯 중소지주가 우 다시 등장한다 함

통념:

  • 쓸데없는 사변에 몰두하는 성리학 ↔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실학
  • 배타적인 성리학 ↔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고 융화하는 실학

성리학의 재평가 - 성리학은 비현실적인가

15세기 관학파 시대

  • 관학파의 정체성: 그들 역시 성리학자
  • 창업 세력으로서 관학파는 제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 제도 역시 성리학적 이념에 들어맞는 제도 → 이것을 퉁쳐서 "실용적 관학파"라고 하는 것은 어폐
  • 관학파에서 참고한 텍스트는 곧 [주례], 삼대 주나라의 제도가 이상
    • 주례의 토지제도: 정전법 - 사적 소유의 부정, 모든 토지의 국유화, 국가를 위해 노역을 하면 토지 경작권을 임대
    • 정전법은 비현실적. 토지의 지력 문제가 있고 탈세를 막을 인프라가 미비
    • 그래서 사유지를 인정한 절충안이 조준의 과전법 - 현실과 타협했을 뿐 주례의 公의 정신은 유지
  •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개입과 간섭과 통제가 특징
    • 맹자: “어진 정치는 (토지의) 경계로부터”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면 어진 정치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국가가 개인의 생계를 위해 무언가 계속 개입을 해야 하고 그 개입 수단이 제도
  • 주희는 토지 등의 실용적 얘기는 거의 한 게 없음. 이것만 보면 허황 뭥미
    • 주희의 왕도 정신을 받은 제도론자들이 그 정신의 실현을 위해 제도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곧 성리학적 정치

  • 조선시대의 각종 논쟁들(사칠, 예송, 호락 등등)의 중심에 있는 주제는 결국 인성론, 심성론이며 이와 기 중 무엇을 더 중시해야 하는가, 사회 속의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곧 정치주체에 대한 논쟁이다.
    • e.g. 가상의 사례지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과 정기준의 논쟁. 세종과 정기준은 각각 백성과 사대부를 정치주체로서 신뢰하며, 각각 본성(이)과 기질(기)을 중시한다.

16세기 사칠논쟁

이황 vs. 기대승
이황 사단은 리에서 나오고 칠정은 기에서 나온다. 사단이 우월하고 감정인 칠정은 열등하다 주리 가치론
기대승 이와 기의 관계는 다르지만 나눌 수 없다고 했는데 우째 사단과 칠정이 따로 나온다고 하느냐? 칠정 안에 사단이 있다 주기 존재론
  • 러프하게 요약하면 사칠논쟁은 인간의 선(사단)과 인간의 감정(칠정)이 나오는 곳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것이다
  • 이황은 당위적으로 선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한 것이고 기대승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게 따로 가냐고 따진 것

17세기 예송논쟁

제1차 예송논쟁 - 기해예송

  • 효종 사망
  •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아직 살아 있었음
  • 자의대비가 3년 상복을 입어야 하나 1년 상복을 입어야 하나
    • 서인은 효종이 장자가 아니므로 1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
    • 남인은 3년복을 주장
  •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시작되었으나 윤선도의 상소
    • “서인이 효종을 장자라 아니라 하는 것은 소현세자 계통을 왕통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
  • 결과: 서인의 승리

제2차 예송논쟁 - 갑인예송

  • 효종 비 인선왕후 사망
  • 자의대비 아직도 살아 있었음
    • 주장은 이전과 똑같음
  • 예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현종 승하, 숙종의 감정적 예송 종료
  • 결과: 남인의 승리

예禮의 당대의 의미

  • 유교 문화 또는 중화 가치의 실천 수단이며 성선을 체현하는 방식.
  • 예에 대한 논쟁은 사회 운영의 대원칙을 두고 벌어진 논쟁.
  • 예송을 현실과 유리된 담론이라 평가하는 것은 당대의 "예"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18세기 호락논쟁

호락논쟁이란?

  • 조선 후기 가장 쓸데없는 비현실적 논쟁으로 비판됨. 실학과 대비되어 집권층의 무능을 규탄하는 데 들먹여짐
  • 호락논쟁의 본질:
    • 심성론의 성선의 강조로 생기는 모순을 둘러싼 논쟁.
    • 사람의 성과 개의 성이 같은가 다른가? (인물성동이론) $서인 = \begin{cases} {노론 = \begin{cases} 낙론 & 인성 = 물성 & 본성의\ 선함\ 중시 \\ 호론 & 인성 \ne 물성 & 기질의\ 발현\ 중시 \end{cases}} \\ {소론} \end{cases}$
    • 성인과 보통 사람의 성은 같은가 다른가?
    • 인간이 받은 성이 하나냐 몇 개냐?
    • 인간의 본성(정확히는 도덕심)에 관한 논쟁
  • 호락논쟁의 목적
    • 성리학에 내재된 모순을 둘러싼 논쟁
    • 조선 후기에 악화된 강상윤리 문제(백성들의 도덕이 지켜지지 않음)가 지배층에게 포착되고, 그 해결을 위한 노력
      • 유사한 사례 = 춘향전? : 평민 내지 천민도 도덕률을 따를 수 있다는 주제
    •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청나라 문물의 도입 문제로 연결 → 북학파
  • 실용성, 현실성이라는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개념으로 성리학과 실학을 나누고 선악을 구분하는 것은 비현실적.
  • 역사의 무엇이 실용적이고 현실적인지 따지기 위해서는, 당대의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이야기를 하였는지 정확한 사실과 맥락을 먼저 알아야 한다.
  • 조선의 멸망의 원인을 양반과 성리학의 책임으로 전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식민사관의 정체성론과 다를 바가 없음
  • 과연 실학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가?
    • 유형원, 이익, 정약용의 토지개혁론: 주례에 따른 복고적 성격
    • 유형원은 사칠논쟁에 관심이 엄청 많았다 - 실학자가 성리학자와 분리되는 집단인가?
    • 박지원, 홍대용은 호락논쟁에 깊이 관여
    • 정약용의 예에 대한 지대한 관심 - 엄청난 복고주의. 단순히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으로 읽히는 것일 수도(예: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가 문제가 많으니 로마 공화정을 부활시키자)

성리학의 재평가 - 성리학은 배타적인가

  • 성리학이 이단에 대해 관대하지 않은 이유: 도통의 중시는 수양의 중요한 수단
  • 사문난적 사건
    • 통념: 송시열과 달리 다양한 사상에 관대했던 윤휴가 사법살인 당함
    • 오해: 윤휴는 도체찰사부 설치와 관련된 남인들인들의 역모에 연루되어 사사

성리학의 재평가 - 성리학은 사대적인가

조선중화주의의 관념성

  • 중화란 관념상의 존재이며 서인 노론의 권력유지용 레토릭에 불과, 결국 조선후기 사회 정체를 초래하여 ‘근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비판
    • 그러나 영정조 때 역시 명나라에 제사를 지내는 등의 행동이 나타나는 등 모순점
    • 가상의 근대지향적 당파를 만들어 조선후기에서 서양식 진보와 관념을 설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역사적

조선중화주의의 비주체성

  • 조선중화주의는 변방의 조선이 중국을 흉내내는 소중화에 불과, 묘비명에도 공식처럼 박힌 "유명조선국" 등 명나라에 대한 숭명성이 뼛속깊이 박혀 있다는 견해
    • 존주(尊周)와 존명(尊明)을 혼동한 오류
    • 주나라 = 삼대 = 중화문화 = 왕도정치 = 유교의 보편문화적 지향성
    • 명이라는 왕조 자체에 대한 지향이 아니라 어떠한 상징체계를 지향한 것
    • 근대적 민족국가의 틀로 당대를 읽어서(주나라면 중국) 일어난 오류
  • 조선의 중화주의가 자주적이었는지 근대적 민족국가를 향해 달려갔는지 그럴 의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애초에 말할 필요가 없음

결론

실학은 성리학과 대립되는 존재가 아니라, 특정한 방법으로 성리학적 가치를 지향한 성리학의 일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