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실학연구의 이념적 기반

한국사 서술의 방향: 근대, 민족

  • 어떻게 한민족 민족국가를 이루고 근대화를 달성했는가?
  • 조선 후기에서 그 가능성을 찾으려 시도했고, 실학은 그 가능성의 이념적 기반 사상으로 이해됨

근대민족은 불가분의 관계

  • 유럽의 근대화는 민족국가 성립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중세의 위기: 농업생산력의 추락. 맬서스 트랩. 흑사병
    • 농업에 기반된 봉건 영주의 지위 동요, 농노의 예속적 지위 해방 → 도시의 발달
    • 종교개혁, 대항해시대
    • 도시국가, 길드의 발달. 자본의 축적. 상업의 발달.
    • 도시와 상업에 기반한 신흥계층 - 부르주아의 형성 → 자본주의화
    • 부르주아들이 봉건 영주 대신 선택한 귀속집단: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풍습을 공유하는)민족
  • 문제는 이건 쟤네들의 역사인 거고 한국사에서도 그것이 가능한가?
  • 유럽인들과 같은 근대 자본 민족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 역사의 목표였나?
  • 애초에 근대란 무엇인가?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근대(modern, 近代)

  • 한국사학계에서 매우 논쟁적 주제 - 아직도 옹호와 비판 세력이 길항 중
  • 근대란 서양에서 출발한 개념
    • 본래 modern의 의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 르네상스에 나온 개념: 지금도 근대고 2백 년 뒤도 근대??
      • "현대" 개념의 발명 - 15 ~ 18세기를 "근대"로 정의
      • 그러나 한국사에서 15 ~ 18세기에 서양의 그것에 해당하는 역사는 없음
    • 이때 형성된 주요한 개념 - 시간의 흐름과 진보. 고-중-근-현. "인간의 역사는 점점 진보한다. 근대를 달성해야 진보한 것이고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 이걸 역사에 적용시킨 인간 → 카를 마르크스여기저기 얼굴 다 내민다
    •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 원시수렵채집제 - 고대노예제 - 중세봉건제 - 근대자본제 - 공산주의제
    • 역사적 유물론: 생산양식의 발전과 역사변화
      • 생산력(경제)이 하부구조, 정치문화사상은 상부구조 (쌀이 있어야 뭘 하든지 말든지)
      • 생산력 차이(하부구조의 변화)에 의해 사회계급이 분화되고 계급투쟁이 발생, 그로 인해 사회구조가 변화(상부구조가 변화): 하부에 이어 상부구조까지 변화하면 인간의 역사는 다음 단계로 이행
      • 하느냐 마느냐는 사회 구성원의 역량에 달려 있지만 어쨌든 진보의 개념을 상정
    • 마르크스는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역사라고 주장했으나 사실 지극히 유럽 중심적 사고
    •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를 충족시키는 물적 증거가 되는 사회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음(유럽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
    • 마르크스가 보기에 아시아의 역사는?
      • 아시아의 역사는 유럽과 상당히 다르다. 유럽은 이미 근대인데 동양은 중세인지도 아닌지도 모르겠음. 노비(=노예?)도 있고
      • 내가 보편적인 발전단계를 세웠는데(…), 동양은 여기서 벗어나는 독특한 모습을 보임. 변화가 없는 정체된 생산양식이 곧 아시아적 생산양식
    •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 마르크스가 몰라서 그랬다, 우리에게도 발전이 있었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과제
  • 막스 베버의 마르크스 비판
    • 세상이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되냐.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다원성을 강조
    • 청교도 윤리 → 자본주의 발전
    • 그런데 베버도 아시아를 보니까 아시아는 정체되어 있음
      • 이게 다 유교 때문이다 (유교는 위계질서가 철저하고 그 틀로 인해 변화가 없다)
    • 그러나 베버 역시 진보라는 개념과 그 결과로서의 근대를 전제
  • 베버는 이렇게 싸질러 놓고 죽었는데 베버의 후학들 세대가 되자 일본이 자본주의화에 성공, 제국주의 열강이 됨 → ???
    •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개념 - 유교자본주의론
      • 개소리죠 싯팔 (이미 폐기된 지 고렷적)
      • 역시 아시아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데서 마르크스와 다를 바 없음
  • 한국 사학계에서는 특수성 이야기를 더 하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
  • 그러나 서구, 특히 구조기능주의 사학에서는 여전히 마르크스-베버에 천착 중이기에 간극이 심함
  • 그래서 돌아돌아 결론은 서구식 근대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국에서의 근대성

베버 똘마니들을 골치아프게 한 일본보다도 상황이 복잡

  • 일본은 자기들도 제국주의 열강이기에 서구만 극복하면 됨
  • 한국은 "아시아적 특수성"뿐 아니라 일제식민지배까지 극복해야 하는 이중적 조건
  • 일제의 식민사관: 한국의 정체성("특수성")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자생적 근대화(= 자본주의화)가 불가능함

식민사관에 대한 대응과 비판

  • 내재적 발전론
    • 내재적 발전론에도 여러 분파가 있으나 공유하는 전제는 다음과 같다
      • 한 국가의 발전동력은 국가 내부, 즉 민족에 있다
      • 민족 중에서도 아래, 지배층이 아닌 민중에 있다 (e.g. 동학농민운동 강조)
    • 80년대 민중사학을 지나면서 민족, 민중 개념의 발달
    • 개항 이전 조선 사회는 정체된 사회가 아니라 내부에서도 민중의 움직임이 있었다
      • 이게 과하게 나가면 광작 부농, 자본주의 맹아론, 서울 도시사 같은 것이 됨
    • 식민지배 비판: 니들이 끼어들어서 그랬지 우리도 알아서 할 수 있었다. 니들은 우리 삥뜯기나 했지(→ 식민지 수탈론)
    • 이런 과정에서 실학의 발견(70년대)
  • 식민지 근대화론
    • 1980년대부터 내발론 비판 → 알 수 없는 힘(…)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 자주적 근대화 부정. 자본주의의 동력만큼은 외부에서 온 것이다
    • 일제 식민지 개발 성과의 인정
      • 식민지 개발의 경험이 60년대 이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 통계와 수치
        • 30년대 일본 유학생 수 15,408명, 40년대 일본 유학생 76,978명 그 중 절대 다수가 중학생(즉 미래 근대화 역군이 될 세대). 이 사람들이 일본에서 경험해 온~~~
        • 1911년까지 신설된 도로 828km, 1937년까지 27,732km
        • 철도의 경우 1914년까지 1,798km, 1942년까지 2,233km
  • 포스트모더니즘
    • 내발론과 식근론 니들 모두 한심하다
    • 둘 다 "민족"과 "근대화"의 설명을 목적으로 삼고 있음.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자
    • 민족국가화, 근대화는 관심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
    • 문제
      • 대안이 음슴: 무슨 다른 시각?
      • 통일성 없는 다양성: 그래서 니들 하고 싶은 얘기 한번 해 봐라 하면 통일된 담론이 아리마셍
      • 국사교과서 패러다임에 변화가 없는 것도 포스트모던을 비롯한 기존 담론 비판자들의 무능함 때문
  • 그렇다면 대안(aka. 교수님 생각)은?
    • 내재적 발전론의 비판적 계승
      • 한 국가의 발전이 외부의 동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건 말이 안되는 건 자명
      • 그 국가가 걸어온 길이 실재함은 분명한 사실
    • 한국 역사의 자체적 흐름의 귀결이 근대. 서구의 경로가 기준이 되지 않음
      • 어떤 평가 기준을 세워서 이건 나쁘고 이건 좋고 할 것 없이 우리는 이미 근대를 거쳐 현대에 도달해 있음
      • 여기서 근대란 서양 기준의 근대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시간의 흐름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
      •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을 설명하는 방법이 되어야

한국에서의 민족성

  1. 단일민족
    • 우리가 단일민족일까? : ㄴㄴ
    • 단일민족을 강조한 이유
      • 일제시대 - 신채호, 이광수 등. 일본에 대항하는 공동체로서의 의미
      • 해방정국 - 국내외 냉전 정세, 남북 단일정부를 주장한 김구의 감정팔이
      • 안호상, 이승만의 일민주의: 국가를 위한 개인의 희생, 공산주의와 대항하기 위해 사용됨
      •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이념과 민족주의의 결합
        • 파시즘적 성격. 경제개발에 동원될 존재로서의 국민.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기 위한 기제
        • "국가에 대한 충성, 부모에 대한 효도, 두레 계 향도와 같은 공동체 조직이 발달하는 우리 민족의 특수성” → 새마을운동
        • 충효 개념의 왜곡: 본래는 효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충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 → 충과 효를 동치, 군사부일체를 주장(실제 조선시대에는 그런 거 없다)
  2. 반만년(5천년) 역사
    •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 강조(단군할배)
      • 60여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
      • 고려시대에 단군신화는 "기이한 이야기"로서 전승. 조선시대에도 너무 허황되어 믿지 못함.
    • 일제의 식민사관(한반도의 역사는 한사군에서 시작된다)과 선사시대 역사 강조
      • 선사시대 강조는 근대 역사학의 산물
      • 민족은 실체가 아닌 정체성. 선사시대 한반도인과 현대의 우리가 공유하는 무엇이 있는가?
  3. 근대에 만들어진 민족문화
      • 광개토대왕비: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오랑캐 추장의 비석이라 칭함(용비어천가). 일본 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 정당화 과정에 재발견됨
      • 고려청자: 지금 돌아다니는 청자는 무덤에 묻혀 있던 부장품들. 조선시대에는 청자를 거의 볼 수 없었음.
      • 조선백자: 새하얀 민짜 백자는 단아한 사대부의 정신? 개뿔 조선이 세계무역에서 고립되어 코발트 안료를 구할 수 없었던 것임
  4. 한글과 민족문화의 함의
    • 훈민정음 역시 어디까지나 통치의 일원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도
    • 그러나 우리는 민족문화의 창달의 입장에서 설명.
    •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던 당시 조선에는 민족 개념이 없었음
  5. 민족과 실학
    • 진경문화와 실학의 연결, "우리 역사, 지리, 국어를 연구하는 국학"
      • 그러나 이것이 실학자들이 민족의식이 있어서, 민족문화를 보존하려는 의도로 한 것이겠나?
      • 지리지는 지도와는 다르다. 일종의 통계조사인데 마치 "우리의 국토"에 대한 관심으로 포장. 지도 역시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서 국가기밀. 그런데 이걸 마치 보급용인 것처럼 오해
      • 언어, 정확히 음운론의 경우: 조선 초에는 중국처럼 조선말에도 성조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데서 출발
    • 실학이 민족적이라 칭함은 한국사를 서술하는 큰 구도와 일맥상통. 그러나 실학과 민족은 연결시킬 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