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학에 대한 현대의 시각

실학에 대한 통념

  • 실학: 실체적 사실이 아니고 역사적 구성물
실학의 어원
성리학 탄생 당시 성리학은 실학, 불교는 허학이라 칭함(e.g. 불씨잡변). 당대 실학은 일종의 보통명사 개념.

1970s 이후 한국 사학계에서 조선 후기 탈성리학적 학문에 실증, 실용이라는 성격을 부여, 실학이라 명명

국편위 교육과정 국사교과서 내용: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필요성
정치적 배경
정치판 싸움질, 소수의 영웅(율곡, 유성룡, 이순신, 정조, 실학자). 새로운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안주한 왕조, 노론의 일당전제화, 비변사 강화, 세도정치 끝에 망함.

→ 삼사나 붕당에서 현대 민주주의의 모습을 읽으려 함

경제적 배경
농업 기술 발달, 광작과 부농 출현, 지주와 소작농의 양극화, 소작농도 못 되는 이는 도시로 가서 임노동자화, 도시에 인구가 모이면 당연히 상업이 발달. 관영 수공업, 광산이 이런저런 이유로 민영화. 수취제도에서는 조세의 금납화, 공인이니 사상이니

→ 내재적 발전론(거시적으로 맞을 수 있음), 자본주의 맹아론(이건 뻥카)의 반영
→ 특히 광작, 부농의 경우 일부 사례를 침소봉대.

사회적 배경
경제적 변화로 인해 신분제 동요. 성리학에서는 상업을 억압하고 농업을 장려하는 것이 도그마. 지배층 입장에서 위의 과정은 망조. 변화를 긍정한 일부 사람들이 실학이고, 사회 개혁을 추구한 사상으로 인식.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억압. 그리고 그 원흉이 유교고 성리학.

→ 서구 근대(자본주의, 민주주의)라는 모델이 이미 설정되고 그에 조금이라도 합치되면 실학자라고 어거지 분류(e.g. 김정희)
→ 실학자들은 근대적인 영웅 존재가 아님. 박지원의 신분제 옹호, 유형원과 정약용의 국가주의.
→ 실무 담당 관료들과 비교해서 재야의 실학자들에게서 오히려 보수적이고 비현실적인 면모 발견

국사교과서의 통설과 그에 대한 반박

  1. 성리학의 융성
    • 이황 - 주리론, 이상적, 원칙적.
    • 이이 - 주기론, 현실적, 개혁적.
      • 주리 주기론 대비는 학계에선 이미 폐기된 구도. 사실 두 사람 다 주리론.
      • 이황은 재야에 있었고 이이는 관료생활을 했기에 주로 이야기한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음
    • 북인은 사회개혁과 탈성리학적,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서인 정권은 의리명분론
      • 이이를 계승했다는 서인들이 성리학 교조화를 했다는 모순
    • 성리학 사상의 원숙은 병자호란으로 이어졌다
  2. 성리학의 교조화
    • 서인의 주자 중심 성리학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주적이 송시열
    • 윤휴, 박세당은 양명학의 영향을 방닸으나 노론에게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는다
      • 송시열과 윤휴, 박세당의 논쟁은 주희의 해석 문제에 불과
      • 윤휴는 역모에 연루되어서 죽은 것이지 사문난적이라고 죽은 게 아님
    • 이기론, 심성론, 호락논쟁
  3. 양명학의 수용
    • 양명학은 실천성을 강조, 신분제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 증거가 없음
    • 소론 계열 강화학파는 실학자들과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구한말 국학(정인보, 박은식)으로 계승됨
      • 양명학 집단과 실학 집단이라는 게 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데 그런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음
  4. 실학의 등장
    • 실학의 정의: 17 ~ 18세기 사회경제적 변동에 따른 사회 모순의 해결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대두한 학문
    • 조선 후기 양반 사회의 모순이 심각해졌음에도 지배 이념이던 성리학은 현실 문제 해결 의지가 없었다
      • 시스템 자체를 뒤엎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에 모순이 있다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폐기하자고 쉽게 말할 수 있나?
      • 결국 당대 지배층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무엇은 시스템이 잘 돌아가던 과거 세종대왕 때로의 회귀
    • 실학은 성리학 한계성을 자각하고 비판하며 현실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를 탐구. 민생안정, 부국강병
      • 민생안정은 실학자, 성리학자, 양명학자 막론하고 엘리트 계층의 의무. 실학자들이 독점할 용어가 아님
      • 부국강병이란 해보지도 못한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 유교 사회 당대에는 "부국강병"이라는 말이 법가적 사상으로서 욕이었음
    • 청나라의 고증학과 서양 과학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 좋아 보이는 건 다 갖다 붙이고 그것이 실학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의도적 왜곡, 오류. 사실상 실학도 성리학의 일부.
  5. 농업 중심의 개혁론
    • 유형원, 이익, 정약용은 농민의 입장에서 토지제도 개혁을 추구
      • 농민의 입장이 아니라 국가의 입장. 이 사람들의 개혁사상은 기본적으로 모든 토지가 국가의 것이라는 유학의 왕토사상에서 시작.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국가주의적 기획을 지향했음.
      • 유형원의 균전론: 주나라의 정전제가 모델. 신분에 따른 경작권의 차등분배
      • 이익의 한전론: 균전론의 보강. 국유지와 매매 가능한 토지의 구분. 그 토지도 매매시에 관에 신고
      • 정약용의 여전론: 무시무시(…)하다. 30가구를 1여로 묶고 여장을 뽑아 농사 안 짓고 관리감독을 맡김. 공동경작 후 세금과 여장의 월급을 떼고 노동량에 따른 분배. 중간 착취자 없이 국가가 민을 직접 장악지배. 전쟁시에는 1여가 곧 소대로 전환되는 병농일치의 절정.
  6. 상공업 중심의 개혁론
    •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 아까까지 노론 욕 실컷 해놓고 노론 집안 사람들을 북학파라고 묶어서 인지부조화
      • 노론 명문가 자제였기에 청나라를 왕래할 기회가 많았음을 유기적으로 설명하지 못함
    • 실학은 실증적 민족적 근대지향적 특성을 지닌 학문이었다. 19세기 개화사상으로 이어진다.
      • 실학에 부여된 정체성 - 실증, 민족, 근대.
      • 성리학의 봉건성을 깨고 나오려던 것이 실학. 형이상학적 사변에 저항하는 실증적 사상. 중화주의에 저항하고 독자적 민족관을 확립한 사상. 사농공상에서 벗어나 근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상.
      • 민족과 근대라는 지향점의 선험적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