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승리를 막아내는 방법

언니는 언제나 나보다 뛰어났다. 그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한때는 그런 언니가 마냥 좋았다. 무엇을 해도 누구보다 잘하는 언니,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보다도 예뻤던 언니. 하지만 언제까지나 동경만 할 순 없었다. 그것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쯤, 우리나라 여자 야구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우승했다. 나는 그 경기를 언니와 함께 봤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더블플레이로 잡는 류현아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비명을 질렀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질투심 같은 감정 없이, 순수하게 언니를 동경했던.

나는 투수가 되고 싶었다. 압도적인 구위로 타자들을 찍어누르는 파워 피쳐도 좋았고,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며 맞춰서 잡는 기교파 투수도 좋았다. 그저 에이스가 되어서, 선발로 등판하는 날이면 팀원들에게 승리한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런 꿈을 안고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야구부에 들어가자마자 그것은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니는 언제나 나보다 뛰어났다. 비극적인 것은, 우리가 같은 꿈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니는, 벌써부터 학교의 에이스로 전국에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마운드에 내가 설 자리는, 전혀 없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긴 다리, 강한 어깨. 생머리를 흩날리며 패스트볼을 찍어내리는 언니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오히려 더 숨을 막히게 했다.

언제였던가, 교내 청백전에서 언니의 공을 상대한 적이 있었다. 역동적이면서 부드러운 투구폼과 함께 공이 던져졌고, 그것은 머리 쪽으로 날아왔다. 나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맞아서라도, 꼭 이 승부에서 이기고 싶었다. 눈을 감고, 얼마 뒤, 미트에 뻥, 하고 공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심판은 스트라이크 콜을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나는 눈을 떴다. 그러나 확실히 미트는 스트라이크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씨익 웃는 언니를 보며, 분한 마음에 배트로 그라운드를 내리쳤다. 다음 공은, 꼭 쳐내겠다고 다짐하며.

하지만 결과는 삼진이었다. 그것도 단 세개의 공만에.

내가 유격수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언니를 괴롭히고 싶다, 그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투수는 수비수에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수비의 중요도가 가장 높은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투수의 꿈에서 날 좌절시킨 작은 키는, 유격수를 보기에는 오히려 최적의 조건이었다. 다리 또한 빠른 편이었기 때문에 나는 유격수란 포지션에 빠르게 적응했다. 그러자 타격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언니의 공은 치지 못했지만, 주전급으로 대회에 나가기엔 충분했다.

언니를 앞세우고 우리 학교는 어느새 결승전까지 나갔다. 모두가 들떠있는 가운데, 나는 남몰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될, 비밀스러운 계획이었다.

결승전의 날, 나는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병살타 두 개와, 팝플라이 하나와, 삼진 하나. 팝플라이와 삼진은 일사 만루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평소보다 배트를 무성의하게 휘둘렀을 뿐이었다. 덕분에 게임은 접전으로 치달았고, 9회초까지 우리 팀이 낸 점수는 단 한점이었다. 다만, 상대는 언니에 막혀 단 한점도 내지 못했다.

마침내 9회말, 상대 팀의 2번 타자가 타석에 섰다. 언니는 체인지업을 던졌고, 빚맞은 공은 힘없이 내 쪽으로 굴러왔다.

절호의 기회였다. 공을 따라 달려가던 나는, 글러브로 공을 잡아올리다 한번 저글링을 했다. 당황한 척 하며 빠르게 1루로 공을 던졌지만, 악송구가 되어 땅에 박힌 공은 덕아웃으로 날아갔다. 자동 진루권이 주어져 주자는 2루에 서게 되었다. 무사 2루, 범타 두 개만 나와도 스코어는 동점이 된다.

하지만 언니는, 날 돌아보며 씩 웃어 보인 다음, 클린업 트리오를 삼진, 삼진, 파울플라이로 깔끔하게 잡아냈다.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투구였다. 단지 등 뒤에서 보고만 있을 뿐인데도, 공의 위력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모두가 들뜬 분위기 속에서,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분했다. 언니를 무너뜨리지 못한 것이. 하지만 그것보다 더 분했던 건, 그 투구는 오로지 날 위해 던진 거라는 것이었다.

언니는 감독의 추천으로 최고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다음 해, 나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언니와는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더 좋은 곳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었다. 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곳으로.

고등학교에서, 나는 드디어 투수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신체조건은 떨어졌지만, 온몸의 힘을 쥐어짜서 던지는 투구폼으로 강한 공을 던질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에이스가 될 수 있었다.

힘들었다. 한번 선발등판을 하고 나면 팔뿐만 아니라 전신이 아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에이스로써의 기쁨은 더욱 컸다. 등판만 하면 승리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에이스. 비록 약팀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마운드에 서 있는 동안에는, 우리 팀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팀이었다. 그것은, 절대로 언니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일년 정도 지났을까. 구단 입단이 결정된 언니가 내가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했다. 17명의 타자를 오직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볼넷은 단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완봉을 하고 돌아온 덕아웃에는 언니가 있었다. 나는 내심 뿌듯한 기분이었다. 나도 드디어 에이스가 되었다고. 언니와 마찬가지로, 같이 열광했던 류현아와 같은 투수가 되었다고.

하지만 언니의 표정에서는 자부심이나 축하, 혹은 질투심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걱정하는 표정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던지다간 버틸 수 없을 거다. 언니는 짧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에이스로써 거듭난 모습을 보여준 날인데, 할 말이 그것밖에 없다니.

그날, 나는 처음으로 언니에게 화를 냈다.

2년을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약팀의 압도적인 에이스로 버텼다. 프로지명이 다가오자, 내 이름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뉴스에 짧게나마 날 소개하는 기사가 나왔고, 내 투구를 보러 오는 팬들도 생겨났다.

물론, 그중에는 이미 프로 1년차에 에이스로써 활약하는 언니의 이름값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도 언니 못지 않다는 것을, 언니만큼 잘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드래프트가 시작되고, 나는 2라운드 1픽으로 팀에 지명되었다. 그날은, 언니와 함께 올림픽 우승을 본 그 날 이후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구단과의 계약이 진행되고, 내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도 받았다. 삶은 날개 돋힌 듯 순조롭게 풀려가고 있었다. 에이전트를 만나고, 협상 끝에 만족할 만한 최종 계약에도 합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디컬 테스트가 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이 이렇게 돌아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약간 불편한 곳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투수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정도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구단은 며칠 뒤, 내게 계약 불가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사유는 간단했다. 어깨의 관절와순에 손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삶이란 그렇게 쉽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언니는 언제나 나보다 뛰어났다. 이번에도 예외가 되진 못했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 사실이, 더욱 분했다.

이후 한참 동안, 나는 야구공은 손에 잡아보지도 못한 채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언니는 이미 프로구단에서 에이스로써 공을 던지고 있는데, 그 모습을 티비로만 가만히 앉아 지켜봐야 한다니 너무 분했다. 그 때문에, 더욱 열심히 재활에 매달렸다.

하지만 그렇게 재활을 끝마치고 나서도 나는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예전의 구위는 돌아오지 않았고, 심지어 송구 문제로 유격수마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나는 2루수로써 구단에 입단했다. 부상 경력으로 인해 드래프트에서도 픽되지 못했기 때문에 신고선수로 들어가야만 했다.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군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10타수 무안타와 실책 몇개를 저지른 후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정작 2군 무대에서도 그리 잘하지 못했다. 나 자신을 이기고 싶어서 최대한 강하게 스윙하려 했지만, 배트는 힘없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내가 이러는 동안 언니는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고, 국제대회에 나가 어린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류현아처럼 한국 대표팀을 우승시키기도 했다. 점점 언니와 나의 격차는 멀어져만 갔다. 언니는 저렇게 빛나고 있는데,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행가레를 받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문득 한마디가 기억속에서 떠올랐다. 그렇게 던지다간 버틸 수 없을 거다. 어쩌면 타격도 마찬가지일지도 몰랐다.

배트를 짧게 잡고 자세를 낮추었다. 스윙을 짧고 간결하게 바꿔 최대한 공을 오래 보고 휘두르려 했다. 그러자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홈런 타자는 되지 못했지만, 조금씩 타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컨택트가 되니, 빠른 발로 도루도 자주 할 수 있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상대팀의 거친 태클로 인해 우리팀의 주전 2루수가 부상당한 것이었다. 마침 확장 로스터가 시작될 즈음이라 내가 콜업되었고, 나는 몇년 만에 다시 1군의 그라운드를 밟아볼 수 있었다.

콜업되고 몇 경기동안, 나는 꽤 괜찮은 활약을 했다. 호수비도 했고, 멀티히트 경기도 몇 경기 만들었다. 조금씩이지만, 팬들에게도 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나는 스타팅 멤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라인업을 확인한 나는, 문득 상대 팀의 선발투수가 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언니는 이미 리그의 에이스로 널리 알려져, 미국에 진출한다는 이야기마저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닐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은 언니의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다.

그날 경기도 팽팽하게 치뤄졌다. 언니는 8이닝을 장타 하나 없이 막아냈고, 한창 상승세였던 우리 팀도 상대 타선을 철저하게 막아냈다. 내 경우에는 3타수 무안타로, 여전히 언니의 공은 단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아마 중학교 때부터 누적을 따지면, 29타수 무안타 정도 될 것이다.

9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 상대팀의 4번타자가 솔로 홈런을 쳤고, 우리 팀은 1점차로 뒤지게 되었다. 추가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지만, 9회말, 여전히 마운드에는 언니가 서 있었다.

언니의 구위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내 앞의 두 타자는 각각 삼진과 내야플라이로 아웃되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언니가 공을 던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패스트볼, 당연하지만 헛스윙이었다. 커브, 볼.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어느새 원볼 투 스트라이크로 카운트가 몰렸다. 경기장에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잠깐 타임을 요청하고, 심호흡을 했다.

배트를 한번 크게 휘두르며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언니와 할 수 있는 마지막 대결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번만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배터박스에 서서, 똑바로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언니는, 살짝 미소를 지은 얼굴로 공을 던졌다. 패스트볼, 나는 전력을 다해 언니의 공을 커트했다. 손이 얼얼했다. 슬라이더, 커트, 바깥쪽 패스트볼, 볼, 몸쪽 커브, 볼, 패스트볼, 커트. 승부는 길어지고, 어느새 풀카운트가 되었다.

투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뜨겁던 경기장의 열기가 어느새 조용해졌다. 마치 세상에 언니와 나, 둘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배트를 꽉 움켜쥐었다. 언니는 모자를 살짝 고쳐 쓰더니, 내게 대견하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우아하고도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아홉 번째 공을 던졌다.

그때, 정확하게 어떤 공이 들어올지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일같이 언니의 투구를 보았던 것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체력이 떨어졌던 걸까. 나는 배트를 휘둘렀다. 딱,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중간에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만이 명확했다. 공은 언니를 넘어 저 멀리로 날아갔고, 정확히 중앙 담장을 넘겼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귀를 찢을 듯한 환호성을 들으며 베이스를 돌 때도, 현실이 아닌 것만 감각만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그것은 내가 언니를 상대로 처음 쳐 본 안타였기 때문이었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12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리 팀은 패배했다. 하지만 그전에 투수는 교체되었고, 언니는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 경기 전까지 언니의 승수는 정확히 99승이었고, 이번 경기를 이겼다면 100승이 되었을 거라 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당분간은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시즌이 끝났다. 언니나 나나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진 못했기 때문에 가을에는 시간이 많았다. 물론 언니는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협상을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언니와 만나게 된 건 계약이 마무리되고 스프링캠프를 치르러 떠나기까지 사이에 남은 아주 잠깐 동안이었다.

오랜만에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야구나, 구단이나,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 언니는 어릴 적 그대로였다. 누구나 자기 뒤를 따르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나는 하고 싶었던 다른 이야기들은 제쳐두고 단 하나만을 물어보았다. 내가 친 홈런 때문에 100승을 할수 없게 되어서 분하거나, 혹은 아쉽지 않느냐고. 그러자 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뭐."

언니는 언제나 나보다 뛰어났다. 그것은 질투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었다.


100마일을 던지는 방법과 같은 세계관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