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돌아가는 길에 누나의 집에 들렀다. 통로 앞에 차를 세우고, 전화를 걸었다.

"잠깐만, 지금 준비중이야. 금방 나갈게."

아무래도 한참은 더 걸릴 것 같았다. 나는 밖으로 나와 차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두 개비째를 끝까지 태워갈 때 쯤, 누나가 밖으로 나왔다.

"미안, 기다렸지?"
"타기나 해. 바쁘다며."
"그렇게 바쁘진 않은데…."

말없이 운전석에 앉았다. 옆 자리에 누나가 타고, 나는 시동을 걸었다. 엔진의 진동이 온 몸을 두근거리게 했다.

"담배, 아직도 피워?"
"응."
"전에 끊은 줄 알았는데."
"끊었는데, 요즘 다시 피는 거야."

사실은, 오늘부터였다.

"몸도 안 좋으면서."
"누나가 상관할 일 아냐."
"칫, 이제 다 컸다고 못하는 말이 없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씹어 삼키고 엑셀을 밟았다.

도로를 달린다. 조용한 차 안에서는 누나의 숨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갑갑한 느낌이 들어 창문을 내렸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귀를 찢었다.

"창문은 왜 내려?"
"담배 냄새 나잖아."
"난 괜찮아. 매연이 더 안 좋은걸."
"내가 갑갑해서 그래."
"그러면 에어컨 틀면 되지."
"덥지도 않은데…"
"갑갑하다며."

잠깐의 침묵. 다시 창문을 올렸다. 나로써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에어컨은?"
"별로 안 갑갑한 것 같아서."
"나 더운데."
"기름 아껴야 해. 참아."
"너무해."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누나가 멋대로 에어컨 버튼을 눌렀다. 차가운 바람이 쏟아져나오자 갑갑한 것도 조금 덜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단 에어컨의 소리가 더 중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에어컨 트니까 낫지?"

누나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내 목소리는 그러지 못했다.

누나가 전화를 걸어 온 것은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받는 번호라, 화면에 누나라고 이름이 떠 있음에도 잠깐 누군지 파악하지 못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전화를 받자마자 누나는 그렇게 말했다. 잠깐 당황해서, 나는 말없이 있기만 했다. 그러자 누나가 당혹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전화 잘못 걸었나요? 그, 번호가…"
"아니, 나 맞아 누나. 너무 오랜만이라."
"그랬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야?"

누나와는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독립해 나오고 나서도 잠깐 동안은 자주 연락도 하고 만난 것 같았는데, 어느샌가 연락하는 빈도가 줄어들더니 끊어진 것이었다.

"그게, 혹시 나 좀 태워줄 수 있나 해서."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였다. 오늘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로 했는데, 기차표 사는 걸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 사람이 먼저 가버렸거든.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버스는?"
"시간이 안 맞아."
"택시는?"
"그게… 좀 불안해서. 멀기도 하고."

그렇긴 했다. 하지만, 누나를 태워주는 건 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될려나? 너무 멀긴 한데…"
"알았어. 곧 갈게."
"정말? 고마워."

전화를 끊는 순간, 생각났다. 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

"첫번째 차선을 따라 달리세요."

내비게이션의 딱딱한 목소리를 따라 자동차를 몰았다. 안내선을 따라 달리고 있으니 기계 부품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더 나았을까.

"요즘 뭐 하고 지내?"

갑작스럽게 누나가 말을 꺼냈다.

"그냥. 별 일 없지."
"응…."

또다시 대화가 사라졌다. 슬쩍 쳐다보니 누나는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화면이 꺼졌다.

"아, 충전…."

배터리가 다 나간 듯 했다. 누나는 심심한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오디오의 버튼을 눌렀다.

"이 판에 불을 붙일 무장된 라임과…"

오디오에 넣어둔 시디가 재생되자마자 다시 꺼버리고 말았다.

"너 아직도 힙합 듣니?"
"왜?"
"그냥, 이런 건 그만 들을 때도 됐지 않나 싶어서."
"글쎄."

또다시 정적. 창밖으로는 풀숲과 논밭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도시에서 조금만 바깥으로 나오면, 이런 풍경이 나타나는 것이다.

"아 맞다, 며칠 전에 은지 만났어."
"은지?"
"왜, 기억 안 나? 어릴 때 동네에 같이 살았던 애 말야."
"아, 걔."

사실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알고 있는 듯 대답하기로 했다.

"응. 근처 회사에 다닌다고 하더라고. 네 소식도 물어보던데."
"어떻게 지낸다는데?"
"최근에 올라왔다고 하더라. 아직 혼자인것 같은데."
"그래…."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 너 여자친구 있어?"
"아니."
"아직도?"
"응."
"사귄 적도 없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분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런 기분이 든 적이 없었다.

"아직까지 그러면 어떡해."
"내가 알아서 해."
"누나 후배 소개시켜줄까? 지금…"
"아니, 됐어."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나는 라디오를 틀었다. 그 틈으로도, 누나의 숨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공기가 순환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되돌릴 수가 없다. 완전히 망가진 채로 걸려버려서,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게 된 것 같다. 나는, 언제까지 괴로워해야 하는 걸까.

"야, 조심해!"

누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앞 차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속도를 줄여 겨우 충돌한 걸 막을 수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괜찮아?"
"난 괜찮아. 누나는?"
"나도. 혹시 졸려? 내가 대신 운전할까?"
"아, 아냐. 잠깐 주의를 놓친 것 뿐이야."

등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500미터 앞 터널 진입입니다."

내비게이션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적지까지 1km 직진입니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어느새 목적지가 가까워져 있었다.

"거의 다 와 가네."
"응."

누나는 지루한 듯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문득, 사고가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적도 남지 않고, 모두 불타 버린다면. 부모님이 슬퍼하겠지. 그 사람도.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 나는 차를 세웠다. 교차로였다. 양 옆으로 길이 나 있고, 직진하면 그 사람이 기다리는 곳이 나오겠지.

문득, 여기서 직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진하지 않고, 차를 돌려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꺾어 달려간다면. 어쩌면 저기 어딘가엔, 세상과 동떨어진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남매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거나, 혹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그런 곳이.

"누나."
"응, 왜?"

나는 누나를 돌아보았다. 오랫동안 차를 타서인지, 얼굴에 피로감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 사람… 많이 좋아해?"

누나는 잠깐 멍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다, 밝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응. 그런데 그건 왜?"

그 웃음을 보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냐, 아무것도."

파란불이 들어왔다.

"너도 같이 갈래?"

목적지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기 전 누나는 말했다.

"됐어.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알았어. 그럼 다음에 보자. 아, 오늘 고마웠어."

그렇게 말하고 누나는 집앞의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이 열리자 그 사람이 서 있는게 보였다. 누나는 웃으며 그 사람에게 안겼다.

문득,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자동차의 액셀을 밟았다. 멀리 떨어진 길가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문득,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던져 버리고,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했다. 화면에 선이 그려졌다. 나는 액셀을 밟았다.(*)


오랜만에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