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아직 한 학기만이 지났을 뿐이지만, 진아에겐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라져 있었다. 고등학교와는 달리 반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앉아있는 것 만으로 친구를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동아리에 들려고 해도 딱히 하고싶은 게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난 기숙사 룸메이트와는 인사만 하다가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경험상 이런 상황은 진아라는 인간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계속되기 마련이었다.

진아가 보기에 대학교라는 건 두 가지 종류의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포식자고, 두 번째는 먹잇감이었다. 그녀 자신은 명백하게 먹잇감에 속해 있었다. 그것도 먹음직스럽지 않은 부류의. 먹잇감들끼리 친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먹힐 만큼 매력적이지도 않으니,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녀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며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사실 혼자라는 게 그렇게 괴로운 일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이야 페이스북이든 카카오톡이든 언제든 연락을 취할 수 있었고, 도서관은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시청각실에 앉아 히치콕, 큐브릭, 웰즈 등의 영화를 보다 보면 시간이야 금방 가기 마련이었다. 닫을 때가 되면, 책을 잔뜩 빌려 와서 기숙사 침대에 엎드려 읽으면 그만이었다.

계절학기의 첫 날부터 그녀는 그렇게 했다. 아침 수업을 들은 후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카프카, 피츠제럴드, 셀린저 등을 빌려와 책상에 잔뜩 쌓아놓고 읽는 것이었다. 방학이라 도서관이 빨리 닫긴 했지만, 그녀는 애초에 책 쪽이 더 좋았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게다가 룸메이트는 첫날부터 술을 마시는지 짐만 풀어놓고 사라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책 읽기는 더욱 좋았다.

그녀는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을 스피커로 틀어놓고 하염없이 책을 읽었다. 그러다 예고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다급하게 끌 수밖에 없었다.

통금 시간이 다 되어서야 들어온 룸메이트는 그녀를 슬쩍 돌아보더니 "책 많이 읽네." 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고는 샤워를 하러 나갔다. 공기 중에 남아 있는 진한 화장품 향이 그녀가 들어온 적이 있었단 것을 알려줄 뿐이었다.

진아가 보기에 수영은 명백히 첫 번째 유형에 속하는 인간이었다. 그녀와는 반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행동반경이 달랐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마주칠 때가 있었는데, 잠깐 보고 지나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먹이사슬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대단하구나, 진아는 내심 감탄했다.

같은 방을 쓴지 일주일은 되었지만, 진아는 수영과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진아는 주로 낮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 밤이 되면 들어왔고, 수영은 무슨 일을 하는지 밤 동안에는 바깥에 나갔다가 통금 시간이 해제되고 나서야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아가 책을 잔뜩 들고 방으로 돌아와 보니 수영이 침대에 누워 있는게 보였다. 피곤한지 눈을 붙이고 있었기에 그녀는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었다. 페이지 넘어가는 소리만이 정적 사이로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수영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책 읽는 거 좋아해?"
"응."

세 번은 물어본 것 같은데.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맨날 책만 보면 안 질려?"
"별로."
"책 보는 게 뭐가 좋아?"
"으음. 글쎄… 아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라 그런 게 아닐까."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해?"
"응."
"나도 재밌는 이야기 하나 있는데, 해줄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영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어."

그 동굴은 저수지 근처에 있었는데, 딱히 어떤 용도로 쓰이는 것은 아닌지 내부는 조명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고 한다. 어른들도 그 동굴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것이 없었고, 딱히 자료를 찾아볼 만한 곳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선 그 동굴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그게 뭐냐면…"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수영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뒷 이야기는 다음에 해줄게. 급한 일이라. 미안."

그렇게 말하고 방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한동안 진아는 그 소문이 과연 무엇일지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읽은 괴담들이 떠올랐다. 이누나키 터널이라던가. 동시에 수영에게 걸려온 전화가 무엇인지도 상상해 보았다. 화면에서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변하던 그 표정. 보기 싫은 선배라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소문은, '동굴은 사실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입구'라는 거였어."

며칠 뒤에 들은 소문의 정체는 의외로 시시한 편이었다. 마침 그때가 디아블로 2가 유행하던 때였기 때문에, 마치 웨이포인트처럼 그 동굴로 들어가면 다른 공간으로 빠져나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넘어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어서 그런 거고. 아무튼 어두컴컴한 동굴이니 겁도 나고 해서 딱히 시험해보려는 아이는 없었지."

그러던 어느 날 학교의 아이들 중 하나가 실종되었다. 한동안 조사가 계속되었지만, 결국 발견되지 않은 걸로 끝난 것 같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며칠 뒤,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건 그 아이가 동굴 너머에 있는 또다른 세계로 넘어갔다는 것이었어. 실종되기 하루 전 날 그 아이가 동굴로 갈 거라고 이야기했다고 하기도 하고."

소문은 확산되더니 기묘한 이야기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악마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했다는 것에서부터 왕이 되어서 호화롭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결국 아이들은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동굴을 탐사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

"손전등이나 식량 같은 것들을 잔뜩 챙겨서 아이들은 동굴로 들어갔어. 나도 거기 있었고.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수영은 번호를 확인하더니, 저번과 비슷한 느낌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별 말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갔다.

동굴 안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씹으며 진아는 생각했다. 정말로 다른 세계가 있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라면 수영이 멀쩡히 살아서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리 없으니. 의외로 동굴은 단지 동굴일 뿐이었다는 시시한 결말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굳이 이야기로 들려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던 진아는 문득 창밖에서 익숙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딱 달라붙는 홀복을 입은 수영이 길 건너편에 있었다. 혹시 여기 오려는 걸까. 햄버거를 먹을 것 같은 몸매는 아닌데. 그러면 뒷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하지만 수영은 바로 앞 도로에 주차되어 있던 검은 승합차에 올라탔다. 밤이라 그런지 그 모습은 왠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태운 차는 비슷한 복장을 한 몇 명의 여자들을 더 태우고는 도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후 진아와 수영의 접점은 기이할 정도로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바깥에서 만나는 일은 원래 거의 없었지만, 기숙사에서조차도 두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잠에서 깨면 화장품 냄새로 수영이 다녀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동굴 안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는 무엇일까. 그 검은 승합차는. 이후로도 진아는 같은 위치에서 같은 승합차를 발견하곤 했지만, 그곳에서조차 수영을 만나진 못했다. 그렇게 계절학기가 끝나고, 그녀는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키 신작 단편집 읽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