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마일을 던지는 방법

한국에서 온다는 투수에 대해선 이름과 100마일의 포심을 던진다는 것 외엔 전혀 알지 못했다. 이야기가 비밀로 진행된 탓도 있고, 또 내가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도 있었다. 어차피 같은 팀이 되면 싫어도 서로 알아야 할 사이다. 그 전까지 애써 알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스프링캠프에서 우리 팀의 유니폼을 입은 긴 생머리의 여자를 보았을 때도 나는 그의 매니저가 왔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는 190cm이 넘는 키에 100kg에 육박하는 거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외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힘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랬기에 감독이 새로운 투수라며 류현아(나는 이게 여자 이름인지 알지 못했다)를 소개했을 때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팀 동료들도 어느 정도 놀라긴 했지만, 어느정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나만큼 놀라진 않은 모양이었다.

훈련을 하는 틈틈히 나는 류현아를 관찰했다. 어딜 보아도 100마일을 던질 것 같은 몸은 아니다. 키는 꽤 큰 편이지만 팔은 가늘고 몸무게는 60kg도 나갈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훈련에서 공을 전력으로 던지지도 않았다. 설명으로는 어깨 수술 경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왠지 단장이 이슈를 만들기 위해 이벤트성으로 영입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우리같은 스몰 마켓에 전력도 강하지 않은 팀은 그런 것이 간절하다. 이슈가 있다면 좋든 나쁘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100마일을 던지는 동양인 여성 선발은 그 자체로 큰 이슈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그랬기에 의구심이 들었다. 너무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그녀의 한국에서의 기록을 찾아보았다. ERA는 2점대고 탈삼진도 많았지만 승은 채 10승도 거두지 못했다. 투구영상을 보아도 스피드건엔 150km/h 이상이 찍히지 않았고 그것도 구장 기준이니 믿을 수가 없었다. 투구폼은 간결하고 수싸움에는 능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100마일을 던진다는 것은 믿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나는 류현아의 투수로써의 자질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었다. 더듬거리는 영어로도 선수들과 친해지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지만, 어차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곧 사라질거라는 생각에 나는 굳이 친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녀의 첫 등판일에 첫 투구를 보는 순간 바로 깨져버렸다. 그날은 원정 3연전의 마지막 경기였다. 상대팀은 빅마켓인데다 강팀이라 우리 팀은 이전 두 경기를 무력하게 참패함으로써 장식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날이라고 이길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첫 외국인 여성 선발의 등판일이라는 이벤트 때문인지 오늘 구장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1회초 공격이 무득점으로 끝나고, 그녀가 마운드에 올라서자 상대팀의 팬으로 가득한 구장이 어느새 야유 소리로 가득 찼다.

그때 그녀가 보여준 태도는 정말 인상깊은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시구라도 하러 온 연예인처럼 관중들을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던 것이다. 원정 경기에서 그런 행위는 홈팀의 화를 돋구기 마련이다. 간간히 욕설까지 섞여 들어오는 상황에서, 그녀는 첫 타자에게 초구를 던졌다.

아, 그것은 정말 멋진 광경이었다. 나는 유격수 위치에 서 있었기에 그녀의 투구폼과 공이 그리는 궤적, 그리고 타자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 모두를 볼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새 공이 포수의 미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관중들이 잠잠해졌다. 나는 전광판을 돌아보았다. 정확히 100마일이 찍혀 있었다.

프로의 세계는 언제나 실력으로 말하는 법이다. 그날 이후 류현아는 열 경기에 등판해서 7승에 2점대의 ERA라는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사실, 그녀의 자책점과 패전도 그녀가 잘못했다기 보다는 우리가 제대로 수비하지 못하고, 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어느새 나는 우리 팀이 약팀이라는 사실이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스몰마켓 팀이라 상대적으로 기자들에게도 덜 호의적인 편이었고, 그렇기에 류현아라는 이슈거리는 언제나 악의적인 기사의 먹잇감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연했다. 한국에서 뛰던 팀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FIP가 ERA보다 1점 이상 낮았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는 그녀의 한국에서의 성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류현아는 언제나 100마일을 던지진 않았다. 어깨가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인지 그녀의 포심은 평균적으로 94마일의 구속을 형성했다. 물론 그것도 충분히 빠른 공이었고, 또 변화구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가끔 필요할 때가 되면 그녀는 꼭 100마일의 포심을 던졌다. 예를 들면 무사 만루 상황에 타순이 4번일 때라던가. 그것은 몇 번을 보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100마일을 던질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구폼? 오버핸드 치곤 간결하긴 하지만 특별하진 않다. 어깨야 당연히 강하겠지만 수술을 했을 정도로 온전하지 않은 상태다. 팔씨름 같은 걸 해봐도 쉽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팔힘이 강한 것도 아니다. 결국 신체조건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류현아는 보이는 것에 비해 굉장히 많이 먹는 편이었다. 처음으로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러 갔을 때, 혼자서 햄버거 4개를 먹어치우는 걸 보고 굉장히 경악했다. 어쩌면 그녀는 거기에서 쌓아둔 에너지를 투구 때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있을 리 없으므로, 이것도 패스였다.

류현아의 활약에 힘입어 우리 팀은 점점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성적이 좋아지자 경기장에도 관중들이 모였고, 다른 지역에도 팬이 생겼다. 그녀를 영입하면서 맻은 중계권 계약 덕분에 해외 팬도 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응원을 듣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녀가 100마일을 던지는 방법에 대한 문제는 도저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봤지만, 제대로 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문제가 미궁으로 빠져드나 생각이 들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그녀와 함께 있으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것이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어느새 30분이 지나 있고, 또 그녀가 다음 날 등판이라 함께 훈련을 하다보면 눈깜짝할 새 끝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등판 경기가 되면 더욱 심해졌다. 오늘은 경기를 정말 빨리 끝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을 확인하면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긴 시간이 지나 있는 것이다. 감각이 이상해진 건 아니다. 다른 투수의 등판일에는 여전하니까. 오직 그녀와 함께할 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가설을 세웠다. 류현아는 사실 초능력자다. 그것도 시간의 흐름을 조정할 수 있는. 그래서 평소에는 94마일의 포심을 던지다가도 필요한 때가 되면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조정해 100마일로 만드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설명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녀가 100마일을 자주 던지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시간의 흐름을 조종할 때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들키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그러면 그녀를 자세히 관찰한다면, 100마일을 던질 때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7회, 1점 차로 리드하는 상황의 1사 만루 상황이었다. 투구수도 많았기에 꽤나 지친 상황이었지만, 내 가설대로라면 충분히 100마일을 던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가 투구 자세를 잡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공이 던져지고,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다. 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읽혔다, 는 생각이 들 새도 없었다. 라인드라이브로 날아오는 공으로 나는 몸을 날려 글러브를 뻗었다. 글러브에 공이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그녀는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잡은 공을 홈으로 던지고 나서 그녀가 날 돌아보며 웃으며 인사한 순간, 나는 그녀가 시간을 멈출 줄 안다는 것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나는 그녀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100마일의 포심을 타석에서 한번 쳐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살짝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오늘 호수비도 있었기 때문인지 이내 승락했다.

마운드에는 그녀와 나, 둘만이 남았다. 타석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100마일을 던지는 파워를 가진 투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어떻게 100마일을 던질 수 있냐고. 그러자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특별한 건 없어. 단지 100마일을 던지려 했을 뿐이야."

그녀는 공을 던졌고, 나는 배트를 휘두르지도 못했다.


팩의 구위와 류딸의 제구력을 갖춘 미녀 투수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