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잘못

이 년 만에 보는 동생의 얼굴은 분명 익숙한 얼굴인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날카로운 눈매, 새하얀 피부, 긴 머리카락 등은 그대로였지만 그 얼굴엔 묘하게 세월의 더께 같은 게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이나마 달라진 걸까, 라는 나의 생각은 그녀가 날 보고 처음 한 말을 듣자마자 사라졌다.

"뭘 봐? 짜증나게."

동생의 말투는, 여전히 그녀가 이 년 전 감옥으로 들어갈 때의 그녀와 똑같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나는 말없이 내 방으로 돌아갔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나면, 당분간은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동생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감옥으로 들어갔다. 직접 죽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겐 직접 죽인 거나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항상 집안의 골칫거리였던 동생이었지만 그런 일까지 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일이다. 여고의 일진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패거리들과 함께 같은 반의 여자애를 괴롭히고 있었다. 편부 가정인데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외지에 나가 있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그 여자애는 좋은 타겟이 되었다. 이런 점까지 조사하고 괴롭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만.

여자애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친구도 별로 없었고. 괴롭힘을 당해도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삭이는 성격이었는데, 그 때문에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것들이었다. 물을 뿌리거나 체육복을 찢어놓는 식의. 하지만 여자애는 누구한테 이르지도, 화 한번 내지도 않았다. 그것이 동생에겐 못마땅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어느 날 여자애는 동생과 그 패거리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게 된다. 이후 지선은 그 여자애에게 강제적으로 성매매를 시켰고, 자신은 포주가 되어 패거리와 함께 돈을 나눠가졌다. 몇 달 동안이나 그런 일이 지속되었고, 여자애는 사건의 전말을 알리는 유서를 쓴 후 자살했다.

이후는 별 것 없다. 이 일이 언론에 알려지고 여론은 들끓고 집안은 뒤집어지며 줄줄이 형이 선고되었다. 우리 집안은 돈이든 권력이든 부족하진 않았지만, 여론 때문에라도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동생에겐 2년형이 선고되었다.

하지만 집안에 돈이든 권력이든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녀의 감옥살이는 감옥살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대충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상황이 잊혀지자 나온 것이었다.

나는 말없이 짐을 챙겼다. 그리고 집 바깥으로 나가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생각해보니 집에 더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학교 근처에 있는 내 아파트로 돌아오자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니의 전화였다. 무슨 내용일지 짐작이 갔기에 나는 휴대폰의 배터리를 분리해 소파 위에 던져두었다. 그리고 문을 잠근 후 눈을 감았다.

동생이 돌아오고 나서도 내 삶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본가와의 거리는 자동차를 타고도 한 시간 가까이 걸렸으며, 가족이 내 집으로 찾아오는 일도, 내가 본가로 찾아가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정이랄 게 없는 집안이었다. 굳이 동생이 아니었다 해도, 별 다를 건 없었을 것이었다.

부모님의 관계는 철저히 돈과 권력을 위한 것이었다. 서로 따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주말이 되면 두 사람은 집에서 나가 자신의 애인들을 만나러 갔고, 나는 어린 동생을 게임기 앞에 남겨 두고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그랬기에, 동생이 그런 괴물이 될 때까지 가족들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고, 알고 난 뒤로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야, 술 먹다 말고 뭐 하냐?"

선배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드니 술잔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맞는 마지막 술자리였다.

"아, 죄송합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술잔을 단입에 털어넣었다. 작은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며, 마음 한구석에 어떤 불안감이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내 동생이 그런 괴물이라는 걸 알면, 그들은 날 어떤 눈으로 보게 될까. 제발, 그녀가 내 인생에 영향 끼치지 않았으면.

"아, 니들 그거 아냐? 2년 전엔가, OO시에 여고생 자살 사건 있었잖아."
"왕따 때문에 한창 시끄럽던 거?"
"응. 그 주동자가 이번 달에 풀려났다더라."
"정말?"
"그렇다던데. 인터넷에서 소문 퍼지더라."

나는 잠깐 할 말을 잊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2년밖에 안 됐는데 풀려났다고?"
"응. 부모님이 권력자라 그랬다던데."
"말도 안 돼. 그런 년들은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하는 거 아냐?"
"에휴. 그러니까 세상엔 돈이 다 아니겠냐."

이후 잠깐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화제는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잠깐 몸을 떨었다. 동생이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비밀번호 바꿨네."
"가끔 바꿔줘야 하니까."

사실은 그녀 때문에 바꾼 거지만. 어째서인지 동생은 내 비밀번호 같은 건 쉽게 알아내곤 했다.

"들어와."
"그럴 필요 없어.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니까."
"뭔데."
"왜 도망쳤어?"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열린 문 너머에 서 있는 동생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런 걸 물어보는 이유는, 뭘까.

"…글쎄. 아마도 어려워서, 겠지."
"여전하네, 오빠는."
"나야 늘 그랬지."
"그래서, 즐거워?"

이번에는 도저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내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어. 말 안 해줘도 돼."

그녀는 인사도 하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천천히 울려왔다. 그게 들리지 않게 될 때쯤에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동생이 해외로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나는 계절학기를 핑계로 공항에도 나가지 않았다. 단지 몇 달 만에 느껴보는 평온함을 만끽할 뿐이었다.

듣기로는 동생은 별로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예전처럼 패거리를 모으려 했으나 그녀가 한 일의 여파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결과는 등교 거부였다. 그녀는 무작정 적으로 학교 가는 것을 거부했다. 마침 소문도 조금씩 퍼져가고 있었기에 부모님은 그녀를 해외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비행기가 떠나고, 동생이 완전히 바다 건너로 사라졌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후 나는 불안감에서 벗어난 기념으로 사람들을 모아 술자리를 열었다.

그들은 대체 무슨 일인지 의아해했지만, 딱히 대답해주진 않았다. 단지, 나의 일상이 별 이상 없이 지켜졌다는 사실이 즐거울 뿐이었다. 이제 그녀가 내 인생을 망가뜨릴 일은 없는 것이다.

평온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의 내 삶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돈이든 권력이든 부족하지 않았고,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게다가 원하는 공부를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별 변함없이 사는 것이 소원이다.

이후로도 내 삶은 큰 차이가 없었다. 사람들과 만나고, 수업에 들어가고, 술을 마시거나, 혹은 소개팅을 하거나. 평온하고 안정적인 일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은 이런 일상이 깨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착각은,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통에 의해 무참히도 깨져버렸다.

동생이 해외로 나간 지 정확히 2주가 지난 날. 그녀의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받아줘야 하지 않나 싶어서 나는 전화를 받았다.

"왜."
"엄마랑 아빠, 내가 죽였어. 그거 때문에."
"뭐?"

하지만 그녀는 대답도 하지 않고 끊어버렸다.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통화 내용을 저장한 후 집으로 차를 몰았다.

문을 열자마자 피 냄새가 확 풍겨왔다. 다시 문을 닫고 잠깐 호흡을 골랐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나는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손바닥에 미끈거리는 느낌이 닿았다.

"헉."

집 안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나는 다시 도망치듯 밖으로 달려나와 내 아파트로 돌아갔다. 피가 묻은 손을 씻어내고, 이불 속에서 한참을 떨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집 전체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갈기갈기 찢겨진 살점들이 여기저기에 뿌려져 있었다. 선명한 피 냄새. 잠깐 본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진정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휴대폰을 열어 112를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 동생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게 알려진다면 남들이 나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어쩌면 나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취소를 한 후 저장해둔 통화내용과 통화 기록을 지웠다. 그리고 다시 112에 전화를 걸었다. 동생에 대한 것은 빼놓고, 문득 집에 갔더니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만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동생은 해외에 나가 있는 걸로 되어 있는데다, 설령 돌아온다고 해도 여자애 하나가 이런 짓을 저지를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잡힌다고 해도,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된다.

골치아픈 일에 끼는 건 질색이다. 적어도 일부러 그런 일을 자초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내 계획 따위와는 아득히 멀어진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동생에 대한 질문 같은 건 없었다. 아니, 경찰들은 거의 아무것도 내게 질문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날 밤 죽은 사람이 내 부모님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열 가정 이상에서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갈기갈기 찢겨져서 거의 형체도 남기지 않고 죽었다.

목격자는 없었다. 일가족 전체나, 살인자가 이동한 경로로 추정되는 길 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니. CCTV나 블랙박스 영상마저도 전부 긁어모았지만,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이상한 어두운 기운이 그 모습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상황에 안도감을 느꼈다. 일단, 살인마의 오빠로 특정될지도 모른다는 상황은 벗어났다. 내 일상은 굳건했다.

물론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왜 그녀가 그들을 죽였는지도 짐작이 갔다. 아마도 자신의 부적응의 댓가를 내린 것이리라.

동생은 언제나 그랬다. 게임을 하다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컴퓨터를 부쉈고, 드라마나 만화책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티비를 깨뜨리고 만화책을 찢었다. 그녀가 타다가 넘어졌다는 이유로 부숴버린 자전거만 해도 몇 십 대는 될 것이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방법이었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그들을 말도 안 되는 힘으로 찢을 수 있던 것일까. 아무리 폭력적이라고 해봤자 고작 스무 살도 안 된 여자애일 뿐이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당혹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언제나 당혹스러운 존재였다. 친구를 때려서 선생님에게 혼나든, 무언가를 훔쳐서 경찰에 끌려가든,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위 나쁜 일들을 계속했다.

그런 동생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멀어져 있던 것이었다. 사실상 그녀는 같은 집에 사는 남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남이나 마찬가지인 가족이었다.

어린 나에겐 단순히 살아가는 일마저도 너무 벅차게 느껴졌다. 동생의 나쁜 짓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고, 할 일은 늘어났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평범한 일상을 얻어내는 방법은 그때 깨달은 것이었다. 위험한 것은 가까이하지 않는다. 불안 요소가 생기면 무조건 제거하거나 적어도 내 삶에는 관여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게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아니었다.

그녀가 왕따의 가해자란 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래봤자 고등학생이 무슨 나쁜 짓을 하겠냐는 생각과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져 버린 사이와 내 삶의 태도가 중첩되자 움직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었다.

동생은 나빠져만 갔지만, 그게 어느 정도였는지는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려 들지 않았다.

가족들이 단합 비슷한 해본 건 동생의 사건이 일어나서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였을 뿐, 사건이 잠잠해지자 그것도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동생에게 살해당한 것에 대해서도 당혹감 외에 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단지, 끔찍한 이미지만이 충격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의 죽음을 본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상황은 더욱 나빠져만 갔다.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가장에서부터 판검사, 20대에서 60대까지, 언론에는 무차별 살인이라고 보도되었고, 대부분 믿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전부 2년 전 재판의 관계자들이라는 것을. 다만, 그 범위가 너무나도 넓었기에 다들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일 뿐이었다.

동생의 살해 대상은 그 관계자뿐만 아니라 관계자의 가족, 친구, 또 그들을 인터뷰하거나 사건에 대한 글을 쓴 기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살해당하는 사람의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국가적인 추적이 시작되었다. 군대가 나서는 정도로 검문이 강화되고 거리에는 경찰들의 모습이 종종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혹시나 범인이 내 여동생이라는 게 포착된다면?

물론 동생은 도처에 깔린 사람들과 도구들로도 잡을 수 없었다. 목격자들은 한명도 남김없이 살해당했고, 어떤 전자기기로도 그녀의 모습을 찍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해외에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사람을 보내 조사를 시켰다.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고, 이웃들의 평판은 어땠고, 학업은 어땠는지. 또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건 날 가까이 이상한 일은 없었는지.

동생은 낯선 환경에 와 있던 탓인지 조용하게 지냈다고 한다. 딱히 활발하게 교류하며 지내는 이웃도 없었고, 또 한국에서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없었다. 또, 동생이 사라진 날 전날에는 유독 날씨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나는 동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도록 노력했다. 현지에는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알렸고, 한국에서는 해외에 나가 있다고 말했다. 어느샌가 그녀의 활동도 사라졌고, 화제는 사그라들었다.

평안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하지만 내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직은 알 수 없겠지만, 죽은 사람들을 조사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재판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휴대전화에 뜬 번호를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받지 않는 것도 이상했기에 나는 태연함을 가장하고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 동생 분이 연락이 안 되어서…"

통화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어쨌거나 부모님도 살해당했기에 증거 수집을 위해 동생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가 행방을 찾아보니 꽤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현지에서는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 아는 게 있나 싶어서…"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 죄송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직까진 알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동생의 자료를 찾아보고 죽은 사람들과 대조하다 보면 정답은 바로 나올 것이다. 내 평온은 이렇게나 쉽게 깨지는 걸까.

아니, 아니다.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동생의 번호를 찾았다. 신호음이 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왜."
"너, 어디야?"

그녀는 장소를 말했다. 나는 옷을 챙겨입고, 주머니엔 식칼을 넣은 후 자동차에 올라탔다.

한참을 드라이브 한 다음에 도착한 곳은 어느 학교의 운동장이었다. 다만, 그곳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두운 색의 벽돌로 지어진 중세풍의 성. 하지만 그 과장되어있는 어둠은, 차라리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마왕성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식칼을 꺼내 쥐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식칼은 어느새 게임 속에서나 보일 법한 중세풍의 장검으로 변해 있었다. 이것도 그녀가 한 일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옥좌에 앉아 있는 동생이 보였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역시나 별 차이가 없었다. 나는 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녀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녕."
"이건 다 뭐야?"
"보면 몰라? 마왕성이지."

동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이걸 다 어떻게 만들었냐는 거야."
"어쩜 오빠는 사람이 달라지질 않아?"
"뭐?"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매번 자기는 타인인 척만 하고. 지겨워."
“언제나 그랬잖아.”
“그래도 내가 왜 이런 걸 만들었는지, 이런 짓을 했는지 정도는 물어봐줄 수 있는 거 아냐?”

말문이 막혔다. 그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니, 애초에 제대로 알고 있던 적도 없었지만.

“…뭔데.”
"부모님도, 오빠도 없는 집에서 어린 나는 할 일이 게임밖에 없었어. 게임 속의 마왕은 너무 어려웠는데, 도와줄 사람도 없었어."
"그게 무슨 상관…"
"닥치고 들어!"

세상이 흔들렸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때 나는 치트키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게 있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었고, 마왕도 쉽게 죽여버릴 수 있었어."

기억났다.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게임기를 부수지 않게 되었다. 아마 그게 그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게임의 몬스터들에겐 내가 마왕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있지. 내 힘은 치트키 같은 거고, 그걸로 오빠를 완벽하게 망가뜨려버릴 예정이라서."
"왜?"
"오빠가 날 이렇게 망쳐버렸잖아!"

동생은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검을 치켜들어 그녀에게 겨눴다.

"가까이 오지 마!"
"오빠는 가까이 올 생각도 못하면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비겁해."
"네 잘못을 나한테 떠넘기려 드는 게 더 비겁하다는 생각은 안 해?"
"전혀. 그건 사실이잖아."
"설령 그렇다 해도, 네 잘못이 변하진 않아."
"끝까지 인정하려 들지 않는구나, 오빠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옥좌에 앉았다. 그리고 다소 피로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중학생 때 친구를 괴롭히다가 다치게 한 적이 있었어. 부모님한테 알려진 건 그게 처음이어서 많이 혼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엄마가 한 말은, '얼마야?' 하나밖에 없었어. 왜 그랬는지, 그게 얼마나 나쁜 일이었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
"그래서?"
"그때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다음 해가 되자 고등학교로 도망가 버렸고."
"그래서 그게 모두 나 때문이라고?"
"오빠라도 말해줬어야 하는 게 맞잖아!"
"네가 내 말을 들었을까?"
"그래도!"
"변명하지 마. 결국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너지, 내가 아냐."
"여전하구나."

그녀는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듯한 얼굴을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넌, 네가 죽인 애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어?"
"난 걔 죽인 적 없어. 걔가 알아서 죽은 거지. 내가 왜 미안해야 해?"
"너도 여전하잖아."

동생은 잠깐 웃더니,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다시 겨누었다.

"정말 비겁한 인간이야. 오빠는."
"알아."
"오빠는 걔한테 한번도 미안한 적 없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넌 정말 쓰레기야."
"너만큼은 아냐."

그때, 그녀가 갑자기 내 앞으로 달려 들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무언가 베이는 느낌이 든다 싶더니, 갑자기 눈앞으로 새빨간 것이 덮쳐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교실이었다. 다만, 이전의 살인 현장들처럼 피와 살점이 흩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검이 한 일인 걸까. 나는 손을 들어봤다. 그곳에는 피에 물든 식칼이 있을 뿐이었다.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자동차로 돌아가면서 나는 동생이 마지막으로 날 비난한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때, 그 여자애가 동생과 그 패거리들에게 끌려갈 때의 이야기다. 마침 친구들과 놀러 나온 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심지어 동생과 눈이 마주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막지 못했다. 상관하지 말라는 그 얼굴에 겁먹은 것도 있다. 서로 상관할 만한 사이가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단, 내 동생이 저런 인간이라는 것을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되었든 결국엔 끝난 이야기다. 동생은 죽었고, 더 이상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조사가 계속되다가, 잊혀지겠지. 나는 주머니에서 자동차 키를 꺼냈다. 피 때문에 온몸이 축축했다. 빨리 씻고 싶었다.

"꺄아악!"

그때,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경악한 표정의 여자가 이쪽을 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옷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고, 한 손에는 피가 묻어있는 식칼이 들려 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여지없는 살인자의 꼴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서 있었다. 그 중에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다 끝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쓴웃음이 나왔다.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들어 나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살인죄를 뒤집어쓰지 않았다. 나는 CCTV에 잘 찍히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내가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증거도 없었으며, 알리바이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겐 돈이든 권력이든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무죄를 위해 나는 모든 걸 밝혀야 했고, 그 덕분에 내 삶은 완전히 파괴되어버렸다. 여론이 들끓었고, 비난이 쏟아졌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고, 나는 한동안 바깥에 나갈 수도 없었다.

혼자 있게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동생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건지 그동안 생각해보았다. 마왕성을 그녀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검 또한 그녀가 만들어낸 이미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죽음 또한, 내 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단지 내 삶을 망쳐버리기 위해 선택한 것 뿐.

동생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달려든 것일까. 내가 조금이나마 주저하길 바랬을까. 죄책감이라도 느끼길 바랬을까. 아니면 원망? 아니면 증오? 어쩌면, 생각 따윈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