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틴

창작집단 '나인틴'은 인터넷의 작은 장르소설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 12월 15일, 연재 게시판에 글을 올리던 유저 '일필휘지'에게 '화련'이 합작을 제안한 게 그 발단이었다.

화련의 제안은 단순히 같은 작품을 둘이서 쓰자는 건 아니었다. 일필휘지는 현실에 기반을 두는 세계관의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었는데, 화련은 그 세계관 내에서 일필휘지의 소설과 겹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겠단 것이었다. 일단 자신이 쓰는 글에 영향이 없는 제안이었고, 또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 생각도 딱히 없었기에 일필휘지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자기 세계의 설정집을 보내주었다.

그들의 합작은 커뮤니티 내에서 작은 화제가 되었는데, 그것은 워낙에 화젯거리가 없는 커뮤니티이기에 그랬던 것이었다. 두 사람의 글은 그 화제를 바탕으로 나름의 독자층을 구축했고, 서서히 커뮤니티 바깥으로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둘의 소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갈 때쯤, 몇 명 의 유저들이 일필휘지에게 합작을 요청했다. 조건은 화련이 요청한 것과 비슷했고, 만들어둔 세계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도 아까웠기에 일필휘지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후 2014년 3월 17일, 그는 사소한 분쟁에 휘말려 커뮤니티를 떠났다.

나인틴의 전신이 되는 이 합작은 이후로도 몇명의 신규 작가들을 더 받아가며 조금씩 규모를 불려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집단이라기 보다는 같은 세계를 기반으로 다른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 몇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자기 이야기에 맞추기 위해 세계를 변형시키기도 했다.

그 합작 자체가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 후로 몇 달 뒤인 2014년 4월 18일의 일이었다. 그 합작을 하는 사람들 중 하나인 '아나키즘'이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에 세계관의 모순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 게 그 발단이었다.

원작자인 일필휘지가 없었기 때문에 논쟁은 급속도로 격화되었다. 그의 연락처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의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해줄 사람은 없었기에 논쟁은 격화되어 자유게시판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커뮤니티의 성격이 장르소설에 국한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그 합작에 관심이 없는 다른 유저들은 그들의 토론에 불만을 표했다. 논쟁은 이제 자유 게시판에 그 합작에 대한 글이 올라오는 게 정당한가, 로 번졌다. 그리고 그 논쟁이 나인틴의 시발점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합작을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합의가 생겼고, 화련은 따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 날짜가 2014년 5월 15일이었다. 합작을 하던 사람들이 따라 나와 그 홈페이지에 자리 잡았다. '나인틴'이라는 이름도 그때 지어진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히 구성원들의 나이를 평균내면 열아홉 살이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세계관에 대한 토론을 하고 또 소설을 올리고 그에 대한 평을 하는 게 전부였다. 몇몇 유입들이 들어와 글을 올리거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까지는 개인들의 모임이라는 성격이 더 강했다.

상황은 '젠틀맨'이라는 유저에 의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는 나인틴의 꽤 열성적인 팬이었다. 하지만 딱히 창작을 하는 건 아니었기에 나인틴의 흐름에는 딱히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2014년 8월 22일, 그는 연표를 하나 올렸다. 나인틴의 세계를 바탕으로 쓰여진 모든 작가의 글들을 정리한 연표였다. 그것은 거의 우연의 일치나 다름없었다. 비록 몇몇 디테일 면에서는 맞지 않는 점이 있었지만, 서로 합의도 하지 않은 작가들의 글이 그렇게 들어맞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이 연표를 두고 유저들 사이에 또다시 토론이 생겨났다. 단순히 재미로만 보는게 좋다, 혹은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토론의 결과는 나인틴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그것에 반대했던 화련은 결국 관리자 자리를 '트래커'에게 넘기고 나인틴을 떠나게 된다.

새로 나인틴의 관리자를 맡은 트래커는 우선 작가들에게 연표에 맞게 글을 수정하게 했다. 작가들 사이에선 일종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따랐다. 이후 트래커는 나인틴의 사이트 구조를 바꿨다. 연재 게시판을 둘로 나눈 게 그 시작이었다.

트래커는 일단 연표에 들어가는 소설들을 묶어 시즌 1이라는 게시판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기존의 자유롭게 연재할수 있던 체제를 바꿔 지정된 작가만 시즌 2를 쓸수 있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반발이 있던 몇몇 작가들이 떠나가며 자신들의 글을 빼달라고 했지만, 트래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남아있던 작가들은 세계관과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위키 형식으로 정리했다. 작가가 직접 정리하는 경우도 있었고, 독자들이 함께 정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인틴의 세계관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정리되고 나서,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시즌 2의 목표는 하나의 이야기였다. 작가들은 한 화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연재했다. 그것은 굉장히 큰 노력이 드는 작업이었다.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하나하나 서로 부딪치는 부분이 없는가 체크해야 했다. 방대하게 정리된 자료가 없었다면 대부분이 포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인틴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연표를 중심으로 세계관이나 캐릭터 등을 인터넷의 장르 커뮤니티들에 소개하며 나인틴은 조금씩 독자층을 모아갔다. 어느정도 독자층이 모이자,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나인틴의 세계를 기반으로 한 팬픽션이나 그림 같은 것들이 게시판에 올라오게 되었다. 그중 몇몇은 공식 설정으로 인정받아 위키에 올라가거나 시즌2로 편입되기도 했다. 팬과 작가들이 서로서로 영향을 받아가며 시즌 2가 끝나갈 때 쯤엔 나인틴의 세계관은 꽤 큰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흐름은 시즌 4까지 이어졌다. 관리자 트래커의 주도 아래, 작가들이 바뀌어가면서도 이야기는 일관적인 흐름을 갖고 이어졌다. 그리고 캐릭터들과 세계는 좀 더 확고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시즌 5의 초반까지는 이 흐름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즌 5가 중반쯤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단조롭다는 평이 나오게 되었고,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좀 있었다. 이미 확고하게 완성된 세계였기에 더 이상 새로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작가들도 어느정도 자각하고 있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지향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넘겼다.

시즌 6에서는 그 지적을 받아들여서인지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쓰되, 작가들이 각자 다른 장소와 다른 인물들로 소설을 쓰다가 나중에 하나로 모이게 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꽤 열광을 받았지만, 작가들이 구상한 방식들의 충돌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졌고, 독자들도 꽤 많이 떨어져나가게 된다.

시즌 7은 다시 기존의 방식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인기는 많이 줄어든 지 오래였다. 작가들의 열의와 몇몇 열성팬 덕에 지탱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때 나인틴을 뒤흔드는 대형 사건이 생기게 된다.

'월중서고'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종말의 도시'라는 작품이 나인틴의 설정과 이야기를 도용했다는 의혹이 터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또다시 논쟁이 시작되었고, 작가까지 합세해서 논쟁은 격화되게 된다. 결국 출판사는 그 작품의 출판을 중지하고 나인틴의 설정을 연상시킬수 있는 부분을 모두 제외하는 데서 협의가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많은 작가들이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트래커도 나인틴 활동에 회의를 느껴 관리자를 그만두고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관리자로 '화련'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는 시즌 8을 시작하면서, 나인틴의 체제를 예전처럼 같은 세계관을 배경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방대한 설정이 만드는 진입장벽 때문에 신입들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그나마 들어오는 신입들도 세계관과 잘 맞지 않는 글을 써서 별로 인기가 없었다.

접속자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가상현실 기기가 개발되는 2017년 4월 14일을 기점으로 소설의 인기는 급속도로 떨어지게 되었다. 결국 2017년 12월 15일, 화련은 아무런 동의 없이 나인틴의 글들을 전부 지우고 사이트를 폐쇄한 다음 인터넷에서 잠적했다. 이후 나인틴에 대한 이야기가 장르 커뮤니티 사이를 잠시 떠돌긴 했지만, 곧 잊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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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틴의 이름이 다시 인터넷에 등장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나서이다. 2124년 2월 7일, 인터넷 고고학자 이수정이 인터넷에 정크 데이터로 남겨져 있던 일필휘지와 화련의 소설을 발견한 것이다. 그 소설들에 흥미를 가진 그녀는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남겨져 있던 글들을 탐사했고, 그들의 합작이 다른 사이트로 분리되어 나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나인틴의 홈페이지를 찾아봤으나 이미 그 주소는 다른 사이트가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키워드 위주로 봇을 풀어 계속해서 탐사를 했다. 지워진 글이라고 해도, 인터넷에 남겨진 정보는 계속해서 복제되어 남기 때문에 나인틴의 사이트를 복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사이트를 복구한 그녀는 그것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했고 어느정도 반향을 얻었다. 100년 전에 비해 소설은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인틴의 소설들은 꽤 인기가 있었다. 독자들 사이에서 다음 이야기를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독자들 중에는 인공지능 프로그래머인 한채진도 있었다.

그녀는 이수정의 동의를 얻고 후속작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소설들과 위키의 설정들을 전부 분석해 나오는 캐릭터들의 인격을 만들고, 나인틴의 세계 또한 가상현실화했다. 그렇게 나인틴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가상현실이 만들어졌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의 문체를 분석해, 나인틴의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설로 옮기게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동안 만들어진 방대한 소설과 설정들 덕분에 가능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나인틴이 완성되었고, 현재 시즌 18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태다. 누구나 나인틴에 접속해 캐릭터들과 만날 수 있고, 또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창조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들은 인공지능에 의해 소설화된다.

그리고 얼마 전, 이수정과 한채진은 시즌 19가 시작되는 날 새로운 시스템이 추가될 거라는 발표를 했다. 그 시스템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나인틴의 유저들은 이미 나인틴을 쓴 작가들의 인격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근거로는 최근 조사로 화련과 트래커를 필두로 한 나인틴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신상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지금의 모두가 이야기에 참여할수 있으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나인틴의 시스템을 보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하게 될지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