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어폰

…그때였다. 냐옹, 이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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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고 집으로 내려가니 할 일이 없어졌다. 얼마 되지도 않는 친구들은 전부 다 다른 지방에 있었고 제각기 이유가 있어서 잘 내려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식으로 할 일을 만들 정도로 성실한 사람도 아니라 결론적으로 하루의 9할 이상을 집 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집에서도 딱히 뭔가를 하는 건 아니기에 나의 생산성은 제로에 가까웠고,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눈치도 점점 더 심해져갔다. 가끔 도서관에 다녀오며 책을 몇 권 빌렸지만, 그마저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일들을 많이 알게 된다. 아버지가 두고 간 신문을 펼쳐보다가, 거실에 드러누워서 TV의 채널을 돌리다가, 인터넷의 온갖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그런 자신을 자각할 때마다 몇년 전에 죽은 늙은이의 생각이 나 한숨을 쉬게 된다. 절대로 당신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지금 이 꼴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무튼 나는 이렇게 할 일이 없었지만 세상은 굉장히 할 일이 많은 것 같았다. 스캔들, 비리, 사건, 사고… 읽다 보면 한 일도 없으면서 피로해지는 게 역시 피로라는 건 전염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다시 피곤이 몰려와 침대에 드러누워 있으면, 아, 이게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방학이었나, 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이번 방학에는 이렇게 살지 않으려 했는데.

그러다 결국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바깥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드러누워 있는 꼴 보기 싫으니 나가서 뭘 하든 간에 해 질 때까지는 들어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긴 했다. 별로 가지고 나올 것도 없어서 내 손에 들린 건 휴대폰 하나와 싸구려 이어폰, 그리고 돈이 얼마 들지도 않은 지갑 정도였다. 한숨이 나왔다. 이번에는 또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그러다 문득 저수지가 떠올랐다. 집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저수지가 하나 있었는데 어릴 때 자주 가던 곳이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발길을 끊게 되었는데 문득 가보고 싶어졌다. 그땐 오리도 몇 마리 살고 있었는데.
저수지로 가는 길은 그늘이 얼마 없어서 정말 찌는 듯 더웠다. 매미 소리는 이어폰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시끄러웠고 나도 그에 맞서 음악의 볼륨을 올렸다. 역시 PC방에나 박혀 있는 게 좋았으려나,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구체화되었을 때는 이미 저수지에 도착해버렸다.
저수지는 예전에 왔을 때와는 좀 달라져 있었다. 그 중심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하나 생겼고, 근처에 큰 교회도 하나 있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나무 그늘 아래에 벤치가 몇 개 생겼다는 것이었다. 날씨도 더운데다 오랜만에 걸어 다녀서 지쳐있었기 때문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벤치에 드러누웠다. 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여기서 하는 일도 집에서 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컴퓨터 대신 휴대폰을 들고 인터넷을 할 뿐이었다. 여기서도 이러는 건가, 한숨이 나왔지만 할 일이 없는 걸 어쩔 것인가. 문득 한숨이 나와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수지에는 오리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러운 놈들이다. 나도 오리처럼 둥둥 떠다니며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걷기라도 하자 싶어서 그늘 아래를 걷다 보니 저 멀리서 웬 어린 여자아이가 하나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아마 무언가를 찾는 모양이었다. 부모님도 없이, 조금 위험해 보였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혹시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기라도 하자 싶어서 나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뭐하니?”
여자아이는 놀란 듯 “힉.” 하는 소리를 냈다. 나라도 나보다 머리 몇 개는 큰 타인이 말을 걸어오면 놀랐겠지만, 그래도 조금 가슴이 아팠다. 아무래도 눈높이를 맞춰야겠다 싶어서 나는 쪼그려 앉았다.
“뭘 찾고 있는 거야?”
여자아이는 여전히 경계심이 있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러웠다. 요즘은 어린 애들이랑 대화를 해 본적이 거의 없는데.
“자, 괜찮아.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니까….”
더 경계하는 표정이 되었다. 에휴. 나라도 저랬을 거 같긴 하지만. 요즘 이상한 일들도 워낙 많이 일어나는데, 아이 부모님은 뭘 하고 있단 말인가.
“…나비.”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비? 찾고 있는 게 나비야? 날아다니는 거?”
여자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사진에 찍혀 있는 것은 회색빛의 털에 흰 줄무늬가 있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고양이였다.
“고양이? 고양이 이름이 나비야? 여기에서 없어진 거고?”
여자아이는 작게 “응.”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나도 찾아볼게. 만약 찾아내면 저기 벤치에서 네 이름을 부를게. 근데, 이름이 뭐야?”
“…민아.”
“민아. 알았어. 그럼, 찾으러 가 볼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수지 근처 곳곳을 뒤지며 고양이를 찾아 다녔다. 풀숲이나 길가, 혹은 근처에 있는 산속까지. 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는데, 적어도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는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내가 셜록 홈즈라면 흔적을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니다 보니.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두워지면 위험할 것 같아서 민아는 먼저 돌려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벤치로 돌아가서 소리쳤다.
“민아야!”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가 달려왔다. 그리고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있지 않은 걸 보고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비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민아는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별 수 없지만.
나는 민아에게 곧 있으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집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아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어린 애들은 고집이 세니까. 도대체 부모님은 어딜 간 것이란 말인가. 묵묵부답인 민아를 앞에 두고 나는 어떻게 집에 돌려보낼 방법이 없나 고민했다. 그러다 묘안이 떠올랐다.
“그럼 이건 어때? 민아 대신 내가 나비를 계속 찾아다닐게. 민아는 내일 낮에 밝으면 찾아다니고.”
하지만 민아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계속해서 설득을 했다.
“꼭 오늘 안에 찾아낼게. 어쩌면 나비가 벌써 집에 돌아갔을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민아가 집에 없으면 나비가 슬퍼할 거야. 그러면 안 되잖아.”
그러자 민아는 갑자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휴, 아무래도 먹힌 모양이다. 나는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면 이제 집에 돌아가는 거야. 알겠지? 고양이는 내가 꼭 찾아 줄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흔들고는, 주택가 쪽으로 달려 나갔다. 끝났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사실 짐작 가는 일이 하나 있었다. 고양이를 찾아다니다 문득 떠오른 건데, 최근에 인터넷에서 본 뉴스 중에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쪽 지방을 중심으로, 그중 몇몇은 처참하게 찢어진 시체로 발견되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고양이와는 별 연관이 없던 나로서는 별 게 다 뉴스로 나온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이 상황이 되자 갑자기 그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설마 그렇다면 어쩌지. 그리고 나비도 그 일에 휘말렸다면.
“에이.”
그러다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래봤자 오늘 처음 본 여자아이의 보지도 못한 고양이인데,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야 있나 싶었다. 사실, 아까는 찾아다니겠다고 말했지만, 좀 귀찮기도 했고.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주머니에 잠시 넣어두었던 이어폰을 귀에 끼웠다. 그리고 이어폰 잭을 꺼내 휴대폰에 연결하려 했다. 그때였다, 냐옹, 이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 것은.
“어?”
나는 당장 이어폰을 뺐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여전히 매미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나는 자그맣게 “나비야?” 라고 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매미 소리뿐이었다. 잘못 들은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어폰을 다시 귀에 끼웠다.
“냐옹.”
이번엔 확실했다. 확실한 고양이 소리였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회색의 형체가 보이는지 둘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양이 같은 건 없었고, 들리는 소리도 매미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환청 같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문득 내 손에 들린 이어폰을 내려다보았다. 설마. 나는 다시 이어폰을 귀에 끼웠다. 어렴풋이 “냐옹.” 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했다.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이어폰 잭을 잡고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감이 잡혔다. 잭의 방향에 따라 고양이 소리의 크기가 달라졌다. 나는 그 소리가 가장 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 크게 “냐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비야?”
그러자 “왈!” 하는 소리가 갑자기 고막을 찢을 정도로 크게 들렸다.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지. 하여간 성깔 하난 더러운 놈들이다.
“그럼 뭔데?”
“냐옹.”
그냥 냐옹이인 모양이었다.
“혹시 내 말 알아듣는 거야?”
“냐옹.”
역시 의사소통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알아듣겠으면 왈, 못 알아듣겠으면 냐옹. 어때?”
“왈!”
요즘 고양이들은 2개국어도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고양이가 맞는지조차 잘 모르겠지만.
“그럼 다시 한 번 질문, 넌 고양이야? 맞으면 냐옹, 틀리면 왈로.”
“냐옹.”
“살아 있는 거?”
“왈!”
“귀신이야?”
“냐옹.”
괴담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던 고양이 귀신이었다. 게다가 말도 알아듣는다. 역시 고양이 같은 건 키우지 않는 게 좋겠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냐?”
고양이가 뉴스를 볼 리가 없지.
“그러니까… 인간 때문에 그렇게 된 거냐고.”
“냐옹.”
“후….”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아무튼 이 고양이라면 나비가 있는 곳을 알지도 몰랐다. 나는 질문했다.
“혹시 나비가 어디 있는지 알아?”
“냐옹.”
“여기 근처에 있어?”
“왈!”
“그럼… 살아 있긴 해?”
“냐옹.”
다행이었다.
“혹시 그까지 안내해 줄 수 있어? 지금 나비를 꼭 찾아야 하거든.”
잠시 동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고양이도 고민을 하나. 어쩌면 불길한 예감이 맞을 지도 몰랐다.
“냐옹.”
뭐 어쨌건, 약속은 약속이었으니.

보이지 않는 고양이의 안내를 받는 것은 기묘한 경험이었다. 이어폰을 움직이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가장 큰 방향으로 길을 따라갔다. 어쩌다 방향을 잘못 들어가면 “왈!” 하는 소리로 방향을 조정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따라가다 보니 길은 점점 으슥한 곳으로 접어들어갔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아직 멀었어?”
“왈!”
꽤 오랜 시간 동안 걸은 것 같았다. 길을 잃지는 않을까? 불안해졌다. 일단 주위를 살펴보긴 했는데, 어두워지면 또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그렇게 무턱대고 걷다 보니, 갑자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끊겼다. 설마, 잃어버린 건가?
“냐옹아?”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위는 어두웠고.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버려진 건가? 혹시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 요괴 같은 건가? 난 이렇게 잡아먹히는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때, “냐옹.”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냐옹아?”
나는 이어폰 잭을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자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쪽에 희미한 불빛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곳으로 다가갔다. 고양이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웅성웅성, 고양이 소리가 맞긴 한가? 아기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때, 갑자기 수많은 고양이 울음소리들이 귓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냐옹, 냐옹, 냐옹. 비명 같기도 했고, 절규 같기도 했다. 온갖, 끔찍한 감정들이 밀려들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저 집에 누가 사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그리고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은 찾아왔다. 민원이 워낙 많았기에 꽤 신경을 썼던 모양이었다. 그 집에서는 수많은 살아있는 고양이들과 시체들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는 나비도 있었다. 다행이도,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며칠 후 인터넷에 사건에 대한 기사가 떴다. 범인은 오컬트에 심취한 사람이었는데, 고양이에게 아홉 개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명도 늘리기 위해 연구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정신병자라 비난했지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났던 그 유령 고양이는, 사실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 이후로 어떤 진실이 밝혀졌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의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갑자기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떤 음악도 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끼고 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어폰 잭을 들고 다니는 날 보고 몇몇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별 상관없었다. 그 할 일이란, 별 것 아니었다. 나는 그가 살아생전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병과 육체에서 벗어난 늙은이와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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