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요즘따라 아침이 유달리 불친절해졌기에 잠에서 깨어나고 나니 세 시였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나는 팬티 차림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득 창 밖을 내다보니 눈이 쌓여 있었다. 새벽 내내 온 모양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나뭇잎 대신 눈송이가 쌓여 있다. 우울해졌다. 이렇게 눈이 많이 왔는데도 할 일이 이렇게나 없다니. 예전에는 눈이 오면 그 사실 자체가 즐거웠던 거 같다. 친구들과 눈을 굴리고, 눈싸움도 하고. 언제부터 그게 지겨워졌던 것일까.

그러다 문득 '하모니'에 생각이 미쳤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모든 걸 해결할수 있는 '하모니'가 나오면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 자체가 귀찮아졌던 거 같았다. '하모니'는 혁신이었다. 기존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가상현실과 기존에 깔린 망과 연결해서 궁극적인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 노트북으로도 간단하게 접속할 수 있는 이것은 그 편리성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 때 부터인 것 같았다. 눈이 내리는 사실이 귀찮아졌다는 사실이. '하모니'가 나온 이후로는 굳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온갖 장소를 돌아다닐 수 있었으니까. 따뜻한 히터가 나오는 편안한 방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하모니'에 접속하려다. 관두었다.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팬티 차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아무 어색함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어색했다. 나 본체는 이렇게 팬티 바람으로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나의 아바타는 데이터로 구성된 명품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닌다니. 그 괴리가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득 바깥에 나가보고 싶어서 주변에 있는 옷을 챙겨입었다. 그러다 옷이라는 게 굉장히 무겁다는 걸 깨달았다. 거의 일주일 정도를 바깥에 나가지 않고 생활하다보니 그렇게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바깥에 나가 보니 몇몇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하모니'를 쓰기엔 어린 아이들이 나가 노는 모양이었다. 바람이 불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추웠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은 잘 놀고 있었다. 무엇이 달라져버린 걸까. 날씨가 너무 추운 탓일까? 결국 나는 얼마 발걸음을 떼지도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목적지 없이 걷는 걸음이란 것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또 무의식적으로 '하모니'에 접속했다. 결국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한탄한다 해봤자. 결국 이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 아바타를 조종해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는 눈이 내려 있었다. 차가움 같은건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도 눈사람이 서 있었다. 누군가 눈사람을 만들어놓은 모양이었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나는 눈사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하모니'에 있는 눈사람들은 녹지 않았다.

과거에는 언제나 눈사람이 녹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지만, 어떤 노력을 해도 눈사람은 전부 떠나가 버렸다. 그 눈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라는 생각을 문득 했던 거 같다. 결국 떠나는 게 눈사람의 본성이라고, 결론내렸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것은 눈사람이 아니었다. 눈사람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졌다 해도 그것은 눈사람이 아니었다. 떠나지 않는 눈사람을 눈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래봤자 뭐가 달라질까. 이것이 눈사람이 아니라 해도 이 오브젝트가 눈사람으로 지정되면 이것은 눈사람인 것이다. 문득 화가 치밀어올라 나는 그 눈사람을 내리쳤다. 눈사람은 힘없이 무너졌다. 그 잔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맛폰으로 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