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께

이번에는 꼭 그녀와 해맞이를 볼 거라고 나는 다짐하고 있었다.
나는 새해가 오기 며칠 전부터 그녀에게 그걸 말했고, 그녀는 기대된다는 듯 웃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번에만은 제대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세상은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출장이요?”
“그래, 출장이라네.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자네가 좀 갔다 와줘야겠네.”
부장은 정말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솔직히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회사를 그만 둔다면 그녀가 내게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이 말을 전하자, 그녀는 정말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그래, 알았어.”
라고, 짧게 말했다.

이것이 처음 겪는 일이었다면 그나마 견딜 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정말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었다. 능력이 없는 탓에 몸이 고생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상할 정도로 타이밍이 맞질 않았다.
그녀와 20일, 50일, 100일이 되는 날 까지는 괜찮았다. 그녀와 처음 맞는 신년까지도 괜찮았다. 150, 200일일 때는 회식이 있었지만 간신히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였다. 이후 300일, 발렌타인, 1년, 400일 등등, 그런 기념일들마다 회식이니, 출장이니, 그런 것들 때문에 도저히 그녀와 함께 지내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 때도 그랬다. 그때도 출장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날 수 없었는데, 그 며칠 전 그녀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만은 꼭 지킬 거라 다짐했는데, 또 그녀를 실망시키게 되어 버렸다.
한숨이 나왔다. 일정을 비교하며 인터넷을 뒤지며 기차 시간표를 알아보았지만, 아무리 빨라봐야 1월 2일 새벽에나 도착하게 될 것 같았다. 하루, 딱 하루만 더 빨리 올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딱 하루만, 하루만 속일 방법이?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출장가기 하루 전, 그러니까 30일 나는 그녀와 공원에서 만났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까지 두텁게 쌓여 있을 정도로 날씨가 추웠다. 추운 날씨에도 그녀는 괜히 멋이라도 부리려는지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정말 춥지도 않은 걸까. 물론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뭐야. 왜 불러내고 그래. 추워 죽겠는데.”
인사를 하자 그녀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추웠는지 잡은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아니, 오늘 아니면 못 볼 거 같아서.”
“뭐 그런 거에 의미를 두고 그래. 별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스쳐지나가는 어떤 표정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에 맞춰서 어떤 장소에 가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불안감이 들었다. 만약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와의 대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녀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자꾸만 말을 멈추었다. 마치 중국어 방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단어가 들어오면 거기에 맞는 단어를 내보내는 것처럼.
마침내 목적한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물이 나오지 않는 분수대 근처였다.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겨우 30초를 남겨두고 온 것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생각해둔 말이 있었는데, 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차분히 가슴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꺼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 순간, 분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물에 흠뻑 젖었다.

날씨도 추웠는데 흠뻑 젖어 있었기에 감기에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연신 기침을 하더니 침대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그녀를 간호하고, 또 계획에 필요한 준비를 하느라 나는 잠도 자지 못한 채 기차를 탔다.
이후 정신없이 일을 했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마치고 돌아오기 위해 3일 동안 나는 잠도 자지 않고 일해야 했다. 다행이도 계획한 대로 새벽 기차를 타고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역에서 쉴 새 없이 달려서 집으로 돌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머리가 부스스한 그녀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일 오는 거 아니었어?”
“어쩌다 보니까. 아무튼 빨리 가자.”
미리 잡아둔 택시를 타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택시 기사와 여러 이야기를 했다. 신년 해맞이 보러 가는 일이라고, 다행이도 길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아직 어둑어둑한 때 해변가에 갈 수 있었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는 별 말 하지 않았다.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 해변가의 벤치에 앉았다. 그녀와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보았다. 그녀와 함께 이 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해가 떠올랐다. 나는 그녀에게 반지를 건네며 결혼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웃었다.
이 순간을 위해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택시기사를 하는 친구와 공원 분수대를 관리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녀가 감기 때문에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그녀의 집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의 시간을 하루 앞으로 돌려놓았다. 달력 또한 마찬가지였고. 감기에 들게 한 이유는, 그렇게 날짜 감각을 흐리게 하고 바깥에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조금 이기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도 아마 이해해줄 것이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그녀는 여전히 감기 기운이 남아 있는지 내 어께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같이 사진을 찍은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보자 나는 문득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무리 감기에 걸려 있다고 해도, 그녀도 친구와 문자 정도는 했을 텐데.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해 보았다. 1월 1일로 되어 있었다. 다행이도 속아 넘어가 준 것인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왜인지 슬쩍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