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습격

오랫동안 빨래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세탁 바구니에 세탁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대로 놔뒀다간 심한 냄새가 날 것 같았기에 전부 다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돌리는 김에 입고 있던 옷까지 같이 넣고 나니 알몸이 되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휴일이고 어디 나갈 일도 없으니 내일까지 빨래가 마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나는 문득 초콜릿이 먹고 싶어졌다. 그 느낌은 딱히 아무 예감도 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집안에는 초콜릿이 없었다. 그리고 옷은 다 빨아 버렸는데. 문득 옷을 전부 다 빨아버린 것이 후회되었지만 다시 꺼낼 수도 없었다. 그냥 참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런 생각을 하자 못 견디게 초콜릿이 먹고 싶어졌다.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더 먹고 싶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입을 옷이 없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옷이 없으면 바깥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인가? 나는 양 팔 양 다리가 멀쩡하고 걸어 다닐 수도 있다. 게다가 돈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바깥에 나가 초콜릿을 사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초콜릿을 사러 가기로 했다.

한여름이었지만 알몸으로 바깥에 나가니 조금 추운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 사람들 중에는 사계절을 전부 알몸에 가까운 옷차림으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 사람들은 춥지도 않은가. 그건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들은 추위를 느끼는 센서가 약한 건지도 모르겠다.

골목의 담벼락 위로 고양이가 한 마리 잠들어 있었다. 다가가자 고양이는 게슴츠레 날 보더니 하품을 크게 하고는 다시 잠들었다. 생각해 보면 고양이들도 딱히 옷 같은 건 입고 있지 않았다. 인간도 털이 많다면 옷 같은 건 입지 않아도 될텐데. 음, 그러면 면도기 회사가 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안될 일이다. 산업 하나가 망하면 다른 산업이 망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초콜릿 회사까지도 망할지도 모른다.

한낮인데도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래도 한산한 동네인데다 휴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나처럼 옷을 다 세탁기에 넣어 버려서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나와 버리면 재밌을 텐데. 알몸인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상상하자 조금 즐거워졌다. 다만 털이 없으니 겨울에는 좀 추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동네에 커다란 돔을 씌우고 난방을 하면 어떨까.

아무튼 길을 가다보니 편의점이 보였다. 새로 생긴 곳 같았다. 예전에 들른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유리로 된 벽 너머로 들여다보자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지루한 듯 티비를 보고 있었다. 꽤나 귀여운 얼굴이라 다소 취향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문득 내 심볼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이래서야 편의점에 들어가기 힘들어지지 않는가, 아무리 그래도 낮선 여자애 앞에서 이런 꼴을 보이는 건 좀 그렇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축 늘어져 있는것보다 당당한 것이 더 보기 좋을지도 모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편의점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여자애는 기대했던 만큼 귀여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다시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초콜릿이 먹고 싶었기에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진열대로 걸어가 초콜릿을 찾았다. 진열대에는 목캔디, 껌 등등이 놓여 있었고 제일 아래쯤에 초콜릿이 있었다. 그걸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여자애는 다소 멍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산대에 초콜릿을 소리 내어 내려놓고 " 계산이요." 라고 한 뒤에야 그 여자애는 정신 차린 듯 바코드를 찍었다. "1000원입니다." 나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여자애에게 건네줬다. 계산이 끝나고 여자애는 초콜릿을 내게 건네줬다. 등을 돌려 나가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손님."

"네?"

"저, 왜 알몸인가요?"

그러나 딱히 궁금하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왠지 묻지 않으면 서운해할거 같아서 묻는다는 느낌의 목소리였다. 아무튼 나는 대답했다.

"인간은 모두 춤추는 존재니까요."

"아, 네…"

여자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뭘 알았다는 걸까.

"맘에 드네요."

"뭐가요?"

"물건이요."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남자의 상징을 칭찬받는다는 건 좋은 것이다. 아무튼 저 여자애도 조금 이상한 사람 같기도 하다. 저렇게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편의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몇몇 사람들을 마주친 것 같지만 초콜릿이 맛있어서 딱히 신경 쓰진 않았다. 아무튼 초콜릿을 먹고 나니 이게 왜 이렇게 먹고 싶었나 싶기도 했다. 뭐 세상에는 이유 모를 것들이 많은 법이니까.

다음날 경찰이 집에 찾아왔고 난 공연외설죄인가 뭔가로 체포되었다. 아니, 초콜릿이 먹고 싶어서 초콜릿을 사러 간 게 무슨 죄인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걸 잡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옷을 벗고 거리를 다닐 것이고, 그랬다간 의류산업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초콜릿도 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 되는 거겠지.

다행이도 나는 훈방조치 정도만 당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기사화가 되었다. 물론 내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티비나 인터넷에서 기사화된 내 사건이 잠시 떠들어졌고, 잠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잠시 후에 잊혀졌다. 가끔 몇몇 사람들이 비슷한 짓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뿐이었다.

사실 그것에는 별 불만이 없었다. 다만 나는 왠지 뭔가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제대로 되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이 꺼림칙했을 뿐이었다. 무언가, 또 다른 것을 해야 이 감정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몰랐다.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은, 그 일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