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살해자

민아와 나는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캠퍼스에서 마주치면 인사하고 3분 정도 떠들 수 있고 만약 식사라도 하려고 주소록을 넘기다 보면 잠시 멈칫하고 넘어갈 정도?

그녀는 어제 욕실에서 손목을 끊어 죽었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죽은 날 그녀의 집에는 그녀밖에 없었기에 경찰은 그녀가 자살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민아의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그녀는 인형이었기 때문이었다.

민아는 그녀의 부모님이 원해서 설계된 인형이었다. 그녀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그 슬픔에 잠긴 부모는 현재 우리들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 사장인 규리 씨에게 복제 인형의 제작을 의뢰했고,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민아였다.

“그런데 민아네 부모님은 민아가 자살한 이유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인형이 잘못되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나보고 그 원인을 알아내라고 하더라고. 뭐 AS같은 거지. 그런데 나는 너무 바쁘거든. 그러니까 너희들이 좀 조사해 주는 게 어때? 보수는 넉넉히 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규리 씨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은 이미 답을 알고 문제를 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잠깐, 규리 씨….”

이건 아무리 봐도 규리 씨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꼴이다. 나는 항의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할 틈도 없이 류희가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

“알았어요. 그럼 찾아보도록 할게요. 대신 돈은 충분히 준비해둬야 해요.”

“야, 너… 아얏!”

발을 밟혔다. 돌아보자 류희는 나를 흘겨보며 ‘입 다물어’라고 소리 없이 말했다. 그런데 왜?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규리 씨는 씩 웃으며 말했다.

항의할 새도 없이 류희는 날 끌고 사무소 밖으로 나왔다.

“야, 너 무슨 생각이야.”

“뭐가?”

“규리 씨, 보나마나 다 알고 있으면서 저러는 게 분명하잖아.”

그러자 류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그런데라니, 기분 나쁘잖아. 솔직히.”

그러자 류희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가 안 되는 거야. 규리 씨가 답을 알고 있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돈만 받으면 됐지.”

“어라, 그, 그런가….”

“무엇보다 답이 이미 있다는 건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란 거잖아. 잘 됐지, 뭐.”

류희는 그렇게 말하고 내 앞으로 나서더니, 나를 보며 뒤로 걷기 시작했다.

“바보.”

“야, 생각 좀 안 날수도 있지….”

“그런 걸 바보라고 하는 거잖아. 아, 집에 들어가기 싫다아….”

“나도 싫어….”

하지만 돈이 없으니 뭐, 별 수 없는 일 아닌가.

으으. 언제쯤 반지하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민아는 대체할 몸도 여러 개 있었기에 다른 몸으로 대체해서 다시 학교에 나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잠시 아팠다는 식으로 설명한 모양이다. 규리 씨는 민아가 죽었다는 걸 알고 있거나 들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단 최면을 사용해서 기억을 삭제하고, 경찰 기록도 모두 없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된 것이다. 민아가 인형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류희, 규리 씨, 그리고 민아의 부모님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캠퍼스를 걷고 있을 때였다.

“안녕, 류월아, 류희야.”

“어, 안녕, 민아야.”

민아였다. 민아는 우리들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별로 내키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왜냐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는 길이야?”

“아, 다음 강의 가는 길.”

다행이도 류희가 앞으로 나섰다.

“응, 그렇구나. 바빠?”

“아니? 별로. 왜?”

…바쁘다고 해야 했던 거 아냐?

“응, 그게 좀 부탁할 게 있어서. 나 며칠 아파서 강의 못 갔잖아. 글쓰기 강의 노트 좀 빌려줄 수 있나 해서….”

그렇게 말하는 민아의 모습은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걸 눈치 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다행이다.

“뭐, 그 정도야 문제없지. 근데 지금은 노트를 안 가지고 있어서… 나중에 빌려줄게.”

“응, 고마워. 강의 가봐야 되지?”

“어.”

“그래,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고 민아는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민아가 자살하고 나서 며칠 동안은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꽤나 무난한 설정이다. 그리고 그걸 설정하느라 규리 씨와 우리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상당히 고생했고.

어라, 그런데 민아의 키가 원래 저렇게 컸나?

강의가 끝나고 나서, 우리들은 규리 씨의 사무소로 향했다. 규리 씨의 사무소는 이 도시에서 제일 높은 빌딩,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층에 있었다. 일반인들이 혹시 계단으로 다니다가 지나치지 않게 하도록 하고, 또한 혹시 다른 건물에서 사무소를 내려다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조치라던가. 그러기 위해서 한 층을 통째로 빌렸는데 실제로는 그 반의 반 공간도 쓰지 않았다. 얼마나 돈이 많아서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저기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느닷없이 류희가 그런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규리 씨는 허락해주지 않겠지.”

“그러니까… 아, 돌아가기 싫다….”

그동안 햇빛도 잘 안 드는 자취방에서 살다보니 사람조차 우중충해진 기분이었다. 기숙사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남녀 공용의 기숙사는 없었기에 2인의 방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하숙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자취를 하자, 라는 생각이었지만 최대한 싼 곳으로 찾다 보니 그런 곳에 들어가게 되어버린 것인데,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빌딩 앞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꽤 높이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있던 사람을 보고 상당히 놀라고 말았다. 그 안에 있던 사람은

“민아?”

“어라, 이런 데서 만나네?”

민아였다. 그녀는 꽤나 놀란 눈치였다. 이번에도 류희가 나섰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인데?”

“아, 아 그게, 잠시 치과에 좀 갔다 오는 길이야.”

“아프겠네.”

“별로 그런 건 아냐, 그냥 단순히 진단 같은 거라서 딱히 치료 같은 건 없었거든. 근데 너희들은 어디 가는 길이야?”

“어… 그러니까….”

“아르바이트 하러 가는 길이야. 저기 위에 빵집에.”

내 말에 민아는 약간 놀란 눈치로 말했다.

“빵도 구울 줄 알아?”

“어, 예전에 엄마한테 배웠어.”

거짓말이었지만 전부 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일단 아르바이트 하러 가는 것은 사실이었고 빵을 구울 줄 아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최근에는 오븐도 없고 구울 일도 없어서 한 적이 없긴 하지만.

“응… 그렇구나,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어, 잘 가, 민아야.”

민아는 빌딩 바깥으로 나갔다. 우리들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서 최상층 버튼을 눌렀다.

“이상하네….”

“뭐가, 오빠?”

“아니, 민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규리 씨한테 가는데 민아를 만났잖아, 뭔가 이상하잖아.”

“쓸데없어.”

류희는 싱겁다는 듯 말했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별 쓸데없는 거 같긴 하다.

“그래, 뭐 실마리는 잡았냐?”

규리 씨는 속을 알기 힘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요. 설마 하루 만에 뭔가를 알아 낼 거라 생각한건 아니겠죠?”

“요즘은 인터넷 시대야. 빠르지 않으면 뭔가를 놓쳐 버리기 마련이지.”

“달리 말하면 인터넷에 없는 정보는 하루 만에 찾기 힘들다는 거도 되죠.”

“무뚝뚝하긴, 그렇게 사람이 재미없어서 쓰겠어?”

“햇빛을 못 봐서 그래요.”

“왜 햇빛을 못 보는데?”

“자취방이 반지하라서요.”

“왜 반지하로 갔는데?”

“돈이 없어서요.”

“왜 돈이 없는데?”

“규리 씨 때문에요.”

“왜 나 때문인데?”

얄미웠다.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너무 얄미웠다.

“아아, 그거 말이야? 그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나라고 넉넉한 건 아니라. 그래, 그런데 왜 왔는데?”

“돈 많잖아요… 뭐 물어볼 게 있어서요.”

“돈 없어, 그래, 뭔데?”

“민아네 집 위치 좀 가르쳐 주셨으면 해서요.”

그러자, 규리 씨의 표정이 약간 곤란하다는 듯 바뀌었다.

“그건 왜? 일단 고객의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가 원칙인데.”

“단서가 너무 부족해요. 뭘 알아내고 싶어도 알 수가 없어요.”

“그래도 안 돼. 자칫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한테 불똥이 튈 거 아냐.”

“알았어요, 됐어요. 오빠, 가자. 더 이야기해봤자 얻을 건 없어 보여. 안녕히 계세요, 규리 씨.”

그때까지만 해도 잠자코 있던 류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내 팔을 잡고 사무소 밖으로 끌고 나갔다.

“어, 어, 류희야!”

나는 버둥댔지만 류희는 본 척도 하지 않고 나를 끌고 갔다.

“그럼 잘 가~”

규리 씨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는 그 얼굴이 정말 얄미웠다.

“규리 씨는 절대로 손해 보는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잖아, 오빠도.”

“그건 그렇지만, 혹시나 도와줄 수도 있잖아.”

“됐어,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나 자는 게 낫지.”

그렇게 말하고 류희는 짜증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본인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꽤 실례가 아닐까.

“어차피 규리 씨도 알고 있잖아.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는 거. 그러니까 상관없어.”

“세상에는 사실을 들어서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규리 씨는 아냐.”

“…그건 그렇지만.”

나는 우리들의 말에 상처받아 혼자서 사무소에서 우는 규리 씨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어색했다.

“그럼 어쩔 생각이야?”

류희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민아에게 건넸다. 둘은 서로 몇 마디 나누더니, 손을 흔들고는 돌아섰다.

민아는 류희에게 받은 노트를 가방에 넣고 교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머리에 쓴 모자가 어색했다.

류희가 말하는 방법은 그냥 미행이었다. 뭐 알아낸다고 이곳저곳 물어보면서 의심만 사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별로 좋지는 않은 방법이다. 일단 걸리면 의심사기 좋은 방법이고 놓치면 찾기가 힘드니까.

학교 앞에는 큰 도로가 있다. 일단 지하철역으로 가려면 그 곳을 건너야 하는데 사람이 많으면 숨을 수 있어 좋지만 사람이 적다면 미행이 곤란해진다.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일단 옷을 평소에 입지 않던 것으로 입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불행이도 횡단보도에 사람이 얼마 없었다. 나는 교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교문 안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맞춰 길가를 따라 걸었다. 길 건너편으로 민아가 걷는 것이 보였다. 아마 지하철역으로 가는 모양이다. 다행이도 타이밍 좋게 다음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파란불이 되었다. 이번에는 사람들도 꽤 있었기에 그 건널목을 건넜다. 그리고 계속 민아를 따라갔다.

민아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 전에 규리 씨의 사무소가 있는 높은 빌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치과 진료를 받는다고 했나. 빌딩 안에 들어갔을 때는 엘리베이터는 이미 올라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가다가 치과 층에 멈추었다.

‘잘 따라가고 있어?’

휴대폰을 열어보니 류희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규리 씨 사무소 있는 빌딩 아마 치과 가는 듯’

‘어 계속 따라가 줘’

‘알았어’

치과 층에서 사람이 내려올 때마다 몸을 숨겼는데 민아의 모습은 없었다. 슬슬 놓친 게 아닌가 불안한 기분이 들 때쯤 민아가 빌딩에서 나왔다. 나는 민아에게서 얼굴을 숨기기 위해 지하철 방향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 외곽을 따라 몇 발짝 걸어서 지금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무리 사람과 섞인 후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나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민아와 눈을 마주쳤다.

“어….”

민아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나도 민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류월아. 이런 데서 다 만나네. 아까 류희도 만났는데.”

“어, 응. 그러게. 어디 가는 길이야?”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다.

“아, 잠시 치과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야. 류월이는?”

“어… 아, 아르바이트 하고 집에 가는 길. 그런데 집이 어딘데?”

이런,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민아는 딱히 그것에 대해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저기 학교 옆에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 그건 왜?”

“아… 그게… 바래다주려고. 요즘 위험하잖아.”

순간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뭐가?”

“아, 그 요즘 뭐 치한이다 뭐다 세상 뒤숭숭하잖아. 벌써 어두워졌기도 했고.”

“그래? 류월이는 안 위험한 사람인가 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설마 눈치 챈 건가?

“농담이야. 그런데 안 바빠? 괜찮은 거야?”

“응? 아, 괜찮아. 별로 바쁜 건 없어.”

“그래. 그럼 고마워. 사실 나도 좀 불안했거든.”

그렇게 말하고 민아는 걸어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민아의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아, 도착했다. 여기야. 데려다줘서 고마워.”

“응, 잘 가.”

“응, 류월이도.”

그리고 민아는 아파트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103-104 라인이었다. 나는 뒤돌아 나오는 척 하다가 아파트 통로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층수를 확인했다. 7층이었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703호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고 704호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아마 703호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704호에서 불이 켜졌다. 그리고 민아가 베란다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단지 밖으로 나갔다. 왠지 민아가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아 뒤돌아보기 두려웠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니 류희가 저녁을 차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저녁때가 되었다. 나는 밥상 앞에 앉았다.

미행 과정은 돌아오면서 전화로 류희에게 이미 말했었다.

“눈치 챈 거 같은데.”

류희는 그렇게 말했다.

“아마 그렇게 어색하게 대응했을 때 눈치 채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그럴까….”

“아마 불 켜지고 베란다 나오는 것까지 봤을 때 확신했을 거 같아. 그땐 그냥 돌아왔어야지. 주소는 나중에 택배 상자라도 뒤져서 알아볼 수 있는데.”

“그래도… 확실하게 알아두는 게 좋잖아. 그리고 딱히 민아도 내가 민아를 미행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할거 같은데….”

“뭐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경찰에 신고 당할지도 모르겠네.”

“설마.”

“왜, 오빠 민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민아 정도면 예쁘고, 착한데.”

“그렇다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지….”

“빌딩 앞에서 민아랑 마주쳤을 때 대사 보면 딱 그건데.”

“그건 그냥 당황해서 그런 거고….”

민아라면 충분히 좋아할 만하지만 그래도 나는 민아를 친구 이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건 내가 민아가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아니,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민아 집에는 어떻게 들어갈 거야? 위치를 알았다고 해도 문을 못 열면 소용없잖아.”

“그건… 어쩌지.”

류희는 곤란한 듯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라고 딱히 대안이 있는 건 아니었다.

“…문 따기 같은 걸 하나?”

“그런 것도 할 줄 알았어, 오빠?”

“미안.”

“알면 됐어.

어쩔 수 없었다. 이럴 때에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인 것 같았다.

“문 따는 방법? 왜, 생활고 때문에 도둑질이라도 하게? 이것도 햇빛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그런 거 아니에요. 나쁜 일에 쓸 건 아니니까 좀 가르쳐 주세요.”

내 말에 규리 씨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에 쓸 건데?”

“아… 그게… 사물함이 있는데 자물쇠 열쇠를 잃어버렸는데 자물쇠가 너무 강해서 렌치로 안 끊어져서요.”

“그럼 자물쇠 끊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해야지.”

“만약 열쇠를 찾게 된다면 자물쇠를 다시 쓸 수 있을거 아니에요.”

“그냥 새로 사면 될 거 가지고.”

“새로 사주실래요?”

“그러지 뭐, 까짓 거.”

그렇게 말하며 규리 씨는 빙긋 웃었다. 당했다.

“아,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요. 제발 좀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이유가 뭐냐고.”

“이유를 말하면 가르쳐 주실 건가요?”

“상황 보고.”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단서 수집에 필요해요. 지금 아는 사실로는 어떤 결과도 추론하기 힘들어요.”

“그래? 내 생각에는 민아네 집에 들어가 봐도 딱히 뭔가 특별한 걸 얻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알고 계셨네요.”

“모르는 게 이상하지.”

규리 씨는 피식, 하고 웃었다.

“어쨌거나 좀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저흰 사소한 단서라도 중요하단 말이에요.”

“안 돼. 아니, 못 해. 내가 도둑도 아니고, 그걸 하려면 마술 정도밖에 방법이 없는데, 류희나 넌 마술사도 아니잖아. 또 만약 비밀번호로 여는 방식이면 어쩔 건데?”

으으, 결국 능력 부족이라는 건가.

“남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건 아닐 텐데?”

“네?”

규리 씨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아서 하라는 것 같았다.

“정말 미안한데 노트 좀 잠시 볼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갈게. 거기 주소 좀 알려줄 수 있어?”

저렇게 간단하게 알아내는 걸 보니 미행은 괜히 했다 싶다. 아무튼 전화를 끊고 우리는 자취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민아네 집으로 갔다.

마침 시간도 저녁이었기에 치한 때문에 같이 왔다고 둘러댈 수도 있다. 민아네 집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안녕, 류희야. 류월이도 왔네?”

“난 괜찮다고 했는데 오빠가 혼자 보내기 걱정된다고 괜히 따라와서….”

“그렇구나. 일단 들어와. 노트는 꺼내 뒀어.”

나는 민아네 집으로 들어갔다. 민아 외에 다른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다. 좋은 집이었다. 바닥은 깔끔한 마룻바닥이고 벽에는 벽지 대신 매끈하게 깎인 돌 타일이 깔려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운 것은 창문이 넓다는 것이었다. 이런 집이면 햇빛도 잘 들어오겠지.

류희는 노트를 들여다보고 나는 멍하니 집 안을 둘러보았다. 어색했다. 과연 어색하지 않게 집 안을 돌아다닐 방법이 있을까?

“뭘 그렇게 봐?”

주스를 가지고 거실에 오던 민아가 말했다. 어지간히도 티나게 돌아봤나….

“아, 집이 좋은 거 같아서.”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우린 반지하에 살아서….”

“…미안.”

민아가 진심으로 풀죽은 표정을 지었기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진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사실인데….

“그래서 그런데, 혹시 집 구경 좀 할 수 있을까?”

“응. 닳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민아는 의심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지었는데, 왠지 속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약간 찔렸다.

“혹시 들어가면 안 되는 데 같은 건 없어?”

“딱히 없어. 음, 아니면 같이 가 줄까?”

“아,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별 건 없지만 안내 해 줄게.”

또 말려들고 말았다.

민아는 나를 데리고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설명을 해 줬다. 추억이 담긴 물건 앞에서는 기쁜 듯 표정을 짓기도 했고, 가끔 우울해하기도 했다. 나는 그중에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이 없나 생각해 봤지만 그럴 만한 것은 없었다. 인형, 장난감, 일기장 등등. 일기장은 한번 읽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본인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야 없지 않는가, 결국 맨손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가.

그렇게 별 소득 없이 민아의 집 투어는 끝났고, 류희는 노트를 다 읽었다. 시간이 꽤 지났기에 류희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

집에서 나오면서 손을 흔드는 민아를 바라 봤을 때, 문득 그녀의 뒤에 걸린 가족사진이 보였다. 그 곳에는 민아의 부모님과,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내가 모르는 민아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학교에서 민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늘 같은 강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아는 강의에 나오지 않았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강의가 끝나고 나는 규리 씨의 사무소에 갔다. 어제 본, 그 민아의 모습에 대해 물어볼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규리 씨는 바쁘다고 할 때는 언제인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저, 규리 씨. 성장하는 인형은 없죠?”

규리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것 같은 눈초리였지만 별 수 없었다.

“그럼 민아는 어떻게 된 거죠?”

“민아 어릴 때 사진이라도 본 거야? 걘 처음 인형이 된 후에도 몇 번이나 몸이 바뀌었어. 정확히 말하면 초등학교 5학년에 한번,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또.”

몰랐던 사실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단서가 될 수 있을 텐데.

“왜 진작 말 안했어요.”

“물어본 적도 없잖아.”

그랬구나.

민아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수영을 하러 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민아네 가족의 차가 큰 사고가 났다. 민아의 부모님은 무사했지만 민아는 죽고 말았다. 민아의 부모님은 다시 규리 씨에게 의뢰해 민아를 살려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끝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었다.

민아가 도서관에 갔다가 돌아올 때였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큰 길을 건너야 했다.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들어왔고 그걸 보고 바로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자동차가 와 민아를 쳤다.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민아는 죽었다. 규리 씨는 병원 관계자들에게 최면을 걸어 기억을 잊게 하고 새 인형을 제작했다. 그리고 민아는 다른 지방으로 전학갔고. 그렇게 해서 나는 민아를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이 네 번째 몸이네요.”

“그렇게 되는 거지.”

“근데 그게 민아가 자살한 이유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진짜 모르는 거 맞아요?”

“안다고 해도 가르쳐주기 싫은데.”

…나쁘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류희 혼자 방에 놔두기는 좀 그래요.”

“걘 혼자서도 어지간히 잘 할 걸. 그것보다 너 먼저 걱정하는 게 어때?”

“저도 어지간히 잘 해요.”

변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10년 전과 지금의 자신이 늙지 않고 똑같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러고 보니 그런 사람을 본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여배우였는데, 늙지 않는 병에 걸려서 20대나 50대나 거의 똑같은 모습을 가졌다고. 여배우라면 그런 점은 오히려 이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아도 앞으로 또 죽음을 겪지 않는다면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육체를 바꾸어 달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민아는 자신이 인형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민아와 눈을 마주쳤다.

“어, 민아야.”

민아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웃지 않았다.

일단 나는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나왔다. 민아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러지?

그 사이에 엘리베이터는 윗 층으로 올라갔다.

“오늘도 치과 가는 길이야?”

그때서야 민아는 정신 차린 듯 말했다.

“어, 응. 너는?”

“집에 가는 길이야. 빵집에서 아르바이트 갔다가.”

“빵집은 제일 위층이 아니잖아.”

“아, 그, 그건….”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그냥 도시 전경이 보고 싶어서 제일 높은 층에 올라가 봤어….”

“거긴 아무도 없었나봐?”

“아니, 어떤 사람의 사무소 같은 게 있었는데… 도시 전경이 보고 싶었다고 말하니까 들여보내주더라….”

“그래? 그럼 나도 한 번 가 봐야 겠네.”

“아, 아니, 그건….”

“왜? 뭐 곤란한 거라도 있어?”

“아, 아니, 그냥 왠지 그 사람 조금 위험해 보였거든….”

“넌 별 일 없었잖아.”

“그, 그렇긴 했는데….”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는 민아의 표정은 거의 무표정에 가까워서 무슨 심문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어떤 사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아, 엘리베이터 왔네. 그럼 좀 가볼게.”

“어, 응. 그럼 잘 가.”

“그래, 안녕. 나중에 보자.”

겨우 살았다 싶었다. 그렇게 말하고 민아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는 치과 층에서 멈추었다.

자취방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방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민아의 집에 들어가 봤던 게 가장 큰 원인일까. 그렇게 넓은 집은 아니라도 햇빛은 들어오는 집에 살았던 적은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민아는 매일매일 치과에 가는 것 같았다. 뭐 때문에 치과에 가는 것일까. 뭐 치과 치료가 자주 해야 하는 거 같긴 하지만. 치과에는 잘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그런데 민아가 새로운 몸으로 살아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치과 치료를 받을 만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혹시 민아가 말하는 치과가 내가 말했던 빵집처럼 어딘가에 가는걸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었다면? 나는 문득 섬짓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나는 자취방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자취방의 문이 열려 있었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방 안에 들어서자, 류희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류희야!”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목 뒤쪽을 관통하는 충격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오빠….”

류희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머리가 아팠다. 눈앞이 흐릿했다.

방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류희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에 푹신한 이불의 감촉이 느껴졌다.

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팔목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발목에도 똑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묶여 있었다.

“일어났네.”

민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민아가 전기충격기를 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민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바로 내려와 나를 따라온 것이다.

“민아야….”

“왜, 류희야?”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좀 풀어 주면 안 될까?”

민아는 말이 없었다.

“왜 이러는 거야… 이유가 뭐야.”

내 말에 민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정말 몰라서 물어?”

“모르겠어….”

그러자, 민아는 내 목 밑에 전기충격기를 들이댔다. 섬뜩했다.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 아냐.”

“그럼 날 미행한 이유는 뭔데? 규리 씨한테 다니면서 나에 대한 걸 묻고 다닌 이유는 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서까지 우리 집에 온 이유는 뭔데?”

“그, 그건….”

설마, 민아도 규리 씨를 알고 있는 건가?

“어떻게 안 거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왜 그런 건지.”

“난 그저….”

뭐라 둘러댈 말이 없었다.

“널 좋아해서….”

“거짓말 하지 마!”

안 먹혔다.

“왜, 위협이 부족한가 봐? 아직 여유가 있는 걸 보니?”

“아, 아니… 그건 아닌데….”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민아가 인형이라는 걸 밝히게 되는 거니까. 물론 믿지도 않을 것이고. 정말, 어떻게 하지….

“저, 민아야, 정말 오해인거 같은데….”

“아니, 류희야.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민아의 모습은 정말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 우리가 뭘 했다고 생각하는 건데?”

“뭘 했긴. 정말 모르겠어? 너희, 날 죽이려고 했지?”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무, 무슨 말이야. 우리가 왜 민아를 죽이려고 해.”

“맞잖아. 내 몸을 이루는 부품이 상당히 비싸다는 거 정도는 알고 있어. 그걸 노리고 날 죽이려는 거잖아?”

“잠깐, 너….”

설마, 알고 있는 건가?

“내가 인형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고는 말 하지 않겠지? 규리 씨가 그 정도는 말해줬을거 아냐. 그리고 그걸 알고 너희들은 날 죽이려 했고.”

“아니야! 절대 아니야! 우리가 그런 짓을 왜 해! 우린 그저….”

“거짓말 하지 마. 난….”

갑자기 민아가 말을 멈추었다. 민아의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그러더니 천천히 숨소리를 내며 잠들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그 사람밖에 없다. 그리고, 역시나 그랬다.

쓰러진 민아의 뒤에서 규리 씨가 웃고 있었다.

아직도 손목이 아팠다. 손목에 남은 끈 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규리 씨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에요?”

류희의 말에 규리 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난 정의의 사도니까.”

“우와, 규리 씨가 그런 사람이었군요. 정말 멋있어요… 라고 할 줄 알았나요?”

“약간 기대했는데.”

그렇게 말하며 규리 씨는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이겠지.

“뭐, 농담이고. 사실은 민아가 언제나 오는 시간대에 안 오기에 심심해서 창밖을 봤는데 민아가 류월이 뒤를 따라가는 게 보이는 거야. 왜 그러는지 재미있을 거 같아서 따라와 봤더니 이러고 있었고.”

“그게 다 보여요?”

“난 모든 것을 봐.”

“무슨 신도 아니고….”

“맞잖아, 여신.”

“어휴… 저 여신병….”

류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도 좀 제대로 했어야지. 미행할 때 들키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결과적으로 잘 됐으니 됐잖아.”

“그건 아냐, 민아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끼어들어온 규리 씨의 말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으니까 엘리베이터도 치과 층에서 멈춘 다음에 걸어 올라왔겠지. 그 많은 계단을 걸어오는 건 장난 아닐 텐데.”

대단하다 못해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주의라니. 보통 사람이라면 놓치고 지나갈 부분이었을 텐데.

“뭐 그렇게 주의해가며 얻은 결론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인형 살해자라니, 인형 살해자가 너희들처럼 어설플 리는 없을 텐데.”

“…하하, 말씀은 고맙네요.”

규리 씨는 웃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말했다.

“그래, 답은 찾았어? 민아가 왜 자살했는지에 대한 답은?”

“네. 알았어요.”

단 하나의 전제를 놓치고 있었다. 민아가 자신이 인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사람을 대체해서 만든 인형은 자신이 인형인 걸 모르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그 것을 전제로 두고 추리를 시작하다 보니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만 알았더라면 그저 안락의자에 앉아서 생각만 하다가 결론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 뭔데?

“나이 들어 보이려고요.”

“맞았어. 조금 멀리 돌아온 감은 있지만. 좋은 답변이야.”

규리 씨는 박수를 쳤다.

류희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류희에게는 미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류희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자, 류희는 규리 씨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역시, 다 알고 있었네요.”

“받아들인 건 너희들이야. 그건 잊지 않았겠지?”

“네, 네, 알고 있어요. 돈은 준비해 뒀죠?”

“속물.”

“단순히 빈곤한 것뿐이에요.”

“알았어,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네요.”

그렇게 말하고 류희는 이불 위에 드러누웠다.

“그런데요, 규리 씨.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저희에게 이런 걸 시키신 거죠?”

“그냥. 재미로. 야, 그나저나 너네 집 정말 낡았다.”

나는 말없이 규리 씨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규리 씨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진짜 재미로 그런 거라니까, 다른 목적 같은 건 없어.”

“진짜 스케일 큰 장난이네요.”

“내 일도 아닌데 뭐. 민아는 어떻게 할까? 데리고 갈까?”

“규리 씨 답네요. 민아는 그냥 자게 놔둬요. 나중에 깨면 돌려보내죠 뭐.”

“이게 다 너네 월급 주려고 이러는 거야. 아무튼 수고해. 난 이만 가 볼게.”

규리 씨는 손을 흔들며 나갔다. 여기 더 있기 싫어서 대충 둘러대고 나간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뭐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나저나 민아를 어쩐다. 민아는 아직도 잠들어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왜, 키스라도 하게?”

“무,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까. 아니면 더한 거라도?”

“그런 거 안 해!”

“왜, 혹시 부끄러우면 나가 줄게.”

“안 한다니까!”

“으응….”

우리 목소리 때문인지 민아가 깨어났다. 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어… 뭐야. 너희들이 왜 여기… 아니… 내가 왜 여기… 아니….”

그러더니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이리 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금 민망한 광경이었기에 나는 눈을 돌렸다. 몇 번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 짓도 안 했어. 오빠가 뭔가 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하지만.”

“안 했어! 그런 거 생각도 한 적 없어!”

“오빠가 민아한테는 그런 거 하기도 싫대. 너무한 거 아냐? 민아가 얼마나 예쁜데.”

“그런 것도 아냐! 날 뭘로 몰고 가는 거야!”

그 때, 웃음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민아가 웃고 있었다. 작은 웃음이었지만 민아는 확실히 웃고 있었다. 내가 아는 민아의 모습이었다.

나는 문득 내가 안심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까 민아의 표정 때문에 생겨났던 마음 한켠의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민아는 내가 쳐다보고 있는 걸 깨닫고 웃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아무 짓도 안 한다니까….”

“알았어. 그건 의심 안할게. 그런데, 그러면 너희는 왜 나에 대해 조사한 거야?”

“그건….”

나는 류희를 쳐다보았다. 류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오빠가 너 좋아해서 스토킹….”

“아냐! 그게 아니라, 으, 말해도 괜찮을까?”

“응, 말해.”

“네가 왜 그러니까… 자살했는지 알고 싶어서… 직접 물어볼 수는 없잖아.”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민아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괜찮아, 별 것도 아닌 건데. 그래서, 이유는 알았어?”

“으, 응….”

나는 고개를 들었다. 민아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런데, 민아야.”

“왜, 류희야?”

“나이 드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냥 규리 씨한테 가서 바로 부탁해도 되잖아. 그런데 왜 굳이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거야?”

그러고 보니, 그건 생각지도 못했다.

“응… 그게… 별 건 아니고.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인형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거든. 그거 때문에 그래. 별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모습이 변하면 규리 씨한테 물어볼 거고, 그럼 부모님은 내가 인형이란 걸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 아냐. 그게 싫어서.”

이제야 모든 의문이 다 풀린 느낌이었다. 그와 별개로 마음은… 별로 편하지 않았다. 인형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타인에게 숨겨야 하는 것은 어떤 삶일까.

“그렇게 우울한 표정 짓지 마, 류월아. 나름 만족스러운 삶인데 뭐. 늙지도 않고,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원할 때 원하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기도 하고, 병 같은 거 걸려도 큰 걱정 없고.”

“으응….”

하지만 내가 가진 의문은 다른 것이었다. 기억이 이어진다고 해도. 자살하기 이전의 민아와 지금의 민아는 같은 민아일까? 라는 생각이었다. 뭐, 저 태도로 보아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괜한 의심해서 미안해. 신경 써 줘서 고맙기도 하고. 아, 그러면 이만 가 볼게.”

그렇게 말하며 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 서더니,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어, 왜 그래, 민아야?”

“밤이 어둡네.”

“응?”

“요즘 위험하다며.”

아.

나는 민아를 따라 현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류희도 나를 따라 나왔다.

“너는 왜?”

“여자 혼자 방 안에 놔둘 생각이야, 오빠? 아까도 민아한테 당했는데, 무섭단 말야.”

“그냥 같이 가고 싶다면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해.”

“싫어.”

며칠 뒤 규리 씨 사무소에 갔다. 물어볼 게 있어서였다. 규리 씨는 여전히 넓고 햇빛도 잘 들어오는 사무소를 혼자서 쓰고 있었다. 화났다.

“딱히 할 만한 일은 없어. 아, 커피 한 잔만 타 줄래?”

“10만원입니다, 고객님.”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해버릴까.”

“됐고요. 그런데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뭔데?”

“전에 규리 씨가 그랬잖아요, 인형 살해자라고. 그게 진짜 있나요?”

그러자 규리 씨는 나를 쳐다보았다.

“왜, 너도 해보려고?”

“아뇨,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민아가 위험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민아는 안전할거야. 민아가 인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민아 부모님과 너와 나, 류희, 그리고 민아 본인 정도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앞에 질문에 답하자면 그런 사람은 있어. 인형 살해자는 실제로 존재해.”

“정말인가요….”

“그래, 그리고 만약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군요.”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그런 말을 들으니까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너희들은 그저 민아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힘은 나한테도 충분할 정도로 있고.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 그리고 커피 한 잔만 타줘.”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나.

이번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 민아와는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다. 다만 약간 달라진 점은 캠퍼스에서 만나면 20분 정도는 이야기할 만한 친구가 되었다는 것 정도였다. 평소 일상과 딱히 달라진 점은 없었고, 아직까지는 별로 이렇다 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돈은 들어왔지만 방을 바꿀 만한 정도는 안 되었기에 아직도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방에 살고 있고, 우울한 기분은 여전하다. 가끔, 정말 자취방에서 자기 싫을 때는 민아네 집에서 잘 때도 있긴 하지만.


1년 전에 썼고 시리즈화를 하려 했다가 다시 보니 엉망진창이라 여기저기 고쳐보려 했는데 도저히 안 돼서 망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