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 중독

그녀는 지우개를 들고 베란다에서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평으로 누워있는 창문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선들이 묘하게 아찔했다.

그녀는 손에 든 지우개를 잠시 보더니, 그것을 놓았다.

지우개는 점점 작아지더니, 어느샌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나뭇잎이 잠시 흔들리다가, 툭 하는 소리가 들린 듯 했다.

자이로드롭을 타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그녀의 친구들은 다른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자이로드롭은 원래 재미있고, 인기도 많은 놀이기구지만, 그것을 네 번째 타자고 말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녀는 최대한 신경쓰이지 않게 시간간격을 두고 제안했지만, 결국 네 번째로 타자고 하는 이야기는 거부당했다. 어쩔 수 없나,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혼자서 터덜터덜 자이로드롭을 기다리는 줄 뒤에 섰다.

첫 번째 종이비행기는 날카로운 종이비행기였다.

그러니까 정사각형의 종이를 세로로 한 번 접고 그 접힌선에 맞추어 종이를 세모 모양을 만들어 접고 그것을 한 번 더 접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종이비행기였다. 다만 만드는 과정에 실수가 있어서 끝이 약간 구부러진 종이비행기였다.

바람이 적당히 부는 선선한 날이었다. 점심시간의 한 때, 그녀는 종이비행기를 창 밖으로 날렸다. 하지만 종이비행기는 잠시 날아가는가 싶더니 불안하게 한 바퀴 선회 비행을 했다. 그러다가 바닥으로 푹 고꾸라졌다.

그녀가 낙하에 매료되게 된 계기는 어떤 기묘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모두가 공부에 찌들어 있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창가 자리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녀가 창밖을 보았을 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거꾸로.

대부분은 성적 때문에 그 사람이 자살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 사람이 그저 낙하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표정이 너무나도 황홀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후 그녀는 낙하에 매료되게 되었다. 단 한순간도 낙하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떤 것에서든 낙하를 연상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석차,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죽 늘어서 게시판에 붙이는 석차표는 낙하의 한 종류였다. 다른 성적이 떨어져 고민하는 친구들처럼 그녀도 성적을 한번에 쭉 떨어뜨려 석차표에서 낙하하고 싶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지우개 등 조그마한 물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은 그녀의 습관이 되었다. 자기의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지우개의 기분을 상상해 보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그런 취향을 딱히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은 없었다. 누가 들어도 허세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고 또한 이상한 사람처럼 취급되는 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낙하하는 사람과 눈을 마주친 외에는 그녀의 고등학교 생활은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가서 그녀는 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돈 내고 먹는 거기에 꼬박꼬박 먹고는 있었지만, 오늘은 특히 우유가 더 먹기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창가에 놓아두었고, 수업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유는 부풀어 있었다.

먹구름이 끼어 어둑어둑한 늦은 오후였다. 그녀는 일단 그녀의 반 아래에 있는 양호실의 불이 꺼졌는지 확인했다. 자율 학습은 독서실에서 하는 기숙사제 학교이기 때문에 교실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간 것이다.

그녀는 조심조심 우유의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집었다. 그리고 창 밖으로 내다놓았다. 바람이 불어 우유가 약간 흔들리고, 우유의 끄트머리는 그녀의 손가락을 미끄러져 나갔다.

우유는 점점 작아지더니, 퍽, 하는 소리가 들리고, 생물 시간에 본 단세포 생물 같은 모양의 그림이 흰 물감으로 그려졌다.

빗방울은 구름에서 상승하다 하락하다 하며 수증기를 빨아들여 그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너무 무거워진 빗방울은 결국 구름에서 떨어졌다. 휘익, 바람을 가르며 낙하하는 동안 공기 저항에 빗방울은 점점 갈리고, 녹았다. 넢적한 모양이 된 빗방울은 학교의 안테나를 지나고, 옥상을 지나고, 4층, 3층,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떨어졌다. 빗방울은 느릿느릿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가 살짝 머리카락 끝에 맻히고 흔들리다가 뚝, 떨어졌다. 다시 2층, 1층을 지나고, 그녀가 떨어뜨린 우유에 섞이어 흰 색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어서 우수수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그림에 뻥뻥 구멍을 뚫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은 다 씻겨 내려갔다.

안전바가 그녀의 몸을 단단히 조인다.

혹시나 사고라도 난다면 이 놀이공원은 망하게 되겠지라고 그녀는 문득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일부러 안전바를 위로 밀어 보기도 했지만 안전바는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자이로드롭이 천천히 상승해간다.

그녀는 이 시간이 싫었다. 곧 있으면 느낄 낙하의 짜릿함을 방해하는 시간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상승하더라도 좀 더 빠르게 오를 수는 없을까. 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문득 그녀는 자이로드롭을 매달려 올라가는 자신을 상상했다. 올라가는 시간이 너무 지겨워서 직접 기어올라가는 여자라면 우습겠지.

어느샌가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자이로드롭이 꼭대기에 올라섰다. 아무 생각 없이 그녀는 안전바를 잡아 흔들었다. 그 때, 안전바가 갑자기 위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튕겨져나온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보고 있다. 그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머리카락이 흩날려 눈을 가리는 게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황홀한 무중력의 감각은 즐겁다. 어느 샌가 그녀의 눈앞에는 숲이 보이고, 나뭇잎이 그녀의 눈을 찔렀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자이로드롭의 낙하가 시작되었다. 상상과 달리 현실에서는 안전바가 있다. 그래서 안전바에서 짓눌러지는 힘이 낙하의 무중력의 감각을 방해했다. 하지만 그 정도도 좋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공기가 스치는 감각, 그리고 급격히 가까워지는 지상. 어느샌가 낙하의 시간은 끝났고, 자동으로 안전바가 올라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짓눌린 어께를 주물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그녀를 기다리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놀이공원의 출구 방향으로 걸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녀는 종이 상자를 모았다. 그것들은 전부 온라인 서점에서 참고서를 살 때 생긴 것들이었다. 꼬박꼬박 내놓으면 되지만 그녀는 그게 귀찮았다. 그것은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교육감이 시찰을 나온다는 말을 했고, 그 때문에 그녀의 담임은 그녀와 친구들에게 종이 상자들을 치우라는 엄명을 내렸다.

독서실은 4층에 있다. 종이 상자를 한번에 다 들고 갈 수도 없고, 그 자체의 무게는 얼마 안 되지만 왕복하는 일은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그 때 그녀에게 든 생각은 그냥 상자들을 창문 밖으로 다 던져버린 다음에 밑에서 들고가면 빠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에 친구들은 모두 동조해서 상자들을 창밖으로 던졌다.

그녀는 자신의 종이 상자들을 다 던져버리고 나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조금 먼 거리에서 아직까지도 떨어져 내리는 상자들을 바라보았다.

상자들은 마치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렸다. 툭, 투두둑, 상자들이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둔탁한 소리가 기분 좋았다. 산처럼 쌓인 상자들을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우르르 쓰레기장으로 밀었다.

그 때 맑았던 하늘에 소나기가 내렸다. 비에 맞지 않게 상자를 머리에 쓰고 투덜투덜 담임과 교육감의 욕을 해 가며 그녀와 친구들은 상자들을 치웠다.

그녀는 거리로 나왔다.

화창한 오후였다. 단순히 거리를 둘러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녀는 거리를 걸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둘러보며 걷는 가운데, 유독 그녀의 마음을 끄는 빌딩이 있었다.

어떤 보험회사의 빌딩이었는데, 네모 모양의 단순하게 생긴 빌딩이었지만 그 빌딩의 전면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그 유리에는 빌딩 내부보다 빌딩 바깥이 더 잘 비쳤다. 그 점이 특히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하늘에는 햇빛이 강하게 비치는 가운데, 그녀는 그 빌딩의 난간에 서 있다. 등 뒤로는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그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눈앞에는 파란 하늘과 강렬한 빛.

그리고 그녀는 바람에 날려 자연스레 몸이 기울어진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세상이 말려 올라간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새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빌딩의 유리들을 본다. 유리에는 자신의 모습과 하늘의 모습이 비친다. 황홀한 듯 웃으며 머리카락을 미친 듯이 휘날리는 자신의 모습은 마치 미친 사람 같다. 아니, 진짜 미친 사람인가. 그것도 잠시, 바닥의 경계가 보이고 그녀의 의식은 검은색이 된다. 그리고 이마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진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설마 상상 속의 고통이 실제로 느껴진 것일까? 라고 그녀는 잠시 생각했지만 그런 건 아니고 단순히 전봇대에 부딪힌 것이었다.

그녀는 비닐봉지를 훅 불었다.

그러자 구겨져 있던 비닐봉지는 어느새 빵빵하게 불어 있었다. 문어 머리 같다고 문득 그녀는 생각했다.

그 비닐봉지를 베란다에 국기를 거는 폴대에 걸어 둔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바람이 불고, 비닐봉지의 손잡이는 폴대를 미끄러져 빠져나간다.

그것은 말없이 하늘에서 춤춘다. 바람 부는 대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가끔은 유려한 곡선을 그리기도 하고, 하늘로 나는 것 같다가 급격히 하강하기도 하고.

비행의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어느샌가 납작해진 비닐봉지는 마치 시소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진동하면서 떨어진다.

그녀는 차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운전 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아무리 평범하게 살려고 하는 그녀지만 마음 속 깊은 욕망은 감추기 힘들다. 그녀는 다행이도 한 번만에 운전면허를 따긴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습관 때문에 지적을 당했다.

어두운 밤, 그녀는 쭉 뻗은 직선 도로를 달리고 있다. 새벽이라 달리는 차도 거의 없고, 그러기에 그녀는 속도를 마음껏 낼 수 있다. 자동차는 처음에는 멈춰 있다가,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점점 가속한다. 그러다가 어떤 속력이 되면 가속은 멈춘다. 가로등이 점점 커지다가 시야의 외곽으로 스쳐 지나간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길게 이어지는 중앙선과 길어지는 흰 선들, 물결치는 전깃줄과 선이 되는 빛. 그녀가 그것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이 또한 낙하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만약 중력의 방향이 바뀐다면 지금 달리는 것은 낙하와 다를 게 없다. 비현실적인 생각이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차의 앞쪽 창에 벌레나 잡동사니 같은 것들이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툭 하고 부딪힐 때의 그 소리, 마치 서브리미널 광고처럼 스쳐지나가는 이미지, 작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떨림.

그녀는 다 마신 과일 주스의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유리병을 들고 문득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에서 유리병이 떨어진다. 유리병은 바람을 가르며 한 바퀴 돈다. 얼마 지나자 유리병은 보이지 않고 유리병에서 반사되는 빛만이 보인다. 반짝. 그리고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병은 산산히 흩어진 빛이 된다.

물론 그녀는 실제로 유리병을 밖으로 던지지는 않았다. 누군가 머리에 맞으면 다칠 것이고, 그녀의 아파트 밑은 화단이라 그녀가 상상했던 모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유리병을 재활용품을 모아두는 용기에 던져넣었다. 유리병은 포물선 궤도를 그리더니, 아무렇게나 쌓아둔 빈 세제 용기에 부딪히고, 그리고 구르면서 요구르트 병을 같이 밀고 내려갔다. 그리고 나서 구겨놓은 맥주 페트병 위에 안착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였다.

영화의 폭력적인 장면 등등이 화제가 된 영화지만 사실 그런 건 그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후반에 나오는 1인칭 낙하 장면이었다.

직접 카메라를 던져서 찍었다는 그 장면을 그녀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돌려보았다. 나중에는 DVD플레이어의 렌즈가 상할 정도였다.

그녀의 낙하하는 꿈의 이미지는 그 영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불안하게 흔들리며 급작스럽게 바닥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꿈 속이기에 그녀는 끝도 없이 떨어져내렸고, 바닥은 닿을 듯 닿지 않았다.

그리고 닿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꿈에서 깼는데, 대부분 침대에서 굴러떨어졌기 때문에 낙하한 것과 비슷한 느낌의 통증을 받는다고, 적어도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가 두 번째로 접은 종이비행기는 세모난 모양이었다.

저번과는 다르게 한 번을 생략해 날카롭다기보다는 넢적한 느낌의 삼각형이 되었다. 저번과는 다르게 끝이 구부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걸 던질 곳은 학교 운동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졸업하기 전 학생들끼리 모여서 구상한 것으로,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적어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던지는 것이었다.

쓸 말이 많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녀는 비행기에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그것은 선생님들에게 딱히 할 말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글자가 써지면 무게 균형이 이상해져 종이비행기가 잘 날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종이비행기가 날았다. 노란색, 흰색, 파란색, 빨간색, 분홍색, 초록색, 여러 색깔의 종이비행기들이 날았다. 그러다 천천히 고도가 낮아지더니 바닥에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수많은 물건을 낙하시키면서 그녀는 언제나 마지막에 낙하시킬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처음 낙하에 매료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오늘 그녀는 그 생각을 실현시키려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어렵사리 이유를 하나 꺼내 본다면 오늘이 스물아홉과 서른의 경계선이라는 것 정도.

그녀는 자기가 아끼던 작은 스티로폼 구슬이 많이 들어있는 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칼로 찢었다. 그러자 수많은 흰색 구슬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사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구슬들이 흘러나간다. 구슬들은 마치 커튼처럼 하늘에서 흰색 막을 만들고, 물결친다.

구슬이 다 떠나고 텅 빈 껍데기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그녀는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파트 난간에 올라서, 그녀가 매번 상상하던 대로 양팔을 쭉 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기울여 떨어지려고 했으나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내려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현기증이 났다. 그야말로 까마득하게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 영원히 떨어지기만 할 것만 같은 기분. 그 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그리고 세상이 말려 올라가다가…

뒷머리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그녀는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이 집 천장이 아니라 별이 박혀있는 하늘이라는 데에 그녀는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곧 자기가 하려던 일을 생각해내고 문득 허탈해져서 웃으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아팠다. 머리뿐만 아니라, 등이나 팔 같은 곳이 까끌까끌한 바닥에 쓸려서 쓰라리기도 했다. 침대에서 떨어진 거나 전봇대에 부딪힌 거랑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녀는 이번에는 난간에 올라가지 않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느꼈던 그 정도의 감각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옥상은 너무 높았다.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분명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아플 것이다. 혹시 살아나기라도 한다면 그 고통은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자신을 낙하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것 같았다. 그냥 집에 돌아가 씻고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옥상으로 통하는 통로의 문을 열고, 어두운 계단을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내려갔다.

문득, 번지점프를 하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엔가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