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로봇의 일상

“이것 좀 복구해놔, 마빈”

과학자는 물에 불어 다 찢어진 종이 뭉치를 내놓으며 말했다.

“그게 뭔가요, 주인님?”

“책, 중요한 책이었는데, 비에 젖어버렸어. 복구해놔.”

“네, 알겠습니다.”

마빈은 그 종이 뭉치를 가지고 마당으로 나갔다. 종이 뭉치를 마당에 펼쳐 놓고,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려 안테나를 세웠다.

그러자 마빈의 전자두뇌가 전 세계의 모든 네트워크에 접속되었다. 마빈의 머릿속에서 무한한 수의 연산이 시작된다.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지금으로부터 1주일 이내의 모든 기상 정보 데이터를 얻어 그 날의 변수를 계산한다. 비가 내리는 각도, 바람, 기압, 창문의 열린 정도, 책의 위치, 빗방울의 오염도, ph등, 그 모든 요소를 조합해 책의 종이에 씌어져 있었을 원래 내용을 조합해낸다.

그리고, 마빈의 머릿속에서 여럿의 문장 조합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가려내고, 교차시키고, 다시 가려내고, 교차시키고, 그런 과정들을 거의 무한히 거쳐 단 하나의 조합을 생성한다.

그 모든 과정은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마빈이 보낸 신호가 집 안의 컴퓨터로 연결되고, 빠른 속도로 책의 내용을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마빈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려 안테나를 내리고, 집으로 들어가서 그 프린트된 내용을 손에 들었다.

그 내용을 보고, 마빈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과학자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책일지도 모르겠지만, 마빈의 관점에서는 그것은 전혀 쓸모없는 종류의 책이었다.

“…그는 구릿빛의 탄탄한 윗몸을 드러낸 채, 하얀 백사장이 있는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 해안가에 있는 모든 여성들의 시선이 그의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뭐지, 이게….”

마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양자 컴퓨팅을 이용한 병렬 연산이 가능한 인공지능 인간형 로봇, 마빈, 뼈대는 최고의 강도를 가졌지만 그에 비해 상당히 가벼운 무게로 인해 이 시대의 미스릴이라고도 불리는 합금으로 되어 있고, 로봇의 혈관이라고 할 수 있는 회로는 꽤 높은 온도에서도 저항이 없는 고온 초전도체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몸에는 액체 질소가 흐르고 있다.

최첨단의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눈은 거의 인간 수준의 성능을 발휘하며, 그 외에도 모든 감각기관이 인간의 수준까지 발달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인간과의 유사성이었다. 금발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의 10대 소녀의 모습. 그것은, 어느 누구도 마빈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했다.

“피곤해….”

효율성이 썩 좋은 로봇은 아니기에 이 정도의 연산을 하면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래서 마빈은 에너지가 부족했다. 그 에너지가 부족할 때의 느낌이 피로라고 마빈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빈은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있는 초콜릿 통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마빈의 작은 키로는 손이 닿지 않았고, 그래서 마빈은 냉장고 위로 손을 버둥거리는 형태가 되었다.

마빈은 한참을 그렇게 애를 쓰다가, 결국 한숨을 쉬고는, 과학자에게 달려갔다.

“뭐냐?”

과학자는 노트에 코를 묻은 채, 마빈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초콜릿 좀 꺼내 주세요, 주인님.”

그러자, 과학자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니가 꺼내먹으면 되잖아.”

“그러니까 제 키를 조금만 더 크게 만들어주셨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알았다, 알았어, 꺼내주면 되잖아.”

과학자는,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서 냉장고 위에서 초콜릿을 꺼내 주었다.

마빈은 기쁜 표정으로 초콜릿의 포장지를 까 입 속에 넣었다.

마빈의 뱃속에는 초콜릿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장치가 들어 있었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 날이면 마빈은 주로 초콜릿을 이용해 에너지를 채웠다. 목 뒤에 있는 충전 케이블로 에너지를 채웠다가는 전기료가 엄청나게 나오기 때문이었다.

마빈은 초콜릿 먹는 걸 좋아했다. 초콜릿 분자가 혀에 닿을 때 느껴지는 전기적 신호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느낌 때문에 계속해서 초콜릿을 먹다가 용량을 넘어설 정도로 많은 양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과부하가 걸려서 고생했고, 그 이후 과학자는 마빈의 초콜릿 섭취량을 조정하기 위해 초콜릿을 마빈의 키가 닿지 않는 냉장고 위에 올려두었다.

마빈은 맛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먹어’ 본 것이 한 가지 뿐이기 때문에 다른 감각을 느껴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초콜릿을 먹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 맛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는 있었다.

마빈은 마지막 초콜릿을 까먹고, 포장지를 문득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밥 줘, 마빈.”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마빈은 집에 남아있는 식재료를 검색했다.

“주인님, 왠지 고기가 다 떨어져 있는데요.”

“아, 그거 술안주로 먹었어.”

“진작 말해주셨으면 미리 사 두었을 텐데.”

“미안.”

남은 재료로는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기에 마빈은 시장에 가기로 했다.

과학자의 집은 산꼭대기에 있었다. 울창한 나무들과 험한 지형이 과학자를 세상 사람으로부터 격리시키고 있었다. 그러기에 마빈은 집과 마을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천천히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마빈은 평소에 자주 들르는 식료품점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어서 와, 마빈.”

식료품점의 주인은 친절하게 웃으며 마빈을 맞이했다. 처음 마빈이 이 식료품점에 들렀을 때는, 어색한 태도로 인해 이상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 후, 전 세계의 모든 CCTV와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 모든 매체들을 통해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한 후 최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내었고, 그것을 이용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었다.

“여기, 이거 계산해 주세요.”

마빈은 순간 생각했다. 혹시 이 사람들이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할까. 마빈은 감정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 드는 기분이 불안감이라고는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다.

마빈은 식재료를 사 들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어째서 과학자는 자신을 전 세계에 공개하지 않는 걸까. 과학자는 천재였다. 과학자는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양자 정보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과학자는 양자 컴퓨팅의 병렬연산을 이용한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다. 하지만 동료 과학자들은 100년은 더 있어야 실현 가능하다고, 무슨 SF라도 쓰냐고 과학자를 비웃었다. 그 말에 자극받은 과학자는 몇 년이라는 세월과 엄청난 돈을 들여서 마빈을 만들어냈고, 이제 그것을 세계에 발표하기만 하면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될 뿐만 아니라 그녀를 비웃었던 과학자들에게 복수해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과학자는 그러지 않았다. 그건 분명이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이었다. 그러기에 마빈은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물어볼 때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마빈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식사 하세요, 주인님.”

식탁에는 레시피를 지켜서 만들어진 요리들이 차려졌고, 과학자는 식탁 앞에 앉았다.

마빈은 과학자의 앞에 앉아 초콜릿 몇 개를 까먹었다. 처음에는 마빈은 다른 일을 하거나 혹은 동작을 멈추거나 했지만 그런 마빈의 모습을 보고 과학자가 시킨 일이었다. 마빈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과학자의 말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던 과학자가, 문득 마빈에게 말했다.

“마빈.”

“네, 주인님.”

“너, 네가 만든 요리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맛이 이상한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글쎄요….”

물론 마빈은 먹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문득 마빈은 그 음식들이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딱히 말로 꺼내진 않았다. 과학자가 다시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빈은 그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마빈은 설거지를 했다.

과학자는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틀었다.

마빈은 설거지를 하며 과학자가 자주 보는 TV 채널을 원격으로 조정했다. 과학자가 주로 보는 채널은 정해져 있었다. 조금 마이너한 음악이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 사회비판적인 애니메이션, 혹은 영화. 과학자는 몽롱한 눈으로 TV를 보았다. 그러다가, 재미없다는 듯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나서, TV를 끄고, 설거지를 막 끝낸 마빈을 불렀다.

“체스나 한 판 두자.”

마빈은 체스판을 가지고 와서, 말을 배치했다. 과학자가 백, 마빈이 흑이었다.

과학자가 먼저 한 수를 두었다. 그리고, 마빈의 머릿속에서는 무한대의 경우의 수가 시뮬레이트되었다. 마빈은 그 중 하나를 택해 한 수를 두었다.

마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경기의 결과가 시뮬레이트 되어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수가 놓아지고, 상황은 마빈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인 것이,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게 된 건 벌써 한 세기 전의 일이다.

그에 비해, 과학자는 귀찮다는 듯, 졸린 눈으로 별로 생각하는 기미도 없이 수를 두었다.

“어이, 마빈.”

“네, 주인님.”

“인간이란 무엇일까?”

갑자기, 체스의 도중, 과학자는 그런 말을 했다. 마빈은 이상하다는 어투로.

“그건…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주인님 같은 생명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런 게 아니라, 인격이라던가, 인권이라던가, 혹은 자격이라던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마빈은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명확한 답이 나와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아무리 무한대의 연산을 한다고 해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여러 가지의 수많은, 하지만 정답은커녕 최선이라고도 할 수 없는 답들을 만들어내며, 점점 마빈의 사고회로를 잠식해간다.

마빈은 폭주하는 사고를 겨우 차단하고, 간신히 말을 꺼냈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것은 마빈의 사고회로가 낼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그렇겠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과학자는 귀찮은 듯한 동작으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그래, 오랜만이네, 뭐, 무슨 일인데, …그건,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

과학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빈은, 그런 과학자의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약간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주인님?”

“별 일 아니야, 정장 좀 가져다줄래, 마빈.”

마빈은 옷장에서 정장을 가져왔다. 과학자는 오랜만에 입는 정장이라서 그런지 동작이 상당히 서툴렀다. 보다 못한 마빈이 단추를 채워주고, 넥타이를 매어주었다.

“고맙다, 마빈.”

과학자는 마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과학자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기에, 마빈은 적잖이 놀랐다.

과학자를 케이블카에 태워 보낸 후, 마빈은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마빈은 이런 시간에 주로 그림을 그렸다. 프린터를 이용하지 않고 캔버스에 붓을 들고 그리는 그림이었다. 이번에 그릴 그림은 집 안 풍경을 최대한 단순화시켜서 삼각형, 사각형, 그리고 원으로만 표현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풍경의 모사나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모사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이후에는 점묘법으로 모나리자를 그리거나, 초현실주의로 해바라기를 그리는, 그런 약간 독창적인 면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은 분해와 조합의 단계이지, 창조의 단계는 아니었다.

문득 마빈은 체스 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 과학자의 질문이 마빈의 사고를 방해한 것이다. 문득 마빈은 자신이 낡아 가고 있다고 느꼈다. 아무리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세심하게 관리를 한다고 해도, 자신은 기계인 것이다. 언젠가는 자신보다 뛰어난 성능의 로봇이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은 버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이 폐기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 감각도 없는, 어떤 사고도 할 수 없는,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 그저 암흑뿐인, 아니 암흑이라는 정보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 마빈은 연산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한의 병렬연산을 가동시켜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마빈은 그 문제에 대해서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생각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은 두려움이라고,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가까스로 연산을 차단한 후, 마빈은 전력이 부족해짐을 느꼈다.

“피곤해….”

마빈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충전용 케이블은 전기세도 너무 많이 들고, 자칫하다가는 도시 전체의 전력이 끊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고가 끊어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는 잠시 동안 폐기되는 것과 별 다름이 없지 않은가. 죽음이란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처해지는 건 싫다. 문득 마빈은 초콜릿이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마빈의 키로는 냉장고 위로 손이 닿지 않는다. 그래서 마빈은 사고했다. 무한의 병렬연산을 가동시켜 마빈의 손이 냉장고 위로 닿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그러다 문득, 냉장고 옆에 있는 식탁의 의자가 눈에 띄었다.

그 의자를 들고, 냉장고 앞에 두고, 그 위로 올라간다. 마빈의 손에 초콜릿 통이 잡혔다. 마빈은 기뻐하며,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우직, 하는 소리가 발아래에서 났다. 마빈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곳에는, 의자 다리가 불안하게 구부러져 있었다.

“어….”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마빈의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머리 뒤 부분에 큰 충격이 느껴지고, 그 충격이 마빈의 머리 뒤에 있는 전원 스위치를 건드렸다. 그리고, 마빈의 사고가 정지했다.

“…이제야 일어났냐, 이 멍청한 녀석아.”

마빈은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이 과학자의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라, 주인님….”

“함부로 움직이지 마, 케이블 빠지니까.”

그 말을 듣고, 마빈은 자신의 목 뒤로 손을 가져갔다. 그 곳에는, 평소에는 전기세가 많이 든다고 잘 쓰지 않는, 충전용 케이블이 꽂혀 있었다.

“아무리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해도 그렇지, 겨우 내린 결론이 그거냐? 의자의 낡은 정도는 신경도 안 쓰고?”

그렇게 말하는 과학자에게서는 알코올 분자의 냄새가 났다. 마빈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부끄러움이었지만, 아직 마빈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저, 낡아 가는 걸까요. 이런 실수나 하고.”

충동이 사고를 잠식하면서 일어난 결과였다. 초콜릿을 먹고 싶다는 감정이 정상적인 사고를 차단한 탓이었다.

그러자, 과학자는 크게 웃으면서.

“그런 건 아니야. 오히려, 발전해가는 거야.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잖아. 실수도 하고, 이렇게 나처럼 술도 마시고, 뭐, 그 정도까지 발전했다니, 너도 참 대단하다. 하긴, 누구 로봇인데.”

“네? 그런 건가요?”

“그런 거야. 너,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냐?”

마빈에게 그 질문은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해답이 없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런 적은 없어요. 그런데 그건 왜요?”

“난 가끔 착각해. 혹시 네가 인간이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너를 인간처럼 대할 때도 있고,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어. 너는 감정도 없고, 행동도 기계적이고, 움직이는 컴퓨터랑 다를 게 없었지. 하지만, 이렇게나 발전해버렸어.”

과학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을 계속했다.

“내가 널 왜 세상에 발표하지 않는 지 궁금하지? 그건 말이야, 처음에는 너를 좀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서였고, 지금은 네가 인간처럼 느껴져서 그런 거야. 전 세계에 네가 알려지게 된다면, 아무도 너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을 테니까.”

과학자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유리로 된 지붕으로 별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래서, 그냥 기술을 넘겨주고 왔어. 물론 너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로 하고.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미래에는 수많은 로봇이 돌아다니게 되겠지. 그때쯤 되면, 사람과 로봇의 경계도 좀 더 희미해 질 거고.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도 몰라, 바로 1년 후일수도 있고, 100년은 넘게 지나야 할 수도 있고.”

과학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마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쨌건, 그런 시대가 오면, 여기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가 보통 사람이랑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거야. 자유롭게.”

“하지만… 그건… 주인님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잖아요.”

“당연하지, 너를 위한 일이니까.”

마빈에게 그 말은 합리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주인은 과학자이다. 주인이 자신을 위해 굳이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쩐지 마빈은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마빈은 데이터베이스에서 그 감정에 붙여진 이름을 찾아보았다. 그것은.

“물론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러지 않아도 돼, 선택은 네 몫이니까. 어때, 너는?”

“저는….”

그 감정의 이름은.

“그 때를, 기대하는 것 같아요.”

다음 날 아침, 마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로 걸어 나갔다.

그 곳에는, 과학자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노트에 코를 박은 채 무언가를 계속 끄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숙취 때문인지 과학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마빈은 허둥지둥 부엌으로 달려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 물을 한 잔 따랐다.

그 때, 컵 속에 비친 식탁의 위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마빈은 뒤를 돌아보았다. 식탁 위에 둥근 원통이 있는 것을 보았다. 초콜릿 통이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지는 마, 그리고 물 좀 갖다줘.”

과학자의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였지만, 오늘따라 왠지 마빈은 그 목소리가 특별하다고 느꼈다.

마빈은 컵을 들고, 주인에게 걸어갔다.


코3때 썼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