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포트 홀릭

1.

레사 행성의 사람들은 인간들과 생활양식이 거의 비슷했다.

발생이 몇만년 이상 빨라서 기술은 훨씬 진보해 있었지만 그만한 시간이 지나면 인간들도 그 정도의 기술 수준에 도달할 터였다.

그 행성의 사람들에게는 묘한 취미가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형태로 로봇을 만든 후 싫증이 나면 우주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로봇들은 우주에서도 활동할 수 있을뿐더러 다른 지적 생명체가 행성에 찾아가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쏘아댄 수많은 로봇들 중 지적 생명체가 있는 행성에 도착한 로봇은 하나도 없었다.

마빈은 그런 로봇들 중 하나였다. 그 주인의 취향에 맞춰 그 겉모습은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인격이나 목소리 등등 수많은 요소들 또한 그렇게 맞추어 완성되었다. 늙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보통 그 나이대의 소녀와 다를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그런 로봇들이 많았기에 그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우와, 여긴 진짜 찻주전자가 많네요.”

주인은 마빈을 매우 아꼈다. 그랬기에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려 했다. 마빈에게는 수많은 부가기능이 붙었다. 공기 중 입자 채집, 공중 가속 등 간단한 기능에서부터 핵융합까지. 거의 걸어 다니는 우주선 수준이었다. 이는 물론 이후 주인이 나이 들어 마빈을 우주로 보내야 할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여기 이 찻주전자 사 주시면 안 될까요? 아, 아님 저거….”

마빈은 줄지어 진열된 찻주전자들을 황홀한 듯 둘러보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찻주전자들이 가득했다. 똑같은 기능을 하는 찻주전자라도 그 겉모습은 모두 달랐고, 그 때문에 마빈은 선택에 고심하고 있었다. 진열대 앞을 몇 번이나 가로지르고 나서, 마빈은 한 찻주전자를 골랐다.

“저, 이거 사주세요.”

마침내 마빈이 고른 찻주전자는 투명한 유리로 되었고 겉에는 빨갛고 노란 풀꽃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마빈은 혹시나 깨질까 봐 조심해서 찻주전자를 들고 걸었다. 그 뒤를 주인이 천천히 따라 걸었다.

“감사합니다.”

마빈은 차분히 주인에게 인사하고는, 찻주전자를 찻주전자 진열장에 올려놓았다. 그 진열장에는 이미 수백 가지의 찻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그 중에는 새것도 있었고 낡은 것도 있었으나 그 중 더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빈은 매일매일 그 찻주전자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닦았다. 찻주전자를 모으고 관리하는 일은 마빈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 취미는 주인에 의해 설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집중할 것이 생겼기에 마빈은 딱히 그에 대해 불만스러워하진 않았다. 적어도 어떤 취미도 없을 때 보단 나았다. 그 때 마빈은 막연히 하늘을 보거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자료를 찾거나 하는 정도의 일만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시간만 죽이고 있는 마빈을 위해 주인이 설정한 취미가 찻주전자를 모으는 것이었다.

“주인님은 어떤 찻주전자가 좋은 것 같으세요? 전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마빈은 그 점에 대해 만족하는 것 같았다. 깨지기 쉽고 다루기 힘든 물건이라는 데서 로봇이 다루기 딱 좋은 물건이었다. 또한 진열해 놓으면 미적으로도 썩 멋진 물건이기도 했다. 비록 찻주전자를 이용해 차를 마시는 일은 없었지만, 주인은 찻주전자를 취미로 선택한 게 꽤나 멋진 생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주인은 마빈을 쳐다보았다. 마빈은 행복한 듯 찻주전자가 있는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주인은 문득, 자신이 마빈에게 취미를 준 게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찻주전자에 대한 마빈의 인공지능은 점점 발전하고 다분화 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중독에 가까워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인은 자신이 죽고 난 뒤가 걱정되었다. 우주 공간에 찻주전자를 가지고 갈 수 있을까? 아마 무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죽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마빈은 우주 공간에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찻주전자는?

마빈은 행복한 듯 찻주전자를 쳐다보다, 주인을 돌아보고는 웃었다.

2.

검은 머리의 소녀가 주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로즈였고 주인이 얼마 전 고아원에서 입양한 소녀였다. 겉보기로는 10세 소녀처럼 보였지만 로즈는 꽤 나이가 많았다. 그녀는 나이가 들지 않는 희귀병에 걸려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정상적인 신진대사가 되지 않았기에 로즈를 관리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었고, 그 때문에 고아원에서는 그녀를 내쫓으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우연히 주인이 보고 입양한 것이었다.

주인에게는 그렇게 돈이 많지 않았다. 마빈과 로즈를 동시에 데리고 있기에는 돈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어쩔 수 없이 마빈을 우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로즈는 주인의 손을 꼭 잡은 채 로켓을 바라보았다. 마빈이 타고 있는 로켓이 우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로켓은 어느 지점으로 도착한 이후에는 폭발해 로봇들을 사방팔방으로 퍼뜨릴 것이었다.

하얀 꼬리를 남기며 로켓은 하늘 너머로 날아갔다. 구름이 잠시 붉게 빛났다. 그것이 끝이었다. 로즈와 주인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로즈는 주인의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돌아가요, 주인님.”

3.

로즈는 울지 않았다.

관에 담긴 주인의 몸이 화장터 안으로 들어갔다. 불길이 타오르고 주인의 몸이 펄떡거리는 것을 로즈는 볼 수 있었다. 인간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끔찍한 일이었지만 로즈는 딱히 별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

주인의 재가 화장대에서 나왔고, 로즈는 그것을 검은 도자기로 된 찻주전자에 받았다. 그것을 깨지지 않도록 소중히 끌어안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찻주전자 진열대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로즈의 집은 이제 대부분이 찻주전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벽 전체가 찻주전자 진열대로 가득 차 있었기에 조심해서 다녀야 했다. 그러나 찻주전자들로 가득 차 있는 집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기에 입소문을 듣고 몇몇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녀의 하루는 특별할 게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집에 있는 모든 찻주전자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닦고, 새로 산 찻주전자를 배치하고,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가끔 찻주전자 몇 개가 깨지거나 사라지기도 했지만 로즈는 개의치 않았다. 대신 새로운 찻주전자를 사다 놓으면 됐다. 그녀는 가끔씩 받아오는 약품들과 찻주전자를 구입하는 것 외에는 돈을 쓰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올 때의 입장료 정도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로즈 자체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몇 년 동안이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라는 입소문이 퍼졌고,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가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부분 작은 영화의 단역이었다. 그녀는 주로 로봇 역할을 맡았다.

4.

로즈는 찻주전자를 사러 가고 있었다.

주인이 죽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외부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그녀가 골목 부근을 걷고 있을 때였다.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쌌고, 뒷통수를 쳐 기절시킨 뒤 그녀를 납치해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어떤 연구소였다. 사람들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비인가 연구소였는데, 주로 영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하는 일이 일이니만큼 불법적인 일도 많이 자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납치되었고 연구소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로즈 또한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그녀는 수술대 위에 눕혀졌다.

연구소 안으로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로즈를 납치해가는 것을 본 행인의 신고로 찾아온 것이었다. 불법적인 연구소인 만큼 연구소에는 수많은 불법적인 물건들이 있었다. 경찰은 연구원들을 다 체포했다.

마지막으로 경찰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메스를 든 몇몇 연구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경악한 눈으로 수술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경찰은 그들을 모두 체포하고 수술대에 있는 로즈를 옮기려 했다.

그러다 문득 로즈의 피부가 갈라진 부분을 보았다. 그 곳에는 기계 부품이 드러나 있었다.

5.

로봇들에게는 재산권이 없었다.

법 해석에 따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로봇은 사유재산으로 취급되는 존재였고, 재산에게 재산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로즈에게도 재산권이 없었다.

그녀와 그녀의 찻주전자들은 몰수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우주로 떠나가야 했다. 모든 주인 없는 로봇은 우주로 떠나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주로 떠나가는 로켓의 진동을 느끼며, 마빈은 문득 자기 대신 먼저 떠나간 로봇을 생각했다. 만들어지자마자 바로 떠나갔기에 백지 상태나 마찬가지였던 로봇이었다. 취미도 없고 남겨두고 가는 물건도 없었기에 아마 지금의 자신만큼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빈은 지금쯤 경찰서 어딘가에 쌓여있을 찻주전자들을 생각했다. 먼지가 쌓이니까 잘 닦아줘야 할 텐데, 혹시 깨지지는 않았을까. 아무 소용없는 생각이었다. 자신은 이 로켓 안에 있었고, 곧 있으면 어떤 것도 없는 우주로 떠나갈 것이었다.

큰 흔들림이 있고, 강력한 가속이 느껴졌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자, 마빈은 우주에 있었다.

6.

마빈은 새삼 우주가 넓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게 많은 로봇들이 우주로 쏘아졌고 그중 한둘 정도는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주는 마빈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여기도 저기도 아무것도 없었다. 별들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처음으로 마빈은 절박함을 느꼈다. 주인이 달아준 여러 부품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작 가지고 있는 연료가 너무 적어 돌아갈 수도, 가까운 행성으로 갈 수도 없었다. 또한 궤도에 진입한다 해도 대기의 마찰로 인해 불타 죽을 게 분명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찻주전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고독은 견딜 수 있었다. 언제나 고독했으니까. 추위도 견딜 수 있었다.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입자들로 동력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찻주전자는 없었다.

마빈은 주인을 원망했다. 자신에게 취미를 만들어 준 주인을 원망했다. 자신에게 취미가 없었더라면, 언젠가 다른 행성에 다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잠들어 있을 수 있었을 텐데. 마빈은 그럴 수 없었다.

과거의, 찻주전자 사이에서 살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마빈은 메모리를 삭제하고픈 충동을 느꼈지만, 도저히 삭제할 수가 없었다. 그것마저 없다면 살아갈 이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언제까지 괴로워 할 수밖에 없었다.

7.

마빈의 머릿속에 문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치들이 떠올랐다.

그 무렵 마빈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회로는 과열되어 거의 녹아내릴 지경이었고 센서들은 흐릿해졌다. 이제 마빈은 거의 과거의 메모리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주인이 달아둔 장치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할 수 있나 생각했다.

마빈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연산이 일어났다. 취미를 갖기 전, 데이터베이스에서 얻은 수많은 정보들을 검색하고 추려냈다. 그 정보들을 조합하고 재구성하고, 마빈은 결론을 내렸다.

할 수 있다.

마빈은 생각을 멈췄다. 대신 입자 채집기를 모아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입자들을 채집했다. 필요한 양 만큼의 입자가 모이면 자동으로 동면에서 깨어나도록 설정되었다. 길고 지루한 채집이 시작되었다.

8.

긴 세월이 지나고 마빈은 잠에서 깨어났다.

입자가 충분한 것을 확인하고, 마빈은 말했다.

“찻주전자가 있으라.”

그러자 찻주전자가 있었다.

9.

1900년대의 어느 날 러셀은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고 있었다.

별들은 많이 보였지만 별로 특별한 게 없었기에 러셀은 심심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망원경은 그때까지 나온 망원경 중 가장 좋은 망원경이었지만 딱히 맨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망원경을 돌리며 우주를 보고 있던 러셀의 눈에, 무언가 번쩍이는 게 보였다.

“응?”

러셀은 다시 주의 깊게 그 부분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보았겠지 싶어서 러셀은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분명 잘못 본 것일 것이다. 하지만 러셀은 그 빛 속에서 뭔가 익숙한 것이 보였다는 생각을 했다.

“에이.”

러셀은 잡생각을 떨치고 시녀를 불러 차를 끓이게 했다. 시녀가 찻잔과 찻주전자를 들고 왔다. 찻잔에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한 잔 담은 다음 찻주전자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러셀은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본 게 찻주전자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설마.”

러셀은 고개를 저었다. 찻주전자가 그런 우주 공간에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만약 있다고 해도, 그것은 망원경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러셀은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안개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구체적인 형태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