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키스

너는 내가 내려준 커피를 좋아했다.

정성스레 내린 커피를 잔에 담아 너에게 내어 주면, 너는 언제나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받아들곤 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드립 커피를 마시며 미소 짓는 너를 보며, 나는 끝내 네게 말하지 못한 행복을 느꼈다.

너와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날은 고등학생 때의 어느 소나기 내리는 날이었다. 몸이 아파 학교에 나가지 못한 내게 너는 학교의 프린트를 나눠주었다. 그 때 집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네가 추워 보였기에 나는 네게 들어올 생각 있냐고 말했고, 너는 흔쾌히 응했다.

축축하게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네 길고 검던 생머리가 기억난다. 하얀 교복 또한 흠뻑 젖어 속이 비쳐 보였지만 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네게 난로와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조금 떨리는 일이었다. 네 곁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 곁에는 언제나 몇몇 사람들만이 있었다. 그런 내게도 너는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난로로 몸을 말리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아냈지만 넌 여전히 추워 보였다. 나는 뭐 따뜻한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네게 커피라도 한 잔 내어 줄까, 라고 말했고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너는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았다. 나는 딱히 커피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어머니가 커피를 좋아했고, 또한 커피는 이런 방법으로만 만들 수 있는 줄 알았다.

드립기에 드립페이퍼를 접어 끼우고, 갓 볶은 원두를 넣는다. 물을 둘러주듯 부어주면 마치 머핀처럼 원두가 부풀어 오른다. 그렇게 커피를 내리며 조금씩 물을 부어 커피 두 잔을 만드는 과정을 너는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았다.

너는 어느새 테이블로 돌아갔고 나는 네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설탕을 내놓기도 전에 너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마를 약간 찡그린 네게서 처음 나온 말은. 써, 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후로도 너는 내 집에 자주 찾아왔다. 혼자 찾아오기도 했고, 친구들을 데리고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 너를 통해 나는 세상에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커피를 통해 네게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언제나 너는 아무 것도 넣지 않고 커피를 마셨고, 나는 그런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해 주려 노력했다. 너는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환하게 웃었다. 꿈같은 날들이었다. 그런 날들은 내가 커피를 좀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래 가지 못했다. 너와 나는 다른 대학교에 갔고, 이후 너와는 연락이 끊겼다.

학업을 그만두고 나는 카페를 열었다. 대학교 공부에서 나는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고 나는 그들과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카페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열었다. 가끔 네가 고향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카페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카페였고 푹신한 의자와 아담한 테이블이 있었다. 구석진 곳에 자리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은 계속 찾아왔다. 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찾아왔다. 그들이 계속해서 내 카페에 찾아오게 된 건 아마 너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카페에 설탕을 두지 않았다.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잡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는 또 다른 너를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서도 너를 대신할 수 있는 모습은 찾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나 너를 기다렸다. 그러기에도 지쳐가던 어느 날, 네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네 옆에는 몇몇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네가 카페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사람이 너임을 알았다. 하지만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 그 때처럼 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그 날 내가 내린 커피는 그때까지 내린 커피 중 최고의 커피였다. 너는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그 때 그 꿈같은 날들처럼,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그 때와 같은 행복감을 느꼈다.

너는 자주 내 카페에 찾아왔고, 너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너는 날 잊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네게는 많은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가끔 넌지시 어째서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자 너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네게서 나는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슬프진 않았다. 나는 네가 내 앞에 있는 것만이라도 좋았다.

슬프지는 않았지만 가끔 답답하긴 했다. 가끔 내겐 널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너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네가 내게서 떠나갈까 두려웠다. 너는 언제나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고,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했다.

그래, 영원히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내 생각대로는 흘러가지 않았다. 어느 날 네가 그의 팔짱을 끼고 카페로 들어왔다. 그 모습은 날 불안하게 했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정성스레 내린 커피를 내놓았다. 그 커피를 마시고 그가 처음 한 말은, 써, 라는 말이었다.

그는 잘생기고 멋진 옷을 입을 줄 아는 남자였다. 천사 같은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너에게 어울리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초라하고, 작고, 낡은 카페 주인일 뿐이었다. 그는 내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커피보다 나를 더 싫어했다. 그녀 앞에서 그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내가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이후 너는 이전만큼 내 카페로 자주 오지 않았다. 가끔 올 때도 나와는 대화를 나누지 않고 둘이서만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가끔 혼자서 올 때도 있었으나, 그 때도 나와는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와 전화를 하거나, 혹은 문자를 했다. 하지만 언제나 커피를 마시면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내게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어느 날, 너는 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행복했지만, 또한 왠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 네가 점점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너는 점점 희미해져, 보이지도 않게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햇빛은 카페 내로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햇빛에 감싸인 네 모습이 점점 더 희미해졌다.

커피를 몇 모금이나 마셨을까, 네 휴대폰이 울렸다. 너는 전화를 받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 마시지도 않은 커피 잔을 내려두고 바깥으로 나갔다. 창문 밖에는 너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햇살 속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정말 너와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진심으로 나는 네가 그 옆에서 행복하길 바랐다. 네가 길을 건너 그에게 다가가고, 그는 너를 끌어안았다. 조금 전 네가 앉았던 자리에는 아직까지 하얀 김이 오르고 있는 커피 잔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아직까지 네 온기가 남아 있었다.

가끔 꿈을 꾸기도 했다. 매일 아침 네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 커피 한 잔을 준비하고, 너는 그 커피 향기를 맡고 일어난다. 그 커피를 마시고, 너는 내게 천사처럼 웃음을 지어준다.

하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그저 이 커피 잔 하나뿐이다. 네가 잡았던 커피 잔에는 너의 입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네가 입을 댄 수십 개의 커피 잔을 씻으면서 나는 몇 번이고 네게 입술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네가 떠나갈 것 같아서 두려웠다. 나는 너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너를 가질 수 있을 만한 용기는 가지지 못했다. 네가 처음 이 카페에 들어왔을 때, 네게 오랜만이라는 말을 건네지 못한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늦었다.

그는 네 손을 잡는다.

나는 네 커피 잔의 손잡이를 잡는다.

너와 그의 입술이 가까워진다.

너와 나의 입술이 가까워진다.


만화 스토리에 적합한 모습으로 고쳐 보고 싶었는데 못해서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