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단면 

그녀의 얼굴에는 기다란 흉터가 나 있었고 그것을 보는 것은 가슴 한 구석을 무겁게 했다. 그것은 그저 실수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짧은 행위의 결과는 영원했고 흉터는 그 단면일 뿐이었다.
그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착각에 빠졌다. 뭔가 그녀에 대해 더 신경을 쓰고 더 잘해줘야 된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었다. 그럴수록 내 삶의 빈 공간을 그녀에게 빼앗겨 간다는 착각이 들었고, 결국 그녀 때문에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은 당연히 내가 아닌 그녀였다. 얼핏 보면 그녀는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은 태도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그녀가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녀는 예뻤다. 그녀 자신도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화장은 더욱 더 짙어져 갔고, 내 죄책감도 더욱 더 짙어져 갔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런 장난도 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녀의 그 무감한 태도는 어쩌면 아쉽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날 책망하길 바랐다. 나를 괴롭히길 바랐다. 원망의 말들로 나를 나락으로 밀어 넣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후로도 내게 어떤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 대한 복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답하지 않음으로 날 더 괴롭게 만든다는.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사랑은 원하지도 않았다. 미움이라도 받고 싶었다. 날 매도하고, 경멸하고, 원망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를 괴롭힐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영원의 단면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 흉터 하나로도, 내겐 충분할 정도로 무거웠다.
학교생활은 그 이전과 이후 별 차이는 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녀에게서 겉돌고 있었고, 그녀는 내가 그 근처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그 간극이 더 커졌을 뿐이었다. 그녀는 날 밀어낼 권한을 얻은 것이었고. 문득 나는 그녀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점점 커져가기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학창시절이 끝날 때 까지 작아지지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의사가 되었다. 내 병원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의 피부에는 각기 다른 형태의 수많은 흉터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띌 정도로 크거나, 혹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거나, 혹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보고 있으면 언뜻 신경 쓰이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들의 흉터는 사라졌고 내게는 내 것은 아닌 흉터가 늘어났다.
나는 그 기록을 모으기 시작했다. 넓은 집을 사서 방 하나의 벽을 사진으로 도배했다. 책장은 사진들로 가득했고 그것도 부족해서 방의 반을 채울 정도였다. 매일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새로운 사진들을 벽에 붙이고 오래 된 사진들은 떼어냈다. 그리고 바닥에 드러누워, 그 흉터들을 감상했다. 흉터투성이의 방이었다.
흉터들은 비슷하기도 했고, 또한 제각기 다르기도 했다. 크기, 모양, 깊이, 색, 그 모든 것들이 똑같은 흉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흉터가 나는 이유는 대부분이 비슷했기 때문에 그 흉터들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흉터는 쌓여갔고 삶은 점점 비어갔다. 가끔씩 만나기라도 했던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그 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연락을 끊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세상에는 나 혼자뿐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흉터투성이의 세상. 가끔 공허한 기분이 들고 가끔 허망한 기분이 들지만 그 정도 이상 이하도 아닌. 세상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부족했고 흉터는 그나마 내 삶을 환기시켜주던 요소였다.
그렇게 몇 년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난 후의 일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새 흉터의 사진을 붙이고 오래된 흉터 사진을 떼어낼 때, 나는 문득 떼어낸 흉터와 붙인 흉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흉터들 중에서 우연히도 똑같은 흉터가 나온 것이었다. 그 순간, 방에 붙어 있는 모든 흉터들이 똑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크기, 모양, 깊이, 색, 그 모든 것들이 다른 흉터들이었지만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도, 저기도 똑같은 흉터들이었다. 똑같은 흉터들이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가 인간의 흉터에는 흥미를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을 팔고 상속을 받고 나자 꽤 많은 돈이 쌓였다. 비슷한 때 지구가 멸망했기에 이건 더더욱 현명한 선택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주 식민지로 이주했고 그 중에는 나도 있었다. 지구 멸망의 원인은 별 건 아니었다. 달에 유성이 충돌했고, 그로 인해 달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조각들은 지구의 인력권에 끌려 지구 주위를 돌게 되었고, 가끔씩 그 조각들 중 하나가 땅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빌딩들이 많이 부서졌다. 도시 대부분은 그 기능을 잃었다.
사실 사람들의 삶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이미 태양계의 대부분을 지배한 인류였기에 지구라는 행성 하나 정도는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지구는 단순히 인류의 고향 정도의 의미만 가지고 있었고, 삶의 중심지로써의 기능은 상실한 지 오래였다.
나는 화성으로 갔다. 가장 빨리 개발되었기에 가장 발전도 많이 한 행성이었고 그만큼 내가 할 일도 많은 곳이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공기는 더러워지고, 병은 많아지기 마련이다. 나는 다시 병원을 열었다. 이주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화성은 지구와는 다른 환경이었지만 흉터의 모습은 여전히 비슷했고, 나는 그 흉터들을 모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충동적으로 천문대에 갔다. 우주는 광활했고 점령한 곳보단 점령하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그리고 문득 지구를 보았는데, 달 조각이 떨어진, 여기저기 지형이 바뀐 지구의 모습은 마치 흉터가 나 있는 얼굴 같았다.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고, 떨어져나간 그것들은 마치 흉터 같았다. 그것을 본 순간 어떤 충동이 날 사로잡았다.
측량을 배웠다. 이것저것 측정하는 법을 배우고 지도 그리는 법을 배웠다. 지구가 멸망한 이후, 세계지도는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아마 더 이상 쓸모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달 조각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지구도 다시 살 만한 땅이 될 것이었다.
사실 이런 것은 전부 대외적으로 말하고 다닌 것일 뿐이었다. 내가 지구에 가고 싶은 이유는 사실 다 개인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다. 측정 장비, 탐사를 위한 팀, 기술 등등. 그리고 나는 지구로 떠나갔다. 수많은 흉터들이 날 반기고 있었다.
말을 꺼낸 것은 나였지만, 탐사대의 대장은 내가 아니었다. 경험자도 기술자도 아닌 내가 그들을 이끌기에는 힘들었기에 그건 당연한 판단이었다. 나도 큰 상관은 없었다. 나는 그저 그 흉터들을 모을 수 있었으면 충분했다.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이동하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어지간한 돌에 맞아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상자 속에 주거 공간을 채워 두고, 그것을 웬만한 곳은 다 돌아다닐 수 있는 차량 뒤에 달았다. 시도 때도 없이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를 헤치며, 달 조각이 뒤덮어 햇빛도 잘 비치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난 마치 내가 이물질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도 모두 사명감에 젖어 있었지만, 나는 이 흔들리는 집, 먼지투성이의 공기, 안개 같은 햇빛, 대도시의 잔해들. 그 모든 것들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만큼 얻는 것도 있었다. 이 탐사로 얻는 새로운 흉터들은 제각기 모양이 달랐고, 또한 거대했다. 그것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위험이 뒤따랐지만, 그 열매는 달았다. 동료들은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딱히 이해받길 바라지도 않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동료들과 잠시 떨어져 사진을 찍기 위해 구덩이를 내려갈 때였다. 구덩이는 깊었지만 그만큼 넓었기에 바닥이 다 보였다. 그랬기에 나는 안심하고 아스팔트에 자일을 걸고 매달려 사진을 찍었는데, 그 때 박아둔 말뚝이 뽑혔다. 그 충격으로 아스팔트가 부서지고 나는 다리가 끼었다. 멍청하게도 통신기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에 구해달라는 연락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그곳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은 별로 떠 있지 않았고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어두웠다. 그 곳에서 나는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빛을 받는 각도, 카메라를 찍는 방향 등등 수많은 요소들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스팔트 아래 드러난 땅에는 지층이 있었다. 지층은 또 다른 흉터였다. 세월이 지구에 쌓은 흉터였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동료들이 날 구하러 왔고 다리에는 수많은 흉터가 났다.
매일같이 똑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하늘에서 달 조각이 떨어지면 그 곳으로 달려가 측량을 하고, 지도를 업데이트하고. 그러다 또 하늘에서 달 조각이 떨어지면 그 곳으로 달려가고. 나는 가끔 사진을 찍다 조난당하고. 그러다 무너진 빌딩들을 돌아다니며 뭔가 쓸만한 것을 줍기도 하고. 가끔 지구를 떠나지 않은 거주민들과 만나기도 했다. 그들에게도 많은 흉터가 있었다. 지구는 위험한 장소였고 흉터가 날 만한 곳은 많았다. 베인, 긁힌, 터진. 나는 그들의 흉터를 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여전히 하늘에서 떨어진 유성을 따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그 때 예전에 측량했던 구덩이를 지나갔고, 나는 문득 그 구덩이가 약간 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바람, 혹은 비, 그런 것들에 의해 달라진 것이었을 것이다. 그걸 본 순간 그것들이 흉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도 만들기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화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새로이 알게 된 흉터를 탐사했다. 지층은 대부분 비슷해 보였지만 그만큼 많이 다르기도 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샌드위치 모양의 지층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층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경계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돌아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그 자료들이 너무 쌓이고 쌓여서 정리도 해야 했고 흥미도 떨어졌다. 무엇보다 지층은 흉터가 아니었다. 세월의 흔적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화성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한 방이 아닌 집 전체를 사진들로 가득 채워야 했다. 벽, 바닥, 천장, 테이블 등, 그 어느 곳 흉터가 없는 곳이 없었다. 흉터투성이의 집이었다. 분명 똑같은 흉터들이지만, 가끔 집에 들어올 때 나는 생경한 느낌을 받았다. 혹은 그 흉터들이 생경해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저 저 혼자서 치유되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사진은 영원한 세월의 한 단면일 뿐이다. 지금 지구는 침식과 풍화로 그 자신의 흉터를 치유했겠지만 사진은 그 흉터의 모습을 여전히 선명하게 남기고 있다.
나는 다시 병원을 열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수많은 흉터들이 지워진 채 떠나갔다. 지구로 떠나기 전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삶은 여전히 비어 있었고, 나는 작아져 있었다. 다만 흉터가 조금 더 늘었을 뿐이었다.
가끔 나는 그녀를 떠올렸다. 내가 지금 이렇게 비어 있는 이유가 그녀 때문은 아닐까. 그녀가 날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만들었더라도, 그 벽을 부숴서라도 그녀에게 다가갔어야 했던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다. 십 년이 지나도록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얼굴은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다란 흉터가 나 있는 그 얼굴은, 잊어지지도 않았고, 잊고 싶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 얼굴은 내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가끔씩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괴로웠고, 원망스러웠다. 그 얼굴에 있는 흉터가 날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문득 그녀가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를 찾고 싶진 않았다. 어떻게든 변했을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몇 년이 지나 모든 달 조각이 지구로 떨어졌다. 돌아온 탐사대는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몇몇 사람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가 지구를 재건했다. 나는 딱히 그들을 따라가지는 않았다. 이곳에서도 삶은 여전히 똑같았고, 그것은 지구에서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나는 가끔 내가 이방인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어떤 연유로 인해 나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추방당했고, 나는 그저 세상에 불법체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아올 방법을 찾고 있었지만, 그 방법은 과거에 이미 사라져 버렸고 다시는 찾을 수 없고, 무의미하게 그 돌아올 방법을 찾기 위해 영원히 떠돌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무 일 없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전광판에 지구 여행이란 광고가 떴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려 했으나 그 전광판에서 보인 흉터라는 글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신이 새긴 흉터!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 마리아나 해구! 그 곳으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사실 그 곳에 간다고 돌아올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주 나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고, 이 일도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예감 같은 건 없었고, 이유 같은 것도 없었다.
내가 흉터에 그렇게나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어쩌면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어떤 생각의 단면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의 본질을 몰랐다.
지구로 가는 여행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처음 우주여행을 하고 나서는 주로 잠들어 있었지만 이번에는 오랜만에 바깥 풍경을 제대로 관측했다. 우주선은 처음 화성을 떠날 때는 빠른 것처럼 보인다. 우주로 나가면 마치 멈춰 있는 것 같고, 다시 지구로 진입할 때는 빠른 것처럼 보인다. 이건 내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
지구에 가까이 가자 오랜만에 달 조각에 가리지 않은 지구의 온전한 모습이 보였다. 세게 지도는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달 조각이 마리아나 해구까지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곳은 깊으니까.
잠수정은 평범한 큰 잠수정이었다. 과거에는 상당히 작고 간단하게 만들어진 잠수정을 이용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런 것들은 필요 없게 된 모양이었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쉬운 건 별 수 없었다. 하지만 불편한 것보다는 편한 게 나을 것이다.
잠수정에 들어갈 때, 나는 문득 그녀의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그녀와 비슷한 누군가가 잠수정 안에 있다는 착각을 했다. 그녀 같기도 했고, 그녀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모습을 잊을 리 없었고 그녀를 보았다면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을 게 분명했기에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잠수정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푸른 바닷물이 보이고 햇빛이 일렁거렸다.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산호들도 보였다. 그러나 수심이 깊어질수록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푸른빛이 서서히 옅어지고 결국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검은 바다는 우주 공간을 연상시켰다.
하얀 라이트가 켜지고 주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물고기들의 모습은 납작해지고 그로테스크해졌다.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생소함이 더해졌다. 착각이었겠지만 어둠도 짙어지는 것 같았고 가슴도 갑갑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지겨워질 때 쯤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달 조각 중 이 근처에 떨어진 것이 있다는 안내와 함께 잠수함이 움직였다. 라이트가 비치고, 산맥 위에 달 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그것의 표면은 매끈매끈했고 그 주위로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릴 적 보았던 달의 표면은 크레이터들로 뒤덮혀 있었지만 지금 이미 그런 것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었기에 그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는 충격적이었다.
달의 크레이터는 흉터였다. 달의 조각들은 지구로 떨어지며 흉터를 남겼지만, 그 달에게도 흉터는 있었다. 그런데, 그게 흉터였을까? 결국 사라져 버리는 그것들을 흉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잠수정은 점점 내려갔고 어둠은 점점 짙어졌다. 라이트의 빛마저도 물의 밀도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물고기라고 부르기도 힘들어 보이는 생물체들과 먼지 같은 것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잠수함에 들어가기 전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자리에서 일어나 잠수함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화성으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과거에 했어야 했던 일을 했다. 웹에 그녀의 이름을 찾았고 사립 탐정도 고용했다. 하지만 그녀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너무 많았고 그 중 그녀를 찾기는 힘들었다. 여러 가지 단서를 달았지만 결국 그녀를 찾아내진 못했다. 가끔 나는 내 기억을 의심했다. 이름이나 얼굴 혹은 여러 가지 사항들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나 있던 기다란 흉터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그 얼굴이 떠올랐고 꿈속에서는 그녀의 얼굴에 흉터를 낸 그 날의 일이 반복되었다. 꿈속에서조차 그것은 그대로 반복되었고 막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실수였고 절대로 고의로 한 일은 아니었다. 절대로. 절대로. 아니, 정말 고의로 한 일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그 얼굴에 남았어야 할 것은 흉터가 아니었던가? 정말 그것은 실수였던가? 하지만 이젠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거절했다. 밀어냈다. 거부했다. 어쩌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그녀의 삶에 의미를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 그런 흉터를 남긴 게 아닐까. 정작 그걸 감당할 만한 자신도 없어 실수라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리면서.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설령 그것이 고의였다 해도 그것은 충동적인 것이었고 충동적인 것은 오래 남지 않는 법이다. 지구로 돌격한 달의 조각들은 결국 그 흉터를 잃어버리고 그 자신마저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왜 내 죄책감은 닳지도 사라지지도 않는가? 삭히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언제까지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왜 내 삶이 자리 잡아야 할 곳에 굴러들어와 삶을 밀어내는가? 어떻게 해야 나는 추방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나는 결국 그녀를 찾고, 그녀를 만나야 했다.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녀를 만났다. 사립탐정은 유능했고, 그녀가 화성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것과 그녀의 연락처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에게 수고비를 주었다. 하루에 100달러, 경비는 따로. 그녀에게 연락해 최대한 어색하지 않도록 이유를 잡고, 대화를 하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오랜만에 본 그녀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러기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한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은 크게 달라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녀와 별 내용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커피를 마시며, 과자를 먹으며, 과거 이야기와 현재 이야기,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근황 질문, 그리고 학창 시절 이야기.
그녀는 많은 것을 잊고 있었다. 나에 대해서는 이름만 기억하고 있는 정도인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내가 그녀의 얼굴에 흉터를 냈다는 사실조차. 나는 그걸 딱히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고, 그저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분명한 벽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조차도 잊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곁가지에 부수적인 것들일 뿐이었다. 나는 뭔가를 확인하고 싶었고, 그것은 고개를 들고 그녀와 인사를 하는 순간 확인되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었다. 이제 나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다란 흉터가 나 있었다. 이제는 없다. 그녀의 흉터는 누군가가 가져가버렸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내가 그동안 모았던 흉터들을 모두 끌고나왔다. 그리고 넓은 공터에서 그것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남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나 오랫동안 내게 흉터를 남겼지만, 정작 내가 남긴 흉터는 풍화되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달의 크레이터처럼. 나는 오만했다. 내가 그녀에게 무슨 의미라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흉터를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벽을 만들지도 않았었다. 그냥 잊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흉터를 남기지 않았다. 나는 내게 흉터를 남겼다.
흉터란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니다. 저 달의 크레이터가 그랬듯, 그 달이 지구에 남긴 흉터들이 그랬듯, 내게 치료를 받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흉터가 그랬듯. 언젠가는 저 마리아나 해구조차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영원한 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흉터는 그 단면일 뿐이다.
며칠이 지나자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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