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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수술,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 젠더 개념들 간의 상호작용의 역사와 현재의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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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gender)가 정치의 장에 자주 호명되는 시대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다. 하지만 각자 그것을 호명함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목적, 이 때 호명된 ‘젠더’의 의도된 의미, 그리고 젠더를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입장은 백인백색으로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 인(人)의 불연속면들마다 크고 작은 마찰음이 발생하고 있다. 그 많은 불연속면들 중 굳이 두번 강조할 필요도 없는 남성 지배성별에 대한 도전 문제를 제쳐놓고 보면,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둘러싼 불연속면이야말로 가장 첨예한 마찰의 발생원이라 할 만하다. 혹자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여성에 대한 강간이라고 준엄하게 꾸짖고, 혹자는 그들이야말로 기존의 이분법적 젠더 개념을 해체할 변혁의 주체라고 치켜세운다.

대개의 사회적 갈등은 사회적 모순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 모순의 본질을 폭로하는 역할을 하며, 그리함으로써 사회와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진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갈등이 그렇게 유의미할 수는 없으며, 변혁의 단초가 되기는커녕 외려 모순을 파악하기를 힘들게 만드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 갈등도 존재한다. 트랜스젠더가 인구의 0.39%밖에 차지하지 않는다(Meerwijk; Sevelius, 2017)는 점을 고려한다면, 트랜스젠더 관련 전선의 마찰 밀도는 남성-여성 대결 전선보다도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많은 갈등과 마찰들이 모두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트랜스젠더의 입장이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유의미한 갈등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본고에서는 이 문제의 과학기술사적 측면, 즉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불가분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는 성전환 수술이라는 근대외과의학이 트랜스젠더 개념, 그리고 젠더 개념과 상호작용한 과거와 현재를 역사적으로 논해볼 것이다.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자주 사용될 몇 가지 용어들을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 이 문제에 있어 외래어 어휘가 난무하고, 개념의 혼용 역시 심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혼란을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다.

  • 소위 “사회적 성”이라고 불리는 Gender 는 [젠더]라고 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 [성별]이라고 할 것이다.
  • 소위 “생물학적 성”이라고 불리는 Sex는 [성]이라고 할 것이다.
  • [성전환 수술]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주장되는 [성 재지정 수술]이라는 용어가 있지만, 대다수 언중에게 익숙한 [성전환 수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 Transgeder는 [트랜스젠더]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출생 시 지정받은 성별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나는 자아의 느낌, 정체성, 소속감을 가지는 사람”을 의미한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5: 439). 의학적으로는 국제질병사인분류(ICD) 제10판에 F64 “성별 정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로 등재되어 있는 현상을 나타내는 사람에 해당한다.1
  • Transsexualism은 [성전환증], Transsexual은 [트랜스섹슈얼]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각각 ICD 제10판에 F64.0 항목으로 등재된 “반대의 성(sex)을 가지기를 원하고 그 일원으로 생활하기를 갈망하여 … … 그 신념에 일치하는 성을 가지기 위해 외과수술(저자주―즉 성전환 수술)이나 호르몬처치를 원하는” 현상 및 그러한 사람을 의미하며,1 이 범주설정에 따르면 성전환자는 트랜스젠더의 하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이분법적 트랜스젠더]라고 할 수도 있다.
  • Genderqueer는 [젠더퀴어]라고 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 [비이분법적 트랜스젠더]라고 할 수도 있다.
  • 사람을 대명사로 지칭할 때는 해당자의 성별에 무관하게 모두 [그]라고 지칭할 것이다.

고대의 유산인 성전환, 근대의 산물인 성전환자

“성을 전환한다”는 개념이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비블리오테케』나 『변신 이야기』 같은 그리스 고문헌에는 테이레시아스(Τειρεσίας)라는 양치기가 뱀을 때려죽였다가 저주를 받아 여자가 되었다가 7년 뒤 다시 뱀을 때려죽이고 남자로 돌아갔다는 신화가 기록되어 있다. 켈트 신화에는 웨일스의 왕 마스(Math)의 조카 길바이수이(Gilfaethwy)가 마스의 궁녀 고이윈(Goewin)을 겁탈했다가 그 벌로 암사슴이 되는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마비노기온』 제4가지에 수록되어 있다. 역사 시대로 넘어오면 제23대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Elagabalus, r. 218년-222년)가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주는 의사에게 천금을 주겠다는 현상금을 내걸었다고 디오 카시우스의 『로마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개념이 존재했던 것과 별개로, 당연히 그것이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여겨지지는 못했다. 성이 정말 전환되었다는 이야기는 대개 신화나 전설의 영역이었고, 현실세계의 인간이 그런 ‘비현실적’인 욕망을 가지는 것은 비도덕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특히 남성이 여성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을 때 그런 멸시는 더 심했다. 엘라가발루스는 재위 4년만에 쿠데타로 폐위되었는데, 다른 황제들이 쿠데타로 살해되어도 장사는 고이 지내주었던 것과 달리 엘라가발루스의 시체는 머리를 자르고 몸통은 벌거벗겨 로마 시내를 조리돌린 뒤 티베르 강 시궁창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정신병원(lunatic asylum)의 시대였던 19세기에는 이런 성전환 욕망을 가진 사람들 역시 정신질환자의 일종으로 여겨지는 등, 근대까지도 성전환은 터부시되었다.

이런 인식에 변화가 가능해진 것은 20세기 초 유대계 독일인 의사 마그누스 히르슈펠트(Magnus Hirschfeld)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히르슈펠트는 성전환 뿐 아니라 동성애자 권리운동이나 성과학 전반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로, 1905년부터 모성보호동맹이라는 여성주의 단체에서 낙태 비범죄화 운동을 하기도 했다(Bauer, 2017: 80).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제정이 붕괴하고 진보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자 히르슈펠트는 1919년 7월 6일 성과학연구소(Institut für Sexualwissenschaft)를 설립했다. 동성애자였던 히르슈펠트는 애인과 동거하며 연구소를 집으로 삼았다(Bauer, 2017: 81).

기록상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은 되르헨 리히터(Dörchen Richter)였다. 본명은 루돌프(Rudolph)였고, 여장을 한 죄로 체포되었다가 판사의 명령으로 히르슈펠트 연구소에 넘겨져 연구소에서 하녀로 일했다. 리히터는 1922년 고환절제 수술을 받았고 몇 년간 호르몬 치료를 받은 뒤 1930년 음경절제 및 질성형 수술을 받았다. 리히터의 성전환 수술을 집도한 것은 연구소 소속 외과의 리바이 렌츠(Levy Lenz)와 베를린에서 초빙해 온 에르빈 고어브란트(Erwin Gohrbandt)였는데, 고어브란트는 질성형술을 최초로 개척한 사람이다(Bauer, 2017: 86). 즉 질성형술이라는 수술 기법 자체가 그 초창기에 성전환을 욕망하는 사람을 테스트베드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초창기 성전환자로 유명한 덴마크 사람 릴리 엘베(Lili Elbe)도 리히터 케이스를 알게 되어 히르슈펠트에게 접촉해 수술을 받았다. 엘베는 이듬해 리히터에게는 시도되지 않았던 자궁이식을 시도했다가 거부반응으로 사망했다.

히르슈펠트 본인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성전환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석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늘날 동성애자들의 트랜스젠더 혐오를 비추어 보면 동성애자라고 특별히 성전환 욕망자에 대해 동정적이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하다고 생각된다.2 오히려 히르슈펠트는 1910년 여장남자나 성전환 욕망자들을 말하는 범주로서 “트랜스베스티즘(transvestism)”이라는 용어를 고안함으로써 이런 집단과 동성애자를 구분하려는 최초의 시도를 한 사람이었다(Stryker, 2008: 71). 그보다는 히르슈펠트의 ‘의학’에 의한 ‘여성’ 만들기는 히르슈펠트 개인의 인도주의 정신과, 과학·기술·인간의 지식으로써 세상과 인간을 변화 개선시킬 수 있다는 근대적 정신에 의해 가능했다고 판단하는 편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인권탄압의 온상인 격리정신병원 역시 사람을 ‘고쳐 쓸 수 있다’는 근대정신의 발로였듯이 근대성을 폭력성과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그런 표면적 모순이야말로 서구적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히르슈펠트가 제안했던 “트랜스베스티즘”이라는 말은 1940년대에 미국의 루이스 로렌스(Louise Lawrence), 버지니아 프린스(Virginia Prince) 등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생물학적으로 남자이고, 일상적으로 여장을 하면서 여자처럼 살지만,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Stryker, 2008: 80-84). 확실히 말하자면 그 때는 아직 의학적으로 성을 전환한다는 개념 자체가 아직 널리 퍼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1930년 이래로 유럽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지던 성전환 수술이 양지로 떠오른 계기는 1952년 크리스틴 조겐슨(Christine Jorgensen)의 출현이었다. 덴마크계 미국인이던 조겐슨은 1949년 유럽에서 “성을 바꾸는” 외과수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덴마크로 가서 1952년 수술을 받고 1953년 귀국했다. 조겐슨 역시 처음에 로렌스나 프린스처럼 “트랜스베스타이트”로 불렸다. 하지만 독일에서 히르슈펠트에게 배우고 귀국한 미국 성과학자 해리 벤저민(Harry Benjamin)은 조겐슨처럼 외과수술을 통한 변형을 원하는 사람을 “트랜스섹슈얼”이라는 범주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자리잡았다(Stryker, 2008: 84-88). 트랜스섹슈얼이라는 말은 히르슈펠트가 1927년 논문에서 “성전환증(독일어로 Transsexualismus)”이라는 개념으로 처음 사용한 용어였다(Hirschfeld, 1923). 이로써 고대로부터 누군가는 가지고 있었던 성을 전환하겠다는 욕망은 1930년 근대 외과의학에 의해 구체화되었고, 1953년 성전환증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다.

젠더가 있기 전에 성전환부터 있었다

이 지점에서 비로소 등장하는 것이 “젠더” 개념이다. 1950년대 이전까지 지금과 같은 용법으로 사용되는 “젠더”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영단어 gender 는 생물속(屬)을 의미하는 라틴어 genus 와 어원이 같다. 이 때 “gender”는 단순히 “종류(kind, type)”라는 의미일 뿐이었다. 1950년대 이전까지 “젠더”라는 말은 언어학의 문법성(grammatical gender)만을 의미하고, 실생활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 사어였다(Fowler, 1926: 211). 이 말이 비로소 다른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간성을 연구하던 존 머니(John Money)가 1955년 성역할(gender role)이라는 말을 고안했을 때 부터였다. 머니는 생물학적 요소인 성과 구분되는 역할로서의 성별로서 젠더 개념을 고안했다.

성역할(Gender role), 그리고 남아 또는 남자, 여아 또는 여자로 보이는 외모는 양육된 성(sex)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예외 사례는 3건 뿐이었다. [성역할과 외모는] 유전자, 생식선, 호르몬에 의해 자동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Money, 1955)

즉, 머니에게 젠더는 곧 성역할이었다. 원래 간성 연구자였던 머니는 1차성징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애매한 간성인이 스스로를 어느 성으로 생각하는지를 성역할, 곧 젠더로 정의했다. 자신의 이론을 간성인 뿐 아니라 전체 인간에게 일반화시키고자 했던 머니는 1967년 자신에게 꼭 맞는 환자를 만났다. 생후 22개월 된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영아포경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로 형제 중 한 쪽, 브루스 라이머(Bruce Reimer)의 성기가 완전히 불타버려 존스홉킨스 의대병원으로 실려왔다. 머니는 성기가 없는 남자로 살기보다 성전환 수술을 시키고 여자로 길러서 건전한 여자의 성역할을 가진 일반적인 성인으로 사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부모를 설득시켰고, 성전환 수술을 받은 브루스는 브렌다(Brenda)가 되었다. 성기가 멀쩡한 쌍둥이 동생 브라이언 (Brian)이 대조군 역할도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머니는 라이머 남매의 인생 자체를 자신의 사례연구로 삼았다. 1972년 머니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쌍둥이 동생이 전형적인 남아로 자란 것과 달리 피험자는 전형적인 여아로 자랐으며 자신의 이론이 증거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교과서 Man & Woman, Boy & Girl를 출간했다. 어떤 사람의 성역할(젠더)은 그 사람의 성의 생물학적 정의와 별개라는 머니의 젠더 개념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지는 성으로 의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여성주의자들에게 아주 매력적이었고, 7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 여성학계에서는 성(sex)이라는 말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고 모두 젠더(gender)로 대체되었다(Haig, 2004).

이렇게 “젠더”라는 말이 만들어진 뒤에야, 드디어 성과 젠더가 “불일치하는(trans-)” 존재, 트랜스젠더가 정의될 수 있었다. 1965년 존 올리븐(John F. Oliven)이 “트랜스섹슈얼” 이라는 말은 틀렸다면서 그것을 대체할 용어로 1955년 머니가 제안한 “젠더”를 사용한 “트랜스젠더”를 제안하면서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비로소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Oliven, 1965). 1969년, 버지니아 프린스가 자기가 발행하는 잡지 Transvestia에서 자신이 전환하고자 하는 것은 “성(sex)”이 아닌 “젠더”라고 논설하면서(Prince, 1969a: 53-65) 이 용어가 더욱 보급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이성애자 여장남자이며, 절대 성전환 수술은 원하지 않는다고 정체화했기에(Stryker, 2008: 89-98) 자신(들)을 설명하는 용어로“(성전환을 원하는) 트랜스섹슈얼”이 아닌 “트랜스젠더”를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3 이런 과정을 거쳐 “트랜스젠더”는 크로스드레서(여장남자/남장여자), 트랜스베스타이트(일상적 여장남자), 트랜스섹슈얼(성전환자) 등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으로 굳어졌다.

즉, 그 개념과 실제들이 탄생한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고대로부터 [성전환]의 개념이 있었고, 그것을 실제화시킨 근대의 산물로 [성전환 수술]과 그것을 원하는 사람인 [트랜스섹슈얼(성전환자)]이 등장했다. 그리고 성전환 수술로써 증거된 머니의 이론에서 [젠더] 개념이 출현했고, 그 개념을 여성주의자들과 “트랜스젠더”들이 각기 수입하여 여성주의적 [젠더학]과 트랜스섹슈얼의 상위개념으로서 [트랜스젠더]가 정립된 것이다.

그런데 머니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브렌다는 소위 ‘선머슴애’ 같은 “여아”로 자랐으며, 자신이 “여아”임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하며 성장했다. 1990년대에 성인이 된 브렌다는 자신이 원래 남자로 태어났다는 진실을 알게 된 즉시 재성전환 수술을 받고 데이비드(David)로 개명했다. 1997년 라이머 형제는 그러한 사정들과 더불어 머니가 자신들 쌍둥이 남매(알고보니 형제)에게 성행위를 할 것을 강요했고(당연히 브렌다 쪽이 ‘박히는bottom’ 역할, 즉 여성의 성역할을 맡았다), 이런 학대를 받은 끝에 브라이언은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폭로했다(Diamond; Sigmundson, 1997 / Colapinto, 1997). 브라이언은 2002년 자살했고 데이비드도 2004년에 자살했다.4 하지만 설사 머니가 연구부정행위에 연구윤리위반까지 저질렀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낳음당하는 성과 사회적으로 수행하게 되는 성역할을 완전히 분리시킨 것은 여성주의자들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성과였다. 20여년간 여성학계가 “젠더”로 명명된 ‘그것’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서 누적해왔기에 머니의 진실이 폭로되고 라이머 형제가 자살했어도 젠더 개념은 폐기되지 않았다. (트랜스섹슈얼이 아닌) 트랜스젠더들 역시 자신들을 설명하기 위한 언어가 필요하기에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폐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브렌다 라이머는 트랜스젠더이고 트랜스섹슈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전환 수술을 받았으며, 그 수술로서 “지정”된 여성 젠더에 대한 머니의 기대를 벗어나는 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였다. 최종적으로는 두 번째 성전환 수술을 자신의 의지로 원한 확고한 성전환자였다. 존 머니라는 타인에 의해 트랜스젠더가 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살다가 죽었다. 그렇다면 젠더 개념은 한 트랜스젠더와 그 동생의 삶을 파괴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이 젠더 개념이 폐기되거나 젠더에 관해 누적된 연구들이 부정되어야 하는 이유 같은 것은 될 수 없다. 라이머 형제의 비극은 오롯이 머니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다른 사람의 책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소위 젠더 문제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호출되고 있는지 하술할 바를 이 개념어의 역사성과 함께 생각해 보면 섬뜩한 지점이 있다.

도구화된 트랜스젠더와 소외되는 트랜스섹슈얼

성전환,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존재, 그리고 젠더 개념에 관하여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여성주의자들이었다. 상술했듯 여성주의자들은 그 세부 조류나 사조에 무관하게, 태어날 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진 성에 의해 자신들이 부당한 억압을 받는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1세대 여성주의의 성과가 여성선거권 획득, 각종 법적 권리 획득 등과 같은 제도적 문제를 명확히 개선했음에도 여성의 지위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서구 여성주의자들에게, “성(sex)”과 다른 “성별(gender)”, 그리고 그 성별이란 “역할(role)”일 뿐이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발견(상술했듯 비록 그 연구 과정은 협잡이었지만)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시몽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1949년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말한 그 "만들어진 성"을 지칭할 언어가 생긴 것이다. 섹스와 젠더가 분리되었고,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만들어진 성” 젠더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제도적 성과 이후 붕 떠 있던 여성주의에게 “젠더”라는 공격해야 하는 명확한 적이 주어졌다. 소위 2세대 여성주의, 근본적 여성주의(radical feminism)의 시작이었다. 이것은 근본적 여성주의의 개조로 여겨지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의 아젠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성주의 혁명의 최종 목표는 1세대 여성주의 운동이 그랬듯 남성특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성(sex) 구분 자체를 없애는 것; 인간들 사이의 생식기의 차이가 더이상 문화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Firestone, 1970: 11)

파이어스톤이 문장에서 sex 라는 말만 썼기에 이것이 마치 성을 공격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파이어스톤이 적대하는 것은 “생식기의 차이”로 인해 지녀지게 되는 “문화적 의미”, 곧 “젠더”임을 알 수 있다.

2세대 여성주의는 트랜스섹슈얼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여성 젠더를 지닌 생물학적 남성이 자기 젠더에 맞게 생물학적 신체를 바꾸는 것은 깨부숴야 하는 것인 젠더는 강화시킬 뿐 아니라, 여성 젠더의 소유자가 여체를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체의 소유자는 필히 여성 젠더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로운 소급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 성전환 수술은 “외과적으로 몸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신발이 맞지 않는다고 발을 바꿀 거냐”고 힐문했던 것은 바로 나쁜 것은 맞지 않는 신발(젠더)인데 왜 발(성)을 바꾸려 드냐는 꾸짖음이었다(Steinem, 1984: 206-210). 스타이넘처럼 성전환자가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을 슬퍼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재니스 레이먼드(Janice Raymond)는 성전환자가 남자인 주제에(젠더란 만들어진 허상이므로 그들이 스스로 여성젠더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감히 여체를 소유하려 하는 것을 여체에 대한 식민화, 강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모든 성전환자들은 진정한 여성의 형상을 일개 대상(artifact)으로 축소시키고, 그 축소된 몸을 자기들이 취함으로써 여체를 강간한다.

(Raymond, 1994: 104)

레이먼드는 성전환이란 남성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따른(즉 젠더화된) 여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이것은 그 자체로 젠더를 강화하여 가부장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이런 수술을 하는 의료계는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런 2세대 여성주의자들이 성전환자에게 하는 말은 결국 너희들의 계집애 같음(sissiness)을 부끄러워해서 인공적으로 여자가 되지 말라, 계집애 같은 남자(sissy)로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요지로 요약된다. 어쩌면 이것은 성전환자가 아닌 트랜스젠더, 즉 트랜스베스타이트들에게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들렸을지 모르겠으나, 성별 규범을 위반하는 사람이 모두 “트랜스젠더”로 레이블링되고 그 이름 하에 연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에 그들의 호응 같은 것을 기대한 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포르노는 이론이고 강간은 그 실천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여성주의자 로빈 모건(Robin Morgan)은 더 나아가 성별 위반을 정신병 취급하는 19세기 이전 시각을 받아들여 트랜스베스타이트까지 적대시했다.

나는 남자를 "그녀(she)"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남성중심 사회에서 32년간 고통받고 생존한 끝에 "여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웬 남자 복장도착증 환자(transvestite) 하나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어쩌면 즐겼을지도 모르는 성희롱을 5분간 당했다 해서, 어찌 감히, 어찌 감히 그가 우리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어머니들과 우리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는 그(him)를 자매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모건의 1973년 West Coast Lesbian Conference 기조연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섹슈얼들은 여성주의와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트랜스섹슈얼과 여성주의의 반목은 이성애자 남성중심 가부장제에 저항하기 위한 “성정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어 왔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이제 비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까지 여성주의의 공격 대상으로 지목받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70년대에서 80년대 내내 여성주의자들에게 불가촉천민,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abomination) 취급을 받아온 트랜스젠더의 여성주의에서의 입지는, 1990년대 3세대 여성주의, 포스트모던 여성주의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급변했다. 젠더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제각기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사람들의 젠더가 남과 여로 양분될 수 없다는 이의제기와 함께 해체주의의 칼날이 들어온 것이다. 그 파생물로써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들이 기존 젠더 “규범”에 도전하는 존재, 도전함으로써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주체라고 띄어주는 퀴어이론이 등장했다. 그동안 억울함이 쌓였던 트랜스젠더, 특히 트랜스여성(transwoman)들은 이런 달콤한 말에 혹할 수밖에 없었고, 일단의 트랜스여성들이 3세대 여성주의의 한 지류로서 트랜스여성주의자를 자처하기에 이른다.

퀴어이론 출현 후 그 내부 강경파들은 “퀴어한 정치”를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이분법적 젠더 구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을 젠더퀴어(genderqueer)라고 부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트랜스섹슈얼이 아닌 i.e. 성전환을 원하지 않지만 태어난 성 및 그에 따라 부여된 젠더와 다르게 살고자 하는 트랜스젠더, “비이분법적 트랜스젠더”를 포괄적으로 말하는 말로 젠더퀴어가 사용되게 되는데, 이것이 정확한 의미사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Stryker, 1997: 47). 하지만 많은 경우 양자가 혼용되므로 여기서는 “비이분법적 트랜스젠더”라고 이하 지칭하겠다.

기존 이분법 젠더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이 개념에 따르면 트랜스섹슈얼은 이분법의 한 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일 뿐이다), 비서구 문화권에서 다양한 “제3의 성”들이 발굴되었다. 인도의 히즈라(hijra), 태국의 카토이(kathoey), 일본의 오카마(おかま) 등. 이런 사례는 모두 소위 “백(百) 인 백 젠더”를 방증하는 것으로 여겨져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젠더와 트랜스젠더 개념이 파생되게 한 성전환 수술은 앞에서 보았듯 서구라는 공간에서 근대성이라는 정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을 비서구권에 함부로 적용하는 것은 견강부회의 위험이 있으며, 해당 사회가 이미 어느 정도 서구화되었을 경우에 대한 고려도 부족하다.5 무엇보다 그런 제3의 성들은 해당 문화권에서는 이분법이 삼분법일 뿐 구분 자체가 허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취약하다.

이 흐름에서 문제는 우선 트랜스섹슈얼이 배제되는 문제이다. 젠더퀴어면 모를까, 트랜스섹슈얼은 이분법의 한 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존재이지, 이분법을 벗어나고자 하는 존재가 아니다. 의학적 한계로 인해 트랜스섹슈얼이 결코 자신의 준거 성별에 도달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트랜스섹슈얼 역시 하나의 젠더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것은 준거 성별에 도달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는 트랜스섹슈얼들에게 전혀 구미가 당기는 구상이 아니다. 어쨌든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사회 문제에서 가장 가시적인 것이 트랜스섹슈얼들의 수술 비용 마련으로 인한 빈곤, 성매매, 자살 문제이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성전환 치료의 국비 지원 문제를 아젠다로 제기하고 있지만, 이분법은 해체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이론적 논의에서 트랜스섹슈얼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퀴어이론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간성인, 페미니스트들도 모두 기존 이분법 젠더에 저항하는 존재이므로“트랜스젠더”라고 확장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렇게 확장할 경우 정작 가장 대표적인 트랜스젠더인 트랜스섹슈얼은 (얄궂게도 2세대 본질주의 여성주의자들이 트랜스섹슈얼은 여성이 아니라고 했던 이유들 중 하나와 같은 이유에서) 트랜스젠더가 될 수 없고, 실제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트랜스섹슈얼을 (자신들의) 트랜스젠더 범주에서 제명시킨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5: 458-459).

또 다른 문제는 2세대 여성주의의 부활이다. 근본적 여성주의는 젠더는 모두 만들어진 것이니 모두 해체하면 남는 것은 생물학적인 성(sex)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치마를 입는 것, 애교를 떠는 것,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 화장을 하는 것 이런 것은 모두 “여성”이 아니다. 여성을 정의하는 것은 오로지 XX 염색체와 그것으로 인해 발현된 여체만 남게 된다. 포스트모던 해체주의자들이 하는 것과 과히 다르지 않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그 여체만은 해체될 수 없는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3세대 여성주의가 트랜스섹슈얼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2세대 여성주의는 트랜스섹슈얼들에게 목 아래 들어온 칼이다. 이들이 갑자기 부활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2010년대 이후 남성들의 억압과 추태가 가시화되면서 여성들 사이에는 자신들의 권리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선명한 의제를 요구하는 투쟁심이 발생했다. 이것은 전지구적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불린다. 본질주의 여성주의자들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더 이상 선명할 수 없는 구호를 보여주었다. 3세대 여성주의는 열심히 이분법을 해체하자고 떠들었지만 21세기가 이 꼴이 될 때까지 아무 힘도 못 썼다. 당연히 그 무능에 대한 다수 여성의 환멸과 반발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 번째는 “비이분법적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이다. 1970년대의 2세대 여성주의는 트랜스섹슈얼이 남자 주제에 여체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여체를 강간하는 것이라는 다소 관념적인 이유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공간이 화장실 같은 개인적 공간으로 좁아지면서, 그런 것보다 “여자처럼 보이는데 생물학적으로는 남자(자신을 강간, 폭행, 살해할 수 있는)”인 존재에 관한 실존적 공포가 성소수자를 존중해야 하는 관성적 휴머니즘을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60년대 이데올로그들, 한국의 경우 90년대 이데올로그들이 다시 고개를 내밀며 기특한 후배들에게 이론적 정당화를 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해체주의 여성주의던, 본질주의 여성주의던, 어느 쪽이던 트랜스젠더를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후자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으로, 전자는 변혁의 주체라고 띄어주는(인구의 0.38%가 변혁의 주체가 된다니 실로 꿈도 꾸기 힘들 정도로 허황된 공수표다) 도구주의적 대상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트랜스여성주의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트랜스 혐오하는 여성주의”와 “트랜스 안 혐오하는 여성주의”가 어떤 대형 이슈로 인해 대승적으로 협력하기로 결정했을 때 “트랜스 안 혐오하는 여성주의자”들(대개 생물학적 여성)에게 그 협력을 하지 말라고 설득할 교섭능력이 전무하다. 그러니 유의미한 집단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

“성전환 수술”이라는 기술이 먼저 존재하고, 그로부터 트랜스섹슈얼, 트랜스젠더, 젠더라는 개념들이 도출된 배경과, 그 배경 위에서 이루어지는 “젠더 논쟁”에서 정작 트랜스젠더는 도구화되고 트랜스섹슈얼은 아예 주변화된다는 점을 간략히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또는 트랜스섹슈얼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어려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트랜스여성들이 여성주의자들과 가장 심한 마찰을 빚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여성은 여성주의에, 노동자는 사회주의에, 약소국은 국민주의에. 모든 상대적 약자들은 자신의 보호를 의탁할 이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그 정체성이 만들어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역사적으로 그런 이념을 가져본 기억도 없다. 비로소 퀴어 이론이라는 것이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그것은 2세대 여성주의의 부활이라는 반동적 현상의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며, 내부적으로도 수적으로 우세한 동성애자 위주의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트랜스여성이 어떻게든 “여성”으로 인정받으려 몸부림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에 정상인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함이며, 동시에 시대의 거센 비를 피할 수 있는 이념의 우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함이기도 하다.

본고에서 논하였던 것과 같이 젠더라는 개념이 발생한 역사성에서 성전환과 트랜스섹슈얼의 존재는 부정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젠더 논쟁은―이성애자 남성과 나머지 사이의 논쟁이 아닌 이상―트랜스정체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무대에 싫어도 끌려나올 수밖에 없는 트랜스젠더 또는 트랜스섹슈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대 위에 오르기를 거부할 수는 없는지, 그리고 트랜스섹슈얼과 비이분법적 트랜스젠더의 현실적·인식론적 이해관계가 정말 일치하는지 몇 가지 어려운 질문이 트랜스젠더 또는 트랜스섹슈얼 당사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본고를 정리하고 있던 도중인 6월 19일, ICD 제10판의 “성정체성 장애”를 “성별 부조화(gender incongruence)”로 개칭하면서 범주를 정신장애에서 성장애로 이동하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진 ICD 제11판이 발표되었다. 동시에 “성전환증(transsexualism)”은 아예 표현이 삭제되었다. 새로운 ICD에서 트랜스젠더는 오로지 성인기, 아동기, 그리고 상세불명의 성별 부조화로만 분류된다. 트랜스젠더 이익단체들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지만, 질병분류를 받지 못하면 성전환 치료에 있어 의료지원을 요구할 근거가 줄어든다는 트랜스섹슈얼들의 걱정도 그동안 병존해 왔다. 이것이 트랜스젠더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트랜스섹슈얼 개인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영향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또는 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주석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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