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전국민 과학화 운동

제도권 과학 안착 전사

  • 1966년 KIST 설립 (베트남 전쟁 참전 대가로 미국 도움)
  • 1966년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설립, 회장 김윤기 (무임소장관)
  • 1967년 과학기술처 설립
  • 1967년 과학기술후원회 설립 (설립자 박정희)
  • 1968년 4월 21일: 제1회 과학의 날

"…우리는 하루속히 과학기술을 진흥시켜야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과학자와 기술자를 우대하고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과학기술이 스며드는 사회풍토의 조성이 시급합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기술자 한 사람의 과학자라도 더 육성해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뛰어난 과학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은 곧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될 뿐 아니라 민족의 자랑이 되고 긍지가 되고 희망이기도 합니다.

과학기술후원회를 건립하는 뜻이 여기에 있으며 … … 본 재단 건립으로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전기가 이룩되길 바라면서 각계각층의 끊임없는 성원과 후원이 있기를 바랍니다"

박정희의 과학기술후원회 설립취지문 (1967년 9월)

  • 좋은 말 다 써놨는데 결론은 돈내라
  • 윤일섭(후원회 설립 이후 사무총장)이 취지문 들고 재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수금

"이해관계 없는 순수지도 목적, 국민, 당국의 깊은 이해 아쉬워"

초대 과총 회장 김윤기 인터뷰 (1972년 4월 21일)

  • 1971년 과학기술처 진흥국 내에 과학기술풍토조성과 신설
    • 1972년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과학관을 통한 과학기술풍토조성
  • 과총: 새마을 운동에 발맞추어 새마을 기술봉사단 운영
    • 과학계에서 열심히 뭘 해 보려 했지만 정부에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인 것이 70년대 초까지의 상황

전국민 과학화 운동 (1973년)

  • 1972년 10월 17일 유신
    • 대통령 직선제 폐기(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선), 국회의원 1/3을 통일주최국민회의에서 선출, 헌법효력을 정지시키는 긴급조치권, 국회해산권, 법관임명권, …
  • 과총의 유신 지지선언: 여러 단체들이 지지선언 했지만 과총의 지지선언이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
    • 새마을 운동에 기술봉사단 확대
    • 기술혁신전력
    • 거국적 기술지원체제 확립
  • 유신헌법에 과학기술 명시: 과학기술인의 염원 성취
  • remind 박정희의 1973년 신년사 — 중화학공업 + 전국민의 과학화 운동

이제부터 우리 모두가 전국민의 과학화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개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국력이 급속히 늘어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없이는 우리가 절대로 선진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80년대에 가서 우리가 100억 달러 수출, 중화학공업의 육성 등등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 범국민적인 과학기술의 개발에 총력을 집중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초등학교 아동에서부터 대학생, 사회 성인까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우리가 전부 기술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 1973년 1월 15일 과총 성명서, "과학유신"
    • 전농민의 기술자화, 전국토의 산업권화
    • 과학유신의 중추가 될 과학기술재단, 과학기금, 기술개발공사 설립 요청
    • "과학유신의 방안" 성명서

운동의 추진 주체

  1.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 박정희가 1967년 설립한 과학기술후원회를 확대
    • 1972년 설립, 1973년 사업 확대
    • 문고, 영화, 강연, 주부강좌, 매스컴 사업
    • 이후 과학문화재단, 과학창의재단이 됨
  2. 과학관
    • 1972년 상설전시관 개관, 1973년 사업 확대
    • 전국과학전람회 활성화
  3. 과총
    • 1972년부터 "새마을 기술지도" 시작
    • 유신 이후 영합하여 "과학유신" 강조
    • 1973년 이후 새마을 기술지도 사업 강화
    • 과학회관 건립(과총의 숙원사업)
      • 다른 단체들은 다 번듯한 건물이 있는데 우리만 건물 없어
      • 강남역 역삼동에 땅이 있었는데(70년대 초 강남개발 시기) 건물 올릴 돈이 없었음
      • 정부에게 지원받아 건물 올림(지금도 있음)
    • 과총의 국고지원금은 새마을 기술봉사단이 출범한 1972년(240만 → 1312만), 유신체제와 중화학공업 정책이 본격가동된 1973년(1312만 → 9740만) 급증

박정희에게 과학이란?

  • 중화학공업이야 수출산업과 직결되니 그러려니 하는데, 왜 뜬금없이 과학화 운동을?

"1960년대 후반기와 1970년대 전반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귀중한 시기였다는 것을 후세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여기에는 일순의 낭비도 허송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국민들이 모든 분야에 있어서 생산하고 건설하고 과학하고 발전해나가야하겠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을 막론하고 생산적이라야하고 건설적이라야하고 과학적이라야하고 또한 전진적이고 발전적이라야 하겠다는 것이다.

비생산적이고 비건설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발전적인 것은 조국근대화 과정에 역행하는 길이요, 국리와 민복에 배치되는 길이다.

이제 민족사상 처음으로 국가의 진로와 목표가 뚜렷해진 이싯점에서 우리는 다같이 힘을 모아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함이 없이 민족중흥의 대업완수를 위해서 일로매진해야 하겠다."

박정희의 1967년 8.15 경축사

  • 1975년 지식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과학자는 고려대 화학과 김용준 한 명 뿐.
  • 박정희 시대의 관성 — 한국에서 과총과 한림원의 위상을 생각해 보기
    • 박정희 재임기 과총은 어용단체화.
    • 미국에선 국가중대사는 물론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일반인도 과학한림원에 물어보자고 함.
    • 한국에서 광우병 사태 때 누가 한림원에 물어보자고 하던지? 한림원이나 과총은 무조건 정부 입장하고 같은 얘기밖에 안 해줌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 정리

  • 식민지 경험 — 좌절, 노력, 한계
  • 해방 이후 억눌렸던 욕구의 분출: 과학 — 분단, 전쟁으로 좌절
  • 재건: 1950년대 원자력, 유학
  • 도약기: 1960년대 KIST, 과학기술처
  • 산업 발전: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자동차, 이후 반도체, 통신산업 → 가난 탈출, 세계 최하위 빈국에서 10위권 부국으로
  • 과학기술은 "조국근대화"라는 정치논리의 포로
    • 사회 전체의 균형 잡힌 발전은 후순위: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 너무 급속한 팽창: 출연연, 대덕단지
    • 준비, 계획, 보수에 무관심, "건설"만에 초점
    • 선기술발전, 후기초연구 논리
    • 관료조직의 비대화, 하달식 연구 프로젝트
    • 추격형 → 탈추격형 연구로의 전환의 어려움
  • 이런 역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