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동통신기술

이동통신 기술사

  • 1세대(1984년): 아날로그
    • 카폰, 무전기 핸드폰
  • 2세대(1996년): CDMA(미국식), GSM(유럽식)
    • 1995년 4월 1일 한국 CDMA 첫 통화(이수성 총리)
  • 3세대(2006년): WCDMA, 와이브로(한국 자체개발. 폭망)
  • 4세대(2014년): LTE

CDMA 개발 전사

  • 1980년대 후반 이후 이동통신 수요자 증가. 새로운 디지털 표준 필요.
  • 유럽에서는 GSM 표준 사용 (GSM → TDMA)
  • 1992년 제2이동통신사업
    • 그전까지는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이 독점
    • 이통사를 하나 더 만들고, 그것은 민간업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 국민과 기업 입장에서 초미의 관심사("황금알을 낳는 거위").
    • 선경(오늘날의 SK)이 수주. 선경이 노태우 사돈 집안이라 김영삼 불복선언. 선경은 권리 반납
  • 김영삼 정부: 제2이통사업자를 CDMA 표준 이후 재선정하겠다 발표
    • 제2이통사 선정과 맞물려 CDMA 개발이 급속화됨
  • 1993년 6월 정부 표준으로 CDMA 선정
    • 부처 사이의 갈등
      • 체신부: CDMA(미국의 퀄컴이 원천기술 보유) 주장.
        • GSM은 이미 막강한 외국 단말기 제조사들이 장악하고 있기에 국내시장 잠식 우려.
        • 단말기 국산화를 위해서는 CDMA가 유리. — 다소 민족주의적
      • 상공부: GSM(유럽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 주장.
        • 이미 널리 쓰이고 있으므로 기술개발 용이.
        • 그리고 우리가 언제부터 내수시장을 신경쓰고 살았냐. 단말기 수출시장 진출이 더 중요. — 박정희식 수출주도경제의 연장
      • 상공부는 국가표준과 무관하게 GSM 표준을 계속 추진 (왜??)
    • 복수표준안 제시: 싸우지 말고 그냥 두개 다 표준 하자;
    • 1993년 단독표준 발표 이후 CDMA 기술개발이 급속하게 추진
      • 왜 김영삼 정부는 체신부의 손을 들어줬나?

TDX(전전자교환기) 개발

  • 말하자면 자동 전화교환기.
    • 개발 필요성: 전화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전화 등록 적체 발생.
    • 1년 가까이 대기해야 하는 지경이 되자 개통된 전화를 돈 받고 파는 세태(개통전화 가격이 서울시내 전세값까지 상승).
  • 오명 차관 제안, 1982년 전자통신연구소(ETRI) 주도로 240억의 당시로서 천문학적 예산으로 시도.
    • 온갖 비판. "쿠데타적 발상" "그냥 외국에서 사오면 되는 걸 그 돈으로 복지나 할 것이지…"
    • 오명은 한국 전자산업의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이었다고 회고
  • 전자통신연구소 소장, 연구원들의 혈서(?)
    •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이 돈으로 전전자교환기를 개발하는데, 만일 실패할 경우 어떤 처분이라도 받겠다" (…)
  • 여러 분야에서 전문가 차출.
    • 삼성전자 양승택 박사 어렵게 영입, 연구부장 초빙.
    • 삼성, 금성, OPC, 대우 등에서 연구원 차출.
    • 품질관리 및 사업단장: 국방과학연구소 서정욱 박사
  • 1984년 시제품 완성. 1986년 상용 서비스. 세계10번째
  • 80년대 말이 되면 9000억원의 수입대체효과, 90년대부터 수출 시작 — 수입대체산업으로 시작해 수출산업으로 전환되는 모범적 사례
  • 핵심: 개발주체가 ETRI라는 정출연. 정출연의 주도로 경쟁사를 모아 협력.
    • 기술개발이 산업을 창출하고 이윤을 만들어내는 성공적 사례
    • 이 때 사업을 주도한 것이 체신부였음 → TDX의 경험을 살려 CDMA를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 그것이 유효

CDMA 기술개발사업 추진체계

정보통신부/사업관리단
정책결정, 사업총괄관리
퀄컴사 ETRI 업체
공동개발 사업관리
시스템설계 (기본설계)
기지국 상세설계
제어국 설계
이동전화교환기 상세설계
홈위치등록기 상세설계
단말기 상세설계
시제품 개발
기술지원 시제품 제작
기술지원 시제품 시험 및 보완
기술지원 기술지원 상용화

CDMA 개발 과정

  •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양승택 소장
    • 1991년 미국 퀄컴과 기술계약 체결
    • 30명 연구원을 미국으로 보내 기술 습득
  • 1993년 9월 한국이동통신 내에 CDMA 기술개발을 위한 "한국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단" 발족
    •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과 삼성 등 사기업 연결
    • 사업단 단장: 서정욱
    • TDX10을 개발한 이성재 박사 영입 — 양승택, 이성재 등 TDX 개발진이 그대로 왔음 (직급은 더 높아짐)
  • TDX와 흡사한 연구개발조직 결성
  • 체신부에 의해 95년 말까지 개발 목표 → 위기의식
  • 1995년 12월 말 퀄컴사 엔지니어들과 함께 시험 개통
    • 아날로그 전화가 불통 되는 문제 발생
    • 검사해 보니 소프트웨어 자체의 펀더멘탈한 문제 발견
    • 퀄컴 연구진은 크리스마스 휴가라고 귀국(…). 바짓가랭이 붙잡고 울고불어 한 명은 잔류. 국내 연구진도 휴가 반납.
  • 1996년 1월 1일 시범지역 개통
    • 1994년 모토롤라 90% → 1996년 79%가 삼성 — "단군 이래 최대의 1개 사업으로 얻은 부가가치"
    • 사업단 단장 서정욱은 승승장구, 한국이동통신 사장 거쳐 과기부 장관 역임
  • 해외시장에서 고전
    • CDMA는 물론 상공부에서 개발한 GSM도 — 유럽에서 GSM을 표준으로 쓰는 나라만
    • 중국이 CDMA를 채택해 수출에 길이 트임

CDMA 성공신화의 공식

정부
(기술선택, 표준화 추진)
제조사
(단말기 제조)
CDMA 상용화 성공 통신사
(통신 가입자 유치)
연구소, 학계
(기술개발)

↑ 90년대 당시 성공의 공식.

  • 그런데 이 공식이 현재도 통하느냐… 그것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함

2000년대 3세대 표준 개발

  • CDMA 성공신화 모방
    • 정작 역전의 용사들 "90년대 CDMA 성공 신화 단순 복제로는 안돼" (조선일보 인터뷰)
  • 1조원에 가까운 예산, 전자통신연구소와 기업의 협동연구.
  • 2006년에 와이브로 개발 성공하지만 사장. (1조원 허공에~)
  • LTE 이전까지 한국 통신산업은 일시 암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