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자동차

자동차와 제2차 산혁

  • N. 오토: 내연기관 발명 (1866년)
  • 1901년 메르세데스:
    • 전방의 내연기관이 샤프트로 뒷바퀴에 동력 전달하는 후륜구동, 트랜스미션, 시속 90 킬로미터
    • 완전 수공업. 정밀한 내연기관을 만들어낼 기계가 없음. 연간 500대 생산.
  • 1908년 포드 T형:
    • 대량생산, 조립라인, 매년 25만 대 생산
    • 가격인하(900불 → 230불). 노동자, 농민도 구입.

한국 자동차 전사

  • 1903년 고종황제 첫 차 구입
  •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미국차 조립공장 → 미국차가 일본을 통해 조선에 들어옴, 경성에 택시회사들도 생김
  • 1930년대에 일본에서 닛산,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회사들 설립, 외국 자동차 부품 사용 금지
  • 일제시대 한국에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조립공장, 부품 제조공장 등이 설립됨.
  • remind 첫 과학데이 행사에서 이루어진 평양 자동차 퍼레이드(1934년 4월 21일), 제2회 과학데이의 경성 자동차 퍼레이드(1935년 4월 19일)
    • 이런 점에서 알 수 있는 것: 한국에 자동차가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 퍼레이드가 언론 기사감이 될 정도로 귀한 물건
  • 현재 전세계 자동차 생산의 5%를 차지하는 세계 제6위 생산국 한국

국내 자동차 공업의 출범

  • 해방무렵 경성에 수많은 부품상점, 정비소 존재
  • 1944년 경성정공 설립(김철호), 삼천리 자전거 → 1952년 기아산업 → 1961년 모터사이클, 1962년 삼륜차 생산 (혼다와 제휴)
  •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 설립(정주영), 자동차 정비업에서 시작, 현대건설에 통합되었다가 1967년 재분리, 포드와 제휴
  • 1955년 시발 지프 출시,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 수상, 3천 대 넘게 팔리고 1960년대 이후 사라짐
  • 1955년 정비공사 신진공업사 → 신진공업: 버스 본체 생산 → 도요타와 제휴해 코로나 생산 → GM코리아, 새한 → 대우
  • 1955년 하동환 자동차공업소("드럼통 버스왕"), 자동차 정비기술로 시작 → 1960년대 버스사업, 외국으로 수출 → 동아자동차로 개명, 쌍용자동차에 매각
  • 1962년 새나라자동차 출범, 닛산과 제휴. 부평에 현대식 조립시설 갖춘 공장 세우고 닛산 블루버드를 조립판매. 경영악화로 곧 폐업하고 신진이 인수
  • 1965년 아세아자동차공업 설립, 피아트와 제휴.
  • 이 많은 자동차 회사들의 1년 생산량을 다 합쳐서 3만 대 이하.
    • 포드는 자동차를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으로 만들어 대량생산했으나 60년대 이전 한국에서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음.

정부 정책

이승만

  • "기름 없이 달리는 차" 요구 ← 미국이 잡고 흔든 이승만의 목숨줄이 석유였기 때문

박정희

  • 1962년 자동차공업보호법 — 업체 난립 교통정리 필요
    • 소형차는 새나라자동차, 중대형은 시발자동차, 디젤엔진은 한국기계
    • 자동차공업의 감독, 지시 권한을 상공부에
    • 국산화율, 외국자본 역할에 대한 규정은 없음
    • 새나라자동차의 부품수입에 따른 외환위기, 국내업자들의 저항, 정치자금 의혹 (사대의혹사건) → 새나라자동차 폐업, 자동차공업보호법 폐지
  • 1963년 자동차공업일원화방안: 군소업체 반발로 철회
  • 1964년 자동차공업종합육성계획
    • 신진자동차의 새나라 인수 (정치적 로비)
    • 신진은 1966년 국산화 21%의 코로나 생산
  • 1965년 국산화 3개년 계획: 1967년까지 90% 국산화 목표 (터무니…)
  • 1967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 "기계공업진흥법"
    • 자동차 제조공장 허가 강화 (선진국과 기술제휴를 한 업체)
    • 박정희의 자동차공업 육성 특별지시
  • 1969년 국산화계획 발표: 1972년에 67%, 1976년에 100% 목표
  • 1972년 군소조립공장 폐쇄조치
  • 1973년 중화학공업정책 — 자동차공업육성계획
    • 80년대 초까지 연 50만 대 생산
    • 자동차 구조변경을 일체 금지하는 조치
    • 고급 수입차에 중과세 부과

고유모델(국민차) 정책 — 1973년

  • KIST 김재관 박사 아이디어
    • 신진자동차(70%)에서 도요타 철수, 한국 자동차 시장 패닉
    • 1970년 "고유모델차의 개발과 중점적 육성을 정부가 공익사업으로 주도해나가야 한다"
  • 1973년 김재관은 중화학공업을 총괄하는 상공부에 차관보로 임명, 조선, 철강, 자동차를 관장.
    • 외국차의 예속적 국산화시대 종식
    • "고유모델 양산화 건의안"
    • 75년말까지 GM코리아, 기아, 현대를 완전 국산화 목표
      • GM코리아는 포기
      • 기아: 일본 모델인 마쓰다의 파밀리아를 가지고 브리사를 제작. 포니보다 국산화율 높음.
      • 현대: 포니 개발. 이탈리아 토리노 자동차쇼에서 첫선. 1976년부터 양산하여 국내 승용차시장 50% 점유
  • 현대자동차의 부상
    • 기아는 국산화율이 낮아서 처졌고, 신진은 국산화율을 아예 포기해서 아예 망함
    • 즉 현대자동차는 포니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
    • 그런데 포니가 진짜 한국 고유모델인가? (디자인은 이탈리아, 기계는 일본 미츠비시, 공정은 영국 기술자들이 감독)
    • 기아의 분통: 수치상으로는 브리사(60%)가 포니(48%)보다 국산화율이 높음. 근데 왠지는 모르겠지만 상공부에서 포니를 더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