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포항제철

철강공업과 산업혁명

  • 제1차 산혁(1770년-1830년)
    • 연철(단철)제조의 혁신적 방법 발견
    • 철도, 철교, 철선 등 새로운 기술들
    • 에펠탑(연철로 지음), 아이언 브리지(1780년대)
  • 제2차 산혁(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 강철(steel) 제조 공법 — 베세머 공법, 지멘스 평로
    • 강철은 그 전에도 있었지만 대장장이의 단조 같은 소규모 공법. 이때부터 강철의 대량생산 가능.
    • 아이언 브리지보다 훨씬 거대한 철교 포스브리지(1880년대)
  • 철강산업이라 하면 연철과 강철을 의미

포항제철 전사

  • 이승만 정권 말기인 1958년 제철소 계획 수립, 무산.
  • 박정희, 1961년-66년 사이 연간 22만톤 생산하는 종합제철소 건립안 작성, 미국의 반대로 포기
    • AID: "한국엔 비료산업은 필요하지만 제철산업은 택도 없는 소리"

미국 AID(국제개발처)는 대체로 한국의 제철소 건설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은 철광석과 코오크스탄 등 제철에 필요한 자연자원이 극히 빈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50% 이상의 철분을 가지고 있는 철광석의 매장량은 5백만 톤에 불과한 것이라고 추산이 나왔으니 그처럼 빈약한 자원을 상대로 해서 연산 25만 톤의 제철소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것이다.

1962년 10월 20일

  •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종합제철소를 짓기 위해 계속 노력. 미국 정부는 계속 반대(방위산업?).
  • 해외 차관 시도
    • 미국 정부의 반대를 우회하고자 미국, 서독, 이탈리아 등 5개국의 8개 기업에 접근, 기업 컨소시엄인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 결성
    • 1966년 KISA와의 협정 난항: 한국을 호구취급한 KISA가 바가지를 씌우려 시도, 눈치챈 한국이 반대하여 기본원칙에만 간신히 서명
  • 1967년 2월 종합제철계획 발표: "4월에 기공할 것이며 장소는 제1후보지 삼천포, 제2후보지 울산"
    • 돈 들어오는 구석은 없는데 계획만 세우며 그걸 언론에 발표하는 상황
    • 1967년 7월 1,2,3 순위에 들지 않아 있던 포항이 종합제철 장소 부지로 선정

포항제철과 박태준

  • 1967년 11월 종합제철공장건설추진위원회 발족, 위원장 대한중석 사장 박태준 ← 아이언맨 첫 등장
  • 박태준 신상명세
    • 군인출신, 박정희 심복.
    • 5.16 이후 박정희 비서실장
    • 1962년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 입안 참여
    • 대한중석 사장
    • 이후 정치 관여 안 하고 기업인 루트
  • 만들어질 제철소의 지분은 정부 50%, 대한중석 50%

포항제철의 건설

  • 1969년 KISA가 지원 거부. 세계은행에서 부정적 보고서. → 돈이 없다!
  • 일본이 국교정상화 대가로 주기로 한 청구권 자금 일부를 명목변경, 1.2억 달러를 제철사업으로 돌림
  • 정부의 지원:
    • 공업단지 조성비용을 정부 예산에서 부담
    • 정부가 나서서 포항제철의 은행 대출금 이자 탕감
    • 주주인 은행에게 줘야 할 배당금을 82년까지 보류. 배당금을 투자자금으로 유용할 수 있게 함
  • 1970년 박태준, 박정희, 김학렬 부총리 참석하여 포철 착공

포철 신화

  • 1970년 7월 우향우 정신
    • "조상의 피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 기필코 제철소를 성공시켜 나라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하자"
  • 1973년 6월 9일 고로에서 첫 번째 쇳물 (철의 날)
  • 1973년 100만 톤, 1976년 260만 톤 — 73년 국가예산과 맞먹는 6천 2백억 투자
  • 1977년 4월 화재: 4개월 복구 기간을 34일로 단축
  • 1978년 포항이 포화되어 제2제철 건설
    • 포항제철과 현대제철의 경합 (포철이 국영기업이니 제2제철은 사기업에 가겠지?)
    • but 제2제철소도 포항제철 → 광양제철소
  • 1983년 910만 톤 생산하는 철강강국으로
  • 1992년 10월 3일 박태준, 박정희 생가 앞에서 임무완수 보고

박태준 신화

  • 1977년 발전송풍설비 공사현장에서 부실이 발견되자 80% 진행된 공사현장을 다이너마이트 폭★8 (부실공사는 이적행위)
  • 1971년 3개월 지연된 공기를 만회하기 위해 "하루 700 입방미터 콘크리트 타설" 특명 "열연비상"
  • 1968년 IBRD에서 부정적 보고서를 냈던 존 자페가 1988년 방한, "박태준이 상식을 초월하는 일을 한 것이고 현재도 그 보고서가 옳았다고 믿는다"
  • 미화된 것이 없지 않지만 박태준이 전쟁터의 야전지휘관처럼 현장에서 먹고 살았다는 것은 사실
    • 경부고속도로에서 박정희의 방식에서 볼 수 있는 군대식 지휘방식
  • 포항공대 설립
    • 카이스트와의 차이점: 기초과학 강조 (카이스트는 공학 위주, 기초과학은 공학을 하기 위한 수단)
    • 교수에게 무상 아파트 임대 (포철에서도 제철소와 함께 사원 아파트 건설)
      • 모스크바 대학 총장 빅토르 사도브니치 "마르크스와 레닌이 꿈꾸던 노동자의 천국을 광양에서 봤다" ← ???
      • 하지만 그래도 노조는 안 됨 "이렇게 잘 해 주는데 왜 노조를 하려고 해??"
  • 박태준에 대한 평가의 요동
    • "타락하지 않은 자본가"의 상징으로 거론. 정치입문 때 신고한 재산 38억 (실제로는 380억;)
    • 민정당 입당으로 정치 입문, 3당합당 이후 민자당에서 김영삼에게 숙청, 조세포탈로 기소. 일본으로 도피. 알고 보니 탐욕스럽다는 흑색선전
    • 김대중-김종필과 연합하면서 반대로 재평가, 미화, 윤색

포항제철 발전사

  • 1970년대의 기술습득
    • 해외연수 (주로 일본, 특히 JG 그룹)
    • 일본의 적극적 지원: 경제적 동기(한국에 시장이 생겨야 장사를 할 수 있음) + 심리적 우월감(도와줘 봐야 니네가 우리 적수가 되겠냐)
    • 포철이 배워간 기술은 오래전에 확립된 성숙기술 → 습득 용이
    • 6개월 목표로 했던 정상조업 달성을 107일만에
  • 1980년대의 기술추격
    • 일본이 연수나 기술이전에 소극적, 경계하기 시작
    • 기술도입보다 자체개발이 증가
      • 외국이 기술이전 회피 — 가속냉각법, 초심가공강판 자체개발
      • 국내에 적합한 기술이 국내 기술진에 의해 개발 — 고로조업 전산화
  • 1990년대의 기술창출
    • 혁신철강기술 개발
    • 연구투자가 이전시기에 비해 늘어남
    • 우수연구인력(박사급) 위주의 장기적(10년) 연구
      • 파이넥스법: 값이 싼 가루 형태 철광석과 석탄을 가공없이 직접 사용해 쇳물을 생산, 설비투자비와 오염물질 배출 대폭 감소.
  • 한국의 산업은 대개 비슷한 경로로 발전함

포철에 대한 평가

  • 대부분의 평가가 박태준을 비롯한 포철 관련자들의 회고에 의존 — 포철에서 보여주고 싶은 소위 "빛"만 보여주는 것
  • 대표적인 "어둠" — 대일청구권 졸속처리
    • 원래 이 배상금은 농어업 등 낙후된 분야에 사용하기로 예정
    • 그리고 애초에 피해자 개인의 개별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받은 돈
    • 일본에게서 받은 유무상 5억 달러 중 24%가 제철소에 투자 (단일사업으로서 최대)
  • 강제징용피해자, 위안부 등 포스코에 소송
    • 내가 받아야 할 돈 가로채간 포스코는 돈 내놔라
    • 포스코 측 항변: "우리는 정부한테 받은 돈(일본 배상금) 정부한테 다 갚았으니 책임 없다"
    • 2009년 7월 항소심
      • "포스코가 당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청구권 자금 중 일부를 투자받아 설립됐고, 이를 상환했다" 원고 패소 판결.
      • "포스코의 설립 경위와 기업의 사회 윤리적 책임 등에 비추어볼 때 강제징용, 임급 미지급 등의 피해를 본 사람이나 그 유족들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권고
    • 6천 800억 출연하라는 요구에 100억 출연하고 더 이상은 못 한다고 입 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