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통일벼와 산림녹화

박정희 식량 자급의 꿈, 71년 '기적의 볍씨' 통일벼 낳아

2009년 11월 4일 중앙일보

통일벼와 녹화사업

  • 둘 다 박정희가 직접 추진
  • 당시 농학, 임학 분야의 뛰어난 과학자(허문회, 현신규)가 관여

허문회(1927년-2010년)

  • 1954년 서울대 농대 졸
  • 농업기술원, 농업시험장에서 연구
  • 서울대 농대에서 32년간 교수로 재직
  •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통일벼" 품종 생산
    • 자포니카+인디카
    • IR 667 (1971년)

현신규(1911년-1986년)

  • 일제하 수원농림학교, 규슈제국대학 농학부 졸
  • 조선총독부 임학시험장
  • 서울대 농대 교수
  • 농촌진흥청장
  • 은수원사시나무 (박정희 "이름을 현사시나무로 바꿔라")
  • 리기테다소나무 육종

통일벼

  • 쌀증산은 북과의 체제경쟁에서 매우 중요
    • 1963년 북의 쌀 지원 제안 "니들은 이런 거 없지비?"
  • 이집트의 다수확품종 나다(Nahda) 밀반입
    • 김형욱: "나는 제2의 문익점이다!"
    • 박정희 자기 이름을 따서 "희농 1호"로 명명, 보급 → 대실패
  • 통일벼 개발후 바로 농촌에 대규모 보급; 1972년 고위공무원 밥맛 테스트
  • 신품종은 보통 10년 정도 시험기간을 거치는데 통일벼는 생략
  • 생산량 30-40% 증가
    • 1974년 3000만 석
    • 1974년 4000만 석
    • 1976년이 되면 쌀이 남아돌아 금주령 폐지(쌀막걸리), 북한에 쌀 지원 제안
  • 통일벼의 문제점
    • 볏짚이 짧아서 볏짚 재활용(초가집, 여물, …) 불가능
    • 수확기간이 짧음 — 늦게 심고 일찍 거둬야 함
    • 비닐하우스 필요 — 농민 입장에서 손이 많이 감
    • 냉해와 병충해에 약함 ← 치명적 약점
  • 처음부터 병충해에 대한 면역력 문제가 있다는 의견 존재했지만 무시
  • 78년 도열병 타격, 80년 냉해로 수확량 급락.
  • 80년대에 신품종 강제 사라짐 → 84년 이후로는 통일벼 및 그 파생 신품종이 거의 사라짐
  • 쌀 자급은 성공했지만 70년대 후반부터 한국인의 주식에서 쌀 비율이 줄어들면서 식량 수입 의존도는 올라가는 기현상 발생

산림녹화

  • 1950년대 이후 정부의 숙원사업
    • 여러 법령, 제도를 정비했지만 크게 실효성이 없음
  • 1972년 '산림개발법' 제정
    • 현신규 등 임학자들의 드림: 한국에 널린 산을 이용한 임업의 경제화(스웨덴 핀란드처럼!) →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적, 계획적 조림과 산주와의 행정적 조율 등이 필요
    • 지역 영림공사 운영, 조림을 산림경영의 일환, 산주에게 경제적 유인책
    • 유신이 터지고 중화학공업화 선언 등 나라가 뒤집어지면서 입안이 못 되다가 바로 개정, 영림공사 관련 조항 삭제
  • 1973년 중화학공업화 연두기자회견에서 "치산녹화" 함께 선언 — 전국토 녹화를 위한 10년 계획
  • 10년만에 녹화 완료하려면
    • 빨리 자라는 속성수로 조림수종 표준화: 이탈리아포플러, 은수원사시나무
    • 과학자들이 계획적으로 심고 해서는 느려서 못 해먹음 → 일반 국민들 동원해서 묘목 갖다 아무데나 심기.
  • 현신규를 비롯한 전문가들: 조기녹화, 국민식수, 마을양묘에 대해 비판적
    • 비전문가에 의한 식목일 조림은 용재림을 통한 "산림부국"과 거리가 멈
    • 이탈리아포플러와 은수원사시나무는 산을 푸르게 덮는 것 말고는 경제적 가치가 전무한 수종들
    • 현신규는 비판적인 내용의 평가단보고서를 박정희에게 제출, 산림청에서 커트해서 전달되지 않음
    • 박정희를 만난 자리에서 직접 의견 제시: 묵살
  • 박정희는 전쟁터의 장군처럼 치산녹화사업 지휘; 헬기로 500시간
  • 산림청은 마치 전시실 같은 분위기. 산주의 의견 무시하고 강제집행
  • 6년만에 목표 달성

통일벼와 산림녹화의 공통점

  1. 대통령의 관심
  2. 과학자에게 연구 시킴
  3. 다수확 벼, 속성수 개발
  4. 시험 거치지 않고 바로 농지, 국토에 적용
  • 농민, 산주가 거부할 수 없는 준강제적 조치
  • 수치적으로는 원하는 결과
  • 70년대 조국 근대화, 체제경쟁에서의 승리, 가난 탈피의 상징
  • 그 비용은 농민과 산주들의 부담으로 떠넘김 (정부는 쌀이 증산되었다고 그러는데 농민은 갈수록 가난해짐)

과학자들의 반응

  • 현신규:
    • 박정희가 은사시나무를 "현사시나무"로 명명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음.
    • 현신규는 속성수를 땔감 대체용으로나 개발했지, 이것이 전국토를 덮을 것이라고는 예상 못함.
    • 자신의 과학적 영농 비전이 씹히자 이후 정치권과 의도적으로 멀리 거리 둠
  • 허문회
    • 구체적인 정치적 행보는 드러나지 않음
    • 하지만 시험조차 거치지 않은 품종이 전국에 보급되는 상황을 반기거나 그것을 적극적으로 앞장서지는 않았던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