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경부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신화

"경부고속도로는 역사상 박정희 고속도로로 남을 것이다"

오원철

"박대통령은 침실 머리맡에 공사진척 상황표를 붙여 놓고, 매일 전화로 체크하면서 헬기와 자동차를 통해 수시로 현장을 돌아보곤 했다"

정주영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면 마치 내가 그린 그림을 보는 것 같아. 고속도로는 내 작품 같기도 하고 내 아들딸 같기도 해"

박정희

  • 경부고속도로는 이미 신화가 되었음
  • 그 신화는 몇 가지 층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1. 경제발전: "한국경제는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눈부신 발전의 길에 접어들었다"
    2. 자주성: "우리 힘과 우리 기술로 이루어낸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대역사"
    3. 지도자의 선견지명, 혜안: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영단으로 관철한 결과 이제는 아무도 그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당대 야당의 식견 짧음
      • (양김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고속도로 건설현장에 드러누웠다는 이야기는 2010년 한국경제와 매일경제 기사에서 처음 발견됨)

"내가 야당 반대 때문에 양보하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도로가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왕복 4차선으로 하더라도 반드시 경부고속도로 양옆으로 50 미터는 남겨두라. 건물 신축을 금지하라. 미래엔 더 확장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

"지난 현충일(1991년 6월) 연휴에 신갈에서 새말 사이의 영동고속도로를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더군요. 옆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한 그 땅을 언제 사 뒀는지 아십니까?"

김정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 야당 정치권에서 목숨을 걸고 반대했습니다. 국가를 팔아먹는다, 업자를 위해 그 일을 하느냐,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 나라를 망가뜨리려 하느냐, 그 예산을 차라리 복지에 써라 등 내용을 보면 요즘과 비슷한 반대의 목소리인 것 같습니다"

2009년 11월 이명박

상징으로서의 경부고속도로 = 조국근대화 = 경제건설 = (남한 주도의) 통일

  • 그래서 이 신화들이 얼마나 타당한가?

경부고속도로 개요

  • 1964년 서독 광부단 방문한 박정희의 아우토반 경험
  • 1965년-66년, 비공식적으로 몰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 한국의 도로망 실태 조사 용역
    • 조사 보고서 내용: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3300 킬로미터 포장도로 필요
    • IRBD는 서울-강릉, 포항-광주, 삼척-속초, 대전-목포를 잇는 지역도로가 가장 필요하다고 진단
  • 1967년 4월 대통령 유세에서 고속도로 등장, 그해 11월 박정희 지시
    • 그런데 1967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고속도로 예산은 전무했음. 박정희가 갑자기 까라고 해서 까기 시작함 (1968년 2월 1일 착공)
    • 16개 업체 3개 건설공병단 참여. 그 중 현대건설이 40% (국내 유일하게 고속도로 건설 경험. 1966년 태국 고속도로. 당시 말단사원 이명박의 금고 사수 전설)
  • 1971년 6월 30일 완공 예정
  • 1969년 공기를 1년 앞당겨 1970년 완공할 것을 지시(why? 1971년 4월이 대통령 선거) — 1970년 7월 7일 완공
  • 대형교량 32개, 중소교량 328개, 터널 12개
  • 초기 예산 330억, 인플레이션 때문에 429억 투입(남한 1년 예산의 23%). 1 킬로미터당 1억 원 꼴
    • IBRD에서 자기네 보고서 뺀찌맞자 차관을 안 꿔줌
    • 일본 국교정상화 보상금을 쓸까 싶었는데 그건 다 포항제철에 투자됨
    • 월남전 차관 + 국내예산 긁어모아 비용 마련
  • 가장 빨리, 가장 적은 시공비용, 가장 많은 보수비용으로 완성된 고속도로
    • 비슷한 도로가 일본에서는 10년, 예산도 8배 소요
    • 그런데 21세기 기술로 경부고속도로를 다시 지어도 시간 10년, 예산 8배 소요되는 게 정상임
    • 완공 후 1년간 보수에 공사비의 10분의 1 투입. 이후 10년간 건설비만큼의 보수비(420억) 소요.
  • 1970년 총 자동차 대수 5만 대. 70년대 중반까지 이용률 극히 적었음.
    • 박정희가 예상한 경제적 효과는 80년대 중반 이후에야 나타나기 시작함

박정희 통치 스타일과 경부고속도로

  • 당시 "건설"은 가치중립적 표현이 아니었음

일하며 싸우고 싸우면서 건설하자!

  • 건설(국토건설, 경제건설) = 반공

삼천만 온겨레가 힘과 뜻을 한데 뭉쳐
이 나라 근대화의 길로 줄달음질 이 해는 왔네
보아라 저 험산 뚫고 뻗어가는 고속도로
대국토 건설의 맥박이 뛴다

건설의 노래

우리는 새벽을 달린다.
조국의
찬란한 내일을 약속하는 지평으로 뻗친
고속도로 위로 열리는 장미빛 새벽을
(중략)
황홀한 아스팔트.
조국의 중심부에서
남으로 동으로 서로 방사되는



(중략)
우리는 새벽을 달린다.
황홀한 고속도로
근대의 신선한 질주.
구름의 흰 날개,
동트는 첫햇살,
파다거리는 태극기 (조국의 깃발)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달리는 새벽의 하늘에
열리는 장미빛 새벽을
새벽을 우리는 달린다.

박목월의 고속도로 개통 축시 「새벽을 달린다」

  • 건설 - 경제건설 - 일하며 싸우자 - 국방 - 북과의 체제경쟁
    •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민군 합동작전
    • 대부분 구간을 현대가 담당, 쉬운 구간을 다른 업체가 현장에서 현대에게 배워가며 건설
    • 당재터널 공사 같은 난구간에는 공병대 투입 (월남전 노하우)
    • 박정희는 전쟁터의 장군 ("선전포고를 하듯이 명령")
  • 무리한 공기단축 (2년 5개월)
    • 정부 공식 발표로만 77명의 사망자 (실제로는?)
    • 콘크리트를 20 센티미터 깔아야 하는데 7 센티미터 깔고 중앙분리대도 없는 등 날림공사 (현재의 경부고속도로는 이름만 같지 박정희가 깐 경부고속도로와는 전혀 다름)
  • 독재정권의 토지매입
    • 농민들의 "애국심" — 평균 1평당 236원(담배 6갑) (…)
    • 고속도로 개통 이후 고속도로 주변 땅값 폭등, 애국심으로 땅 내놓은 사람들은 살 땅이 없어져 영세농화 또는 생활기반 잃어버리고 상경하여 도시빈민화
  • 국민 전체에게 새겨진 선완공 후보수 문화:
    • "빨리빨리" "하면 된다" "해 봤어?"
    • 반대가 허락되지 않는 문화("경부고속도로 했잖아? 됐잖아?")가 불가침의 정당성을 가지게 됨
    • 일단 구실만 대충 맞춰서 통과부터 시켜 놓고 차차 고쳐나가자거 → 토털호러

경부고속도로 신화의 재검토

"경부고속도로 계획은 근대화의 기간인 도로 건설이라는 데서 그 취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현 경제 실정에 비춰 사업의 우선순위에 의문을 갖고 있으며, 남북 간보다는 오히려 동서 간을 뚫는 길이 급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민당 당수 유진오

"…시급한 것은 동서를 뚫는 그러한 교통망이 필요하다. 이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과거 일제시대에 일본이 대륙에 진출하기 위해 남북종단에 철도와 도로를 치중하였기 때문에 그 유산으로서 이와 같은 교통체제가 되어 있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재원 또 한정된 능력을 가지고 지금 가위 우리나라 현실로 보아서 그래도 가장 발달된 그 노선에 다시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 급한 것은 뒤로 미루고 안 급한 것은 먼저 한다, 이런 일을 정부가 하고 있다는 건데…"

신민당 의원 김대중

  • 경부고속도로 덕분에 소득이 오른 것은 사실. 하지만 땅값이 그것보다 훨씬 가파르게 오름
  • 현재도 이어지는 이념논쟁의 대상 (201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40주년)
    • 동아일보: "무모한 모험 비판 뚫고 대역사… 할 수 있다 인식혁명 길을 뚫다 — 한국경제 대동맹 70년대 고속도로 시대… 물류혁명-고속성장 견인. 한국 넘어 세계로 아시안 하이웨이 중심축"
    • 한겨레21: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늦춰졌다면 국토불균형발전, 부동산 투기, 불통정치, 일단 하고보자주의 등 압축성장의 병폐 한층 줄어들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