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제 강점기의 과학운동

김용관과 발명학회

김용관:

  • 경성고등공업학교 졸, 화학공업 공부 → 일본 유학
  • 부산에 있는 도자기회사, 서울의 중앙공업시험소 근무
  • 1924년 발명학회 설립

발명학회:

  • 1924년 김용관 등 경성고공 출신들이 주축,
    • “과학적 발명과 조선공업의 장려”, “회원의 공업적 지식의 보급과 발명적 정신의 향상”
    • 곧 활동 중지 (기금 부족)
  • 1932년 부활
    • 변호사 이인 합류
    • “소규모 공업을 일으켜서 자급자족을 꾀한다”
    • 이를 위한 발명진흥운동
    • 조선물산장려회의 물산장려운동과 유사.
  • 1933년 기관지 『과학조선』 창립

과학조선

  • 1933년 창간
  • 발명학회의 기관지
  • 최초의 대중과학잡지
  • 발명운동의 대중화
  • 과학뉴스, 에세이, 특허삼당, “과학데이” 행사 관련 소식, SF 소설 등 출판
  • 미래세계의 황당한 이야기 (X) 당장 현재의 현실적인 공업발전상(자동차, 비행기…) 제시 (O)
  • 1936년 이후 제대로 나오지 못함. 일제에 의해 복간된 1939년-1941년은 친일적 성격.

“우리의 일용물품과 물물제도를 우리 스스로 자작자급하여 … 발명가를 지도원조하며 … 일반 인사에게 발명적 정신을 고조하야 … 새 발명가를 실질적으로 지도 원조할만 한 시설을 … 만천하 형제자매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으로 여기에 본회의 기관지인 이 잡지의 출생을 보게 된 것이니 …”

자수성가형 발명가들

  •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함
  • 스스로 노력해서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발명, 1920년대 중엽부터 수가 증가.
    • 소광욱의 풍력 펌프
    • 이덕균의 주정 증류기
    • 이들의 기계의 특징: 일본이 독점 중인 전기, 기름 사용 못해 대체에너지원 사용
  • 김용관 같은 공학자, 발명학회와 연관을 맺음 (특허 관련 도움 요청)
    • 1932년 발명학회 부활 때 이들 자생적 발명가들(못 배운 사람들)을 돕기 위한 활동이 늘어남
  • 일부 엘리트의 활동으로는 전국적 규모의 발명진흥, 발명지원을 할 수가 없음
  • 전국적 규모의 대중운동의 필요성 대두

과학지식보급회

과학데이

  • 대중행사의 필요성 논의의 결과물
  • 1934년 4월 19일 (다윈 제삿날) 제1회 행사
    • “과학의 황무지인 조선을 과학화하자”는 목표
    • 표어 “한 개의 시험관은 전세계를 뒤집는다”
    • 종로 YMCA에서 800여 명 시민 참석 가운데 기념식, 대중강연
    • 과학관, 영등포방직공장, 중앙시험소, 전화국 견학
    • 평양에서는 강연 및 자동차 퍼레이드
    • 활동사진 상영. 큰 인기. 8000여 명이 관람

과학지식보급회

  • 첫 번째 과학데이를 서울과 평양에서 성공적으로 치르고 발명학회와 별도로 대중화에 집중하는 조직 발족 (1934년 7월)
    •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
  • 여운형, 송진우(동아일보 사장), 김성수(보성전문학교 교장) 등 유명인사들을 섭외
  • 발명학회 기관지였던 『과학조선』을 분리하여 보급회에서 발간
  • 〈과학의 노래〉 제정 (홍난파 작곡, 김억 작사)

새 못되야 저 하늘 날지 못노라
그 옛날에 우리는 탄식했으나
푸로페라 요란히 도는 오늘날
우리들은 맘대로 하늘을 나네
과학과학 네 힘의 높고 큼이여
간데마다 진리를 캐고야 마네 (…)

  • 초등학생을 위한 과학교본 제작
  • 평양, 원산, 산천 등에 지회 설립 → 전국적 운동
  • 과학대중화 운동을 통한 민족운동적 성격

과학데이 행사의 발전과 쇠퇴

  • 1935년 제2회 행사. 전국적 규모. 서울의 대규모 자동차(50대) 퍼레이드.
  • 군악대의 〈과학의 노래〉 팡파레
  • 여운형의 강연 “과학자에게 고하는 일언”
  • 1937년 이후 일제의 옥외행사 금지
  • 1938년 과학데이 행사 이후 김용관 투옥
  • 과학데이도 1938년 5회로 중단
  • 과학지식보급회 해체, 발명학회는 일본 발명학회 조선지부로 흡수.
  • 『과학조선』은 1939년 복간되지만 친일지가 됨

해방 이후

  • 1940년 이후 김용관은 황해도 재령으로 낙향, 명신중학교 교사
  • 해방 이후 서울공업고등학교의 요업과 교사, 특허국 심사관, 발명협회 부회장 역임. 대중화운동은 하지 않음.
  • 과학데이는 1968년 4월 21일 제1회 과학의 날로 부활. 과학기술처 창설을 기념하는 과학행정적 의미(표어: 과학행정 1년).
  • 과학운동은 1973년 박정희정부의 “전국민의 과학화운동”으로 다시 맥을 이음. 하지만 민간이 아닌 정부 주도.
  • 김용관과 과학대중화운동은 1980년대 이후 재조명

정리

  • 1930년대 발명학회, 과학조선, 과학데이는 민족운동으로서의 성격이 강함
    • 국력으로서의 과학, 발명
    • 자립적 발명을 통한 중소공업 발전
    • 다른 문화운동, 민족운동이 억압받을 때 과학운동은 민족운동으로서 한 몫을 함
  • 발명학회의 성격변화
    • 1924년 결성시 엘리트들의 학회
    • 1932년 부활 이후 자수성가 발명가들과의 상호교류를 통해 풀뿌리 발명가들을 돕는 형태로 성격 변화
    • 그러면서 대중적 과학운동도 민족주의 성격을 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