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중세 성기

경제면

중세가 암흑을 벗어나게 된 계기 — 농업, 상업, 도시의 발달

농업의 성장

  • 중세 초기는 지배계급 일부를 제외한 모두가 농민 → 자기 먹고 살 것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 유럽인들은 밀을 먹는다
    • 동양의 쌀은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지만 노동력을 엄청나게 요구. 때문에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농사짓는 소농들으로 민중이 이루어지고, 그 수많은 소농들을 관리하기 위한 관료제가 발달
    • 미주의 옥수수는 뿌리기만 하면 지가 알아서 잘 크고, 파종 대비 수확비가 높음. 막대한 잉여가 발생하여 대제국이 형성되지만 그 제국은 통치가 엉성한 속 빈 강정.
    • 서양의 밀은 지력 소모가 심함. 휴경이 필수적. 토지 이용도가 떨어짐.
  • 밀은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 거쳐 봄에 수확 (밀 수확 직전 춘궁기에 가축들을 모조리 잡아먹는 것이 사육제 카니발)
  • 땅의 절반을 휴경지로 두고 나머지 절반에만 농사를 격년으로 짓는 이포제
    • 퇴비 사용으로 지력 회복… 같은 거 못함(이유: 초기 자본이 없음. 퇴비를 만들기 위해 가축을 먹이려면 사람 먹고 남는 게 있어야 할 텐데, 너무 빈곤해서 비료를 생산하지 못함)
    • 심경: 깊이갈기. 땅이 죽었어? 그럼 더 깊은 지하의 아직 안 죽은 땅을 갈자! ← 쟁기가 목걸이에서 어깨걸이로 바뀌는 혁신이 작용
  • 심경도 한계에 부딪혔을 때 나온 것이 삼포제
    • 토지를 셋으로 나누어 하나는 추경지(밀), 하나는 춘경지(콩, 귀리…), 하나는 휴경지
    • 밀농사는 지력을 소모하기에 추경지는 이듬해 휴경지가 됨
    • 봄에 콩으로 지력회복 → 가을에 밀로 지력 소모 → 휴경 → 봄에 콩으로… 반복
    • 춘경 작물인 귀리와 콩은 지력을 회복하며, 가축 사료로 사용되어 비료 사용이 가능해짐
땅 1 땅 2 땅 3
1년차 추경 휴경 춘경
2년차 휴경 춘경 추경
3년차 춘경 추경 휴경
  • 이리하여 드디어 농업 잉여가 발생하기 시작, 누군가는 농업에 직접 종사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게 됨 → 비로소 상인, 수공업자가 재등장

상업의 발달

  • 외부와의 원거리 무역
    •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지중해를 건너 중동세계(이집트, 알레포…)와 교역
    • 특히 향신료(사치품) 무역
    •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호시절
  • 유럽 내부의 원거리 무역
    • 플랑드르 ~ 북해 ~ 발트해 ~ 노브고로드까지 이어지는 루트
    • 시베리아의 목재, 가죽과 플랑드르의 모직물
  • 시장의 형성
    • 발트해 무역과 지중해 무역이 유럽 대륙을 남북 종단하는 상인들에 의해 연결
    • 이탈리아 상인들이 북상, 플랑드르에 포도주, 향신료를 내려놓고 모직물, 가죽을 들고감
    • 이탈리아에서 플랑드르로 가는 중간지점인 샹파뉴 백작이 정기시를 열면서 치안과 숙박, 환전 제공
    • 샹파뉴 백작은 대박 나서 떼부자가 되고, 너나할 것 없이 시장을 만듦
    • 5일장, 7일장들의 시차를 이용해 시장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장돌뱅이의 출현

도시의 부활

  • 상업의 발달이 낳은 필연적 결과
  • 고대 도시(civitas)는 제국의 행정도시 → 제국 망한 뒤 중세 초기의 주교도시 (로마의 행정제도를 기독교가 카피) → 중세 성기의 상업거점으로서의 도시
  • 상업이 발달한 이탈리아, 북해 연안에서 도시가 가장 먼저 출현
  • 상인들: 영주의 간섭(심심하면 돈 뜯어가지, 생사여탈권까지 가진 씨벌놈들)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하게 됨
    •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발생한 인플레이션 — 하지만 당시엔 인플레이션이 없었기에 고정지대를 받던 영주들은 자기가 왜 가난해졌는지 이해를 못함
    • 상인들이 나서서 "우리가 보호비 상납할 테니까 노터치 해주셈" → 자치 획득. 도시의 가장 큰 특징이 자치, 자유
  • 원래 시장 유치를 위해 영주들이 인신을 구속하지 않는 등 최소한의 자치를 내주었다가, 상인들이 점점 머리가 굵어져서 "상부공동체(commune 코뮌)"를 형성
    • 이탈리아 북부의 경우 상인들이 아예 주교를 쫓아내고 상인 엘리트가 행정, 징세, 사법, 군사권까지 장악하는 도시국가 형성
    • 영국, 프랑스의 경우 상인들이 지방 영주에 대항해 왕권강화에 영합
    • 중세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렇게 완전한 자치를 누리게 되는 도시들이 여러 곳 생기게 되는데 이를 코뮌이라 부르게 됨
  • 중세 도시의 성격
    • 규모가 극히 작다(12세기 기준 인구 1만 명 넘는 곳이 런던, 파리 둘 뿐). 1천 명을 기준으로 대도시 구분
    • 도시가 자체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 생태계에 기생하는 형태. (도시 법률가들은 농촌 부동산 봐주고, 도시 상인들은 농촌의 생산물을 유통)
    • 그렇기에 도시는 자기들이 "도시"라는 것에 집착(우린 저 땅파먹고 사는 애들하고 다르거든!), 도시성을 강조하고 농촌을 경멸 (근대적 도시의 마인드 = 농촌을 경멸)

중세의 경제관념

  • 농업이 발달하고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부활한 12세기 이후 유럽은 거상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NO
  • 그 뒤로도 유럽은 한동안 아주 오랫동안 농촌중심적 사회. 도시와 상인에 대한 불신 팽배
  • 중세의 돈에 대한 관념:
    • 그리스-로마 전통:
      • 인간이 사는 궁극적 목적은 돈이 아니고 미덕(아레떼)을 이루는 것, 자아의 완성. 덕을 이루려면 절제가 필요함(돈에 대한 욕망과 정반대).
      • 상대적 가격(수요와 공급)의 개념이 없던 시대 — 할아버지 때 100원이었던 건 내 때도 100원. 그러다 보니 굳어진 관념: 물건에는 타고나게 내재된 "천부가격(…)"이 있다.
      • 인간들의 멘탈이 이따위다 보니 상업으로 이득을 보려면 사기를 쳐야 함(천부가격보다 싸게 사서 천부가격보다 비싸게 팔아야 이문이 남음). 상업은 제로섬 게임. 도둑질, 불명예스러운 것 취급.
    • 히브리-기독교 전통:
      • 예수 왈 "부자는 지옥간다" (너무 명백하게 말해서 빼도박도 못함) 기독교는 부에 대한 근본적 혐오감이 있음 (100원 빌려달라 하면 150원 주고 돌려받을 생각 마라)
      • "이자"를 극혐. 이자는 형제(다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등을 쳐 먹는 것. 이래서 이슬람은 아직도 이자 거부고, 네덜란드에선 근대까지 금융업자 세례 거부(너 어차피 지옥 갈 건데 세례받아 뭐함 임마ㅋ)
      • 그러다 보니 금융업을 유대인들(이미 버린 몸, 어차피 지옥 갈 애들)에게 떠넘김
      • 원래부터 있던 상업에 대한 혐오감에 금융에 대한 혐오감이 더해짐
    •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권해석: "상인이 유통을 해주면서 생존도 해야 하니까 최소한의 마진은 있어야지. 하지만 공공에 봉사하는 게 아니고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라면 지옥 간다 (엄근진)"
  • 중세 경제는 한 마디로 도덕경제:
    • 돈에도 도덕이 있어야 한다.
    • 매점매석 같은 거 하면 폭동 일어나서 맞아죽음 (이건 심지어 프랑스 혁명때도 발견된 현상)
    • 이런 환경과 처우에서도 불구하고 상업에 종사하던 상인들 (오늘날의 게임 개발자?)
  • 이 도덕경제 관념이 깨져야 자본주의가 태동 가능
    • 18세기 말 산업혁명 이후 잉글랜드 하류층 남자들도 신발을 신을 수 있게 되고 하류층 여자들도 빗과 거울을 가질 수 있게 됨
    • 잉글랜드 엘리트들: "사치다!!" ← 돈 = 사치 = 타락 이라는 전통적 관념
    • 애덤 스미스의 유권해석
      • 계몽주의자의 마인드: "이 세상의 법과 제도가 엉망이라 세상이 엉망이다. 인간은 다만 관찰의 대상, 관찰하여 인간에게 적합하게 법과 제도를 고쳐야지 인간을 고치려 하지 마라."
      • 스미스가 관찰한 인간: "이기적 존재." 인간은 내 쾌락을 최대화하기 위해 "교환"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분업"이 발생, 분업은 "생산성을 증대", 생산성이 증대되어 공급이 늘어나자 가격이 떨어져 모두가 그 "풍요"를 누리게 됨
      • 이기심에서 풍요로 가는 이 과정이 인간을 타락시키는가 유익한가?
      • "내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제빵사의 이기심 때문." 만일 한 제빵사가 썩은 빵을 판다면? 옆집 가면 됨 → 그러므로 최소한의 도덕을 지켜야 손님을 유치할 수 있고, "(이상적인) 시장"에서 "경쟁"이 존재하기에 타락을 방지하고, 이기심이 "이타적 삶"을 낳는다.
      • 그러므로 엘리트들이 해야 할 일은 이상적 시장의 경쟁을 유지시켜 주는 것, 그리고 시장이 실패하는 영역(교육 따위)에 직접 개입하는 것

정치면

신성로마제국

  • 962년 오토 1세가 건국.
  • "로마"라는 국호가 빚은 비극 — 이탈리아에 대한 집착.
    •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봉건할거를 어떻게든 누르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독일(신성로마제국)은 독일 내부의 제후들을 견제할 생각을 하지 않고(오히려 자치권 인정) 끊임없이 이탈리아를 도모
    • 시칠리아와 독일의 결혼으로 태어나 최적의 배경을 가진 호엔슈타우펜조의 프리드리히 2세도 이탈리아에서 삽질
    • 그 결과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일 지연(독일은 황제가 밖에서 삽질을 하니까, 이탈리아는 황제가 와서 삽질을 하니까)
  • 이후 800년에 걸친 역사적 패턴: 영불의 중앙집권, 독이의 내부분열
  • 강력한 왕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지방분권, 할거하는 것이 중세 독일의 정치양상

프랑스 왕국

  • 카페조
    • 987년 서프랑크 카롤루스조 단절, 위그 카페 즉위.
    • 본래 프랑스 귀족들은 위그 카페가 허약해서 왕으로 세웠고, 카페조 프랑스왕은 파리 일대 일드프랑스만을 실효지배
    • 카페조의 (생물학적) 기적: 987년-1328년간 지속되며 지속적으로 왕실 직할령 확대
    • 14세기가 되면 프랑스 내에서 왕에게 개길 수 있는 존재는 없음. 자애로운 가부장 국왕
    • 카페조의 영원한 테마: 왕권강화
  • 영국과의 투쟁:
    • 노르망디 공작의 후예인 영국왕이 소유한 프랑스 내 영토를 프랑스왕에게 잃음
    • 영국왕은 영국에만 신경쓰고, 프랑스는 왕의 권위가 높아지며 서로 좋은 결과
  • 삼부회: 14세기 필리프 4세가 만든 신분제 의회. 영국과 달리 신분별로 따로따로 회의. 영국 의회는 왕의 견제를 위한 것이지만 삼부회는 왕권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음.

영국

  • 노르만인 윌리엄 1세, 앵글로색슨인을 정복하고 노르망디에서 행해지던 봉건제 이식
    • 그런데 본래 프랑스의 봉건제는 왕이 바지인 형태. 그러나 윌리엄은 정복왕이기 때문에(누가 개겨?) 강력한 왕을 정점으로 한 영국식 봉건제 실시
    • 강력한 영국 왕권의 상징: 둠스데이 북 (호구조사책) → 국왕이 인민들의 재산을 파악, 그것을 근거로 세금 부과 (중세의 다른 군주들은 못 하던 사치)
  • 이후 영국의 역사는 프랑스와 반대로 "강한 왕권의 제한"이 테마가 됨
    • 1215년 존이 프랑스 영지를 모조리 털리고 온 뒤 영국 귀족들이 들고일어나 "대헌장" 압박
    • 에드워드 1세 시기 "모범의회" — 고위 성직자와 대귀족 이외에도 하급기사, 도시 평민 대표까지 소집.
    • 대헌장은 왕에게 개길 수 있는 귀족의 권위를 위한 것, 모범의회는 왕이 돈을 울궈내고 그 대신 귀족에게 특권을 양보하기 위한 것이었음. → 그런데 이것이 "잉글랜드적 자유"라는 개념으로 귀결
    • 잉글랜드적 자유란? "피치자의 동의에 기반한 통치" "내가 동의하는 정부에게만 복종하는 것" 미국을 독립시킨 그 개념 "대표 없는 과세 없다"
    • 물론 이게 의회정치의 제도적 태동이라는 뜻은 아니고, 대의제의 "아이디어"가 이때 나온 것이라는 뜻. 대의제는 강력한 왕권을 제어하기 위해 출현했고, 왕은 돈(세금)이 필요하니까 그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도 국회의 가장 큰 기능은 입법권 따위가 아니고 재정편성권)

종교면

교회개혁운동

교회의 타락이란?

  • 교회가 농민들에게 세금 걷어가고 부를 축적한다고 그걸 타락이라고 부를 수는 없음
    • 기독교적 맥락에서 인간이란 내버려두면 죄를 짓게(타락) 되어 있음 → 그러다 인생이 허무해져서 "회개"하고, → 신이 받아주셔서 "갱신"이 됨 → 그러다 은근슬쩍 다시 "타락"하고… : 하지만 이런 기독교인들의 생각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거시기하고…
  • 교회는 "언제나" 타락해 있다.
    • 언제부터?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이래로 쭉! 도망쳐 다니면서 신앙을 지키던 고결함 다 어따 팔아먹고 황제에게 땅 받고 돈 받고 관직 받고… 교회는 세워지던 그 순간부터 언제나 돈과 권력과 유착했음
    • 교회 내부에 고결한 개개인이 존재할 수 있어도, 교회라는 조직은 돈을 포기한 적이 없음
    • 교회가 돈을 탐하는 명목: 선교, 복지(십일조), 신에게 좋은 거 바치기(성당 건물 등)… ← 중세인들도 이런 걸 갖고 뭐라 하지는 않음.
  • 중세인이 보기에도 이상해 보이는 것: 성직매매(simony).
    • 유래: 베드로의 기적을 배우고 싶었던 시몬 마구스, "얼마면 되여?" "네가 신의 은총을 돈으로 사려 하느냐, 그 돈과 함께 지옥으로 가라!" ← 베드로의 저주 허걱
    • 아직 성직자 독신주의가 확정되지 않은 시대 — "너는 한 여인을 사랑하지 마라" "그럼 여러 여인 사랑하면 되겠네" 온통 간음해서 사생아를 싸지르고 조카라면서 후계자로 앉힘
    • 공식적으로는 주교는 생물학적 재생산을 하면 안됨. 그럼 후임 주교는 어케 임명하냐? 옥션! 제후한테도 뇌물주고 대주교한테도 뇌물주고 교황한테도 뇌물주고… 그리고 성공한 뒤에 긁어모음
  • 오늘날에도 고수되는 가톨릭 교회의 원칙: "사제만 있고 교인이 없으면 교회지만, 사제 없이 교인만 모여선 교회가 아님" (성직자와 평신도의 철저한 구분)
    • 즉, 신도의 타락은 교회의 타락이 아님. 교회의 타락이란 사제의 타락(성직매매, 축첩)
    • 개신교는 좀 다름. 개신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신도의 타락이 곧 교회의 타락.

클뤼니 수도원

  • 910년 아키텐 공작 기욤이 세움
  • 개혁적 수도원 표방
  • 프랑스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지성 있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개혁운동의 본산이 됨
  • 클뤼니 출신 사람들(e.g. 레오 교황)이 교황령을 장악, 개혁 드라이브
    • 성직자 독신주의 교회법화로 강제
      • 스페인에서 수도사 600명 정도가 마누라 데리고 이슬람으로 망명, 전향(…)
    • 콘클라베 — 교황 선출의 투명화
  • 성직매매 금지
    • 주교가 세속영주의 자리를 겸함으로써 황제에게 영합하는 주교가 많아지는 것이 "타락"으로 지목됨
    • 레오 9세의 성직매매 금지 = 황제의 주교 임명 차단, 교회와 세속권력의 정면충돌
    • 하지만 선언에 불과했고 실제적으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함
    • 레오 9세 이후 그 참모였던 힐데브란트가 그레고리우스 7세로 즉위 → 더욱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 서임권 투쟁

서임권 투쟁

카노사 굴욕

  • 하인리히 3세: 비잔티움에 맞먹는 황제교황 시절 (교황을 맘대로 갈아치움)
    • 그 후계자 하인리히 4세 역시 그 기조를 받아 "교황은 황제의 비서에 불과" 같은 태도,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겐세이를 날림
  • 광신자(문자 그대로의 의미) 그레고리우스 7세의 생각: "나는 교황 = 베드로의 후계자, 신의 대리인인데 황제따위가 개기냐?"
    • 사상초유의 베드로의 권리("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 묶이고…") 발동: 하인리히 4세를 파문, 하인리히 4세와 맺은 모든 봉건계약은 무효 (기독교도가 아닌 이에게는 법을 지킬 필요가 없음)
    • 독일 제후들: 신난다~ 할거, 반란
    • 이듬해 겨울, 하인리히 4세 알프스 카노사로 찾아가 교황에게 사흘 밤낮 석고대죄
    •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만 교황의 약점 "회개하는 죄인은 받아줘야 한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문 철회
    • 정당성을 회복한 황제는 반란 진압, 그리고 직후 그레고리우스 7세 폐위. 다시 파문하지만 더이상 반란세력이 없어져서 독일군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촌구석 라벤나로 도망가 홧병으로 사망 ("내가 베드로의 계승자인데!")

보름스 협약: 애매한 합의

  • 주교서임은 교회가 해라. 그런데 그 서임식 할 때 황제 또는 황제를 대리하는 속인이 동석하여, 주교서임함과 동시에 영주로서의 권리는 황제와 계약하도록 한다.
  • 사람은 교회가 추천하는데 결정은 황제가 할 수 있는 구조의
  • 근본적 해결책: 주교후 체제를 타파하고, 교회가 세속 권력(토지)를 포기하면 됨. 근데 그걸 하고 싶지는 않지?
  • 교황권의 상승을 보여줌 ← 어? 그레고리우스 7세 홧병나 죽었대매요?
    • 교황이 황제의 권위를 꺾거나, 실패해도 심각한 훼손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남
    • 하지만 동시에 그동안 숨겨왔던 전가의 보도 "황제폐위권"이 알고 보니 불발탄이었다는 것도 드러남
    • 이후 12-13세기를 거치며 교황권은 계속 상승하여 역사상 정점을 찍게 됨. 그것을 뒷받침한 것이 십자군 전쟁

십자군

발단

  • 동로마 제국에서 날아온 원조 요청 편지
  • 그걸 본 순간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머릿속에 펼쳐진 거대한 비전
    • 예루살렘은 이미 이교도에게 짓밟혔고, 콘스탄티노플도 힘을 못 쓰고, 이 어둠의 세상에서 빛은 오로지 가톨릭 뿐, 그리고 그 빛을 이끌 사람은? 바로 나구나!
    • 아 그리고 우리동네 깡패 많지? 걔네들 그리로 다 보내버리자
      • 기원후 1000년을 넘어가며 사회가 안정화. 싸워서 땅을 얻는 것이 존재이유인 기사들의 불만
      • 교회와 국가가 계속 억제해온 기사들의 폭력성 표출 필요성
    • 악마들과 싸우는 이 우주적 거룩한 전쟁의 총사령관이 나님임!

교황의 사발통문: 베드로의 이름으로 천국문을 활짝 열다

  • 야야, 우리 성지가 악마들에게 짓밟혔다. 이런데 안 싸우러 나가면 너 남자 아니다
  • 이 전쟁은 성전이다. 전쟁에 나선 이들의 영토는 교회가 맡아 지켜준다.
    • 성전을 하면서 공덕을 많이 쌓으면 천국 가기 쉬워지고, 전사하면 순교니까 한방에 천국감!
    • 이 시기에는 초기 기독교에는 안 나타나는 연옥 개념이 완성되어 있었음. 폭력적 삶을 살아서 연옥행이 확정인 기사들에게 면벌과 천국 하이패스를 제안
    • 가서 싸우다 잘 되면 거기에 새 땅 갖고, 죽으면 목숨 바쳐서 천국 하이패스? — 중세인 입장에서 합리적 소비
  • 그리고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 실리적 욕망도 간지럽혀줌

십자군 약사

  • 민중 십자군
    • 우르바노 2세의 선동이 너무 잘 먹혀서, 본래 의도했던 귀족들이 아닌 거렁뱅이들이 가장 먼저 모임
    • 사회 최하층, 아무런 희망도 없던 자들이 "천국문이 열렸댄다!" 소리에 모여듦
    • 가는 곳마다 약탈 일삼으며 지리멸렬해지다 전멸
  • 제1차 십자군
    • 왕들은 아직 간을 보고 있고, 대귀족이나 기사급이 참여
    • 십자군을 맞이한 동로마 황제: "아니 씨발 이놈들이 돈 좀 보내달라니까 깡패들을 보내왔어" 여독 풀고 그런 거 없이 바로 내쫓음
    • 예루살렘을 향해 남진,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이 원래 어울려 멀쩡히 살고 있던 예루살렘은 뜻밖에 횡액. 십자군은 예루살렘의 모든 생명체를 "정화"
    • 유일하게 성공한 십자군. 예루살렘 주변에 유럽식 봉건제에 따른 국가들을 수립.
  • 제2차 십자군
    • 실패. 다마스커스 성문 돌격하여 전멸 같은 에피소드.
  • 막간극 — 킹덤 오브 헤븐
    • 살라딘의 예루살렘 함락
  • 제3차 십자군
    • 유럽의 모든 군주들(신성로마황제, 프랑스왕, 잉글랜드왕)이 참여하는 "진짜배기 십자군"
    • 근데 이거 조합이 프랑스왕과 잉글랜드왕이 서로 싸울텐데? 교황은 왕들보다 권위가 서는 황제를 끼워 조율하려 시도
    • 하지만 교황과 황제가 말리거나 말거나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싸웠고(…) 아예 시작부터 따로 감. 신성로마황제는 어영부영 따라가다 익사.
    • 프랑스왕 필리프는 잉글랜드 통수치러 돌아가 버리고, 잉글랜드왕 리처드가 살라딘 붙잡고 드잡이
    • 살라딘: "니들 진짜 징하게 왜이러냐? 어, 성지라고? 그럼 성지순례 하게 해줄게"
    • 성지순례 보장받는 걸로 허무하게 마무리
  • 제4차 십자군
    • 베네치아 상인들: "십자군 님들 어디 가세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딴데도 좋은 데 있는데" "? 거기가 어딘데"
    • 베네치아 놈들, 십자군 깡패들을 실어다 콘스탄티노플에 풀어버림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보호해주지 않는 동로마황제를 갈아치우고자)
    • 결론적으로 가라는 예루살렘은 안 가고 엉뚱한 콘스탄티노플을 2박 3일간 불태움 (…)
    • 그 사이 예루살렘 일대의 기독교 국가들은 하나씩 멸망

뒷얘기

  • 근 200년간 지속된 십자군: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지속 기간 200년 동안 교황 권위는 지속적으로 상승 (일종의 안보논리)
  • 13세기 중반 인노켄티우스 3세 시기 교황령은 유례가 없는 권위를 누림
    • 속인들에게까지 교회세를 징수
    • 7성사의 확립 — 성사는 모두 사제가 하는 것이므로 사제의 권위가 상승
      • 세례성사: 탄생
      • 견진성사: 성년식
      • 고해성사: 협박거리 확보사
      • 성체성사: 중세식 성찬은 빵만 나눠주고 술은 신부가 대표로 혼자 먹음(사제의 절대적 권위) 신부가 축성한 빵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예수의 살이 된다 — "오로지 신부에게서" 빵(예수의 살)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못 받음
      • 혼인성사: 신부의 축복을 못 받은 결혼은 인정 못함
      • 종부성사: 임종 때 신부 불러다 축복받아야 함함
      • 천국 가는 로드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사회를 안정화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생로병사 모든 과정이 교회에 예속되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을 의미
    • "내가 해고 황제가 달이다"

내부 십자군

  • 성지로 보내는 십자군으로는 부족하시단다 (이북 빨갱이 뿐 아니라 내부 빨갱이도 잡아야지!)
    • 어디에 이단이 발생했다 하면 십자군 보내서 그 지역 주민들을 씨를 말려버림
  • 알비 십자군
    • 영-육 이원론(육체는 더러운 것이고 정신만 고결하다)을 주장한 알비파 이단
    • 중세에는 불가타 성서가 금서였음. 개나소나 성경 읽어서 독자연구(…) 하면 가톨릭이 포기할 수 없는 "오로지 사제주의"가 무너짐. 사제가, 교회에서, 풀어 들려주는 것만 들어야 함화
    • 그런데 그 교회 너무 썩었는데? 의문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알비파, 왈도파 등 이단에 빠짐 → 프랑스 남부에서 대학살

교황권의 몰락

  • 13세기 말부터 급속히 추락: 십자군의 실패, 세속군주들과의 갈등 재점화
  • 보니파키우스 8세
    • 우남 상탐(Uam Sanctam): 모든 군주는 황제건 왕이건 교황 밑이다!
  • 아비뇽 유수
    • 프랑스왕이 우남 상탐 좆까고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와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뜯어감
    • 교황이 프랑스인이라니? 로마에서 대립교황 세움
    • 신롬 황제: 야 둘다 폐위, 내가 중립적으로 세울게 ← 나머지 둘: "응 지랄노"
    • 대립교황이 때론 셋까지 이르는 개판 상태가 100년간 지속
    • 이후 교황은 프랑스왕의 꼭두각시로 전락

교황권 흥망의 의의

  1.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의 가능성
    • 교황과 황제가 싸워 상처뿐인 무승부가 났기에 국민국가가 가능했다.
    • 교황이나 황제나 "보편성"을 주장했고, 그 보편성이 누구 거냐를 두고 싸운 것
    • 서임권 투쟁을 거치며 신롬 황제는 한물 가버렸고, 내부적 왕권강화로 "개별성"을 가진 프랑스, 잉글랜드, 좀 뒤에 스페인 등이 어부지리
  2. 정교분리
    • 물론 정교분리의 직접적 계기는 17세기 기됵교 신-구교의 200년 종교전쟁
    • 하지만 "정치와 종교가 별개"라는 개념 자체의 태동이 중요
    • 종교가 정치를 압도하는 이슬람, 정치가 종교를 압도하는 비잔티움과 차별되는 서유럽의 특징이 가능
  3. 법률, 교육의 발전
    • 국가와 교회의 싸움은 칼싸움보다는 말싸움의 형태
    • "권한"을 다투는 것이기 때문에 법이 중요 → 로마의 옛 법들을 파면서 로마법이 부활
    • 학문 전반이 법학과 비슷한 길을 걸으며 발전: 자료수집 → 자료정리 → 자료분석/해석 이 과정이 "학문(research)"이다. 서양적 학문의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