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로마 공화정

로마 건국신화

  •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건국
  • 이후 7왕 (싸그리 전설. 믿을 게 없음)
  • 기원전 509년 왕을 죽임 (루크레티아 사건)
    • 왕의 시체를 밟고 "sic semper tyrannis" → 앞으로도 폭군은 모두 이렇게 될 것이다
    • 가부장적 사고방식 - 남자를 남자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여자의 역할
  • 하지만 공화정 초기 "역사"도 거진 반 전설

ex agricolis et viri fortessimi et milites strenuissimu gignuntur
농지로부터 가장 강인한 남자와 훌륭한 군대가 나온다
윤문: 땅과 싸우는 남자가 가장 강인하며 훌륭한 군대이다

대 카토

로마의 정신이란?

  • 농부, 정확히는 소규모 자영농 (자신의 농기구로 자신의 농지를 경작해 자신의 가족을 먹여살리는) — 가장 이상적인 로마인. "로마의 이상"을 구현한 존재.
  • 여기서 비롯되는 끊임없는 땅에 대한 갈망, 제국주의적 팽창.

공화정의 성공

  • 불과 700년(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 만에 지중해를 호수로 만듦
  • 이러한 전무후무한 성공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 입 있는 역덕은 죄다 한 마디씩 내뱉는 거

혼합정체론 — 정치적 우월성

  • 왕정, 귀족정, 민주정의 요소를 혼합한 공화정
  • 로마는 뇌가 근육이라 독창적인 생각은 못했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한 세 가지 정부의 형태가 다음과 같다
    • 1인지배 (왕정) — 왕정의 이상: 의사결정의 효율성, 왕정의 타락: 참주정. 옳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이가 세습받음
    • 소수의 지배 (귀족정) — 귀족정의 이상: 고귀한 족속, 잘난 존재들의 지혜와 경륜을 모아 국가를 운영, 귀족정의 타락: 과두정. 소수가 공동체를 현명하게 이끌지 않고 자기들끼리 해처먹음
    • 다수의 지배 (민주정) — 그리스의 다수의 지배는 "폴리테이아"이고, 그게 타락하면 민주정이 된다 (…) 아무튼 폴리테이아의 장점은 결집된 평범한 사람의 집단은 소수의 현자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음. 그러나 민주정은 다수의 인민이 국가를 사유화하는 것.
  • 폴리비우스(기원전 2세기)
    • 그리스 출신으로 로마 노예로 잡혀가 스키피오 가문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다가 노예에서 해방됨
    • 『로마사』 저술. — 저술의도: 높은 문명수준의 그리스가 왜 저 무식한 로마에 졌지? 로마가 그리스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규명하고자
    • 폴리비우스의 역사 시뮬레이션: 왕정 → 참주정 → 귀족정 → 과두정 → 폴리테이아 → 민주정 → 왕정… 의 순환. 이래서 그리스가 망했다.
    • 귀족정의 요소: 원로원. 300 석 정도의 의석을 최고 귀족들이 독점. 원로들은 집정관 역임자이기에 원로원의 "조언"으로써 집정관을 때릴 수 있음. 그리고 재정을 원로원이 쥐고 있음 → 집정관을 견제
    • 폴리테이아의 요소: 민회. 관직은 민회의 투표로 얻을 수 있음. 인민주권. 원로원이 방만해질 경우 해당 귀족을 선거에서 떨어뜨릴 수 있음 → 원로원을 견제
    • 왕정의 요소: 집정관(콘술)의 군사통수권(임페리움). 권력 남용을 위해 1년 임기제에 한 번에 두 명 뽑음. 민중들이 나댈 경우 통수권을 발동해 밟을 수 있음 → 민회를 견제
    • 이렇게 "견제와 균형"을 함으로써 타락이 일어나지 않고 세 정체의 장점만 발휘될 수 있다는 결론
    •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짐으로써 로마는 "안정"(이퀼리브리엄)에 도달했고, 그리스처럼 정체의 변동이 일어나지 않음. 로마의 보수성이 로마의 힘의 근원이라는 분석.
  • 까 봅시다
    • 로마 정치의 실체는 원로원 놀음
    • "원로원과 로마 시민"의 의미는 "서태지와 아이들" 처럼 "A와 기타 떨거지들"이라는 뉘앙스.
    • 집정관과 민회는 절대 원로원을 견제할 수 없다! 그 원인? → 피호제도
    • 피호제도란 로마의 정치가 아니라 사회를 규정하는 근본. 사회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모든 사람이 보호자(파트로누스)와 피보호자(클리엔스)로 연결되어 있음.
    • 파트로누스는 클리엔스에게 돈과 보호를 제공하고, 클리엔스는 파트로누스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낸다.
    • 로마는 "이론상" 인민 주권이지만 실제로는 인민은 원로원 귀족계급에게 철저히 종속되어 있음. 하지만 원로원은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고 인민 주권이 있다는 허울을 유지.
    • 이런 식으로 로마는 지배계급을 영속화시켰고, 인민이 불만을 가지는 것 같으면 인민 중 상층을 귀족으로 포섭
    • 인민들이 귀족에게 "우리를 착취해 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게 되는 이 따위 지랄을 역사상의 모든 엘리트, 귀족, 과두집단이 로마의 정치적 "지혜"라고 부름

원로원의 효율성의 사례

  • 제2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18년-202년)
    • 한니발의 전략은 충격과 공포를 몰고 와서 로마 동맹시들을 이탈시켜 조달을 받는 것.
    • 그래서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고 칸나이에서 로마 2개 군단을 전멸시키면서 충격과 공포를 몰고 옴
    • 하지만 로마 동맹시들이 이탈하지 않음! 그래서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를 10년간 돌아다니며 둔전을 지냄
    • 10년간 국가의 단결을 유지
  • "델레나 카르타고" (기원전 146년)
    • 대 카토의 제안으로 카르타고를 문자 그대로 지워버림
    • 비슷한 시기 그리스에 자치하되 로마의 우월을 인정할 것을 요구 → 그리스가 좆까네라고 반응 → 시범타로 코린토스를 지워버림
    • si vis pacem para bellum(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 현대에 사용되듯 "방어를 위한 준비(전쟁억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 현대식 평화는 "공존"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로마의 평화는 자신을 적대하는 자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 상황. 즉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은 전쟁을 해서 적을 모두 죽이면 평화가 온다는 뜻임. 카르타고나 코린토스의 대학살도 이런 맥락에서 정당화될 수 있음.

공화정의 실패

  • 어쨌든 그래서 로마는 성공했다! 동서에서 그리스와 카르타고를 굴복시킴으로써 지중해를 석권하였다
  • 하지만 포에니 전쟁기인 기원전 1세기부터 로마는 망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 중산층 자영농민(이상적 로마인)의 몰락 — 10년간의 한니발 전쟁의 상처. 주인이 죽은 땅을 대귀족이 차지하고, 또한 정복으로 새로이 얻게 된 국유지도 귀족들이 독점.
    • 어마어마한 부가 로마로 흘러들어오지만, 로마적 가치의 근간이었던 농민이 몰락, 빈민이 증가하고 양극화 심화
  • 그라쿠스 형제(귀족 중에서도 최고 성골 출신)의 개혁
    • 형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귀족들이 불법 점령한 토지를 "일부만" 환수해 빈민에게 분배, 정착시키려 시도.
    • 매우 온건한 타협안이었지만 귀족들은 땅 한뼘도 내놓지 못하겠다고 극렬히 저항. 이 시점에서 로마 원로원은 이미 과두정으로 "타락"했음
    • 원로원은 동료 호민관을 매수하여 티베리우스의 개혁안에 모조리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만듦
    • 빡친 티베리우스는 매수된 호민관을 면직시키려고 긴급 투표를 벌이려 했으나 전례가 없었던 일임 → 이를 빌미로 원로원 의원 3백여 명이 몽둥이 들고 몰려가 티베리우스를 때려죽임 (호민관 신체불가침권 무시!)
    •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 점진적으로 지지기반을 모아서 개혁을 시도. 그러자 이번엔 3천 명이 몰려가서 가이우스와 그 지지자들을 때려죽임.
    • 호민관을 때려죽인 공화정의 윤리적 파탄 → 로마의 고질적 정치폭력의 시초. 이후 로마 공화정은 내전기에 접어듬
    • 그라쿠스 형제에 대한 견해 차이는 보수주의(전통으로부터 지배권을 찾음)와 진보주의(민중으로부터 지배권을 찾음)의 시초라 할 수 있음 (키케로의 평가)
    • 다른 시각 — 로마 시민 민중 vs. 로마 원로원의 대결보다 더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지중해 세계 전체가 로마에 수탈당하는 시대적 상황. 로마의 지배는 수탈하되 책임지지 않는 지배. 그라쿠스는 수탈한 부가 원로원 귀족들에게 집중된다는 것만 문제시했지, 그 수탈체제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임을 통찰하지 못함
  • 동맹시 전쟁
    • 로마와의 차별에 빡친 이탈리아 반도의 동맹시들이 저항
    • 동맹시에 시민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쇼부.
    • 시민권의 가치가 떨어진 대신 엄격한 법으로 대신하는 상황
  • 100년 내전
    •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늘어난 무산자들을 군에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전리품과 토지를 나눠줌 → 군인들의 충성이 공화정의 대의가 아니라 마리우스 등 장군 개인에게 향하게 됨
    • 마리우스와 술라의 세 차례 로마 진군, 학살
    • 술라 실각 이후 카이사르-폼페이우스-크라수스의 쇼부에 의한 삼두정치
    • 기원전 49년 카이사르가 로마 헌정을 무시하고 군을 동원해 로마 진군 (마리우스와 술라의 전례가 이미 있으니)
    •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깨부수고 독재관에 취임, 다양한 사회 개혁 시도
    • 귀족들의 반발(키케로: 이 시대의 도덕은 어디 갔는가) + 카이사르가 왕이 되려 한다는 소문 → 기원전 44년 카이사르 암살
    • 카이사르파(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와의 치열한 내전 끝에 공화파 멸망
    • 제2차 삼두정치(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레피두스) → 다시 내전, 악티움 해전(기원전 30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최후 승자

공화정은 왜 실패했는가?

  • 기원전 753년 도시국가로 시작하여 기원전 146년 세계제국 성립, 이 제국 성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로마의 지배 엘리트, 원로원
  • 하지만 막상 제국이 닥치자 공화정의 엘리트들은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자기 계급 내부의 종파적 투쟁(백년 내전)을 일으키며 망조를 보임
  • 즉 공화정이 망하고 제정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옛 엘리트들(원로원)의 한계가 노출되고 새로운 체제의 새로운 지배계급(황제)으로 바뀌는, 부와 권력을 향유하는 그 계증이 교체되는 과정일 수 있음
  • 한 체제는 인민들의 신뢰를 더이상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