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9세기 패권쟁탈

빈 체제

빈 회의(1815년)

  • 목적: 유럽에 새로운 질서 창립
  • 원칙: 정통성(legitimacy), 왕정복고(restauration)
  • 논의 대상
    1. 프랑스 고립
    2. 중부유럽 — 독일연방
    3. 동유럽 — 폴란드-작센 문제
  • 결과
    • 프랑스: 1792년 영토로 회귀
    • 영국: 몰타, 헬고란트, 희망봉, 실론 획득
    • 오스트리아: 베네치아 획득
    • 프로이센: 라인 지역 획득
    • 러시아: 바르샤바 대공국 획득
  • 체제유지기구: 신성동맹, 4국동맹
    • 영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빈 체제의 핵심
  • 빈 체제의 붕괴 시점
    • 대내사, 사회사점 시점: 1848년 혁명으로 메테르니히가 실각
    • 대외사, 정치사적 시점: 1853년 크림 전쟁

7월 혁명(1830년)

  • 오를레앙가 루이 필리프가 프랑스 왕위 옹립
  •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유럽의 헌병), 루이 필리프를 "야비한 찬탈자"로 규정

크림 전쟁

근동위기

  • 제1차(1822년-1833년)
    • 이집트의 무하마드 알리가 시리아 영유권 놓고 오스만 튀르크 공격
    • 1832년 코니아 전투에서 이집트 승리
    • 튀르크, 영국에 구원 요청
      • 영국 수상 팔머스턴, 유럽 강대국이 개입되지 않은 분쟁이고 해상봉쇄에 필요한 해군력 증가는 휘그 정신에 위배된다고 거절
    • 튀르크, 영국의 적인 러시아에 요청, 러시아가 수용.
        1. 튀르크의 종속국인 이집트의 도발을 혁명으로 간주
        2. 튀르크의 급속한 몰락은 러시아의 이해관계와 상반
        3. 알리가 근동 패권을 장악하면 이슬람 세력이 강성해질 수 있음
    • 1833년 봄 이집트 군대가 이스탄불 전방 150 km까지 진격
    • 러시아는 튀르크와 상호방위동맹(운키아르 스켈레시 조약) 체결
      • 튀르크가 외국군함에 대해 해협을 폐쇄한다는 조건으로 지원, 영국이 반발
    • 러시아, 중부유럽의 주도권 장악
      • 1833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베를린 협정
      • 프랑스의 탈레랑, 영국에 동맹 제의 — 팔머스턴, 프랑스 고립 원칙이 무너진다고 거절.
  • 제2차(1839년-1841년)
    • 튀르크, 코니아 전투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이집트 공격, 그러나 6월 니지프 전투에서 패배. 8월 유럽 열강에 구원 요청
    • 프랑스는 이집트 지원 선언, 영국과 러시아는 튀르크 지원.
    • 영국과 러시아, 알리에게 시리아 남부 지역만 보유할 것을 요구 — 이집트가 반발, 영국 지중해 함대 이집트 공격
    • 1841년 11월 알리 4대 강국의 제안 수용.
  • 제3차(1853년)
    • 1852년 나폴레옹 3세의 황제 등극, 유럽 체제의 변화 추구.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근동지역을 변화의 돌파구로 선택. 러시아에 도전
    • 성지관할권 문제: 가톨릭인 오스트리아를 러시아로부터 배제
    • 나폴레옹 3세, 튀르크에 압력을 행사해 가톨릭 성지관할권을 이전받음 — 니콜라이 1세 분노
    • 1853년 2월, 멘시코프를 특사로 튀르크에 파견
      1. 프랑스 압력에 굴복한 각료 해임
      2. 발칸 지역의 기독교 보호를 위한 러시아 권리 확인 요구
    • 니콜라이 1세, 1월 영국 측에 튀르크가 붕괴되면 영국은 영국 몫을 받을 것을 보장. 하지만 영국과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불신.
    • 튀르크, 멘시코프의 요구사항 모두 거부.
    • 러시아, 몰다비아와 왈라키아 점령. 멘시코프 요구가 수용되면 철군하겠다고 선포.
    • 영국과 오스트리아 당황, 외교교섭 벌이지만 무산

크림 전쟁

  • 1853년 9월, 영국 함대 아르마라해 진입 —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협력하면서 나폴레옹 3세의 함정에 빠짐
  • 나폴레옹 3세는 영국이 진격하면 함께 진격하고, 영국이 빠지면 영국을 대신해 오스만 튀르크로 진격할 심산
  •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도움 요청
    •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지원하는 대가가 너무 적다고 판단
    • 프로이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
  • 10월 4일 튀르크, 러시아에 선전포고
  • 1854년 1월, 2월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에 선전포고
  • 러시아, 오를로프(Orlov)를 베를린과 빈에 파견해 신성동맹에 따른 우호적 중립 요청
    •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신성동맹은 유럽에 한정된 것이기에 근동지역에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답변
    • 7년 전쟁 이후 동유럽 3대 강대국 최초의 마찰
  • 1854년 9월, 영불 연합군 크림반도 상륙, 세바스토폴 공격
    • 1855년 1월 사르데냐 가세
    • 1855년 3월부터 평화회담 진행
    • 1855년 9월 세바스토폴 함락
    • 1856년 2월 파리 강화조약 — 흑해의 무장중립
  • 전쟁 희생자는 영국과 러시아, 수혜자는 프랑스
    1. 영국과 러시아의 협력 종말
    2. 프랑스는 영국, 러시아와 동등한 강대국 입장이 되었고, 전쟁 이후 유럽 패권자로 등장
    3. 신성동맹의 몰락

이탈리아 통일전쟁

  • 마치니 — Giovine Italia 조직 — "신성민중국가" — 가리발디가 영향받음
  • 기오베르티 — 교회와 교황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연방국가
  • 1848년 3월 혁명으로 메테르니히 퇴임, 그 소식 전해지자 22일 밀라노와 베네치아에서 봉기
    • 라데츠키의 노련한 군대 운영 — 초기 퇴각
    • 사르데냐 국왕 알베르토가 봉기 지지 선언,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 밀라노로 진격
    • 7월 쿠스토자에서 라데츠키가 사르데냐군 승리, 휴전협정 체결
    • 1849년 3월 알베르티, 다시 밀라노로 진격. 노바라에서 패배
    • 알베르토 퇴위,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계승, 마치니와 가리발디는 망명
  • 카보우르
    • 1852년 사르데냐 총리 취임
    • 신성민중국가의 이상주의 배격, 사르데냐 중심의 현실적인 이탈리아 통일
    • 사르데냐의 부국강병, 산업화에 주력. 군사적으로는 약소국이기에 동맹국 탐색 — 크림 전쟁에서 영불 편으로 참전

사르데냐-오스트리아 전쟁

  •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외교적 고립 상태
  • 1858년 4월 플롬비에레스 비밀조약
    • 나폴레옹 3세의 지원 획득, 반대급부로 사보이아와 니스 할양
    • 근대 외교사 최초의 비밀조약 — 현실정치
    • 크림 전쟁으로 러시아를 까부신 나폴레옹 3세(평생 목표: 빈 체제의 타파)는 오스트리아를 마저 까부실 필요성
  • 1859년 밀라노와 베네치아에서 군대 모집 — 오스트리아의 경고, 영국의 중재회담을 오스트리아가 거부
  • 1859년 6월 4일-24일,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 마겐타, 솔페리노에서 승리
    • 6월 26일 프로이센이 중재 선언,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군 퇴각
  • 7월 11일 빌라 프랑카 조약 —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에 밀라노 양도, 프랑스가 사르데냐에게 밀라노 양도
    •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지 못하고 라인강 지역에서 약점 노출
    • 오스트리아는 군사적으로 패배
    • 사르데냐에서는 카보우르 사임

이탈리아의 통일

  • 카보우르 복귀(1860년 1월), 나폴레옹 3세와 협력
    • 3월 이탈리아 중부 소국들 병합, 나폴레옹 3세는 협력 대가로 약속된 니스와 사보이아 할양
  • 가리발디 귀국, 5월 서부 시칠리아 상륙, 9월 나폴리 입성, 10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에게 충성 선서
  • 1861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이탈리아 왕국 선포
  • 6월 카보우르 사망. 후임자 베티노 리카르솔리는 카보우르 정책 계승.

독일 통일전쟁

  • 이탈리아 통일 전쟁의 영향을 받아 통일 움직임 나타남
    • 군제개혁이 중심문제로 부각 — 의회에서 예산 문제와 결부
    • 1862년 9월 비스마르크, 프로이센 총리 취임, 의회 연설:

"이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은 대화와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1848년-1849년의 중대한 실수였다. 그것은 철과 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 1863년 1월 폴란드 봉기 —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협력 강화
    • 알펜슐레벤 협정 — 나폴레옹 3세 반발

슐레스비히 전쟁

  • 1863년 9월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7세 사망, 크리스티안 9세가 왕위 계승
  • 왕위 계승상 문제를 구실로 비스마르크, 오스트리아를 설득해 연방군대 동원
  • 1864년 1월 덴마크에 홀슈타인 대공국 포기할 것을 최후통첩 — 거절하자 전쟁
  • 1864년 10월 빈 평화조약
    • 덴마크가 홀슈타인 대공국 포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공동관리

비스마르크의 신독일 구상

  1.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의한 독일의 공동지배
  2. 마인 강을 중심으로 남북 분할 통치
  3.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를 배제 — 소독일주의
  • 비스마르크는 어느 것에 집착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대응(하지만 임기응변은 아님)
  • 기본 목표는 독일연방의 해체 내지 변경, 이 경우 프로이센 세력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
  • 비스마르크는 독일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프로이센주의자
  • 1864년 8월 쇤브룬 궁전에서 레흐베르크와 회동
    •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모두 프로이센이 관리하는 대신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가 밀라노를 되찾는 데 협력하겠다고 제안
    • 오스트리아는 거부.
  • 1865년 8월, 프로이센은 슐레스비히를, 오스트리아는 홀슈타인을 통치하는 데 합의
    • 아우구스텐베르크 대공 반발, 두 강대국을 이간시킴
  •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전쟁할 경우 주변 강대국들의 태도
    1. 영국 — 1864년 덴마크의 도움을 수락하지 않은 것처럼 불간섭 — 프로이센에 우호적
    2. 러시아 — 알벤스레벤 협정으로 유대관계
    3. 프랑스 — 나폴레옹 3세의 중립 확인 — 반대급부를 제공해 준 것이 아니라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 프랑스가 중재자가 되어 이를 통해 라인강 지역 영토획득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주입시킴
    4. 이탈리아 — 1866년 4월 3개월짜리 동맹 체결

보오전쟁

  • 1866년 4월, 비스마르크는 독일 연방 대표자 회의에서 보통선거를 통한 독일 민족의 국민의회 창설을 주장, 오스트리아 중심의 대독일주의에 도전
  • 독일연방의 붕괴
    • 6월, 오스트리아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를 독일 연방 대표자회의에 위임할 것을 요구.
    • 비스마르크 반대. 프로이센 군대가 홀슈타인 점령.
    •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을 제외한 독일 연방 군대 동원
    • 비스마르크, 독일 연방에서 탈퇴
  • 6월 27일, 하노버 군대 패배
  • 7월 3일, 쾨니히그레츠(사도바)에서 오스트리아 주력부대 패배
  • 7월 5일, 프란츠 요제프 황제, 나폴레옹에게 중재 요청
  • 비스마르크는 영토 획득이 불가능함을 인지, 오스트리아에게 독일연방 탈퇴와 북독일연방 결성 인정만 요구
  • 7월 26일 휴전, 8월 23일 프라하 조약

이후 중부 유럽의 상황

  1. 룩셈부르크 문제
    • 1867년 3월, 나폴레옹 3세는 룩셈부르크 대공이자 네덜란드 국왕인 빌렘 3세와 룩셈부르크 구매에 대한 협상 시작,
    • 비스마르크가 개입, 프랑스의 룩셈부르크 구매에 반대
    • 나폴레옹 3세는 반프로이센 외교에 집중, 프랑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 삼국동맹 제시.
    • 프로이센-러시아의 역동맹을 야기할 수 있다고 오스트리아가 명문화된 조약에는 반대
    • 1870년 3월 프랑스-오스트리아 군사협정
  2. 에스파냐 왕위계승 문제
    • 1870년 초 호엔촐레른가의 레오폴트가 에스파냐 왕위의 유력 계승자로 부각
    • 레오폴트는 에스파냐 왕위계승권 포기
  3. 엠스 전보사건
    • 베를린 주재 프랑스 공사 베네데티, 계승 문제들에 대해 빌헬름 1세에게 확답 받고자 엠스 방문
    • 비스마르크, 전보 내용을 조작(프랑스 공사란 놈이 우리 전하에게 이딴 무례를!) — 여론조작(현실정치)
    • 프랑스에서 프로이센 응징 여론 비등

보불전쟁

  • 1870년 7월 19일, 나폴레옹 3세는 여론에 떠밀려 전쟁 준비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 전쟁 선포
    • 비스마르크의 가장 큰 특징 — 절대 먼저 때리지 않는다. 선빵을 맞아줌으로써 정당성 획득
  • 비스마르크는 전쟁 기간 중에
    1. 동맹국 발견 — 이탈리아, 러시아
    2. 남독일 제후국가 문제 해결
    3. 전쟁에 제3국이 간여하는 것 방지
  • 9월 2일 스당에서 나폴레옹 3세 포로로 잡힘
  • 이 전쟁에서 강대국들의 태도
    1. 영국 — 중립
    2. 이탈리아 — 프랑스 패배 덕에 로마 진군
    3. 오스트리아 — 러시아 군대가 국경지대로 이동함에 따라 중립 유지
    4. 러시아 — 프랑스의 약화로 1856년 흑해 무장중립 폐기, 런던 협정 체결. 알렉산드르 2세 개인적으로 프로이센이 외가. 우호적 중립.
  • 1871년 2월 13일 베르사유 예비평화회담 — 배상금 50억 프랑(10억 일시불, 나머지는 4년 할부), 영토 할양
    • 5월 10일 프랑크푸르트 조약 — 알자스-로렌(엘자스-로트링겐)을 독일에 할양

프랑크푸르트 체제

빈 체제 프랑크푸르트 체제
공통점 유럽 지역의 평화 유지 체제
설계자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후작 오토 폰 비스마르크 후작
분쟁 해결 회담정치, 대화와 타협 힘의 논리
유효기간 5대강국 세력균형이 유지되는 한 독일이 프랑스를 제압하는 힘이 존재하는 한
  • cf) 회의(congress)와 회담(conference)의 차이점
    • 회의는 주권자들의 모임, 회의가 곧 비준. 서명 즉시 효력 발휘
    • 회담은 실무자들의 모임, 회담 결과에 대한 비준 필요

1871년 이후 유럽

  • 1871년 독일 통일, 독일 제국의 탄생 → 강대국 체제의 변화, 5대 강국 내에서 서열 변화
  • 비스마르크 외교의 핵심
    1. 프랑스 고립정책
    2. 동서대립 구도(영국 vs. 러시아)를 이용해 자국 이익 추구
  • 1873년 5월 러시아와 군사협정 체결 — 제3국이 침략할 경우 방어협정 (주권자가 아니라 통치자간의 협정)
  • 12월 오스트리아와도 협정 체결 — 오스트리아가 방어협정에 반대했기에 제4국이 침략할 경우 우호적 중립
  • 삼제협정 — 동부지역의 안정화
    1. 프랑스의 계속적인 고립
    2.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대립 해소
  • 1874년 아르님 사건 — 비스마르크의 정적제거
    • 아르님: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 독일 황후의 총신. 차기 수상으로 촉망. 비스마르크, 자기 부하 홀슈타인을 파리에 서기관으로 파견, 아르님 감시 지시.
    • 비스마르크의 기본 기조인 프랑스 고립을 위해서는 프랑스는 공화국으로 남아 있어야 함. 비스마르크는 프랑스 공화파를 지원.
    • 아르님, 앙리 드 파리 백작(부르봉 계승권자)과 자꾸 친하게 지냄. 홀슈타인이 아르님이 앙리 파리 백작에게 국가기밀을 넘겼다며 고발. 아르님은 스위스로 망명. 여생을 비스마르크 욕만 하다 죽음(독일판 김형욱).
    • 비스마르크의 프랑스 고립 정책 지속

1875년 전쟁위기

  • 1873년 프랑스, 배상금 조기완납 — 낭시에 주둔하던 독일군 철수
  • 1875년 3월 프랑스 군제개혁
    • 장교 숫자 늘리는 개혁
    • 군대 숫자가 늘지는 않았지만 동원령 발동할 경우 프랑스 군사력의 급격한 확대가 예상
    • 비스마르크, 해외 말 판매 금지령
    • 1875년 4월 8일 Die Post에 뢰슬러가 "전쟁이 눈앞에 왔는가?(Ist Krieg in Sicht?)" 기사 게재, 프랑스의 복수전에 대한 예방전쟁 주장
      • 비스마르크는 프랑크푸르트 조약을 파괴하는 예방전쟁에 반대하는 의사 표시
    • 프랑스, 라도비츠 파견사건(1875년 2월)과 몰트케의 국가의회 발언("프랑스가 자꾸 개기면 예방전을 할 수도 있다")을 구실로 영국과 러시아의 지원 호소
    • 1875년 5월 6일 The Times에 "French Scare" 기사 발표, 독일의 예방전쟁을 러시아가 막아야 한다는 기사
    • 디즈레일리,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공동으로 독일에 항의할 것 주장
      •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에 대항할 유일한 잠재적 동맹국 독일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
      • 이탈리아는 로마 교황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기에 독일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
      • 영국과 러시아만 독일에 항의
    • 5월 12일-14일 알렉산드르 2세와 고르차코프 베를린 방문, 각각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와 2회 회동
      • 5월 14일 고르차코프 전보 — 비스마르크가 전쟁할 의사가 없었음이 밝혀졌으나 러시아의 간섭을 통한 것이라는 내용, 비스마르크와 독일에게는 모욕. 비스마르크 최대의 정치적 위기.

세르비아 전쟁

  • 1875년 가을 불가리아 봉기 — 오스만 튀르크, 가혹하게 탄압, 유럽 언론이 흥분 (비스마르크: 휴 살았다)
  • 1876년 7월 튀르크 속국이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튀르크에 선전포고 — 러시아가 강력하게 개입
    • 고르차코프는
      1. 독일에 대한 신뢰 (1870년의 우호적 중립에 대한 보답 기대 — 작년에 비스마르크 엿먹였던 건 안중에도 엑스)
      2. 오스트리아와는 협상
    • 1876년 7월 라이히슈타트 비밀협정
      1. 세르비아가 패배할 경우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존립 보장
      2. 튀르크가 패배할 경우 러시아는 베사라비아와 도나우강 하구 획득,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점령
    • 1876년 7월 말 세르비아 패배, 9월 말 휴전협정
      • 고르차코프, 튀르크에 대한 대규모 공격 준비 — 라이히슈타트 협정에 위배
      • 고르차코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전쟁할 경우 독일의 입장 타전 (1870년 같은 우호적 입장 기대)
      • 비스마르크, 1876년 12월 오스트리아 지원 입장 표시. 고르차코프는 실망.
    • 1877년 1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재협상(독일의 비협조 때문): 부다페스트 협정 체결 — 러시아의 튀르크 공격 인정
      1. 러시아는 베사라비아 획득
      2. 루마니아 탄생
      3.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점령 — 전반적 내용은 발칸 반도에 대규모 슬라브족 국가 탄생 방지

러시아-튀르크 전쟁

  • 1877년 여름 튀르크의 기독교도 탄압을 구실로 러시아가 튀르크 공격. 초기에는 러시아 고전, 겨울에 승기
  • 1878년 초 러시아군 이스탄불 50 킬로미터 앞까지 진격
  • 1878년 3월 3일 영국이 미처 개입하기도 전에 산스테파노 조약 체결
    1. 러시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영토 획득
    2.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자치 획득 — 불가리아가 대규모 왕국(대규모 슬라브족 국가)으로 발전할 가능성 시사
  • 영국(그레이트 게임)과 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 협정 미준수에 빡침), 러시아에 대항
    • 오스트리아 군대 소집, 영국 함대가 마르마라로 진입
      • 영국에선 디즈레일리의 반러시아 정책(대영제국의 체면유지를 위해선 2억 파운드도 날려버릴 수 있는 자)에 반대한 외무장관 더비 백작 사임, 후임자 솔즈베리 후작
    • 오스트리아, 회의를 통한 갈등해결 제시 — 고르차코프는 빈이 아니라 베를린이면 회의 수용하겠다고 함
    • 비스마르크, "명예로운 중재자" 행세하며 분쟁 해결 수락

베를린 회의(1878년 6월 13일)

  • 강대국들, 1개월 논란끝에 비스마르크 제안 수락
    1.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완전 독립
    2. 러시아 영토 획득
    3.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병합
    4. 불가리아는 좁은 영토로 자치 획득
    5. 영국은 키프로스 획득 ← 글래드스턴의 비판
    6. 독일은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음
  • 결과
    1. 대규모 슬라브족 국가 탄생의 좌절, 러시아의 외교적 패배
    2. 비스마르크의 중립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러시아의 우호적 관계 분열 — 알렉 2세: "비스마르크 놈에게 따귀를 맞았다!"
    3. 독일은 영국(특히 보수당)의 신뢰 획득(우린 욕심 없어요~). 비스마르크는 자신이 제2의 나폴레옹이 아님을 증명
    4.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접근
  • 1879년 독오 이국동맹 — 유효기간 5년의 방어동맹
  • 러시아의 전쟁에서의 승리, 외교에서의 패배(10년 뒤 청일전쟁 때 일본이 당한 꼴)
  • 진정한 승리자는 프랑스(한 달 내내 입다물고 있었음) — 독,오와 러시아의 관계 악화에서 잠재적 동맹국(러시아) 발견 → 향후 러불동맹으로 발전

비스마르크의 대영외교(1879년 9월): 러시아와 관계가 수틀려 버렸기 때문에 영국에게 접근

  • 비스마르크: "독일이 발칸과 근동에서 오스트리아와 영국을 지원해 러시아에 대항한다면 독일이 러시아와 전쟁할 경우 영국은 독일에게 무엇을 해 줄 것?"
  • 디즈레일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중립을 지키게 하겠음" (글래드스턴이 한참 미들로디언 유세로 디즈레일리를 때리던 시점)
  • 비스마르크: "고작 중립?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고작 중립?"
  • 영국과 협상 중지
    1. 독-오-영 동맹은 영국에 의해 주도될 위험
    2. 보수당 내각의 협조는 가능하지만 글래드스턴과 협력은 부담.
      • 1880년 선거에서 자유당 집권 이후 영국과 협상은 불가능해짐 → 다시 러시아에 접근 (삼제동맹)

영국놈들 사정

  • 보수당의 벤저민 디즈레일리: 위신적 제국주의자. 영국의 위신을 높일 수 있다면 or 무언가 영국의 위신을 저해한다면 무조건 전쟁
    • 1875년 수에즈 운하회사 지분 구매
      • 원래 이집트 케디브의 것이었는데 재정적 어려움으로 케디브가 영국에 판매
      • 인도 항로의 안정적 확보
      • 프랑스(나폴레옹 시절부터 이집트에 침발라온)의 수에즈 운하 독점 방지
    • 1876년 "왕호법(Royal Title Act)" — 빅토리아 여왕을 인도 황제로 선포
    •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키프로스 획득
    • 러시아의 발칸 야심을 경계하여 오스만 튀르크 지원 — 1876년 불가리아 학살로 반튀르크 여론 팽배
      • "어떻게 영국이 학살하는 나라를 지원할 수 있냐!" — 국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
    • 공격적 제국주의자의 대명사지만 군사행동을 한 적은 없으며 항상 군사적 개입 없이 목적에 도달. 의외로 과격하지 않았다(?) — 후술하겠지만 정작 군사행동을 한 것은 자유주의자 글래드스턴
  • 자유당의 윌리엄 글래드스턴: 도덕정치의 대명사. 소위 "위대한 평민"
    • 미들로디언 선거운동:
      • 디즈레일리가 영국을 비도덕적 국가로 만든 모험주의자라고 공격
      • 키프로스 그리스에 반환 공약
    • 하지만 현실적으로 디즈레일리가 싸놓은 똥을 치우기 어려움
      • 키프로스 그리스에 반환하지 못함 — 불가리아 봉기 당시 오스만의 잔인성을 비난했기에 압뒬하미드 술탄의 동의 구하지 못함
      • 1881년 2월 보어 공화국 독립 승인
      • 1881년 9월 이집트 아라비 파샤의 난 — 마지못해 군대 파견
        • "수에즈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라비의 폭력을 진압하는 평화의 사도"
        • 질서가 회복되는 대로 철수하겠다고 공언. 하지만 이집트는 나세르 때까지 영국의 지배에 놓임.
      • 1883년 이집트의 속국인 수단에서 마흐디의 난
        • 글래드스턴은 수단 개입 거부. 이집트 주둔군 사령관 찰스 고든 장군이 자의적으로 남하
        • 고든, 카르툼에서 마흐디군에게 포위. 마지못해(또) 구원병 파병. 하지만 고든은 이미 살해됨.
        • 글래드스턴의 "제한적 제국주의"는 여론의 비난 대상이 됨
      • 1885년 6월 총선 예정, 선거 직전인 4월에 던진 글래드스턴의 승부수: 거문도 점령. 하지만 결국 총선 패배.
    • 글래드스턴은 추상적인 도덕적 원칙과 대영제국의 국익 사이에서 결국 후자를 선택. ("평화의 사도" 운운 핑계를 대긴 했지만…)
      • 글래드스턴의 카이로 점령이 영국의 종단정책 — 아프리카 분할의 시발점이었다는 해석도 (by 로빈슨과 갤러거)

삼제동맹(1881년 6월)

  • 비스마르크, 러시아와 재협상
  • 독오 이국동맹과는 별개로 체결
  • 제4국과 전쟁 발생할 경우 나머지 조약 체결 2개국은 우호적 중립 지키기로 — 유효기간 3년
  • 당사국 각자의 사정:
    • 오스트리아: 티롤 문제로 이탈리아와 대립
    • 독일: 프랑스와 철천지 원수
    • 러시아: 결국 독-프 전쟁시 1870년처럼 중립 지키라는 건데 이거 독일만 도와주는 거 아니냐? 쒸익쒸익
  • 1회만 갱신, 2회 갱신은 러-오가 발칸을 놓고 분쟁하여 파토

삼국동맹(1882년)

  • 지중해 문제
    • 1881년 프랑스와 영국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세력권 획득
    • 이탈리아는 성과가 없었음
    • 비스마르크, 프랑스의 튀니지 흭득을 지원
      1. 프랑스 튀니지 획들을 통해 알자스-로렌 손상을 보산
      2. 프랑스 관심을 비유럽 지역으로 이동
      3. 이탈리아로 하여금 동맹국 없이는 식민지를 획득할 수 없다는 주제파악 인식시킴
  • 1882년 5월 삼국동맹 체결 — 유효기간 5년
    • 공수동맹. 1개국과 전쟁일 경우 우호적 중립. 2개국 이상과 전쟁시 참전
    • 예외사항은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일 경우 이탈리아는 중립 가능. 프랑스와의 전쟁은 방어전에 국한 —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이탈리아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예외조항

비스마르크의 식민정책(1884년-1885년)

  • 1870년 알자스 로렌 대신 인도차이나를 주겠다는 프랑스의 제안에 "독일에게 식민지는 사치품"
  • 1882년 이스탄불 주재 대사 하츠펠트 외교장관 임명 , 1883년부터 준비작업(한독수교조약 등)
  • 식민지 싫다더니 왜 갑자기 식민정책으로 선회?
    • 대내적 모순을 봉함하기 위해 (by 베흘러) — 사회적 제국주의
    • 다른 설명(by 폴 케네디): 독일 황위 계승과 연관해서 설명
    • 이미 아시아에서 러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와 갈등하고 있던 영국에게 동맹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영국과의 마찰?
  • 1885년 거문도 사건에서 영국에게 쿠사리
    • 하츠펠트: 한국은 독립국이니 한국 정부 요구대로 영국은 철수하라
    • 글래드스턴: 한국은 중국 속국이니 중국과 쇼부봐서 결정하겠다
  • 1885년 베를린 회담 — 콩고 문제 논의
    •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콩고 먹겠다고 싸움. 독일이 프랑스 지원
    • 독-불은 자기들이 못 가질 바에야 영국도 못 가지게 한다고 벨기에에게 던져줌
    • 영국 주도의 아프리카 분할의 붕괴 (아시아에서는 1895년 삼국동맹이 영국 주도권의 붕괴)
  • 1885년 6월 총선에서 글래드스턴 실각, 솔즈베리 보수당 내각 입각.
    • 자유당보다 말이 통하는 보수당 정권이 되었으니 영국과의 마찰정책을 취소 (솔즈베리는 비스마르크에게 앙망문까지 씀)
    • 하츠펠트 "아니 이 영감이 갑자기 왜 이래?" 영국에 대한 파상공세 계속 주장. 비스마르크는 기각.
    • 1885년 하츠펠트 실각(런던 주재 대사로 발령. 비스마르크: "엿 먹어 봐라 이놈아"), 후임으로 비스마르크 자기 아들 헤르베르트 임명

유럽 위기(1885년-1887년)

  • 비스마르크 동맹체제는 1885년부터 붕괴되기 시작
  • 삼제동맹의 붕괴
    • 1885년 불가리아가 주변지역인 동루멜리아 점령, 세르비아가 반대, 전쟁
    • 세르비아 패배.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붕괴 저지.
    • 오스트리아 참전 의사 표명. 러시아가 삼제동맹 위반으로 간주. 동맹 붕괴
    • 영국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를 적으로 돌릴 수 없는 비스마르크 입장
  • 불랑제 위기: 1886년 1월부터 프랑스에서 불랑제(Boulanger)를 중심으로 복수전 분위기 확산
    • 양면전쟁 위협을 감지한 비스마르크의 대비책
      1. 독일의 군사력 강화
      2. 영국과 관계개선 — 영-오-이 지중해 협정
      3. 오스트리아의 선제공격 예방
      4. 프랑스에 대한 예방전 방지
    • 불랑제 위기 1886년 5월 해소.
  • 동유럽 상황은 악화일로
    • 러시아가 불가리아 점령할 태세
    • 영국은 독일에게, 독일은 영국에게 "불 속에서 밤 줍기" 요구
    • 결국 지중해 협정에 따라 영국이 발칸 반도 개입
  • 1887년 6월 독러 재보장조약
    • 붕괴된 삼제동맹을 대신하기 위한 것. 유효기간 3년. 제3국의 침공시 우호적 중립
    • 삼국동맹에 모순(오스트리아가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어쩔?), 즉 국제법 위반. 비밀 엄수: 독일에서 딱 네명(빌헬름 1세, 비스마르크 부자, 실무자 홀슈타인)만 알았음
    • 하지만 이런 모순이 비스마르크 외교의 핵심 — 러시아-프랑스 동맹 방지
  • 1887년 러시아 국공채 베를린 시장에서 교환금지령 — 독일 자본의 러시아 유출 방지
  • 비스마르크 영국정책의 최종적 실패
    • 1889년 1월, 하츠펠트에게 솔즈베리에게 영독동맹 제안하라 지시. 솔즈베리는 묵묵부답.
    • 3월 아들이자 외무장관 헤르베르트를 파견. 솔즈베리 본인은 독일과 동맹하고 싶지만 여론이 반대한다고 거부.
    • 1879년부터 10년간 공들인 가장 중요한 정책이 실패 → 프랑스를 완전하게 고립시키기 실패
  • 1890년 3월 비스마르크 퇴임
  • 1890년 6월 재보장조약 만기.
    • 러시아: "우리는 연장했으면 좋겠는데 어쩔거유"
    • 재보장조약을 알던 4인 중 홀슈타인만 남음 — 빌헬름 1세는 죽고, 비스마르크 부자는 퇴임하고…
    • 비스마르크 부자의 후임 수상 카프리비, 외무장관 비버슈타인도 몰랐던 상황.
    • 홀슈타인이 카프리비에게 가서 "이런 (끔찍한) 이면조약이 있었는데요, 연장할까요 말까요 수상이 결정해주쇼" 군바리 카프리비는 외교 문외한, 홀슈타인에게 알아서 하라 맡겨버림.
    • 홀슈타인은 독오동맹과 모순되는 재보장조약의 지속이 불가하다고 판단, 파기.
  • 1892년 러불동맹 결성 → (독일 입장에서) 파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