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8세기 패권쟁탈

18세기 유럽사 요약: 30년 전쟁 이후 프랑스와 스웨덴의 유럽 지배 종식 — 동서 유럽에 신흥 강대국 등장

  1. 서유럽: 영국과 프랑스의 패권쟁탈전
  2. 동유럽: 스웨덴의 발트해 지배에 대한 러시아의 도전

베스트팔렌 체제는 딱 50년 갔음(1648년-1700년)

동유럽

북방전쟁(1700년-1721년)

  • 스웨덴 패권에 종속되어 있던 프로이센,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들의 저항(러시아를 중심으로)
  • 인물사적으로는 칼 12세 vs. 표트르 1세
    • 러시아 차르 표트르 1세(1689년-1725년)
      • 대내적으로 근대화, 왕권강화: 행정개혁, 사회개혁, 교회개혁.
      • 대외적으로 발트 해 진출 추진
    • 스웨덴 국왕 칼 12세(1697년-1718년) — 15세 나이에 왕이 됨.
      • 동유럽 정리(폴란드고 러시아고…)를 위해 병사 만 명 끌고 1700년 유럽 대륙으로 진출
  • 1700년 나르바 전투에서 러시아군 전멸. 칼 12세 폴란드로 진격, 폴란드 왕 아우구스트 징벌 시도. 폴란드의 저항이 거세 1707년까지 폴란드 원정 계속.
  • 1703년-1704년 표트르 1세, 발트 해 해안에 항구도시 페테르부르크 건설
  • 1708년 칼 12세, 러시아 원정 ("러시아 3대 국난" 중 첫 번째)
    • 러시아는 충돌을 계속 회피하며 스웨덴군을 내륙으로 유인
    • 1709년 추위를 피하러 우크라이나로 내려간 스웨덴군을 표트르 1세의 10만 병력이 급습(폴타바 전투), 러시아 승리
  • 칼 12세 오스만 튀르크로 망명, 술탄을 설득해서 1711년 오스만 튀르크가 러시아와 전쟁
  • 러시아, 핀란드를 정복하고 스웨덴을 공격
  • 1713년 프로이센이 북독일의 스웨덴 땅 공격
  • 1721년 뉘스타드 조약:
    •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발트 해 진출 인정.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보장되었던 스웨덴 제해권 포기.
    • 이 때부터 러시아는 "황제" 및 "제국"을 칭하기 시작

서유럽

에스파냐 계승전쟁(1701년-1713년)

  • 카를로스 2세의 후계자 문제 — 프랑스 vs. 오스트리아
  • 루이 14세의 패권에 대해 오스트리아 중심으로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이 대동맹 체결
  • 1711년 영국의 통수 (어, 가만히 보니 오스트리아가 이기면 카를 5세 시절 신롬이 부활할 각이다?)
  • 우트레흐트 조약
    1. 에스파냐 왕위는 루이 14세 손자 필리프가 계승
    2. 에스파냐의 유럽 식민지는 오스트리아에게, 해외 식민지는 에스파냐가 보유
    3. 영국은 전략 요충지인 지브롤터 획득
  • 조약의 의의
    1. 에스파냐의 몰락, 오스트리아의 상승
    2. 영국의 해외 패권추구 및 외교원칙 "유럽대륙의 세력균형"의 시작
      • 이 때 이후 1차대전 전까지 영국은 유럽 대륙에 대규모 상비군을 파견한 적이 없음
      • 유럽 대륙 진출의 야심의 포기. 대신 비유럽 대륙에 패권추구.
      • 안정적으로 비유럽 대륙에 패권을 추구하려면 유럽대륙에 절대강자가 존재해서는 안 됨

오스트리아 계승전쟁(1740년-1748년)

  • 카를 6세 이후 신성로마제국 왕위계승문제
    • 마리아 아말리에의 남편 카를 폰 바이에른 공작 (+ 프로이센, 프랑스) vs.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프란츠 폰 로트링겐 공작 (영국)
  •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으로 진격(카를을 지지하는 대가)하여 전쟁 발생 (제1차 슐레지엔 전쟁, 1740년-1742년)
  • 카를 7세가 황제가 되었으나 1745년 사망 — 마리아 테레지아 부부는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 인정하지 않음 → 제2차 슐레지엔 전쟁 (1745년-1748년)
  • 아헨 조약 — 무승부
    1.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
    2. 프란츠의 황제위 계승
  • 1753년 카우니츠 후작 오스트리아 재상이 됨
    • 카우니츠의 패배 원인진단: 영국놈들이 말로만 도와준다고 해놓고 대륙에 군대를 파견을 안 해서
    • 그래서 해법: 동의 러시아, 서의 프랑스를 끌어들이자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른 동맹 — 외교적 혁명)

7년전쟁(1756년-1763년) — 프랑스 인디언 전쟁(1745년-1748년)과 동시에 진행

  • 1756년 5월 프랑스와 베르사유 조약으로 동맹체제 완성
  • 1756년 8월 오스트리아와 동맹국인 작센을 프로이센이 선제공격하여 전쟁 시작.
    • 초기에 프로이센의 우위.
    • 프랑스를 극혐하는 영국이 프로이센을 지원하기로 결정.
  • 결정적 전투를 회피하면서(한타 싸움 붙으면 둘 중 한쪽은 폭삭 망한다…) 전쟁 장기화
  • 결국 결정적 전투 발생, 1759년 쿠너스도르프 전투에서 프로이센 패배, 베를린 포위
  • 브란덴부르크 성문의 기적 — 카우니츠 동맹군의 분열
    • 1762년, 러시아 여제 옐리자베타 사망, 후계자 표트르 3세 카우니츠 동맹 탈퇴
    •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전비 분배 문제로 싸움
  • 해외에서
    • 프랑스 식민지들을 때리고 다니는 영국 (미주대륙에 30만 대군 파병)
    • 영국이 이기려면 프랑스가 유럽 대륙에 계속 매여 있어야 한다 (피트: "캐나다 획득은 슐레지엔에 달려 있다")
    • 망조인 프리드리히 2세에게 막대한 자금 지원
    • 인도에서 플레시 전투, 미주에서 프렌치-인디언 전쟁
  • 1763년
    •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 (프로이센의 승리)
      1. 프로이센의 슐레지엔 영유 인정
        • 아헨조약은 교전국 당사자들끼리의 조약, 후베르투스부르크 조약은 5대 강대국들이 보장한 물릴 수 없는 조약
        • 유럽에서 5대 강국(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프로이센) 체제 형성
      2. 중부유럽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양강체제
    • 파리 조약 (영국의 승리)
      1. 프랑스의 해외 식민지 포기
      2. 영국의 비유럽 지역 지배
    • 영국과 프로이센의 승리 요인
      1. 전쟁 지휘부의 우수성 (영국의 윌리엄 피트,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2. 전쟁 재정의 우위
      3. 행운 ← 제일 중요

혁명전쟁

미국 독립전쟁(1775년-1783년)

  • 전쟁 원인
    1. 인디언 구역 설정 — 애팔래치아 산맥 이서 지역으로 진출 금지
    2.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과도한 조세정책
      • 설탕법(1764년), 우표법(1765년)
      • "대표 없이 과세 없다"
      • 타운센트법(1767년): 식민지가 수입하는 유리, 납, 종이, 페인트, 차에 관세 부과
      • 1769년 병참법
      • 1770년 보스턴 학살(?)
      • 타운센트 법 폐지했지만 차 관세는 유지
      •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 1774년 보스턴 항구 폐쇄, 보상 요구
  • 1774년 9월 필라델피아에서 제1차 대륙회의
  • 1775년 식민지 민병대가 렉싱턴 영국 주둔군 기습 — 전쟁 시작
  • 1776년 7월 4일 독립 선언
  • 1778년 새러토가 전투 이후 프랑스와 미국 동맹 체결
  • 1781년 요크타운 전투
  • 1783년 베르사유 조약 — 영국의 미국 독립 인정
  • 1763년 승리한 영국이 1783년 패배한 이유는?
    • 프랑스가 유럽대륙에 매여 있지 않았기 때문 aka 프랑스를 견제할 수 있는 동맹국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
      • 동유럽 3개국이 7년전쟁의 피해가 너무 컸음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폴란드 나눠먹자)
    • 아직 영국 해군이 압도적이지 않았음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의 8할 정도는 됨)

프랑스 혁명전쟁(1792년-1815년)

  1. 차: 1792년-1797년
    • 군사적 변화
      1. 총력전 국민전 개념의 시작 — 동원령
        • 라자르 카르노 "혁명을 지키자 프랑스를 지키자" → 100만 대군 모병
        • 직업군인이 아닌 농민, 수공업자, 상공인들이 "애국심"으로 무장
      2. 결정적 승리를 위한 전쟁터 추구
        • 왕들의 전쟁 시기에는 상비군 = 재정 이었기 때문에 쫄보짓
        • 국민군은 빨리 전쟁 끝내고 집에 가서 생업 계속해야 하므로 속전속결 추구
      3. 지역 자체의 전쟁능력 등장
      4. 보급품의 자체 조달
      5. 병사 개인의 용맹과 능력이 중요 — 귀족 출신 장교나 지휘관의 전투가 아님
        • 그전까지는 재정력에 의한 전쟁, 이제는 정신력(사기)에 의한 전쟁
    • 1798년-1799년 이집트 원정 (나폴레옹의 등장)
    • 성과
      • 벨기에 획득
      • 북부 이탈리아 원정
      • 1797년 10월 캄포포르미오 조약 — 오스트리아 라인강 좌안 포기
  2. 차: 1799년-1802년
    • 1800년 마렝고 전투 — 나폴레옹 활약
    • 1802년 3월 아미앵 평화조약 — 프랑스의 이탈리아 지배
  3. 차: 1805년
    • 10월 21일 트라팔가 해전
      • 나폴레옹의 세계정책의 핵심 — 반영국
      • "우리가 48시간만 (도버)해협을 장악할 수 있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 12월 21일 아우스터리츠 전투
      • 3명의 황제 참여, 영국은 이번에도 돈만 대줌
      • 프랑스 대승, 영국의 피트, 뒷목 잡고 사망
    • 12월 25일 프레스부르크 평화조약 — 오스트리아의 베네치아 포기
  4. 차: 1806년-1807년
    • 프로이센 단독의 전쟁 돌입
    • 1806년 10월 예나 전투, 아우어슈테트 전투
    • 나폴레옹 베를린 입성
    • 대륙봉쇄령
      • 엉뚱하게 영국의 산업혁명(1770년)을 도와준 격이 됨
      • 유럽에 증기기관이 처음 도입된 것은 1820년 벨기에
      • 대륙봉쇄령 덕에 증기기관을 50년간 영국이 독점, 경제력에 대한 압도적 우위가 19세기 내내 유지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러시아로 도피
    • 1807년 6월 틸지트 평화조약
      • 러시아의 대륙봉쇄령 동참, 대신 프로이센의 국체 유지.
      • 프로이센의 국가 명맥 유지 대가로 엘베강 이서 영토 포기
      • 신성로마제국의 완전 해체, 라인 동맹 설치
  5. 차: 1809년
    • 나폴레옹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재도전 — 수상 카를 공작
    • 1809년 3월 아스페른 전투에서 카를 승리 — 나폴레옹의 육전 첫 패배
    • 7월 바그람 전투에서 나폴레옹 승리
    • 10월 쇤브룬 평화조약
      • 오스트리아의 세력 축소, 오스트리아 황녀를 시집보냄
      • 카를 실각, 메테르니히(29세) 수상으로.
  • 나폴레옹의 몰락
    1. 에스파냐 해방운동
      • 1807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폴레옹 지배에 저항
      • 1808년-1809년 나폴레옹의 마드리드 원정, 영국의 에스파냐 지원
      • 1812년 독립군에게 마드리드 함락
    2. 러시아 원정 (1812년)
      • 러시아의 대륙봉쇄령 위배(영국에서 사탕수수 수입, 밀가루 수출).
      • 50만 대군 (프랑스군 10만, 라인동맹군 10만, 폴란드군 30만)
      • 대실패, 생존률 1%. 다만 프랑스군 주력은 에스파냐에서 독립운동 탄압 중이었기에 아직 아주 망하지는 않음
    3. 민족해방전쟁 (1813년-1815년)
      • 1813년 3월 프로이센, 프랑스에 전쟁 선포(러시아는 이미 전쟁 중)
      • 프로이센 국민총동원령 — 나폴레옹의 적은 이제 상비군이 아닌 국민군
      • 6월 프로이센이 제안해서 포이슈비츠 휴전협정, 2달간 휴전(신병교육 시간)
      • 8월(휴전 끝나기 전) 드레스덴 회동 — 나폴레옹과 메테르니히
        • 대불동맹에 붙느냐, 프랑스에 붙느냐 오스트리아의 간보기
        • 메테르니히: 프랑스의 서유럽 패권, 러시아의 동유럽 패권, 오스트리아의 중유럽 패권으로 삼분할 제안
        • 나폴레옹: "왕좌에서 태어난 댁들은 스무 번 패배해도 왕좌로 돌아갈 수 있지만, 구름의 아들인 나는 단 한 번의 패배도 프랑스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
        • 나폴레옹의 거부에 오스트리아는 대불동맹 참여
        • 나폴레옹(나중에) "내 생에 최악의 실수가 포이슈비츠 휴전협정"
      • 9월 16일-19일 라이프치히 전투 — 나폴레옹 패배
      • 1814년 3월 31일 나폴레옹 퇴위. 4월 6일 엘바 섬 유배
    4. 백일천하
      • 1815년 3월 나폴레옹 칸에 상륙, 군대 모집
      • 6월 워털루 전투
      • 나폴레옹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
    5. 프랑스의 적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와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군이 되면서 나폴레옹은 몰락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