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근세 식민주의

인물로 보는 유럽 근세사

시대 16세기 17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특색 대항해시대
유럽 팽창기
분열 뒤 내전;
유럽의 위기
(30년 전쟁)
짧은 프랑스 패권기
영불 패권쟁탈기
(7년전쟁, 혁명전쟁)
팍스 브리타니아
(-1860년대)
독미 패권쟁탈기
(양차 대전)
인물 카를 5세,
펠리페 2세
루이 14세 나폴레옹 빅토리아 히틀러
구강대국 합스부르크 제국 프랑스, 스웨덴 영국 미국
신흥강대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영국, 러시아 독일, 미국 중국?

합스부르크 제국과 종교개혁

시대별 전쟁양상
고대 중세 근세 근대
전쟁주체
(주권자)
시민 귀족 (내각) 국민
전투주체 시민군 기사 상비군 국민개병 → 징병
전쟁 펠로폰네소스 포에니 십자군 백년전쟁 이탈리아
전쟁
7년전쟁 1차대전 2차대전

카를 5세의 탄생: 합스부르크와 에스파냐의 세기의 결혼 (최후의 봉건적 결혼)

  •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안 1세-부르고뉴 공녀 마리아의 아들 필리프 미남왕
  • 아라곤의 페르난도-카스티야의 이사벨의 딸 후아나
  • 후아나는 광녀라 제대로 통치를 못 하고, 사위 필리프가 공동왕 즉위(펠리페 1세)
  • 필리프와 후아나의 아들 카를 5세: 부계 작위(신성로마황제, 부르고뉴, 네덜란드), 모계 작위(카스티야, 신대륙)를 모두 상속
  • 마지막 중세봉건군주 또는 최초의 근세절대군주

카를 5세의 세계정책(Weltpolitik)

  • (카롤루스 대제가 그랬던 것처럼)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유럽의 통일
  • 프랑스를 제외한 전 서유럽을 혈연과 상속을 통해 석권
  • 목적 달성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
    1.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1519년 졸) 때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전쟁에서 프랑스를 제압 (1525년 파비아 전투)
    2. 이슬람 세력의 극복 — 제1차 빈 공방전, 알제리 전투
    3. 내부의 적 제압 — 종교개혁 문제
  • 이탈리아 전쟁(1494년-1559년): 최초의 근세전쟁
    • 최후의 중세전쟁 백년전쟁이 1453년 프랑스의 승리로 끝남
      • 잉글랜드는 지휘부 책임 묻는 내전인 장미전쟁 발발, 튜더조의 대두
      • 이로써 프랑스는 서로의 진출 완료. 동으로 진출을 시작한 프랑스와 신롬이 이탈리아에서 부딪힌 것이 이탈리아 전쟁
    • 이탈리아 전쟁은 신롬의 승리로 종료, 합스부르크조의 대두
      • 프랑스에서 지휘부 책임을 묻는 내전인 위그노 전쟁 발발, 발루아조 쇠락하고 부르봉조의 대두
    • 전쟁터인 이탈리아의 사정:
      • 도시국가들의 내전으로 바람 잘 날 없다가 1455년 로디 화약으로 5대 강국(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교황령, 나폴리) 체제 정비. 더 싸우지 말자고 5개국 간에 상설 주재 외교공관 설치(대사-공사 제도의 시작)
      • 로디 화약에서 이탈리아 전쟁 때까지 40년간이 문예부흥기 최전성기 (다빈치, 미켈란젤로 시대)
      • 1494년 프랑스, 신롬(독일+에스파냐) 외국군대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급속히 폭삭 망함 → 위기 대처를 위한 연구의 결과물 마키아벨리 군주론
  • 이슬람과 싸움: Ritter-christi (기독교 세계의 보호자)
  • 종교개혁
    • 루터의 폭탄
      • 1503년 비텐베르크 예나 대학교 설립, 1508년 거기에 신학부 박사과정생으로 섭외된 마르틴 루터, 1512년 졸업함과 동시에 신학 교수로 채용(시편과 요한복음 강의. 1류 신학자는 아니었음).
      • 1517년 면벌부 판매에 반발, 10월 31일 대학 교회 정문에 폭탄 꽝!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이 루터를 이단으로 고발. 100년 전 후스가 화형당한 것을 아는 루터는 로마 안 가겠다 배쨈
      •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자가 작센 공작이기에 작센 공작의 허가 없이는 루터 강제압송 불가. 당시 막시밀리안 1세가 오늘내일하던 상황이라 선제후인 작센 공작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음 (카를 5세: 선거 끝난 다음에 보자)
      • 작센 공작의 보호를 받은 루터 종교개혁은 정치적 종교개혁
    • 1519년 황제 선거
      • 에스파냐 국왕 카를 5세(물주: 푸거) vs.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2세(물주: 메디치)
      • 6대 0대 1(작센 공작의 기권표)로 카를 5세 당선. (메디치가의 몰락 시작)
      • 유럽 통일의 야망을 가지고 만장일치 즉위를 꿈꿨던 카를 5세 매우 빡침
    • 1519년 라이프치히 논쟁: 황제측 요한 에크가 루터에게 승리.
      • 카를 5세: "쳐발라 놨으니 이단놈이 목숨 살려준 정도로 감사해서 짜져 살겠지?"
    • 1년간 열심히 벼락치기 공부한 루터, 1520년 8월 10월 11월, 연달아 논문 발표.
      • 8월 논문 "독일 국민의 기독교 제후에게 고함" — 황제 싫은 제후분들 나 좀 도와줍셔!
      • 10월 논문 "교회의 바빌론 유수에 관하여" — 세례, 영성체를 제외한 성사 부정(오로지 믿음으로!). 천주교의 소명론(성직자에게만 제한)을 전체 인간에게로 확대.
    • 1521년 보름스 공의회(황제 주관 공의회. 교황권은 이제 진짜 쓰레기)
      • 카를 5세: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안 짜지지? 면상 한번 직접 보자"
      • 변호인 자격으로 작센 공작이 군대 끌고 동행. (후스의 전례)
      • 불어로 부드럽게 묻는 황제에게 따박따박 독어로 대꾸한 루터. 빡친 황제, 루터 파문.
      • 작센 공작은 기사들로 인간방패를 만들어 루터를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호송. 작은 성에 처박혀 할일도 없겠다 성경번역
    • 1524년 독일 농민전쟁
      • 루터의 확장 소명론에 자극받은 농민들 봉기.
      • 루터는 1년간 장고 끝에 1525년 "강제성에 대한 복종" 논리를 내세워 봉기 강경진압을 주문.
    • 1529년 제2차 슈파이어 제후회의
      • 필리프 폰 헤센 백작, 황제의 보름스 파문칙령에 저항(protest)하자고 제안 — 프로텐스탄트의 시작
    •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공의회
      • 카를 5세(파비아에서 싸우고 왔더니 후방에선 이쌔끼들이…), 가톨릭 구원 선포
    • 슈말칼덴 전쟁
      • 1531년 슈말칼덴 동맹 결성, 종교전쟁 시작. 초기에는 개신교도들의 성과
      • 1547년 뷜베르크 전투에서 카를 5세 승리. 작센 공작과 헤센 백작을 모두 포로로 잡음. 카를 5세의 최전성기. 세계정책 달성 임박.
      • 이겼다고 판단한 카를 5세 주력군인 에스파냐군 해산(계속 데리고 있으면 돈드니까…). 1551년 모리츠 폰 마이센 공작이 배신, 프랑스군을 끌어들임
      • 1552년 파사우 휴전협정
      •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 각 제후의 영지에서는 제후의 종교를 믿기로(개인의 종교자유가 아닌 제후의 종교자유. 30년 전쟁의 불씨).
        • 가톨릭 사상 최초로 이단을 인정. 카를 5세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 서명 거부하고 동생에게 양위, 동생이 서명.

번외: 칼뱅 종교개혁

  • 1536년 Institutio religionis christianae
    • 신에 대한 맹목적 복종
    • 영성체는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의식(츠빙글리)도, 그리스도의 신체적 작용(루터)도 아니고, 그리스도와 정신적 연결을 의미한다.
  • 루터의 확장 소명론의 스위스적 변형 → 상인에게도 상인의 소명 (이윤추구의 정당화)
  • 1541년 제네바 교회령: 교회 체제 정비, 장로회의 중요성. 신정정치

대항해시대

  • 바이킹의 북미대륙 발견
    • 984년 에이리크의 그린란드 발견
    • 1000년 에이리크 에이릭손 북미 해안 탐험
  • 1492년 제노바 사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인도(?) 도달
  • 1494년 바스코 다 가마 인도 고아 도달
  • 1499년-1502년 피렌체 사람 아메리고 베스푸치: "그것은 인도가 아니여"
  • 1519년-1521년 포르투갈 사람 마젤란: 세계일주. 신대륙은 인도가 아니라 인도로 가는 장애물
  • 1577년-1580년 잉글랜드 사람 프랜시스 드레이크(1545년-1596년)

에스파냐 식민제국 건설

  • 1494년 토르데시아스 조약
  • 1519년-1521년 에르난 코르테스: 아스텍 제국 몰락
  • 1524년 세비야가 미주대륙 무역 독점권 획득
  • 1531년-1534년 프란시스코 피사로: 잉카 제국 몰락
  • 1540년대 볼리비아 포토시 거대은광
    • 카를 5세는 이 신대륙 은의 덕을 보지 않았음 (카를 5세의 돈줄은 알프스 티롤 금광)
    • 본격적으로 신대륙 뽕을 뽑은 것은 펠리페 2세

펠리페 2세의 에스파냐

  • 대내정치
    1. 가톨릭 강조: 이단 퇴치, 대외무역 주도하던 무슬림과 유대인 탄압
    2. 국가교회 강조: 모든 교황의 명령은 국왕의 승인을 필요로 함
    3. 신분제 의회의 권한 축소: 국왕의 권한 강화
    4. 경제와 식민지에 대한 국왕의 통제
  • 대외정치
    • 1556년-1559년 프랑스와 전쟁, 승리. 샤토-캉브레 조약으로 남부 부르고뉴와 나폴리 획득
    • 1570년 튀니스 육전에서,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튀르크에 승리
    • 1580년 포르투갈 합병
  • 망조
    • 1581년 네덜란드 독립운동
    • 1584년 프랑스와 가톨릭 동맹을 맺어 잉글랜드를 위협
    • 1588년 메디나 시도니아의 무적함대(전함 130척)가 영불해협에서 드레이크의 잉글랜드 함대에 전멸
    • 1590년 대규모 흉년
    • 1595년-1598년 프랑스와 전쟁
    • 1621년-1643년 30년 전쟁 참전
    • 1621년-1648년 네덜란드와 전쟁 재개

네덜란드

  • 1477년-1568년 합스부르크의 지배.
  • 1568년-1648년 독립운동
    • 빌럼 판 오라녜가 군대를 모집해 네덜란드 진격. 그러나 알바에게 패배
    • 독립운동은 게릴라 전술로 성과.
  • 1573년 알바의 가혹한 정책에 17개 주가 단결해서 항의, 알바 해임.
  • 1578년-1592년 파르네세 통치: 종교(가톨릭) 강조
  • 1579년 북부 7개 주 우트레흐트 연맹 창설
  • 1581년 독립선언
  • 1600년 동인도회사, 서인도회사 창설
  • 1609년 12년간의 평화 체결. 1622년 마드리드 평화조약.
  •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30년 전쟁 종전)에서 개인의 종교적 자유 허용됨(칼뱅교의 공인)으로써 독립 확정.

동인도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 1602년 설립: 1581년 독립전쟁의 연속선상에서, 1580년 에스파냐에 합병된 포르투갈의 동아시아 무역독점에 도전
  • 구조:
    • 17인 의장단 (암스테르담 8명, 젤란트 4명, 로테르담, 텔프트, 호른, 엥크화이젠 각 1명, 나머지 1명은 윤번)
      1. 전반적 회사경영방침 결정
      2. 식민지 파견인 인명
      3. 상선대 준비
      4. 수입품 가격결정
    • 6개 경제중심지의 상무부 장관들이 실세. 권한이 가장 큰 암스테르담 상무부는 8명의 의장 임명
      1. 의장단 임명
      2. 상선과 군함 파견 결정
      3. 총독 임명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군사력과 재정의 한계 때문에 처음부터 영토획득 회피, 상업망 구축에 주력
    • 18세기 초까지 희망봉, 실론, 인니, 인도 서남부 지역에 상업기지 건설
    • 인도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와 경쟁 때문에 독점 불가능
    • 인니에서 인니 각 섬들이 다른 나라와 교역을 금지하는 조약 체결
  • 바타비아에 총독 파견
    • 네덜란드 본국인을 식민하지 않고 원주민들을 관료로 양성해서 고용, 기술이전. 원주민들 중에서 지배계층 등장
    • 원주민들의 관습과 도덕을 존중, 자치권 부여
    • 식민지 지배의 전형적인 간접통치 방식
    • 종교적 관용정책, 원주민과의 결혼금지 → 원주민들에게 좋은 반응
  • 1623년 이후 150년간 흑자 기록(17세기에 11.25% 흑자, 18세기에 36% 흑자)
  • 7년전쟁(1756년-1763년) 기간에 적자, 1789년 파산
    • 파산 원인:
      1. 증대되는 행정비용
      2. 식민지 관리의 부패와 무능
      3. 주식회사의 구조적인 문제점
      4. 아시아 상품의 가격하락

영국 동인도회사

  • 1600년 설립. 출항 때마다 국왕의 헌장을 받아야 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
  • 1657년 무역독점권을 받지만 국내 상황과 관련성
  • 1701년 신동인도회사 탄생, 1701년 의회 헌장에 의해 구동인도회사와 통합, 1858년까지 존속.
  • 구조
    • 최고 의사결정기관: 24명의 의장단
    • 주주 중 500파운드 이상 주식보유자들로 이루어진 이사회
    • 이사는 의장선거에서 1표씩 행사
    • 이사회가 회사정책을 변경할 수도 있음
    • 합리적 구조, 많은 이익부여
  • 1661년-1691년 배당금 22%
  • 18세기의 배당금 감소 (1710년대 10%, 1720년대 8%, 1930년대 7%, 1750년대 8%)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비해 덩치는 작지만 부채가 없음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유럽 전체가 시장, 영국 동인도회사는 영국이 시장
  • 17세기에는 네덜란드처럼 원주민 지배자와 우호조약 체결하며 간접지배
  • 18세기 초 인도에 집중하기로 결정하며 인니에서 철수
    • 1717년 3곳의 상업군사기지 설치
      1. 봄베이: 1661년-1668년 포르투갈에게 넘겨받음. 인도 내륙의 정치 불안이 원주민을 봄베이로 유도
      2. 마드라스: 원주민에게 조약으로 양도받음. 1690년 무굴제국이 지배. 이후 정기적 공납으로 조차지 유지
      3. 캘커타(포트윌리엄): 1698년 무굴 황제와 조약을 맺어 조차받음
    • 1717년 동인도회사의 인도관세 면제
    • 18세기 중엽까지 영국의 인도에서의 위치는 불안정했음

프랑스 동인도회사

  • 1664년 콜베르가 창설, 사기업이라기보다 국영기업
  • 초기에는 국가 지원 없이 식민정책 추진. 마다가스카르 상업기지 확보 실패 이후 콜베르가 직접 개입
  • 구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전범으로
    • 20개 지방의회가 1개 중앙협의회(21명) 구성, 중앙협의회가 비유럽국가와의 전쟁과 평화를 결정
    • 총독과 최고재판관 임명권은 정부가 보유
    • 프랑스 함대가 회사를 보호, 재무부 외에 해군부도 개입
  • 개인자본 유치에 실패. 투자한 개인들은 정부의 강요로 투자
    • 주식의 절반은 정부, 절반은 개인. 그 중 상당부분은 정부관여 기관이 소유.
    • 배당금은 이익금에 의해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 명령으로 결정됨
  • 흥하지 못한 이유
    • 자본금이 적어서는 아님 (정부의 막대한 자본투자)
    • 유럽의 정치상황 때문: 1670년대 네덜란드 침략전쟁, 1689년-1713년 영국, 네덜란드와 전쟁 등에 전쟁자금 지원
    • 1708년 파산위기, 정부 지원으로 모면.
    • 1719년 존 로(John Law)가 재건했으나 1721년 파산.
  • 경영정상화 시도
    • 대대적 조직개편: 주주이사회의 의장단 선출, 정부는 감독관만 파견.
    • 1732년이 되면 정상화. 인도에 상업기지 구축. 그런데 7년 전쟁에 패배하여 망
    • 1785년 새로운 회사 설립하지만 1793년 폐쇄

30년 전쟁 (1618년-1648년)

배경 — 1555년 이후 오스트리아

  • 페르디난트 1세 1556년-1564년
  • 막시밀리안 2세 1564년-1576년: 종교 문제에 중립적 자세. 개신교가 크게 확대.
  • 루돌프 2세 1564년-1612년: 1609년 황제칙서. 보헤미아(체코)에서 종교적 자유 인정
  • 마티아스 1612년-1619년: 합스부르크 중심의 제국체제 구축 노력.
  • 마티아스의 조카 페르디난트, 보헤미아 왕이 됨. 1617년 에스파냐 펠리페 3세의 지원을 받은 페르디난트 체코 의회 탄압
  • 1618년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
  • 1619년 페르디난트 2세 황제 등극 (재위 -1637년)
  • 체코 의회는 불복하고 프리드리히 폰 팔츠 백작을 왕으로 선출. 프리드리히가 승낙.

제1차: 뵈멘-팔츠 전쟁

  • 페르디난트는 에스파냐, 가톨릭 제후연합(Liga, 바이에른이 중심), 교황의 지원을 바탕으로 보헤미아와 팔츠 공격
  • 1620년 암 바이센베르크 전투에서 황제군 승리
  • 에스파냐군의 팔츠 점령, 프리드리히는 라인 강 타고 네덜란드(에스파냐에 저항 중)로 도피.
  • 1623년 보헤미아 재가톨릭화, 독일화 작업

제2차: 덴마크 전쟁(1625년-1629년)

  •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 독일 종교 문제에 개입
  •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1583년-1634년)의 등장
    • 체코 출신인데 가톨릭화되어 황제 밑에서 개신교 탄압에 맹활약
  • 1629년 뤼베크 조약: 크리스티안 4세의 굴복
  • 뤼베크 조약 당시 페르디난트 2세의 가능성
    1. 합스부르크 보편제국 건설(카를 5세의 구상) — 반대세력 프랑스, 스웨덴
    2.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절대왕정의 성립(발렌슈타인의 주장) — 반대세력 독일 제후들
    3. … …그러기 위해선 우선 독일의 재가톨릭화 — 반대세력 개신교 제후들
  • 1629년 제국반환령 — 1552년(파사우 휴전) 이후 개신교 제후들이 획득한 토지 몰수
  • 1630년 레겐스부르크 제후회의
    • 제국반환령에 대한 제후들의 반응. 개신교 제후 뿐 아니라 가톨릭 제후들도 참여.
    • 요구사항:
      1. 제후들의 특권(libertas) 보장
      2. 발렌슈타인의 해임
    • 황제: "껒ㅗ"

제3차: 스웨덴 전쟁(1630년-1635년)

  • 1630년 독일 제후들의 구원 요청을 받은 구스타브 2세 아돌프, 병력 2만 명 끌고 독일 북부 해안에 상륙.
    • 남하해서 팔츠 해방, 황제 잡으러 빈으로 동진.
    • 그전까지 무패였지만 발렌슈타인, 구스타브 2세 아돌프에게 연전연패
  • 1631년 스웨덴과 프랑스의 동맹
  • 전쟁 초기 틸리와 발렌슈타인의 성과
  • 1632년 뤼첸 전투
    • 30년 전쟁 최대의 전투인 — 발렌슈타인과 구스타브 2세 아돌프 회전
    •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전사하지만 스웨덴이 승리
  • 1634년 노르딩겐 전투: 지휘부 날아간 스웨덴 패배
  • 1635년 프라하 평화조약 — 개신교의 지위 인정
    • 여기서 전쟁이 끝날 뻔 했는, 데…

제4차: 프랑스-스웨덴 전쟁(1635년-1648년)

  • 프랑스의 능동적 참여로 전쟁 재개
    • 종교전쟁, 황제-제후 전쟁을 넘어 "국익"전쟁으로 도약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인데 개신교 편들어 참전)
  • 20년 넘는 기간동안 국제적으로 지지고 볶으며 독일 황폐화
  •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1. 종교의 자유
      • 칼뱅교 인정 — 네덜란드와 스위스의 독립 보장.
    2. 제후들의 특권 보장
      • 황제와 제국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군사권 및 외교권까지 자치 (사실상 독립국)
    3. 동서 강대국 체제 성립
      • 서유럽의 프랑스, 동유럽의 스웨덴(발트해 제해권 장악)
      • 중세 보편제국의 개념 완전히 폐기.
      • 중부유럽(독일-이탈리아; 구 신롬)은 동서 양강의 완충지역, 권력공백지역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