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중세 기독교 제국

프랑크 왕국

메로베우스조

  • 클로도베쿠스 1세(482년-511년)
    • 486년 로마 잔당 시아그리우스에게 승리, 북프랑스 지역 영토 획득
    • 496년 아타나시우스파 기독교로 개종 (다른 게르만족은 아리우스파)
    • 500년 부르군트인에 승리
    • 507년 동고트인 테오도리쿠스의 남프랑스 진격 방어
    • 511년 분할상속: 전왕이 죽으면 분할된 뒤 분할된 애들끼리 치고받아 일시 통일, 통일한 왕이 죽으면 또 분할, … 패턴의 반복 (카롤루스조 때도 마찬가지)
  • 클로타리우스 1세 단독지배 558년-561년
  • 클로타리우스 2세 단독지배 613년-629년
  • 614년 클로타리우스 칙령(Edictum Chrotharii): 봉건제의 법적 기원
    1. 국왕은 백작령의 토지 소유권을 존중한다. — 국가공권력을 지방귀족에게 이전
    2. 왕국의 중심지역인 아우스트리아, 네우스트리아, 부르군트에 궁재(Maiordomus)를 설정 — 국왕이 지배하지만 궁재의 자율성 인정
  • 다고베르투스 1세 629년-639년 단독지배
  • 639년 이후 체제 붕괴

카롤루스조

  • 피피누스 2세(679년-714년) — 아우스트리아의 궁재
    • 687년 테르트리 전투 — 네우스트리아 궁재와 부르군트 궁재 연합군 격파
      1. 왕국의 재통합 가능성 시사
      2. 왕국의 중심부가 서부에서 동부로 이전
  • 카롤루스 마르텔루스(714년-741년): 피피누스 2세의 사생아
    •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이슬람 침략 격파 (별개 문명권으로서의 유럽의 시작?)
    • 741년 피피누스 3세(서부: 네우스트리아, 부르군트, 프로방스)와 카를로마누스(동부: 아우스트리아, 슈바벤, 튀링겐) 분할상속
  • 피피누스 3세
    • 747년 카를로마누스가 수도원 들어가면서 단독지배
    • 751년 킬데리쿠스 3세 폐위, 보니파티우스에 의해 왕 등극
    • 752년, 754년 로마 원정
    • 768년 카롤루스 1세와 카를로마누스 1세에게 분할상속
  • 카롤루스 1세 마그누스
    • 771년부터 단독지배
    • 772년-804년 색슨인 원정
    • 773년-774년 랑고바르드인 원정
    • 789년-812년 슬라브족 원정
    • 788년 바이에른 통합
    • 795년 에스파냐 변경백 설치
    • 799년, 800년 로마 원정
    • 800년 12월 24일 서로마 황제 등극
    • 814년 사망
  •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
    • 816년 교황 스테파누스 4세에 대관식
    • 830년, 833년 왕자들이 상속 문제로 반란
  • 840년 루도비쿠스 1세 사망 — 상속 분쟁
    • 842년 스트라스부르 맹세
    • 843년 베르됭 조약 — 제국 3분할 : 로타리우스, 카롤루스, 루도베쿠스가 중부, 서부, 동부 각각 계승
    • 855년 로타리우스 사망으로 중프랑크 3분할. 장남 루도베쿠스 2세가 이탈리아왕 및 서로마 황제 직위 계승
    • 836년 삼남 카롤루스, 896년 차남 로타리우스 2세 사망
    • 870년 메르센 조약: 알프스 북부 중프랑크를 숙부들인 카롤루스와 루도베쿠스가 분할

유럽의 탄생 (8세기-10세기)

  • 그리스-로마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던 "유럽" 개념의 탄생: 8-10세기
  • 구 로마 권역이 3분화되면서 동방은 비잔틴, 남방은 이슬람, 서방이 유럽 = 프랑크
  • "유럽"에 영향을 미친 유산
    1. 헬레니즘 — 그리스-로마
    2. 헤브라이즘 — 기독교 (이 두 개는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권도 공유하는 바)
    3. 게르만 정신 — 자유, 평등, 개인주의
  • 유럽이 다른 대륙처럼 지리적 개념이 되는 것은 19세기 이후. 원래 유럽은 지리적 개념이 아닌 문화적 개념
  • 독자적이라기보다 상대적인 자기정체성 보유: 자기 특징이 아닌, 타자(이슬람)를 설정하고 거기에 대비되는 자신을 설정
  • 751년 교황 스테파누스 2세가 인정한 피피누스 3세의 작위: 로마의 보호자이며 프랑크인의 왕(Patricius Romanorum et Rex Francorum)
  • 800년 교황 레오 3세가 인정한 카롤루스 1세 마그누스의 작위: 로마 황제이며 프랑크인의 왕(Imperator Romanorum et Rex Francorum)
  • 962년 교황 이오하네스 12세가 인정한 오토 1세의 작위: 로마와 프랑크인의 황제(Imperator Romanorum et Francorum) — 못 내켜 하며 두 가지 조건을 걸고 승낙.
    1. 교황은 황제의 말을 들어야 함.
    2. 서임권: 고위 성직자(주교, 대주교)를 임명할 권한
      • 당시 동프랑크 왕국이 동방으로 팽창하면서 새로이 획득한 영토에 세속영주령이 아닌 주교령(주교는 아들이 없어서 죽으면 영지가 왕에게 반환되고, 여차하면 교체 가능)을 설치했기 때문
      • 중세 초기 기독교 세계는 황제(정치권력)가 교황(종교권력)에 명백히 우위에 있었음

서임권 투쟁

(같이 보기)

  • 클뤼니 수도원의 청빈, 개혁운동
  • 11세기부터 클뤼니 수도사들이 세속성직자계에 진출
    • 1049년-1054년: 레오 9세의 교회 개혁 — 교회(세속성직자)가 타락했다
    • 1073년: 그레고리우스 7세(세속명 힐데브란트) 교황 선출 — 로마 귀족들이 반대했으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모후의 조언에 따라 승인
    • 1074년: 사순절 공의회에서 성직자 결혼 금지령 — 성직자는 결혼하지 않고 예수의 삶을 모방하는 고귀한 이여야
  • 1075년: 사순절 공의회에서 교황의 서임권 주장 — 이렇게 고귀한 성직자를 어차피 세속인인 황제가 임명하게 둘 수 있냐?
    • 하인리히 4세의 부황 하인리히 3세는 교황을 세 명을 갈아치운 무소불위의 황제
    • 1076년 1월: 황제 하인리히 4세, 아버지 보고 배운 대로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퇴임 요구
  • 1076년: 사순절 공의회에서 교황이 황제 파문(세례 취소)
  • 1077년 1월 25일-1월 28일: 카노사의 굴욕
  • 1080년: 로마 원정
  • 1084년: 클레멘스 3세를 대립교황으로 옹립
  • 1088년-1099년: 로마 귀족들, 우르바누스 2세(클뤼니 출신)를 교황으로 선출
    • 그레고리우스 7세의 실패 원인 복기 → 자체 무력이 없었기 때문
    • 이탈리아 귀족, 프랑스 왕 등 신롬 황제에게 반대하는 세력 규합 → 그 결과물이 1095년 클레르몽(클뤼니 옆동네) 공의회
  • 1122년 9월 23일: 보름스 강화 — 하인리히 5세와 칼릭시투스 2세, 임명권은 교황에게, 추천권은 황제에게
  • 프리드리히 1세: 볼로냐 대학 설립. 황제권 근거를 로마 제국에서 찾고자 로마법 연구.

십자군

  • 십자군의 계기
    • 1074년: 동방 기독교의 구원 요청 (그레고리우스 7세 시절)
    • 1095년: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클레멘시오스의 구원 요청
    • 1095년 11월 26일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제창
  • 1기: 성지 수복 및 경영이 목적
    • 1096년-1099년 제1차 십자군: 성지 회복 성공
      • 동방 지역에 서유럽식 봉건제도 이식. 예루살렘 왕국, 트리폴리 백국, 안티오키아 후국, 에데사 백국 건국
    • 1147년 1149년 제2차 십자군
      • 셀주크 튀르크의 남하로 에데사 백국 멸망한 것이 계기
      • 목적(에데사 백국 수복) 달성 실패.
    • 이슬람 세계의 반격: 살라딘의 십자군 국가들 평정 (e.g. 1187년 하틴 전투) 88년만에 예루살렘 함락
    • 1187년-1192년 제3차 십자군
      • 성지 재탈환을 목적으로 최대 규모 소집 (잉글랜드왕, 프랑스왕, 신롬황제)
      • 1190년 6월 10일 이코니온 전투에서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살라딘에 승리
      • 1191년 리처드와 살라딘의 휴전
  • 2기: 교황 인노첸티우스 3세 "적그리스도 = 마호메트" 로 규정, 이슬람 세력 전체의 타도가 목적
    • 1202년-1204년 제4차 십자군
    • 1128년-1129년 제5차 십자군 —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2세
    • 1248년-1284년 제6차 십자군 — 프랑스 국왕 루이 9세
    • 1270년 제7차 십자군

기독교 제국의 몰락

  • 십자군 실패 → 십자군을 제창한 교황권 실추 → 교황중심주의(울트라몬타니즘) vs. 국민교회주의(갈리카니즘)
  • 1302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 삼부회에서 프랑스 교회주의 제창
  • 1307년 보니파키우스 8세 납치 시도. 납치는 불발되었지만 보니파키우스 8세 홧병으로 사망. 프랑스에서 교황을 세움(아비뇽 유수)
  • 로마에서 대립교황, 제3교황 난립 (1378년-1414년 교회 대분열)
  • 신롬 황제 지기스문트 콘스탄츠 공의회 소집, 교황 난립 정리.
  • 일시적으로 황제권 부활. 하지만 곧이은 종교개혁으로 가톨릭 세계관에 의한 기독교 제국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