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로마 공화정과 제정

기원과 성립

  • 팔라티움 언덕의 라틴족(람네스부, 티티에스부, 루케레스부)과 에스퀼리움, 비미날리스, 쿠리날리스 언덕의 사비니족이 결합해 도시국가 형성 — 7언덕 6부족 연맹체로 시작

로마 기원설

  • 고유설: 7왕시대 from 기원후 1세기 리비우스의 로마사
    • 로물루스(로마의 어원), 누마 폼필리우스,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안쿠스 마르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 "타르퀴니우스"는 에트루리아 이름.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음을 암시?
    • 툴리우스가 무슨 개혁을 했다는데 실패해서 에트루리아 지배로 회귀?
  • 외래유입설: 아이네아스 from 기원후 1세기 베르길리우스의 희곡
    • 아이네아스의 손녀 로메(Rome)에서 로마라는 이름이 유래
    • 로마는 트로이아의 후계국가다… 기자… 아니 아이네아스 서래설
  • 트로이는 기원전 1150년, 로물루스는 기원전 8세기.
    • 현재 받아들여지는 로마 창립일: 기원전 753년 4월 21일 (로마 개천절)
    • 이탈리아 반도 남쪽의 그리스인들에 저항하는 이념으로 트로이아설이 초기에 유행, 이후 로마가 자리를 잡으면서 자생이념으로 로물루스가 나온 것으로

로마 멸망 부정설: 기독교적 세계관. 로마 = 세계 그 자체.

  • 히에로니무스: 알파~오메가를 다니엘서 7장의 "네 마리 짐승"에 착안, 4단계로 해석
    • 제1짐승: 메소포타미아 문명 바빌로니아
    • 제2짐승: 오리엔트 문명 페르시아
    • 제3짐승: 그리스 문명
    • 제4짐승: 로마 문명
  • 기독교에서 멸망과 구원은 동시에 온다.
  • 로마가 망하면 세상이 망함 ⇔ 세상이 안 망했네? 그럼 로마도 안 망했지?

공화국

공화국이란?

  • Res publica = public thing = 공적인 것
  • 공화국 이전에는 왕(rex)이 지배. 공화국에서는 법(lex)이 지배. 왕 대신 법이 통치한다 — 법치주의
  • 기원전 509년 공화정 혁명: 법치주의로의 전환, 에트루리아로부터의 독립, 카르타고에게 인정…

공화정의 사회구조: 귀족공화국

  • 공화정 혁명의 주도세력은 귀족들. 로마에는 50여 개의 귀족 가문이 있음
  • 공화정 전기의 형태: 전통귀족(patrici), 평민(plebis), 소수의 노예
    • 포에니 전쟁 이후의 분화: 신흥귀족(nobiles), 기사(equites), 빈민(proletari), 절대 다수의 노예
  • 귀족들의 권력기관: 원로원(Senatus) → 권고(consulta)
  • 평민들의 권력기관: 평민회(Commitia Plebis) → 결의(plebis cita)

공화정의 정치구조:

  • 백인회(Commitia centuriata): 전쟁과 평화를 결정(주권자?). 집정관을 선출.
    • 백인대별로 투표. 즉 100명당 1표.
    • 귀족들은 18개 기병 백인대를 형성.
    • 평민들은 무장에 따라 1~5신분으로 나뉘고 그것을 다시 연소자(iunior)와 연장자(senior)로 나눔. 40+40+45+45 = 170개 백인대.
    • 빈민들 1개 백인대 + 의장대, 위생병 등 4개 백인대 = 5개 백인대.
    • 총 193개 백인대. 과반수 97표. 귀족부터 순서대로 개표. 과반수가 넘어가면 아랫신분들은 더 이상 투표하지 않음. 귀족+1신분 = 18+(40+40)=98표. 귀족과 1신분만 쳐도 이미 과반수보다 1표 많음
  • 집정관(Consul): 병사들에게 선출된 군 총사령관. 정부수반. 2명으로 구성, 상호거부권(veto). 임기 1년.
    • 독재관(Dictator): 국가 비상상황 때 거부권을 씹을 수 있는 권한을 집정관 중 하나에게 부여. 임기 6개월 이하.
  • 법무관(Praetor): 집정관 부재(전쟁)시 정부수반 대행. 처음엔 2명이었는데 점점 많아짐.
  • 재무관(Questor): 재정, 회계. 본래 4명으로 시작(집정관 따라다는 2명, 법무관 따라다니는 2명). 이후 총독 따라다니는 애들까지 해서 마구 늘어남
  • 안찰관(Adile): 일반 행정.
  • 전집정관(Proconsul):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원로원에서 집정관의 군통수권만 연장시켜주는 것
  • 감찰관(Censor): 군대 조직을 위해 인구를 조사, 이후 감찰기능 추가. 집정관과 거의 동격.
  • 귀족들의 인생 루트: 안찰관 → 재무관 → 집안 내력에 따라 법무관, 총독… → 집정관 → 전집정관 → 원로원
  • 이들 정무직들은 임기제. 임기가 끝나면 원로원 원로가 됨. 즉 원로원은 집정관의 선배들의 집단.

신분투쟁

  • 제1차 신분투쟁
    • 기원전 494년 성산 사건: 평민들의 정치적 파업.
      • 평민안찰관직(신전 관리)을 만들어 평민들에게 허용.
      • 호민관(Tribuni) 신설. 2명으로 시작되어 이후 10명으로 증가.
    • 기원전 485년 귀족들의 반발 — 신분 폐쇄, 통혼 금지 (전통귀족의 양계혈통제 유지)
    • 기원전 451년-기원전 449년: 10인 대법관 회의에서 12표법(Leges duodecim tabularum) 제정. 로마 최초의 성문헌법
      • 관습의 성문화
      • 신분제 개념에 대한 국가이념의 승리
      • 통혼 금지, 부채로 인한 자유 상실(하층평민들이 고리대금으로 인해 귀족의 노예로 전락) 인정 — 귀족들의 주장 인정
      • 사생활 영역에서의 가부장 전권 존중
    • 12표법 이후 평민들의 반발로 병사회가 돌아가지 않아 5년간 혼란.
    • 기원전 445년 통혼법(Lex Canuieia) — 통혼의 인정. 귀족들과 상층평민의 유착. 하지만 하층평민들의 갈등은 여전
  • 제2차 신분투쟁
    • 갈리아 참사(하술) 이후 갈등의 표면화 → 군 지휘부(귀족들이 독점)의 무능, 시민군의 약화(노예가 늘어나고 평민이 줄어듦) 비토
    • 기원전 367년-기원전 366년 리키니우스 법(Lex Licinius)
      1. 집정관 중 한 명은 평민에서 선발. 이후 독재관(기원전 356년), 감찰관(기원전 351년), 법무관(기원전 337년)도 평민에게 개방 ← 지휘부 문책
      2. 부채 문제 — 원금에서 지불된 이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상환 (신불자 구제) ← 병사력의 약화 대책 1
      3. 대토지 소유 제한 — 상한 500 유게라(125 헥타르). 자영농 5인 가구의 생활에 필요한 토지가 40 유게라. (고용 창출) ← 병사력의 약화 대책 2

대외정책

  • 기원전 510년 카르타고와 조약 체결(공화정 혁명과 얼추 비슷한 시기).
    • 로마는 카르타고의 서지중해 독점 인정. 카르타고는 로마와 동맹시들을 불가침.
    • 당대 최강국이던 카르타고에게 독립국으로 인정받음 — 그전까지는 에트루리아의 지배를 받음?
  • 라틴 전쟁 (기원전 498년-기원전 493년)
    • 동맹시(soci) 제도의 정착: 라틴 도시들의 대내적 자치 인정, 대외정책에서 로마의 군통수권 인정. 동맹시 시민은 로마 시민과 동등한 권리.
    • cf. 속주(provincia)는 대내, 대외 양면으로 자치를 불허하는 지역. 속주 주민들은 모두 노예가 됨.
  • 기원전 406년-기원전 396년: 베이(Veii; 에트루리아 수도)와 전쟁, 로마의 승리. 100년만에 옛 지배자를 역정복

켈트족과 전쟁

  • 기원전 400년경 켈트족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 포 강 유역에서 남하 (로마는 에트루리아와 싸우던 시절)
  • 기원전 390년 로마와 첫 충돌
  • 기원전 387년 갈리아 참사: 7월 18일 알리아 강변 전투에서 패배. 로마 점령. 켈트족은 약탈 후 철수. (경계의 날 7월 18일)
    • 대내정책의 안정(제1차 신분투쟁) → 대외정책의 성공(에트루리아 정복) → 대내적 갈등과 모순의 희석화 → 대외정책의 실패(갈리아 참사) → 대내적 갈등의 표면화(제2차 신분투쟁)
    • "팽창하지 않는 국가는 몰락한다" — 대외적 성과는 지배계층을 안정시켜 준다
  • 기원전 380년경 로마 도시 재건, 7개 언덕을 성곽으로 연결
  • 기원전 358년 켈트족 침략에 대비해 라틴 연맹과 조약 갱신
  • 기원전 348년 카르타고와 2차 조약 체결 — 서지중해 봉쇄. 다만 시칠리아에서는 로마의 무역 승인 (포에니 전쟁의 원인)
  • 기원전 345년 남이탈리아의 카푸아(그리스 도시국가)와 동맹 체결 — 남이탈리아의 마그나 그라이키아 도시의 로마 동맹시 체제 편입 시작.

삼니움 전쟁

  • 기원전 343년-기원전 341년 제1차 삼니움 전쟁
  • 기원전 340년-기원전 338년 라틴 전쟁
  • 기원전 326년-기원전 304년 제2차 삼니움 전쟁
  • 기원전 298년-기원전 290년 제3차 삼니움 전쟁
  • 중부 이탈리아 패권 장악. 기원전 285년-기원전 282년 켈트족 침략 방어.

타렌툼 전쟁: 기원전 282년-기원전 272년.

  • 마그나 그라이키아와의 전쟁.
  • 에페소스 왕 피로스가 그리스 본토로부터 용병으로 참전(코끼리병 동원).
  • 고생 끝에 승리, 남부 이탈리아 장악. 모두 동맹시 체제에 편입.
포에니 전쟁: 로마의 서지중해 장악
로마 카르타고
육상국 해상국
상대적으로 약한 지휘부 상대적으로 강한 지휘부
강한 병사력 (시민군) 약한 병사력 (피지배민, 용병)
시민정신 상인정신
  • 로마 시민정신
    • 덕망(비르투스), 명예(글로리아), 자유(리베르타스), 위엄(디그니타스), 긍휼(피에타스)
    • 이런 시민정신을 갖춘 사람들이 res publica 를 지도할 수 있음
    • 이 시민정신에서는 재산(하비타스)를 강조하지 아니함 (상인정신과의 대조점)
  • 제1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54년-기원전 241년
    • 시라쿠사가 카르타고와 로마에 모두 개입을 요청, 양군이 모두 시칠리아(마지막 마그나 그라이키아 영토) 개입
    • 기원전 260년 밀라에 해전 — 로마 승리
    • 기원전 255년 투니스 해전 — 카르타고 승리
    • 기원전 241년 시칠리아 서부 해전에서 로마 승리
    • 평화조약 체결 — 로마의 시칠리아 영유 인정. 10년간 3200 탈렌트 배상금.
    • 로마는 이 배상금을 기반으로 북진, 켈트족 공략 개시. 플라미니우스가 기원전 221년 밀라노 공략. 기원전 238년에는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프로방스를 속주화
  • 제2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18년-기원전 201년
    • 기원전 227년, 하밀카르 바르카(구 시칠리아 총독) 이베리아 반도에 신카르타고 개척. 하밀카르가 원주민과 싸우다 죽자 아들 한니발 바르카가 후계 총독에 취임
    • 기원전 218년, 신카르타고 개척을 완료한 한니발은 카르타고 본국과 상의 없이 로마에 복수전 개시 (10만 명)
    • 기원전 218년 트레비스 전투
    • 기원전 217년 트라시모 전투에서 한니발과 플라미니우스의 대결, 한니발이 승리하고 플라미니우스는 전사.
    • 기원전 216년 한니발 알프스 종단(잔여 병력 2만 명).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 주력부대 전멸.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수비전.
    • 기원전 215년 한니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와 동맹 (카르타고 본국이 지원을 안 해줌)
    • 기원전 212년 한니발, 남이탈리아로 진격(동맹시 체제 붕괴 의도). 카푸아 항복, 타렌툼 저항.
    • 로마의 반격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등장
    • 스키피오, 기원전 209년 신카르타고 점령, 기원전 205년 마케도니아에 승리
    • 기원전 204년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 전사. 하지만 이탈리아 반도를 나오지 않는 한니발
    • 기원전 204년 스키피오 아프리카 상륙, 카르타고 본국 공격. 본국에서 한니발 소환.
    •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 스키피오 한니발에 승리.
    • 기원전 201년 평화조약 — 카르타고 해군 10척으로 제한, 카르타고는 아프리카 이외 지역에서 전쟁수행 불가. 50년간 10000 탈렌트 배상금
  • 제3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149년-기원전 149년
    • 기원전 152년 카르타고 배상금 완납. 카르타고의 경제적 저력에 질린 로마는 예방전쟁을 기획.
    • 누미디아의 공격을 받은 카르타고가 반격하자 로마는 평화조약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개전
    • 스키피오의 손자 소 스키피오가 지휘, 카르타고 멸망

마케도니아 전쟁: 로마의 동지중해 장악

  • 제1차 기원전 215년-기원전 205년
    • 한니발의 동맹으로 참전.
    •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아프리카누스 동생)에게 패배.
  • 제2차 기원전 200년-기원전 197년
  • 제3차 기원전 171년-기원전 168년

포에니 전쟁 이후 사회변화와 개혁

  1. 경제적 변화
    • 매우 넓은 속주, 매우 많은 속주민(노예신세)들이 생기면서 노예노동에 입각한 대농장경영(라티푼디움)이 만연
  2. 사회적 변화
    • 파트리키가 통혼으로 거의 사멸, 노빌레스의 대두,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프롤레타리 양산. 노예 급증.
  3. 군사적 변화
    • 자영농이 몰락하며 시민군이 몰락. →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4. 문화적 변화
    • 시민정신의 몰락, 마케도니아 전쟁을 통해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 유입. 물질주의의 만연. (페트라르카: "공화정 망할 때 로마도 망했다!")

호민관 개혁

  1. 기원전 133년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 부친은 집정관 역임자, 외조부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인 은수저. 제3차 포에니 전쟁에 참전한 전쟁영웅
    • 라티푼디움은 리키니우스 법 위반이라고 주장, 대토지를 몰수하여 프롤레타리에게 불하할 것 주장.
    • 농지법(Lex Agraria): 토지소유 상한선은 2배로 올려 1천 유게라로 올려줄 테니 나머지는 토해내라.
    • 반발하는 귀족들에게 맞아죽음
  2. 기원전 123년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남동생
    • 재판관법(Lex Iudicaria): 재무관까지밖에 못 올라가던 에퀴테스들에게 법무관 자격 열어줌. 경제력이 있는 에퀴테스 포섭 시도. 하지만 별 소득 없음
    • 곡물법(Lex Furmentaria): 물가조정법. 밀가루, 포도, 올리브 모두 귀족들이 생산을 독점하다 보니 담합. 밀가루 가격이 쌀 때 원로원이 매입해 비쌀 때 풀 것 제안
    • 형처럼 맞아죽음 (또는 자살)
  3. 기원전 102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 시민병제 → 모병제. 프롤레타리를 군인으로 받아들여 급료와 군장 제공. 17년 복무하면 토지불하.
    • 자기 돈으로 공화국을 위해 싸우는 시민병 → 돈 주는 장군을 위해 싸우는 모병 → 사병화, 군벌화
  4. 기원전 100년 사투르니누스
    • 빈민안착법: 새로 얻은 페르가몬 속주를 프롤레타리에게 불하하자
    • 프롤레타리들도 이탈리아 반도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고, 귀족들도 반대. 실패
  5. 기원전 91년 드루수스
    • 농지법 재도전: 빈민들이 이탈리아를 벗어나기 싫어하니, 결국 몰수해서 분배하는 수밖에 없다.
    • 마지막 개혁이며 이것도 실패하면서 호민관 개혁은 실패로 종료. 로마는 내전기에 돌입

로마 내전

  • 기원전 88년 폰토스 전쟁
    • 원로원, 원래 속주(총독 파견)이었던 폰토스를 임페리움(임페라토르 파견)으로 변경.
    • 속주 총독은 행정권만 소지. 임페라토르는 행정, 입법, 사법, 군사권을 모두 소지.
    • 누구를 임페라토르로 임명할 것인지로 옵티마테스(벌족파)와 포풀라레스(민중파)의 대립 : 원로원은 술라, 시민들은 마리우스 지지
  • 기원전 82년-기원전 79년 술라의 독재
    • 마리우스가 폰토스 원정을 간 동안 술라가 로마 정국 장악
    • 술라 "종신독재관" 취임 (원래 독재관 임기 반년)
    • 기원전 79년 술라 퇴진, 폼페이우스 정권 장악
  • 기원전 73년-기원전 71년 제3차 노예전쟁(스파르타쿠스의 난). — 제1, 2차 노예전쟁은 시칠리아에서 있었음
  • 기원전 60년 제1차 삼두정치(폼페이우스, 카이사르, 크라수스) — 개인적 합의에 의한 삼두정치
    • 각자 불안한 속주를 맡아 평정하기로. 카이사르 갈리아, 폼페이우스 이베리아, 크라수스 시리아
    • 기원전 58년-기원전 51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 기원전 52년 원로원은 폼페이우스를 단독집정관에 선출, 카이사르에게 군대해산 요구
  • 기원전 49년-기원전 46년 카이사르의 내전
    • 기원전 49년 1월 7일 — 폼페이우스의 청에 따라 카이사르에게 원로원 최종권고 발동
    • 기원전 48년 폼페이우스 패전 후 이집트에서 살해됨
    • 기원전 47년 카이사르 이집트 정복, 클레오파트라를 왕으로 옹립
    • 기원전 45년 로마에서 카이사르 정권 확립
  • 리베라토레스의 내전
    • 기원전 44년 2월 15일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를 왕으로 추대. 원로원이 갑분싸 되자 카이사르는 스스로 사양.
    •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 피살. 브루투스는 마케도니아로, 카시우스는 시리아로 도주
    • 기원전 43년 11월 11일 삼두법(Lex Titia) — 제2차 삼두정치는 원로원의 법으로 만들어짐.
    • 폰토스로 시작된 임페리움(비상지역)이 점차 넓어지는 양상. 이후 3개로 나뉜 임페리움, 임페라토르를 통일한 것이 임페리움 로마눔의 개념.
    • 기원전 42년 필리피 전투에서 카시우스 사망, 20일 후 브루투스 사망 — 공화파의 몰락
  • 안토니우스의 내전
    • 기원전 40년 제국의 삼분할 통치 합의
    • 기원전 36년 안토니우스, 옥타비아(옥타비아누스 누이)와 이혼하고 클레오파트라 결혼
    •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 승리, 기원전 30년 이집트 멸망
  • 기원전 28년 내전 종결 선언, 기원전 27년 옥타비우스 → "아우구스투스"

제정 약사

  •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조 (기원전 27년-기원후 68년): 개판(…)
    • 1.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양자
    • 2. 티베리우스 임페라토르: 아우구스투스의 사위, 양자.
    • 3. 칼리굴라: 게르마니쿠스(티베리우스 조카)와 아그리피나 1세(옥타비아누스의 딸 율리아의 딸)의 아들. 폭군이라 피살
    • 4.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티베리우스의 조카. 마누라아그리피나 2세(게르마니쿠스의 딸, 칼리굴라 누이)에게 피살.
    • 5. 네로: 아그리피나 2세가 드루수스와 결혼하기 전 낳은 아들. 폭군이라 피살.
  • 제1차 군인황제 시대 (68년-69년) — 속주민 출신 보조병들에게 부임지 맡기고 시민병들 로마로 끌고와 쿠데타 일으키는 패턴
    • 6. 갈바 세르비우스: 타라코 총독. 1개 군단(6천 명)으로 네로 축출. 원로원에게 아우구스투스 받지만 다른 군단의 지지 받지 못함
    • 7. 오토 마르쿠스: 루시타니아 총독. 갈바 축출. 라인 군단의 지지 받지 못함.
    • 8.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저지 게르마니아 군사령관. 4개 군단. 도나우 군단의 지지 받지 못함.
  • 플라비우스조 (69년-96년)
    • 9. 베스파시아누스: 유대 주둔군 사령관. 시리아 군단 지지를 받음. 비텔리우스 축출.
    • 10. 티투스: 베스파시아누스의 장남
    • 11. 도미티아누스: 베스파시아누스의 차남
  • 네르바-안토니누스조(96년-192년): 오현제 시대
    • 12. 네르바: 도미티아누스를 기록말살형에 처함. 원로원 추대로 아우구스투스.
    • 13. 트라야누스: 네르바의 양자.
      • 101년-105년 다키아 정복(도나우 강 너머). 동부로는 아라비아 지역 진출
      • 114년 원로원은 옵티무스(최고) 칭호 부여
      • 114년-117년 파르티아와 전쟁, 아르메니아, 메소포타미아 정복 — 로마제국 최대 판도
    • 14. 하드리아누스: 트라야누스의 양자. 별명 여행황제
      • 파르티아와 화해를 위해 유프라테스 강으로 철수
      • 브리튼, 라인, 도나우 지역에 방벽(Limes) 구축. 전체적 대외정책을 방어로 선회
      • 132년-135년 유다 지역에서 반란. 예루살렘 정복으로 끝남
    • 15. 안토니누스 피우스: 하드리아누스의 제1양자. 하드리아누스의 평화정책을 계승
    • 16.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하드리아누스의 제2양자. 부업 스토아 철학자.
      • 167년-175년 제1차 게르만족의 침략 — 도나우 강변으로 역침
      • 178년-180년 제2차 게르만족의 침략
      • 하드리아누스의 제3양자 루키우스 벨루스를 공동황제로 앉힘(169년 몰)
    • 17. 콤모두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폭군이라 피살.
  • 난립기 (192년-193년)
    • 18. 페르티낙스: 노예출신. 망조 ㅉㅉ
    • 19. 디디우스: 원로원 출신으로 원로원 동의로 취임
  • 세베루스조 (193년-235년)
    • 20.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카르타고 출신. 판노니아 총독.
  • 제2차 군인황제 시대 (235년-284년)
    • 30. 데키우스: 도나우 군단 추대. 원로원 승인. 문무겸비.
    • 33. 발레리아누스: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하여 샤푸르의 포로가 되어 옥사. 황제 권위 실추.
      • 제국의 3분화: 260년 갈리아 제국 독립. 사산조를 막아낸 오데나투스가 안티오키아를 도읍으로 동방공국 선포.
    • 이후 쭉 열심히 망하러 가는 길
  • 전제정 — 콘스탄티누스조 (284년-364년)
    • 43. 디오클레티아누스 (284년-305년)
      • 제국 4분할 — 동방정제, 동방부제, 서방정제, 서방부제
      • 43-3. 콘스탄티우스 1세: 서방부제.
    • 4황제 시대
      • 324년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서방부제 콘스탄티누스가 동방부제 리키니우스에 대해 승리
      • 324년-기원전 337년 콘스탄티누스의 단독 지배
      • 330년 5월 11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
    • 44.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우스 1세의 아들.
    • (동방식) 절대군주제의 완성 — 황제의 신격화
      1. 군사력 강화 — 군대를 75개 군단 90만명으로 확대. 공격부대, 국경방어부대, 황제근위대, 지역민부대
      2. 통치지역의 분할 - 4황제 관할 구역 - 14개 군(dux → duke의 전신) - 117개 현(comes → count의 전신)
      3. 중앙관제의 정비 - 총리
      4. 종래의 원로원 통합
      5. 기독교: 313년 기독교 공인. 325년 니케아 공의회(아리우스파 vs. 아타나시우스파).
    • 45. 콘스탄티우스 2세(337년-361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삼남. 357년 라인 방어선 재구축
  • 발렌티니아누스조 (364년-388년)
    • 375년경 남러시아의 동고트 왕국이 훈족의 침략으로 붕괴 — 고트인 남하의 시작
  • 서로마 — 테오도시우스조 (392년-45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