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리스 패권동맹

아테네 대내정치사

  • 기원전 8세기 군주정
  • 기원전 7세기 귀족정
    • 기원전 621년 드라콘 입법 (악법) → 귀족정에 저항
    • 기원전 593년-기원전 591년 솔론의 개혁
    • 솔론의 개혁 실패 이후 아테네는 귀족 중심의 평야파 ↔ 상공업자 중심의 해안파로 분열, 30여년 동란 (아나르키아 anarchia = 아르콘을 못 뽑던 시절)
    • 제3의 파벌, 도시빈민 중심의 산악파 등장. 기원전 561년 산악파의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아테네 최초의 참주로 등극
  • 기원전 6세기 참주정
    • 페이시스트라토스는 해안파와 결혼동맹, 기원전 545년 결혼동맹을 깨서 축출
    • 북부에서 용병을 모아 마라톤 만에 상륙, 해안파 축출(스파르타로 도망).
    • 페이시스트라토스 사후 아들 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가 집권
    • 기원전 510년 히파르코스 치정사건으로 암살. 스파르타 군대를 업은 해안파의 복귀. 히피아스는 페르시아로 도망
  • 기원전 4세기 민주정
    • 기원전 510년-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 개혁으로 민주정 형성
      • 군제개혁: 열 개 부족에서 열 명의 스트라테고스(장군) 선발, 한 장군 밑에 병사 1천 명. 스트라테고스 열 명이 돌아가면서 총사령관을 맡음.
      • 참주 재발을 막기 위한 도편추방 제도 도입
    • 기원전 388년 중우정으로 타락

페르시아 전쟁

이오니아 전쟁: 기원전 500년-기원전 494년

  • 소아시아 반도 이오니아인들의 거주지역을 페르시아가 지배
  •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기원전 525년 오리엔트를 재통일 → 서쪽으로 계속 이동해 이오니아 도달
  • 밀레토스를 중심으로 6년간 완강히 저항
  • 밀레토스 참주 밀티아데스, 그리스 본토에 도움 요청 — 아테네 삼단노선 20척 파병

제1차 페르시아 전쟁

  • 밀레토스 정복 완료한 다리우스, 지원군을 보낸 아테네를 응징 차원에서 기원전 490년 침략 (배 준비한다고 4년 걸림)
    • 페르시아에 망명해 있던 히피아스, 다리우스에게 자기 아버지처럼 마라톤 만에 상륙하라고 조언
    • 한편 아테네에서는 밀티아데스가 아테네로 망명해 스트라테고스(장군)에 임명 (밀티아데스의 아들이 키몬)
  • 삼단노선 400척(10만 대군) 마라톤에 상륙. 아테네 측은 1만 명 팔랑크스. 3일 밤낮 전투 끝에 아테네의 승리
  • 다리우스 사후 페르시아의 왕위계승전쟁(기원전 486년)과 이집트 반란.
  • 페르시아의 재침에 대비한 아테네의 대비
    • 기원전 483년 라우레이온 은광 수익금 문제
      • 크산티포스(클레이테네스의 아들, 페리클레스의 아버지), 아리스티데스: 빈민들에게 나눠주자 (민주파)
      • 테미스토클레스: 은광으로 함대를 건설하여 페르시아 상륙에 대비하자 (보수파)
      • 보수파가 승리해 함대를 건설하기로 하지만 기원전 482년 민주파가 보수파를 도편추방 (전쟁 일어나면서 도로 불러들임)
    • 기원전 481년: 함대만 가지고 되겠나. 스파르타 측에 "전 헬라인의 동맹" 형성 및 그 맹주 제의. 스파르타가 승인하여 동맹 형성.
      • 스파르타와 앙숙인 아르고스, 아테네와 앙숙인 메가라, 테베는 빠짐
      • 이름만 전 헬라인 동맹이고 사실상 스파르타와 아테네 동맹

제2차 페르시아 전쟁

  •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1세의 침입
    • 아테네가 삼단노선 200척 지어논 것을 보고 육로(트라키아 → 마케도니아 → 테살리아 → 그리스)로 우회기동
  • 그리스측의 방어: 아테네는 바다 앞 살라미스 섬으로 도망가고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지협을 틀어막는 것이 방어전략
    • 의외로 빠른 페르시아의 진군속도 → 아테네가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 스파르타 국왕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에서 저항, 전멸
    • 스파르타군을 몰살시킨 페르시아군은 아티카 반도를 쭉 내려가 아테네 점령(빈집털이). 겨울이 오자 테살리아로 퇴각.
  • 기원전 479년
    • 날 풀리자 다시 내려온 페르시아군. 아테네는 여전히 텅 비어 있음. 결국 살라미스 섬에 틀어박힌 아테네와 함대결전 시도
    • 살라미스 해전 (테미스토클레스가 지휘) → 아테네의 승리
  • 기원전 478년 플라타이아이 전투 — 페르시아군 사령관 마르도니우스의 초기 전사, 스파르타의 승리. 사령관을 잃은 페르시아군 철수.

델로스 동맹(기원전 478년-기원전 404년)

  • 페르시아 재침 예방을 위한 동맹 — 발기인 아리스티데스(민주파)
    • 델로스 동맹의 궁극적 목적은 아테네 해상제국의 건설. 그리스 일대 제해권의 장악.
  • 아테네를 맹주로 180-120 개의 도시국가로 구성, 동맹에 군사력, 군사비 제공
  • 군사력 제공 국가는 거의 아테네 뿐이었고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군사비 제공
  • 초기 1년에 430 탈렌트 군사비 모금, 각 도시국가는 빈부의 차이에 따라 1-30 탈렌트 제공
  • 전 헬라인 동맹(보수파 테미스토클레스가 맺었던)은 따로 파기되지 않고 동시에 유지됨

아테네 패권주의

민주파 보수파
급진 민주정 (빈민 포섭, 민회 만능주의) 온건 민주정 (중산층 이상 위주, 귀족정 요소)
델로스 동맹 (아리스티데스) 전 헬라인 동맹 (테미스토클레스)
반스파르타 친스파르타
페르시아 전쟁 이후 20년간 민주파와 보수파의 갈등

대내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될수록 대외적으로 제국주의가 발전 (근대 제국주의와 유사한 양상)

  • 기원전 470년대 대내정치는 민주파(아리스티데스), 대외정치는 보수파가 담당하는 적절한 조화 (페르시아의 재침 위협)
    • 해군 지휘시키느라 도편추방이 풀렸던 테미스토클레스는 기원전 472년 아리스티데스에게 재도편추방 → 페르시아로 망명, 페르시아 해군머장이 됨. 아테네 재침을 명령받자 음독자살.
    • 그럼 대외정치를 맡은 보수파는 누구? 밀티아데스의 아들 키몬.
      • 키몬이 하는 일: 에게 해를 돌아다니며 페르시아에게 점령당한 이오니아 지역을 수복. 수복한 국가들은 또 델로스 동맹에 가입.
  • 기원전 460년대 민주파와 보수파의 대립이 나타나기 시작
  • 기원전 468년 아리스티데스 사망. 같은 해 에우리메돈 전투에서 키몬이 페르시아군에 승리
    • 에우리메돈 전투는 플라테이아의 육전과 살라미스의 해전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승리 by 플루타르코스
    • 에우리메돈 전투 이후 페르시아의 재침 위협은 일소, 델로스 동맹의 표면적 목적은 달성됨. 하지만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해산시키지 않고 유지.
  • 기원전 465년 낙소스와 타소스(보호비 30 탈렌트씩 내던 애들)의 델로스 동맹 탈퇴 선언 — 아테네는 이것을 탈퇴가 아닌 "반란"으로 간주하여 진압 (즉 결성 10년차 델로스 동맹은 아테네가 주인이고 나머지는 속국인 상태)
  • 기원전 463년 스파르타에 지진 발생, 메세니아인들의 노예반란. 전 헬라인의 동맹에 의거, 아테네에 도움 요청
    • 군대파견은 중대사이므로 민회를 열자 — 보수파 키몬과 민주파 에피알테스의 논쟁
      • 에피알테스: "스파르타를 도와주는 것은 적국을 지원해 이롭게 하는 것이다 (스파르타는 이 기회에 망해야 한다)"
      • 키몬: "페르시아와 싸워본 경험에 따르면, 그리스는 아테네의 해군과 스파르타의 육군이라는 두 다리로 서야 한다"
      • 전쟁영웅으로 명망높은 키몬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일단 스파르타를 지원
    • 그동안 스파르타에 신세만 져왔던(참주정 타도, 레오니다스의 희생, …) 아테네가 이딴 식으로 나오니 스파르타는 황당
  • 기원전 461년 에피알테스의 개혁: 원로원 무력화가 개혁의 골자.
    • 본래 민회에 의안을 올리는 주체는 500인 위원회(국가중대사)와 원로원(시민의 사형).
    • 즉 원로원의 마지막 권한인 사형언도권을 500인 위원회(시민들의 집단)로 넘김. 시민법정을 구성(얘네들이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함).
    • 키몬이 원정에서 돌아와 보니 자기 친구들 모임인 원로원이 노인정이 되어 있음 → 원로원 복권운동 하다 트집잡혀 도편추방(전 헬라인의 동맹 사실상 파기).
    • 키몬이 추방되고 이틀 뒤에 에피알테스는 암살당함 (개판;;)
    • 보수파와 민주파의 거두가 하루이틀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민주파 페리클레스(클레이스테네스의 손자)가 정권 장악. 이후 30년 독재
  • 기원전 460년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 시작
    • 아이기나 공방전 — 아르고스와 아테네 동맹
    • 기원전 458년 타나그라 전투 — 아테네-아르고스 동맹군(1만 명)에 대한 스파르타(2천 명)의 승리
    • 기원전 457년 아테네, 스파르타 소유의 에기나 섬 함락
    • 아테네와 스파르타 대립 계속
  • 페리클레스의 개혁
    • 기원전 458년 아르콘 추첨제를 3신분까지 확대, 500인 위원회에 보수 지급 — 무산자도 공직을 맡을 수 있게 됨
    • 기원전 451년 시민요건법 - 부계혈통제에서 양계혈통제로
    • 대내적 민주주의 발전 →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 팽창
  • 키몬의 귀환과 죽음
    • 기원전 451년, 추방기간 10년 채우고 아테네 귀환. 페리클레스 최대의 정치적 위기.
    • 키몬의 민회 설득으로 아테네는 공격대상을 페르시아로 전환, 키프로스 원정.
    • 기원전 450년 키프로스에서 키몬 사망.
    • 기원전 445년 아테네, 페르시아와 칼리아스 평화 체결 — 다시 공격대상을 스파르타로

펠로폰네소스 전쟁

  • 전쟁 원인
    • 궁극적 원인: 아테네의 패권주의(대외적), 중우정(대내적) by 투키디데스
    • 직접적 원인: 코린토스와 아테네의 무역분쟁
      • 코린토스 만의 항구도시 파가에를 소유한 메가라가 델로스 동맹 가입, 아테네 선박이 코린토스 만을 왕래.
      • 아테네가 에게 해 뿐 아니라 코린토스 만의 패권까지 장악하려 시도
      • 코린토스의 동맹국인 스파르타가 선제공격
  • 전쟁 진행: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의 대립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31년-기원전 421년. 아르키모다스(스파르타 왕) 전쟁

  • 스파르타의 선제공격으로 전쟁 시작
  • 페리클레스가 생존 중일 때(기원전 429년까지)는 아테네에게 유리
  • 페리클레스 사후 아테네는 다시 민주파와 보수파의 대립
    • 민주파 클레온(3신분 출신), 보수파 니키아스(귀족 출신). 니키아스가 전쟁 지휘
  • 기원전 425년 클레온이 삼단노선 100척에 중보병 만 명 태워 필로스 섬(스파르타 수비군 300명) 공략 성공 — 메세니아의 스파르타 노예반란을 선동하기 위함
  • 기원전 424년 스파르타는 아르키모다스가 물러나고 브라시다스가 중심이 되어 전쟁 지휘
    • 군제개혁. 전 사병의 장교화
    • 스파르타의 약점이 메세니아라면, 아테네의 약점은 흑해 방면의 밀 보급로. 흑해 관문인 암피폴리스 공격.
  • 기원전 423년 암피폴리스 전투(투키디데스 종군)에서 스파르타 승리. 암피폴리스 시민들을 자기네 사병화
  • 기원전 422년 암피폴리스에서 브라시다스와 클레온 모두 전사 (양측 강경파의 사망)
  • 기원전 421년 니키아스의 평화: 30년짜리 휴전
    1. 암피폴리스에서 스파르타 철수 — 아테네의 밀 보급로 안정
    2.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포로 250명 석방 — 인구 한 명 한 명이 아까운 스파르타
    3. 에게 해(동부 그리스)에서 아테네의 패권 인정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 클레온 사후 민주파 지도자 알키비아데스(페리클레스 조카)
  • 기원전 416년 세게스타(델로스 동맹)와 시라쿠사(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시칠리아 분쟁에 개입
    • 패배한 세게스타는 델로스 왕초인 아테네에 금 60 탈렌트(국내의 모든 금을 싹 다 긁어옴)를 갖다바치며 구원 요청(우리에겐 금이 많다고 뺑끼), 아테네 개입
    • 시라쿠사는 펠로폰네소스 왕초인 스파르타에 구원 요청.
    • 중심부의 제국주의 → 주변부의 갈등 → 중심부의 전쟁 해턴 — 훗날의 파쇼다 사건, 모로코 사건 비슷
  • 기원전 413년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
    • 삼단노선 100척, 총사령관 니키아스, 부사령관 알키비아데스
    • 싸우기 전부터 자기들끼리 내분: 니키아스는 해상봉쇄 주장(선거를 때문에 아테네 병사 피해를 줄이고자), 알키비아데스는 세게스타에 상륙 주장, 라마르코스는 그냥 바로 쳐들어가자고 주장.
    • 니키아스의 주장대로 해상봉쇄 결정 (오판) — 바로 쳐들어갔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
    • 알키비아데스의 신성모독 사건: 전쟁 지휘 도중 재판 받으라고 본국 소환.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로 도주, 아테네 군사기밀을 다 불어버림
    • 시라쿠사에서 아테네 함대 전멸. 니키아스는 포로로 잡혀 처형
  • 기원전 411년 아테네 과두혁명(것봐라 민주정 하다 망했다). 그러나 곧 스파르타를 등에 업은 알키비아데스가 민주정 복구
  •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 페르시아 함대(리디아 태수 키루스; 황제의 7남)의 도움으로 아테네 포위 — 아테네 항복. 델로스 동맹 해체. 스파르타 패권

후일담

  • 기원전 401년 아나바시스-쿠낙사 전투
    • 페르시아에서 왕위계승전쟁. 키루스가 수사의 아르탁세르크세스(황제의 2남)를 칠테니 스파르타에 깁앤텍 요구.
    • 그리스군 1만 여명이 키루스의 좌익에 참전. 그런데 싸우던 도중 키루스 사망. 나머지 키루스군은 아르탁세르크세스에게 항복. 그리스군은 유프라테스 강을 타고 귀국.
  •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 전투: 스파르타는 테베에게 패배
  • 기원전 360년 테베는 테살리아에게 패배
  • 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열국을 평정시키며 그리스 세계 몰락
  • 몰락 원인은 복지정책이다? — 구스타프 슈몰러의 주장
    • 아테네 재정은 전비와 복지로 이원화되어 있었음 (라우레이온 은광 논쟁)
    • 기원전 342년 데모스테네스와 이소크라테스의 논쟁: 데모스테네스는 복지기금을 전비로 유용하여 시민들을 모두 무장시키자고 주장. 이소크라테스는 반대.
    • 라우레이온 은광 논쟁 때는 전비를 선택. 그때는 아테네가 깨어 있었다. 그런데 망할 때는 정신이 썩어서 망했다.
    • 왜 썩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복지가 과잉해졌고 그 복지 때문에 썩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