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동양과학의 좌절과 전면적 서구화

19세기 전반 세력균형의 역전

  • 동양: 전통의 지속, 쇄국
  • 서양: 산업혁명, 시민혁명
  • 서구열강의 동양 진출
    • 중국: 아편전쟁(1839년-1842년)
    • 일본: 미일화친조약(1854년)
  • 각 나라의 생존전략은?

양무운동

양무운동(Foreign Affairs Movement, 1861년-1894년)

  • 서양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부국강병책
    • ≒ 자강운동(Self-strengthen movement)

발단 및 전개:

  • 아편전쟁 패배 이후의 문제의식
    • Q: 서양이 지닌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 A: 선견포리()의 기술 → 이이공이
  • 임칙서 및 그 지적 후계자들을 중심으로 태동, 그러나 중앙 조정은 아직 시큰둥
  • 1860년 영불 연합군의 원명원 약탈 사건으로 위기감 임박
  • 천진의 천진기기창(무기공장), 상해의 강남제조국, 양자강 중류 한양철창(철공소), 복건성 복주선정국(조선소)

양무파의 면면: "양무대신"들

  • 증국번(1811년-1872년)
  • 이홍장(1823년-1801년)
  • 좌종당(1812년-1885년)
  • 장지동(1837년-1909년): 한양철창의 지도자 — "중체서용" 개념의 고안자

강남제조국: 양무운동의 핵심기관

  • 강남제조국의 구성
    • 병기창 + 번역기관 + 교육기관 = 격치서원(Shanghai Polytechnic)
    • 양무대신 + 막료 + 중국인 과학기술자 + 개신교 선교사
  • 동서양 지식의 혼종(hybrid) 추구
    • 서구의 과학 + 중국의 고전
    • science = 격치학(gezhi xue)이라고 번역 = 책을 통해 배우는 지식
      • 번역 위주의 서양과학 수용
  • 존 프라이어(John Fryer) 저널 『격치휘편』 간행 — 쭉 모아 보니 백과사전이 됨
  • 원소명칭 번역
    • 기존 용어 쓰기: sulfur → 유황(硫黃)
    • 음차
      • benzene → 변서니(徧西尼), 변소은(徧蘇恩), …
      • chloroform → 각라로복이밀(格羅路福耳密), 가로방모(哥路仿姆), …
    • 자유번역
      • oxygen → 양기(생명을 유지시키는 공기)
      • hydrogen → 경기(가벼운 공기)
    • 형성법으로 새로운 문자 발명
      • magnesium → 镁 (金 + 美mei)
      • cadmium → 鎘 (金 + 鬲ge)

북양함대

  • 1888년까지 78척의 서양식 함대 보유
  • 기함 정원호, 진원호
    • 전장 100 미터, 폭 20 미터
    • 속도 시속 28.5 킬로미터
    • 승조원 400 명
    • 어뢰발사관 포함 함포 21문
  • "모방"에서 "개조"로?

“연시 (演試, sample test) 에 따르면 이 무기 (子路迅直機) 는 관통력이 좀 약하다. 274m (300碼) 밖에서는 0.6cm (2分) 강철판을 관통할 수 없었고, 18m (20碼) 거리에서 쏘아야만 관통할 수 있었다. … 이전의 보고서에서는 흑색화약탄으로 274m 밖에서 0.6cm 강철판을 뚫을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모델은 좋지만, 아직 제조법을 완전히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조를 하려면 먼저 각국의 각종 신식 후장총을 구해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개조의 방향을 정하고 난 다음에는 제조법을 추구한다. 많이 살펴보고 많이 비교할수록 결함은 적어질 것이다. 단시간에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말고, 장기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힘써 구해야 한다. 샘플을 한 번 만들어보면, 그 다음부터는 ‘방제’ (仿製, copy) 의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이홍장, 『강남제조국기』 「제조표」

  • 중국 강남제조국과 일본 요코스카 조선소의 선박 비교
해안호 카츠라기호
제작시기 1872년 1886년-1887년
전장 300 피트 206 피트
선폭 40 미터 35 미터
흘수 19 피트 15 피트
속도 9.5 노트 = 17.6 km/h 13 노트 = 24.4 km/h
마력 1,800 1,622
무장 크루프, 암스트롱,
어뢰발사관 등 26문
크루프 7문, 속사포 1문,
기관총 4문, 어뢰발사관 2문

양무운동의 실패

  • 청일전쟁 황해 해전(1894년) 북양해군 소멸
    • 대개 기술적 원인보다는 정치적 원인으로 설명 — 서태후 개새끼!
  • 중체서용론의 한계: 80년대 이전까지 사상사적 통설:
    • "중국의 학문을 바탕으로 하고 서양의 학문을 적용한다"
      • "체" = 사회체제, 이념 → 전통을 유지
      • "용" = 서양 군사기술 도입
    • 중체서용론과 전쟁 패배의 인과관계 불확실
    • 전쟁에서 패배한 후 중국 지식인들이 내린 사후진단에 불과

양무운동 이후:

  • 중국 지식인들의 지향
    • 하드웨어 도입: 양무운동(1861년)
    • 제도개혁: 무술변법(1898년)
    • 황제체제 전복: 신해혁명(1911년)
    • 전반적 사상개조: 신문화운동(1919년)
  • 전면적 서구화와 과학의 위상 변화
    • 격치학 → 일본식 용어 과학(kagaku, kexue)
    • 진독수, 호적: 새선생(Mr. Science)과 덕선생(Mr. Democracy) — 나라 꼬라지가 갈급하여 과학엘리트가 정치에 투신하는 경향

메이지 유신

서설: 에도 시대 일본의 과학문화

  • 과학기술을 대중문화로 오락하는 문화 —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
    • 카라쿠리 인형: 원시적 로봇
    • 산액(算額) 누가 수학문제를 신사 에마에 걸어두면 참배객들이 거기 도전. 문제를 푼 사람은 새 문제를 쓴 에마를 걸어놓는 일종의 수학문제 릴레이
      •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음. 다만 하나의 "문화"임을 확신할 수 있을 뿐
    • 와산(和算): 서양수학 전래 이전 일본 전통수학. 여러 문파(…)가 있어서 서로 계산법을 경쟁
    • 광학기기: 유람도구로 사용된 망원경, 환등기
    • 풀이 커지다 보니 여자도 등장한다!: 수학문제집 『산법소녀』(1775년)
  • 조선이었으면…: 완물상지(사물에 집착하다 정신을 그르친다!) 장난감을 극혐하는 유학자들

메이지 유신

  • 대정봉환(1867년) → 메이지 유신(1868년)
    • 정이대장군-다이묘 관계의 막번체제 폐지
    • 강력한 중앙정부 건설, 부국강병
  • 메이지 유신의 정책기조
    • 문명개화(文明開化) ≒ 전반서화(全盤西化)
    •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일본의 전면적 서구화

  • 목표: 서양 과학의 “연구research(대학원급 이상의 지식 창출 활동)” 전통을 일본에 정착
  • 1단계: 구미의 일류 과학자 초빙: 오야토이 (お雇い)
    • 신설된 제국 대학 교수진을 구미의 학자들로 충원 (1870년대-80년대)
      • William Ayrton (전기물리), “일본의 거울과 그 마술적 성질 (1879년)
      • Edward Morse (생물), “오모리의 조개무덤” (1879년)
  • 2단계: 일본인 학생들의 유학과 귀국(1890년대 이후)
    • 일본인 과학기술자 집단의 형성
    • 19세기 말-20세기 초, 세계적 수준의 연구 전통의 확립에 성공
      • 로베르트 코흐(결핵균 발견자, 노벨상 수상자)의 대학원생이었던 키타사토 시바사부로,
      • 러더퍼드보다 먼저(?) "토성형 원자모델" 제안한 나카오카 한타로(1904년)
      • 닐스 보어와 양자물리학 토론을 한 니시나 요시오(1937년)
  • 1920년대 이후: 아시아적 전통의 재조명
    • 아인슈타인 = “머리와 연필만으로 지성의 혁명을 이룩한 군자(君子)” 1922년 게이샤한테 접대도 받음 (…)
    • 갓 성장하고 있는 학문을 통해 서양인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고자 하는 일본 청년들의 야심
양무운동과의 비교
양무운동 메이지 유신
유교 전통 강렬 미약
주도 계층 양무대신, 참모진, 선교사 등 중앙집권적 국가
서구인의 역할 선교사 (아마추어) 오야토이 (일류 과학자)
지식인의 지향 정치가 과학기술 전문가,
기술관료(technocrat)
구호 중체서용(中體西用) 전면서화(全面西化)
학문 방법론 번역(translation) 연구(research)
본질 격치학, 제3의 길
(전통과 서구의 잡종)
과학, 전반적 서구화
  • 결론: 근대화 = 서구화
    • 양무운동의 실패 = 동서양 “융합”이라는 실험의 실패
    • 동양 근대과학의 탄생: 격치학의 청산에 의해 달성
  • 동양에서 근대화란
    • 서구화와 동의어: 서구화가 곧 근대의 “대세”
    • 누가 빨리 서구화했는지가 성공의 요건
    • 일본의 빠른 성공의 요인: 약한 유교 전통, 외래 문화 수용의 역사, 과학오락문화 토양

한의학 논쟁

서론: 양가휘 영화 『괄사』(Gua Sha the Treatment)

  • 줄거리:
    • 극중 양가휘는 미국에 이민 온 중국계 프로그래머. 중국계 마누라와 결혼, 아들까지 낳음 — 말하자면 "아메리칸 드림"의 구현자
    • 성공했다고 아버지를 미국으로 모셔옴. 어느날 아들이 아프자 아버지가 민간요법인 "괄사(피가 나도록 문지르는 것)"를 시전
    • 아들을 병원에 데려갔더니 등에 피딱지가 잔뜩 있는 것을 간호사가 목격, 양가휘는 아동학대로 고발당함
    • 양가휘의 변호사(얘도 똥양인)는 의뢰인이 아동학대범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괄사가 "효험이 있는 치료법"임을 설명하려 시도. 예심판사 앞에서 “7경 8맥”이 어쩌고 “단전”이 어쩌고 한의학 강의. 미국인 예심판사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함
    • 양가휘 아버지는 친구 묘비 앞에서 "우린 중국에서 수천 년 동안 해온 방식인데, 왜 미국에 오니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을까" 궁상 떨고 귀국
  • 대체의학으로서의 괄사(刮痧)요법
    • “7경 8맥” “단전” “기가 흐르는 몸”
    • "모세혈관을 확장하여 혈류량을 증가시켜 인체의 자연스러운 순환을 회복합니다"
    • 동양과 서양, 두 의학 체계는 소통 불가능
  • 극중 "괄사"의 "오랜 전통"을 시종일관 강조
    • 그 전통이 바로 한방 치료가 종종 효험을 보는 이유 혹은 한의학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논리
    • "오랫동안 임상적으로 효험이 있지 않냐!"
  • 1920-30년대, 중국과 식민지 조선에서 한의학의 대중적 이미지는 어떻게 발명되었나?

서구의학 도입과 전통세력의 반응

  • 19세기 후반, 서양 의학과 한의학의 공존
  • 전통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서구의 영향력에 비례함
  • e.g. 1934년에 쓰인 지석영 전기
    • 1880년대 초 일본인에게 우두법 전수받음
    • 조선인들의 저항("아니 어떻게 소 피고름을 사람한테 집어넣냐 때려죽일 놈"), 포박령과 유배 생활
    • “외로운 선각자” 이미지의 효과
    • 일본이 베푼 과학의 세례, 조선의 무지함을 부각시키는 내용

늙은이: 어린놈이 역질을 아니하였는데 요새 동네 마마가 들었다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속이 답답하네. … 어린 것을 다섯째 역질에 잃어버리고 이것 하나 님았네.
젊은이: 저런 참혹한 일이 어디 있소. 그 새로 난 우두법이 제일 좋습디다. 왜 우두 아니 시키시오?
늙은이: 허허 우두가 좋기는 하겠네마는 나는 그것은 아니하겠네.
젊은이: 왜요? 마마에 죽을 어린아이를 우두 넣어서 살려도 싫어요? … 나는 그런 소리 들으면 화가 납네다.
늙은이: 허, 제 명에 마마에 죽을 터이면 우두를 넣어서 살리기로서니 얼마 산다던가? 다 제 명에 달렸나니 우리나라 사람은 타국 사람과 달라서 죽더라도 마마를 시켜야 하나니.
젊은이: 무엇이오? 하 답답할지고. 당신 말씀같이 생사가 명에 달렸으면, 병들어도 의원이나 약을 다쓸 데 없겠지요.
늙은이: 그래도 아니 쓸 수 있나.
젊은이: 왜 써요? 다 명에 있거든 병을 약써서 고치기로니 며칠 살겠소.
늙은이: 그는 그렇지마는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약이야 아니 쓸 수 있나.
젊은이: 옳지. 알아듣겠소. 당신 조상이 징역하였으면, 당신도 징역하고, 당신 아들 손자 다 청바지, 저고리 입힐 터이지오.

매일신보 1898. 7.1

20세기 초: 한의학의 주변화

  • 1929년 중국 국민정부, 전통의학 폐지를 논의
  • 조선 통감부, 총독부의 한의학 배제 정책
    • 동기: 선진적 근대 의료 = 일본의 조선 지배 정당화
    • 1913년 의생규칙(醫生規則) 제정, 의생 재교육
  • 한의사들의 자구책: 동서의학연구회
    • 1920년대 의생 조직, 총독부의 위생 정책에 협조
    • 스스로에 대한 근대 의학의 재교육 추구
  1. 세수할 때 양치를 꼼꼼히 하야 치아의 본색이 드러나도록 할 일
  2. 이발치 아니하신 이는 매일 반다시 머리를 빗어 백설이 업도록 할 일
  3. 귀지를 제거하여 청감도 좋고 보기에 부정치 안토록 할 일
  4. 하체와 족부는 적어도 한 달에 4-5회 동온하냉수로 씨슬 일
  5. 전신의 목욕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행할 일
  6. 수족지갑(손발톱)은 상당히 삭거할 일
  7. 구취나 액취가 있으신 이는 더욱 정결에 주의하시고 대인 시에 미려의 향속을 신체에 휴대할 일
  8. 대소변후 여하간 반다시 손을 씨슬지니 변소에 물통을 준비할 일

1916년 전선의생회 「우리 서약하옵시다」

여암(余巖, 1879-1954)

  • 중국 양의사. 한의학의 절멸 추구.
  • 한의학 배제를 위한 여암의 계략
    1. 이론과 경험의 분리: 한의학은 이론을 결여한 경험적 정보의 집합에 불과하다.
      • A라는 병증에는 B라는 약재가 잘 듣는다는 단순 시행착오의 반복 → 본능적, 직관적
    2. 다만 한의학에 유일하게 유의미한 것이 "약재의 효능"인데, 이것은 “(서양)과학으로” 설명 가능함
      • 한의사들이 생약학에 개입할 여지를 차단, (양)의사들의 약재 연구 접근권 독점
      • 1972년 여성 화학자 도유유(屠呦呦),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청호소(靑蒿素, artemisinin)” 추출. 노벨상 수상. — 여암의 테제의 충실한 계승자
  • 여암의 함정에 빠진 중국 한의사들: "맞아요 우리 이론은 정말 엉터리인데 그래도 효험이 있다는 경험은 사실입니다"

“중국 의학은 뛰어난 치료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중의학)이론이 (서양현대)과학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제 학술 단체에서는 중국 의학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의학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부터 기원하였음은 확실합니다.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치료 효과를 인식하고, 그 다음으로 이론적 생각을 가지고 효과를 설명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중)의학은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지만, 그 치료 효과만큼은 진실입니다.”

– 한의학 폐지에 반대하는 한의사들의 탄원서 (1929년 3월 21일)

아아! 이 글은 우리가 구의(舊醫)들로부터 간절하게 듣고자 했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대중들에게 보급하고자 노력해 온 생각이며, 우리 정부가 현재 [낡은 옛 의학의]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설정한 바로 그 방침(원리)이며, 중앙 위생 위원회가 구의를 폐지하는[廢除舊醫] 결의안을 통과시킨 이유이다.

중의학 비판자 왕기장(汪企張, ?-1955)
("너 이 새끼들 우리의 함정에 빠져들었구나!")

  • 한의사들의 주장과 여암의 재반박
    1. 인체를 대상으로 한 “경험” >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
      • 여전히 비과학적: 약효의 과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함
      • 비윤리적: “의술을 익히다가 사람을 망가뜨린다[學醫廢人].”
    2. 한의사 스스로에게 체화된 “솜씨”
      • 솜씨는 언어로 표현 불가능: 활 쏘기, 노련한 조타수의 비유
      • 검증의 가능성을 차단; 교육, 재생산, 논쟁, 설득이 불가능

동서의학논쟁(1934년 조선일보 지상논쟁)

  • 구도: 한의학 옹호자들과 비판자의 논쟁
    • 장기무(양의), 이을호(약사), 조헌영(신간회) ←→ 정근양(양의)
  • 정근양의 입장: 여암과 유사
    • 생약학 정보만 근대의학 속에 편입시키고 한의학은 궁극적으로 소멸해야
  • 조헌영의 입장: 한의학의 독자적 세계관, 인체관, 방법론의 강조.
    • 양의학이 국소치료라면 한의학은 종합치료, 양의학이 인공치료라면 한의학은 자연치료, 양의학이 치료중시라면 한의학은 양생중시, 양의학이 외과에 탁월하다면 한의학은 내과에 탁월, 양의학이 귀족의술이라면 한의학은 민중의술
    • 아무리 봐도 여암 단계에서 이미 다 반박된 것들 같은데…

한의학 논쟁의 함의

  • 한의학의 "경험적 성격"이란 한의학을 소멸시키고자 한 양의사들이 설정한 프레임
  • 한의학의 경험적 성격을 강조할수록 한의학의 존립 근거는 위협받을 것
    • 파편화된 약물 지식은 생약학으로 흡수하면 그만
    • 말로 전할 수 없는 "솜씨"는 과학이기를 포기한 것이라 단죄

“지배 받는 자(한의사들)의 전략은 지배 당함의 결과였다.”

— 뇌상린(雷祥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