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본초학과 박물학

근대 이전 동식물 이해: 인문학적 접근의 공존

  • 동양: 박물(博物), 본초(本草, materia medica)
    • 필드워크가 아닌 문헌을 통한 자연 탐구 → 근대 직전까지 지속
  • 서양: 자연사(natural history)
    • 상징적 세계관과 자연신학(아담 창조 이래 지금까지 자연의 사물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져간 역사) → 다윈혁명 이후 소멸

서양 자연사 전통

아리스토텔레스

  • 철학의 목표는 (이데아계 말고 현실의) "원인"설명
  • 생물의 연구는 원인의 설명에 적합 — e.g. 상어가 왜 상어냐
    • 형상인: 상어처럼 생겼으니 상어네
    • 목적인: 상어의 지느러미는 헤엄을 잘 치려고 이렇게 생긴 거야

중세: 상징적 세계관(emblematic worldview)

  • 사물에 은유, 상징, 표상을 부여하는 사고방식
    • 지식의 범주를 폭넓게 규정, 숨은 의미 찾기
    • 중세-르네상스 동식물학의 인문학적 특징
    • e.g. 자연철학자의 여우 서술: 발은 까맣고, 꼬리는 풍성하고, 주둥이는 뾰족, 식성은 뭘 먹고… ← 여기서 그쳐선 안 되고, 거기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야 여우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 중세-르네상스인들이 던졌던 질문들
    • 명칭의 정의, 종교적 함의, 관련된 속담, 격언 등
      • e.g. 말이 왜 말(equus)지? 말은 혼자 뛰지 않고 보조를 맞춰 뛰더라 → equabantur(같아짐)
    • 친화력 있는 세계의 다른 층위의 개념들
      • e.g. 13세기 초 Bestiary 의 사자 이미지: 새끼가 죽으면 사흘만에 새끼를 부활시키는 존재. 백수의 왕. 예수님 (나니아 연대기)
      • Book of Emblems(1531년): 여우가 길을 가다 가면을 주웠는데, 이리저리 살펴보다 "이 얼마나 멋진 가면인가! 그런데 뇌가 없네!" 라며 팽개쳐버림 — 지혜를 상징하는 여우 → 지식이 미모보다 낫다는 우화

대항해시대: 상징적 세계관의 소멸

  • 17세기 초에 왜 이런 일이?
    • 신대륙 발견, 새로운 생물종과의 접촉, 신대륙 동식물에게는 축적된 상징이 부재
    • 원래 중세 자연사학자들이 하던 일: 은유와 상징의 옷을 겹겹히 입고 있는 동식물의 옷을 벗겨내는 것. 그런데 신대륙 동식물들은 벌거숭이네?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가 있지만 혀튼 현상적으로는 그러함
  • 자연신학은 여전히 지속

『본초강목』의 과학과 신화

  • 저자 이시진(1518년-1593년): 의사, 박물학자
    • 본초강목은 본초(materia medica)에 관한 책?
    • 주술의료와 연단술을 비판한 과학정신의 대표자?

이시진의 연구주제(research questions)

1. 기본적 질문: "이 사물이 무엇인가?"

  • 종규(鍾馗): 당나라 때의 귀신이면서 동시에 퇴마사로 알려짐. 악몽에 시달리면 종규 초상화를 태워 먹는 민간요법 존재.
    • 이시진의 고증: 환각버섯 이름 종규(終葵)와 동음이의어. 악몽 꾸고 수면제로 버섯을 먹었던 것이 와전된 것이라 주장
  • 종규의 예에서 살펴볼 수 있는 태도: 정명(正名), 석명(釋名)의 중요성.
    • 이름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 약재 서술 첫 단계에서 약재의 이름이 반듯 피홤.
    • 새로운 의서 집필의 의도: 명칭의 혼란 종식
    • 이것은 공자가 당부한 윤리의 실천이기도 하다

2. 실용적 질문: "이걸 어따 쓰는가?"

  • 이름풀이 다음 단계는 집해(集解): 어떤 약재를 치료에 쓰려면 그 약재에 관해 완벽히 이해하는 작업 필요.
    • 예컨대 용골의 경우: 용은 오행상 물. 오장육부 중 물은 신장. 그럼 신장병 약으로 쓸 수 있겠네? 그리고 용은 제비고기를 좋아한다고 카더라 등등 전승들을 집대성
  • 수치(修治): 가공해서 약성을 증폭시키기

"용골을 빻아서 비단 주머니에 채운다. 제비를 잡아서 내장을 제거한 다음 그 안에 비단 주머니를 넣고 우물가에 걸어둔다. 하루 저녁이 지나면 전체를 가루로 낸다. 신장을 보하는 약에 첨부하면 그 효험은 기적과도 같다고 한다."

  • 이시진은 용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고전으로부터 여러 문헌이 그 존재를 이야기하니 존재한다고 쳤음

3. 분류: "이것이 어디에 속하는가?"

  • 약물학 전통의 분류체계
    • 『신농본초경』: 상품(신선 되는 약), 중품, 하품(감초 따위)
    • 『본초경집주』: 옥석, 초, 목, 과, 채, 미식, 충수, …
  • 이시진의 동물 분류
    • 충(蟲): 기어다니는 것 — 곤충, 양서류, …
    • 린(鱗): 비늘 있는 것 — 용, 뱀, 어류(돌고래, 오징어, 새우, …) …
    • 개(介): 갑옷을 입은 것 — 갑각류, 거북, …
    • 금(禽): 깃털 달린 것 — 조류(서식지에 따라 세분), 날다람쥐
    • 수(獸): 털이 난 것 — 가축, 일반 들짐승, 서(鼠; 설치류)
    • 서양의 린네 분류는 척추의 유무로 시작해서 착착착 일관적으로 전개되는데 이시진의 분류에서는 이런 일관성은 보이지 않음

이시진의 연구, 기록법

1. 관찰, 해부, 실험

  • 『시경』: 나나니벌이 나방 애벌레를 납치한다!
    • “명령에게 자식이 있었는데, 과라가 그것을 길렀노라”
    • 교훈: “자식을 정성껏 양육하면 자식이 어버이를 본받는다”
    • (이시진 이전까지) 나나니벌에게는 암수가 없어 생식을 못 하는데, 나방 유충을 유괴해 와 ‘양자’로 삼고 그러면 나방 유충이 나나니벌로 우화한다고 생각함
  • 이시진의 관찰과 결론:
    •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만물에 음양이 있는데 암수가 어찌 없을 수 있겠노 ;;
    • 나나니벌 집을 후벼서 암펄과 수펄을 발견.
    • 결론: 경전이 틀렸다!
  • 천산갑 해부
    • 조지프 니덤: "이시진은 천산갑을 '개미 먹는 비늘 달린 놈'이라 했는데, 이것은 천산갑의 라틴어 학명과 완전히 일치한다!"

능리는 중국의 악어처럼 생겼지만 악어보다는 더 작고, 등은 잉어 같지만 잉어보다는 더 크다.
머리는 생쥐처럼 생겼는데, 이빨은 없다. 복부에는 비늘이 없고, 대신 털로 덮여 있다. 혀는 길고 주둥이는 뾰족하며, 꼬리는 몸통만큼 길다. 꼬리의 비늘은 날카롭고 두꺼우며, 삼각형이다.
뱃속은 장부가 다 갖춰져 있고, 위장이 특히 크다. 혀를 늘여서 개미를 꿰어 먹는다. 위장을 갈라본 적이 있는데, 그 안에 개미가 한 되는 족히 들었다.

2. 과학적 기법으로 시각의 한계 보완

  • 당대 시장이 발달하며 가짜 약재가 유통됨 (한약재란 모름지기 썰어 놓으면 구분이 안 됨)

"약재를 파는 사람은 눈이 두 개, 그것을 가공해서 조제하는 사람은 외눈박이, 그 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눈이 없는 사람이다.”

『본초몽전』(1565년)

  • 이시진의 가짜 식별법: 연소, 분쇄, 마찰, …
    • 구리는 태우면 푸른 불꽃을 낸다.
    • 마노는 빻으면 열을 낸다.
    • 단사(황화수은)은 종이에 문지르면 붉은 색을 낸다.
  • 인간과 영장류를 본격적으로 구분 — "원숭이"의 발견과 그 한계
    • 야인(野人, wildmen)의 전통적 관점과 이시진의 새로운 관점
      • 전통적 관점: 인간과 동물의 중간 존재, 야만인 오랑캐.
      • 이시진의 새로운 관점: "야인"은 명백한 동물(獸). 이렇게 구분한 이유는 원숭이 골을 약재로 쓰는데 원숭이와 오랑캐 인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식인을 하게 될 판이기 때문
    • 한계: 황당무계한 어느 야녀(野女) 설화를 신뢰
      • 당시 영장류 암, 수가 인간 남, 녀를 납치해 가서 강간한다는 신화가 널리 믿어짐
      • 그렇게 납치된 사람이 탈출 과정에서 야녀의 배를 갈랐는데 뱃속에서 문자가 새겨진 옥돌이 발견되었다 카더라 — 믿을까 말까? 이시진은 믿음
      • 생쥐, 새의 경우는 신체에 문자의 형상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확인됨. 야인도 같은 카테고리(동물)의 존재.
      • 유추의 결론 → “동물의 몸에서 문자가 나타나는 것은 자주 나타나는 일이구나. 따라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非異]!”

2. 신화, 초자연적 세계관 배격에 불철저

  • 자기 경험의 한계를 인식했기 때문
    • 보이지 않는 세계는 알 수 없음
    • 예: 양자강에 산다는 "역"이라는 생물. 강가에서 성교하는 남녀에게 독을 쏘아서 병을 옮긴다고 함. 독을 쏘기에 사공, 강가의 독이라고 계독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역의 모습이라고 전해지는 그림들이 모두 제각각 다름.
    • 자기 경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경험을 존중할 수밖에 없음
    • 나나니벌의 암수를 검증했듯이 자기 능력 안에서는 실험을 해 볼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존 전승이나 문헌을 그대로 신뢰

“학문이 얕은 선비가 어찌 옛날부터 지금까지 온 세상에 존재한 변화무쌍한 사물들을 제대로 연구해보지도 않고 한 귀퉁이 정도의 식견만을 가지고서 괴상히 여기고 멀리할 수 있겠느냐?”

  •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진위 판단 유보

“천방국(아라비아)에는 나이가 70-80 정도 되면 스스로 인신공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음식을 끊고 목욕재계하며 오로지 꿀만 먹는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소변으로 꿀이 나올 정도가 된다. 죽고 난 뒤에는 석관에 안치하고 꿀을 채운 다음 매장한 날짜를 새긴다. 100년이 지나서 꺼내보면 꿀약[蜜劑]이 되어 있다. 팔다리가 부러졌을 때 바르면 소량으로도 효험을 본다. "밀인(蜜人, mellified man)"이라고 알려진 이 약재 이야기가 과연 사실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권말에 첨부하여 기록을 남겨둠으로써 박학다식한 누군가가 진실을 밝혀주길 기대한다.”

본초강목 권52

결론: 전근대의 낯선 생물학

  • 동서양의 전통 만물학
    • 동서양 모두 전통 생물학은 역사 및 문학과 긴밀하게 결합
    • 문헌을 존중하여 비합리적 기록을 청산하는 데 불철저
  • 이시진의 차별성
    • 자연의 광대함, 이성의 한계를 자각하는 겸손한 "(과)학자"
    • 자신이 자의적으로 진위를 판단하지 않고, 인간의 경험을 수집, 보존, 후세에 전수한 "기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