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체와 법의학

송자 신화화

  • "세계 법의학의 아버지"
  • 명청 시대에는 주목받지 못하고, 20세기 전반 민국 시대에는 근대 법의학을 도입하려는 사람들에게 비판의 대상
  • 1950년대 이후 중국 법의학자들 사이에서 "중화민족"의 영웅으로 부상
  •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한 애국주의라고만 볼 수 있나?
  • 한국에도, 혹은 다른 분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을까?
    • 예컨대 한국에서 허준을 "세계 의학의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않고, 한국 현대의학 의사들은 허준을 추앙하지도 않음

동양 법의학의 이념과 실제

  • "원통함이 없게 하라"
    • 전통 법의학의 대명사 『무원록』
    • 검시서 저술가들의 궁극적 목표
  • "신중하고 또 신중하라"
    • 살인자를 밝혀내는 구체적 기법과 그 한계
    • 현대의 사형제 폐지론과는 다른 맥락의 논의

조선시대의 사건 수사와 검시

초동수사
* 수사 인원의 선발: 의생(으사양반), 오작(검시를 하는 서리), 항인(현장통제하는 떡대), …
* 법물: 검시도구
* 현장보존, 증인과 용의자 소집
* 검시와 시장 작성
* 세원집록이나 무원록 같은 텍스트북에 수록된 "시형도"(인체 급소 그림들)에 따라 상한 부위 기록

공정성을 위한 행정조치
* 수령의 친검
* 현장 및 시장을 유족이 직접 확인

검시 방법

  • 안색(시체 빛깔) 살피기
    • 적색은 구타, 청색은 질식사, 독살, 백색은 살해 후 위장, 황색은 병사
    • 붉은색은 적자, 적흑, 담홍, 미적, 미적황, 청적, ….
  • 부패 과정 판별
    • 변색 - 악즙, 구더기 - 탈모
    • 계절별 부패 경과가 다름

전통 법의학의 과학성 — 각종 "실험적 기법"

  • 반계법: 독살 여부
  • 고초액: 혈흔 검출
  • 살해 후 위장 판별
    • 화소사 → 입안을 검사(산 채로 불타 죽으면 입 속에 재가 있지만 죽은 뒤 불타면 입이 깔끔)
    • 자액사 → 줄의 흔적(교수자살자는 흔적이 ㅅ자, 남에게 졸려 죽으면 ㅡ자). 매듭의 상태(교수자살자는 본능적으로 살려고 버둥거려 매듭이 팽팽함). 줄이 묶인 대들보(마찬가지로 자살자가 버둥거려 대들보 먼지가 쓸렸을 것)

전통 법의학의 영향

과학분야 내부

  • 인체의 성질에 대한 이해 심화 e.g. 검골도격

과학분야 외부

  • 공안소설: 전설적 재판관들을 신화화시키는 수사소설
    • 당나라 적인걸, 송나라 포청천, 청나라 시세륜 등

사례연구

박조이 변사사건(1787년, 정조 11년)

  • 등장인물: 친정오래비 박용해, 친정아버지 박장혁, 신랑 조광선, 시어머니 최아지, 동네사람 이차망, 신랑의 사촌형 조광진
  • 평산에 박조이라는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얼마 안 되어 살해된 채로 발견됨
  • 시댁에서는 사인 규명은 커녕 관아에 사망신고도 제대로 안 하고 부랴부랴 장사 지내고 치워버린 뒤 친정에 자살이라고 통보
  • 친정은 그걸 곧이듣지 않고 관아에 고발, 시어머니와 신랑을 용의자로 지목.
  • 심문:
    • 시어머니 최아지가 동네사람 이차망과 간통한 것을 며느리가 보아서 입을 막으려고 죽였다고 주장
    • 용의자들은 인정하지 않고 고문이 계속됨
  • 사건 시형도
    • 시신의 상태: 목 위 두 곳, 목 옆에 칼로 찌른 자상(경동맥?!). 목을 맨 자국, 눈은 감았고 손은 부드러움(방어흔이 없음)
    • 1차 검시: 자살 판정 (무원록의 자살 관련 조항과 일치)
    • 2차 검시: 자살 판정 (목 맨 자국이 지워졌는데 무시)
  • 피해자 유족의 격쟁(꽹과리 치며 왕에게 직소)
    • 초검관과 복검관이 조씨 일가의 먼 친척
    • 검시관들이 시장을 피해자 유족에게 공개하지 않음
    • 형조에 재수사 요청 → 안핵사 파견
  • 결말
    • 목의 상처와 목 맨 자국으로 타살 혐의 부각.
    • 고신 → 자백 → 처벌
    • 사건의 진상: 최아지가 불륜을 며느리에게 들켜서 죽인 게 맞긴 한데, 불륜 상대는 이차망이 아니고 자기 시조카 조광진이었음
    • 무고한 이차망은 고문을 못 견디고 옥사

"이 사건은 처음에 자살이라 하였다가 중간에 피살로 바뀌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에 조정 신료들과 형관들이 모두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무고한 이차망은 옥중에서 귀신이 되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아니하랴. 그러므로 형사사건은 경솔히 판단할 바가 아니고, 범인을 잡았다 해도 신중하고 또 신중[흠흠]해야 할 것이다."

정약용, 흠흠신서

김은애 복수사건(1790년, 정조 14년)

  • 사건 전말:
    • 김은애라는 처녀가 한 남자에게 구애를 받았으나 거부, 남자는 친척 노파에게 성사되면 보상을 주겠다며 중매 부탁
    • 김은애가 중매를 거부하자 노파는 김은애가 자기 친척 청년과 이미 정을 통했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며, 김은애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뒤로도 헛소문을 내고 다님
    • 참다 못한 김은애는 노파를 찾아가 칼부림, 한 번 찌르고 한 번 꾸짖기를 18회 하고 관아에 출두해 자수
  • 사건 처리:
    • 정조는 이를 "통쾌"한 일이라 하며 "삼강오륜"에 합치하는 권장할 바라고 말함

신착실 과실치사사건

  • 사건 전말:
    • 엿장수 신착실이 지게꾼 박씨와 시비가 붙음
    • 박씨는 재수없게도 지게뿔에 항문이 꿰뚤려 사망
  • 사건 처리:
    • "지게뿔은 지극히 무딘 것이고 항문은 지극히 작은 것이니 이것이 하필 꿰뚤린 것은 재수가 오지게 없었던 것이지 살해의 의도는 없었다" by 당시 형조판서 정약용
    • 정조도 이를 받아들임

인정과 관용(?)

  • 과실치사, 명예살인에 대한 관용
    • 고의성이 있더라도 "사람의 도리에 맞으면 용서한다"
    • 특히 이것이 성행한 것이 정조 시기, "의살"이 권장됨
  • 18세기 말 유교적 이상사회의 지향과 한계
    • 만백성이 "정의로운 마음"을 갖고 "의로운 분노"(맹자가 말한 수기지심)를 표출하는 사회
    • 도덕적 인간의 상호감시와 처벌
    • 정약용의 대안: "의로운 살인"의 범주를 법률로 명시하자고 주장. 그렇지 않으면 무한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 우려.
  • 결론: 아무리 동양 법의학 정신이 "원통함이 없게"라고는 해도, 현실의 사례를 보면 법의학 지식만 가지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웠다(사실상 불가능했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