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프랑스 혁명 후사

대혁명 시기 (1789-1799)

  • 혁명은 국민(nation)을 탄생시킴
  • 구체제에서 군주의 지배받던 신민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 시민들로 구성된 국가의 통치주체인 국민으로 전환

나폴레옹 시대(1799-1814): 제1제국(1804-1814)

  • 프랑스 혁명군의 후신인 제국군을 이끌고 연전연승.
    • e.g. 1805년의 아우스터리츠 전투 — 신롬을 날려버림.
  • 내부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의 핵심 가치 계승 — 시민적 자유와 평등 보장함으로써 혁명의 원리 방어, 혁명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 유지
  • 능률적인 중앙집권 체제 확립 — 통치와 행정의 중앙집권적 체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법률, 재산에 비례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세제 등
  • 혁명 가치를 계승하고, 대외적으로는 영토를 확장, 국민적 위신을 드높여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황제
  • 황제의 몰락
    • 트라팔가르 해전 패전 이후 1806년부터 대륙봉쇄령: 영국 및 영국 식민지 배가 유럽 대륙에 정박하지 못하게 봉쇄
    • 대영 무역 감소로 경제타격을 받은 러시아가 영국과 밀무역,
    • 자신의 지배권이 침해받았다고 간주한 나폴레옹은 1812년 6월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침공, 허나 대패
    • 그간 나폴레옹에 쥐어터진 유럽 나라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다구리.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대패. 나폴레옹 엘바 섬에 유폐.
  • 빈 체제: 나폴레옹 몰락 이후 "프랑스 혁명 이전"의 질서 회복을 꾀한 보수반동적 세계질서 재확립

부르봉 왕정복고 (1814-1830)

보수적 입헌군주정 — 빈 체제에 따른 부르봉 왕조의 복귀

  • 1815년 나폴레옹이 일시적으로 탈출하지만 워털루에서 쳐바르고 절해고도 세인트헬레나로 영영 퇴갤
  1. 루이 18세(재위: 1814-1824)
    • 자기가 잘나서 왕이 된 게 아님을 알아서 조심스러운 행보
    • 혁명과 나폴레옹이 성취한 터 위에 안정된 입헌군주국 건설 목표
    • 헌법과 의회의 권한 인정, 시민적 자유 보장하는 헌법의 범위 내에서 통치
  2. 샤를 10세(재위: 1824-1830)
    • 혁명 자체를 부정하고 왕권신수설 확신하면서 구체제로의 회귀 지향
    • 보수반동 정책 강화-예수회 부활, 가톨릭교회의 영향력 회복, 망명귀족의 몰수 재산에 보상으로 연금 부여, 귀족과 성직자 중용, 국민의 자유 탄압
    • 1830년 5월 왕은 의회(자유주의자가 다수, 왕당파 소수) 해산하고 7월 새로운 선거 실시. 하지만 선거 결과 야당 의석 오히려 려증가, 7월 26일 왕은 긴급 칙령(새로 선출된 의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해산, 새 선거법 제정하고 선거 재실시, 언론규제 강화) 반포→ 국민들 크게 분노
    • 결국 노동자와 학생들의 지원을 받은 중간 시민계층은 7월 27일에 파리에서 무장봉기, 사흘간의 시가전 끝에 시청 점령, 샤를 10세 퇴위(7월혁명)
    • 7월혁명의 의의-특권신분에 대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승리인 동시에 왕권에 대한 국민주권의 승리, 부르주아의 정치적․사회적 우월권이 재확립된 사건

7월 왕정 (1830-1848)

자유주의적 입헌군주정

  • 국왕으로 추대된 루이 필리프는 참정권 확대→ 부르주아의 정치적 자유와 그 지배권 확대
  • 하지만 7월왕정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의 권력을 장악한 특정한 소수(상층 및 중간계급인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집착하고 그 외의 다른 국민들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음
  • 정부의 안일한 태도에 국민의 불만 확산. 특히 아직 참정권을 부여받지 못한 채 산업화 속에서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불만 증대
  • 1846년~1847년에 걸친 농업의 흉작은 공업에 파급 → 전반적 경제위기
  • 불만은 선거권 확대 요구로 집약 — 1847년 7월부터 ‘개혁 연회’ 방식으로 선거법 개정운동 전국적으로 전개됨
  • 1848년 2월 22일 파리에서 대규모 개혁 연회 예정 하지만 정부는 이 집회 금지
  • 2월 22일 파리에서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시위. 23일에 소상점주와 수공업자 등 소시민층이 시위에 가세, 사흘간의 시위와 시가전 끝에 24일 시위 군중은 시청 점령, 루이 필리프 퇴위, 2월 25일 임시정부는 공화국 선포(2월혁명)프
  • 2월혁명의 의의-자유주의 혁명이자 노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혁명

제2공화국 (1848-1851)

  • 임시정부는 급진적 사회주의 정책 채택 — 국민의 노동권, 노동자의 단결권, 실업자 구제를 위한 재정 부담, 국립작업장 설립 결정 등 → 하지만 혁명의 결과 급진적 사회주의가 채택되자 보수적 부르주아지와 농민층이 사회불안에 대한 두려움
  • 성인남성의 보통선거제 도입으로 1848년 4월 선거, 선거 결과 온건 공화파가 압도적으로 승리, 선거에서 패배한 사회주의자들은 정부에서 축출
  • 1848년 노동자들의 6월폭동 — 6월 국립작업장이 폐쇄되자 파리 노동자들 폭동, 계엄령 속에서 정부는 폭동을 유혈 진압 → 6월폭동 후 민심은 결정적으로 사회주의자와 노동자 외면
  • 2월혁명과 사회주의의 세력화 과정 겪으면서 “어떤 공화국을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됨: 입헌주의적 공화국 vs. 사회적 공화국
  • 제헌의회가 마련한 새 헌법은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음, 삼권분립 원칙 확립, 보통선거제
  • 대통령 선거(1848. 12. 10.)에서 샤를 루이 나폴레옹 당선. 그는 대통령의 권한 확대하고 탄압 강화 → 1851년 12월 나폴레옹은 쿠데타 감행, 이듬해 프랑스 제국(제2제정) 선포

제2제국 (1852-1870)

민주주의적 전제정

  • 나폴레옹 3세는 선거권 이외의 국민의 제반의 정치적 자유 철저히 억압하는(의회 기능 크게 약화, 언론자유 탄압, 노동자의 단결권 박탈 등) 반면 상공업 장려, 대규모 토목사업 일으켜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제공
  • 1870년 보불전쟁에서의 패배로 제2제정 붕괴

파리 코뮌 (1871. 3. 18-5. 28.)

  • 패전의 혼란 속에서 1871년 3월 18일 파리에서 급진적인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자들은 조국방위와 자치권을 요구하는 민중 봉기인 ‘파리 코뮌’을 일으키고 코뮌 정부 수립
  • 파리 코뮌은 종교에 대한 지원 폐지, 혁명력 사용, 10시간 노동, 제빵공의 야근 철폐 등 1793년 민중혁명 시기를 연상시키는 일련의 강령 채택
  • 1871년 5월 21일에 파리로 들어온 정부군은 5월 28일 파리 코뮌 유혈 진압에 성공
  • 파리 코뮌의 의의: 프랑스의 혁명적 전통에 종지부. 파리 코뮌의 처절한 경험은 폭력에 대한 혁명의 기도를 포기하게 하여 평화적 타결과 화해의 길을 열게 함

제3공화국 (1871-1940)

보수적 공화국

  • 1871년에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제3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해는 1875년이다.
  • 보불전쟁의 패배 속에서 ‘공화국’은 당시 난국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으로서 그리고 다양한 정파를 포섭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체제로서 간주됨
  • 제3공화국 수립 당시 자유주의자와 온건 공화주의자가 주도적 위치 차지 → 자유민주주의 체제 확립
  • 제3공화국은 공화주의의 혁명적 과격성을 불식시키고 보수적 성격으로 변화시킴, 질서와 안정 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