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프랑스 혁명의 전개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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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혁명 시기 (1789년 5월-1792년 8월)

국민제헌의회

1789년

  • 5월 삼부회 소집
    • 제3신분 부르주아들, 1인 1표가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불복. 제1, 2신분은 거부
    • 제3신분 삼부회 파토, 베르사유 정구장으로 몰려가서 "우리가 프랑스인 전체를 대변하는 국민의회다. 역사적 과업(입헌)을 마칠 때까지 해산하지 않을 것이다." 테니스 코트의 맹세
  • 7월 9일 국민의회, 제헌의회로 개칭
    • 국왕, 제헌의회 분쇄를 위해 군대 집결
    • 군이 집결한다는 소식에 파리 시민의 민심 흉흉, 생산능력을 갖춘 소시민(상퀼로트)들의 동요
  • 7월 14일, 폭동 발생하여 바스티유 함락, 무기 탈취하고 간수장 참수, 조리돌림
    • 경악한 국왕, 군대 해산
    • 파리 민중(상퀼로트)들이 부르주아들의 편이라는 인식
    • 파리의 소식이 전국으로 전파, 각지 도시의 귀족들 도주, 제3신분들의 권력 탈취 이루어짐
  • 8월: 농촌의 대공포 현상.
    • 도주한 지주귀족들이 외국 군대를 끌고 올 것이라는 소문.
    • 선수를 치자는 심산으로 지주들의 재산을 약탈, 토지대장을 소각
  • 8월 4일의 밤: 봉건제도의 완전한 폐지 선언, 지주에 대한 지대, 공납을 유상 폐지
  • 8월 26일: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 국민(nation)의 의미 및 국민주권의 함의
    •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사회계약 참가자인 개인들의 총체가 아니라 남녀노소, 의식 불가능자를 불문한 국적 보유자의 총체 (금치산자는 사회계약 당사자일 수는 없으나 국민이다)
    • 항상 유동적이고 조직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추상적 존재로서 스스로 어떤 의사를 가지고 직접 무엇을 결정하거나 표시하는 게 불가능
    • 원천적으로 직접 주권을 행사할 수 없고 대표(의회)를 통해 주권 행사 → 국민주권 개념에서 국민은 주권자이지만 그 주권의 직접행사자가 아님 → 대의민주주의
    • 국민은 그의 대표자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없음 → 대표는 국민들로부터 독립성을 지닌 채 스스로 자유롭게 행동. i.e. 의회 내의 의원들은 한 번 국민에게 주권을 위임받았다면, 정치적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닌 채 정치적 사안을 결정하고, 결정한 뒤 국민들에게 사후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음(의원면책특권)
  • 루이 16세는 인권선언 서명 주저
  • 10월 궐기: 상퀼로트 여성 7천여 명이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쳐들어감. 식료품 가격 안정과 인권선언 서명 요구. 국왕 부부를 붙잡아 파리로 끌고 와 튈르리궁에 감금
  • 11월: 교회의 토지재산 몰수, 국유화하여 매각한 뒤 차액으로 국고 충당, 아시냐 화폐 발행

1790년

  • 7월: 성직자 시민헌장 — 성직이란 신의 소명을 받은 고결한 직분이 아니라 시민들 가운데 한 직업일 뿐이라고 규정
    •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헌장에 서명 거부(반항사제), 소수는 동의(선서사제)
    • 전국민적으로 혁명을 지지하는 분위기의 끝.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반혁명 세력의 등장
  • 7월 개혁들:
    • 행정개혁, 전국 83주로 행정구혁 통폐합.
    • 도량형 개혁.
    • 경제개혁: 길드의 내국관세 폐지, 통행세 폐지, 자유로운 경쟁경제체제
  • 7월 14일 — 혁명 1주년 기념 대연맹제
  • 에드먼드 버크,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1791년

  • 6월 — 국왕 부부의 바렌느 도주사건
    • 국왕이 자기 혼자 살겠다고 외국으로 도망가려다 걸린 사건
    • 국왕의 권위 완전 실추. 파리 시민들은 국왕을 완전 불신.
  • 7월 — 샹 드 마르스 학살
    • 상퀼로트들, 군주제 폐지 요구하는 시위.
    • 정치적 격변을 원하지 않은 국민의회의 부르주아들은 해산을 명령, 듣지 않자 발포
  • 8월 — 필니츠 선언.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대불 선전포고
  • 9월 3일 — 91년 헌법 제정
  • 토머스 페인, 『인간의 권리』 제1부

입법의회

1791년

  • 10월
    • 91년 헌법에 따라 단원제, 입헌군주제, 재산제한선거제 입법의회 소집
    • 이로써 국왕은 주권자로서의 지위 상실
    • 재산제한선거제 — "능동시민"의 자격 = 일정 규모 이상의 직접세를 납부할 수 있는 재산을 소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수동시민"으로 정의하고 참정권 주지 않음.
    • 입법의회의 구성: 총 740석
      • 우파 페이양파 260여성, 중도 평원파 340여석, 좌파 자코뱅파 130여석

1792년

  • 4월: 프랑스 혁명전쟁 개전. 오스트리아, 프랑스에 선전포고
  • 6월 20일 — 민중들의 튈르리궁 습격.
  • 7월: 프로이센의 브라운슈바이크, 파리 위협. 의회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의용군 모집.
  • 8월
    • 오스트리아군과 프랑스군이 싸우는 와중에 정신 못 차린 루이 16세 부부, 오스트리아와 내통 시도.
    • 8.10 봉기: 상퀼로트들, 튈르리궁 점거하고 입법의회에 국왕의 모든 권리 정지 요구. 그 요구 받아들여 국왕의 권리정지. 국민공회 소집.
    • 정치체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제2혁명이라고도 함
  • 페인, 『인간의 권리』 제2부

민중혁명 시기 (1792년 8월-1794년 8월)

국민공회

1792년

  • 9월 학살: 상퀼로트가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반혁명 용의자들 1200명 정도를 자의적 학살
  • 9월 22일 — 혁명력 1년 선언. 제1공화국 탄생. 새로운 의회 국민공회
    • 약 750석 중 우파 평원파 400여석 / 좌파 자코뱅은 급진 산악파와 온건 지롱드로 분열
    • 산악파와 지롱드의 분화는 상퀼로트에 대한 태도 차이에서 기인(산악파는 연대, 지롱드는 거부)

1793년

  • 1월: 국왕 재판. 387/718로 사형
  • 2월: 제1차 대불동맹 결성
  • 3월 10일: 방데 반혁명 봉기 — 10만 명 이상이 참여
  • 3월 10일: 혁명재판소 설치
  • 4월 6일: 공안위원회 설치
    • 사실상 정부의 역할을 한 기구. 여기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산악파의 사형간지 로베스
  • 6월 2일: 6월 봉기. 상퀼로트들이 국민공회 포위, 산악파에게 지롱드 체포를 요구. 산악파는 얼씨구나 하며 전격적 체포, 국민공회를 장악
  • 6월 산악파 중심의 93년 헌법 통과. 그 서문이 "1793년 인권선언"
  • 인민(people):
    • 일반의지에 복종할 것을 수락한 사회계약 참가자인 개인들의 총체
    • 직접 자신의 의사를 결정, 표시, 행동하는 개인들의 총체인 인민은 항상 스스로 주권 행사 → 직접민주주의
    • 누구에게도 주권을 양도할 수 없지만 불가피하게 주권을 의회 의원에게 행사시킬 때 인민은 의원에게 지시나 명령할 수 있음
    • 필요한 경우 인민은 개별 의원들에게 보고를 요구하고, 자신의 명령의 이행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 의원을 소환하고 해임 또는 다른 의원으로 대체할 권리 지님
    • 의원은 인민의 대표자가 아니고 인민의 주권을 떠맡은 수임자에 불과
  • 6월: 1793년 헌법 통과. 공화제 및 성년남성의 보통선거제 (난리통에 시행은 안 됨)
  • 7월: 봉건적 공납 무상폐지
  • 8월 23일 국민총동원령 — 18살-25살의 독신 남성 모두에게 징집령 발동
  • 9월 — 생필품 최고가격제 실시 (물가억제 시도)
  • 9월 17일 혐의자법 통과 — 반혁명 혐의자 체포 용이화. 공포정치 시대
  • 10월 16일 —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

1794년

  • 1793년의 각종 법안 통과를 통한 약발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기.
    • 최고가격제로 물가 억제
    • 총동원령으로 6월부터 프랑스군이 승전하기 시작
    • 혐의자법으로 공포정치를 통해 국내정치 안정화
  • 국내가 안정화되자 민중의 공포정치에 대한 염증
    • 산악파는 눈새같이 오히려 공포정치를 가속화
    • 3월 24일 — 로베스피에르, 에베르파 처형
    • 3월 30일 — 로베스피에르, 당통파 처형
  • 94년 7월 27일 - - 테르미도르 반동. 로베스피에르 몰락. 상퀼로트 세력의 위축화.
  • 11월 자코뱅 클럽 폐쇄, 공안위원회 무력화, 최고가격제 폐지
  • 12월 지롱드파 복귀

부르주아 공화국 시기 (1794년 8월-1799년 11월)

총재정부

1795년

  • 4월 1일, 5월 20일: 상퀼로트의 93년 헌법 시행을 요구하는 봉기, 진압 → 이후 상퀼로트의 정치참여는 없다시피로 축소
  • 8월: "95년 헌법" 제정. 그 전문으로 올라간 것이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과 의무들의 선언"
  • 퇴행적, 보수적으로 권리조항들을 수정하고 의무조항을 추가
    • 선거제도의 재개정: 성인 남성의 보통선거 → 재산제한선거제도로 복귀
    • 집단지도체제 총재정부, 의회는 양원제
  • 10월 5일: 방데미에르 폭동. 왕당파들의 봉기 실패.
  • 10월 16일: 총재정부 성립, 5인총재단. 부유한 부르주아들이 입각
  • 11월: 제1차 총재정부

1796년

  • 5월 10일: 바뵈프의 "평등주의자의 음모"(단체 이름) 실패. 바뵈프는 사적 소유의 철폐와 혁명적 전위대의 무장봉기를 통한 정권찬탈 이후 대중지지를 확보할 것을 주장. 실패했지만 사회주의가 이념을 넘어 정치행동으로 세상에 드러난 최초의 사례.

1797년

  • 혁명 전쟁이 계속되면서 군 지휘관들의 영향력 부상. 나폴레옹이 이때 이탈리아며 이집트며 원정 다니던 시기.
  • 4월: 하원 선거에서 왕당파 득세
  • 9월 4일: 프뤽티도르 쿠데타. 총재정부파가 군의 힘을 동원해 왕당파 의원(77명)들을 축출한 친위 쿠데타
  • 10월: 제2차 대불동맹

1798년

  • 1월: 제2차 총재정부
  • 4월: 하원 선거에서 자코뱅 잔당 득세
  • 5월 11일: 플로레알 쿠데타. 또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신자코뱅파(106명) 의원 축출
  • 총재정부의 군을 동원한 안정화 시도: 정치군인들이 득세하는 길을 깔아줌

1799년

  • 10월 나폴레옹 귀국
  • 11월 9일: 브뤼메르 18일 쿠데타. 나폴레옹의 총재정부 해산, 통령정부 수립. 나폴레옹이 몇 년 뒤 황제관을 쓰면서 프랑스 혁명을 지지한 세력들 몰락. 대혁명의 종식.

프랑스 혁명의 의의

  1. 국민주권 원칙 및 민주주의 이념 구현
  2. 자유 및 평등의 이념 구현을 향한 첫 걸음
  3. 사회혁명: 사적 소유의 절대성, 기업 활동을 구속하는 중상주의적 봉건적 장애와 규제 철폐, 자유로운 경제활동 → 사적소유, 자유시장경제를 기조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의 토대 마련
  4. 국가권력의 세속화
  5. 국민국가의 구축
  6. 세 가지 이념의 제시: 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7. 인권혁명: 1791년 유럽 최초로 유대인에게 시민권 보장. 1794년 식민지를 포함한 노예제의 철폐.

프랑스 혁명에 대한 해석

  • 전통적(마르크스적) 해석
    • 프랑스혁명은 혁명적 부르주아지가 주도한 반귀족적, 반봉건적 부르주아(시민)혁명이자 단순한 정치혁명을 넘어선 사회혁명
    • 1792-1794년의 민중혁명 시기는 프랑스혁명의 완성 시기. 자유만이 아니라 평등도 보다 철저하게 달성 노력, 봉건적 잔재도 더욱 철저히 청산
  • 수정주의 해석
    •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이나 사회혁명이 아니라 자유주의체제 및 대의제 확립이라는 근대적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주요한 실험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정치혁명에 불과
    • 1792-1794년의 민중혁명 시기는 혁명의 일탈 시기. 자코뱅 독재, 공포정치, 자유 억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