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국가와 시민의 관계: 루소의 사회계약론

루소 신상명세

  • 1712년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 출신
  • 독학 지식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
  • 어머니가 일찍 죽고 아버지가 해외도피한 뒤 외삼촌에게 맡겨짐.
  • 동판공의 도제 생활
  • 10여년 간 바랑 부인의 후원을 받으며 총교, 철학, 문학 교육
  • 디드로, 볼테르 등과 서신교환
  • 빵에 간 디드로를 면회 갔다 오는 길에 디종 아카데미의 "학문과 예술의 발달은 도덕의 순화에 기여했는가?" 라는 주제의 논문 모집 공고를 보고 투고 → 남들은 다 "기여했다"고 하는 반면 혼자 "학문과 예술이 인간 도덕을 타락시켰다"고 하고 최고상 수상
  • 루소는 학문 등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회질서, 문명 따위가 선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을 타락, 사악하게 만들었다고 논함
  • 디종 아카데미의 또다른 논문 모집 "인간들의 불평등의 기원이 무엇이고 그것이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가?"에 응모 → 인간이 불평등해진 것은 사유재산 때문이라고 주장. 하지만 수상은 미끄러지고 책으로 출간 → 『인간불평등기원론』
  • 파리의 향락적 생활을 청산하고 산골에 처박혀 칩거하며 저술 → 1762년 『신 엘로이즈』(연애소설), 『사회계약론』, 『에밀』을 동시에 출간
  • 『에밀』에서 가톨릭 교회 깠다가 구속영장 나옴. → 스위스 거쳐 영국으로 도주
  • 귀국하고 1770년 파리에 정착, 자서전 쓰다 1778년 사망
  • 『사회계약론』을 보면 루소가 계몽주이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에밀』을 보면 완전한 의미에서 계몽주의자라 할 수 없음

인간불평등기원론 제1부

우리가 이 문제(자연상태)에 대해 추구할 수 있는 연구는 역사적인 진실이 아니라 다만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추론은 사물의 진정한 기원을 증명하기보다 사물의 본성을 해명하는 데 적합하다.

원시의 인간은 일도 언어도 거처도 없고, 싸움도 교제도 없으며, 타인을 해칠 욕구가 없듯이 타인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어쩌면 동류의 인간을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그저 숲속을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정념의 지배를 받을 뿐 스스로 자족하면서 자신의 상태에 맞는 감정과 지적 능력만을 갖고 있었다. 원시의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필요만을 느꼈고, 눈으로 보아 흥미롭다고 여겨지는 것만 쳐다보았다. 그의 지능은 그의 허영심과 마찬가지로 발달하지 못했다. 우연히 그가 어떤 발견을 한다해도, 그는 자신의 자식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수할 수 없었다. 기술은 발명자와 더불어 소멸했다. 교육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무런 진보도 없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세대가 이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각각의 세대는 언제나 똑같은 지점에서 출발했으므로, 최초 시대의 모든 조야함 속에서 수백 년이 되풀이되며 흘러갔다. 종은 이미 늙었으나 인간 개체는 항상 어린애로 머물러 있었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는 것은 지성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특질이다. 자연은 모든 동물에게 명령하고 동물은 이에 따른다. 인간도 같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복종하느냐 저항하느냐의 선택에서 자신이 전적으로 자유로움을 인식한다. 인간 영혼의 정신성이 드러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자유의 의식을 통해서였다. 또 하나 인간의 특수한 성질은 바로 자신을 개량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사회계약론

제1부

나는 인간이 다음과 같은 지점에 이른 상태를 가정해 본다. 즉 자연상태에서 자기 보존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의 저항이 저마다 그 상태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쓸 수 있는 힘을 능가하는 지점에 이른 상태를 말이다. 그때 그 원시 상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에 만일 인류가 자신의 존재방식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멸망해 버릴 것이다.

‘공동의 힘으로 각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 주는 결합 형태, 즉 각자가 전체와 결합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게 하면서 이전과 다름없이 자유롭게 남아있게 하는 그런 결합 형태를 찾아내는 것.’(루소의 사회계약 정의)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로 사회계약이 그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첫째, 각자가 자기 자신을 모조리 내주기에 조건은 모두에게 동일하며 또 조건이 모두에게 동일하기에 누구도 타인의 조건을 더 무겁게 만드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둘째, 양도가 전적이기에 결합은 더없이 완전하며 어떠한 구성원도 이제 주장할 권리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마지막으로, 각자는 전체에게 자신을 양도하기에 아무에게도 양도하지 않는 것이 되며, 모든 구성원은 자신이 양도한 권리와 동일한 권리를 타인들로부터 받기에 그가 잃은 모든 것과 동일한 대가를, 뿐만 아니라 그가 소유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더 많은 힘을 얻는다.

따라서 사회계약으로부터 그 본질이 아닌 것을 빼면, 다음과 같은 말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신체와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어, 일반의지(general will)라는 최고 지휘권 아래 둔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각 구성원을 전체와 불가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i.e. 일반의지에 복종하기로 하는 계약이 사회계약)

… …

사회계약 속에는 그것이 빈 공식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반의지에 복종을 거부하는 자는 누구나 집단 전체에 의해 일반의지에 대한 복종을 강요당할 것이라는 약속이 암묵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그 약속만이 다른 약속들의 효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민에게 자유롭게 되도록 강제하는 것(forced to be free) 이외의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각 시민을 조국에 바침으로써 그를 모든 개인적 종속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조건, 즉 정치조직의 형태와 기능을 만들어내는 조건이며 시민으로서의 약속들을 합법적이게 만드는 유일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조건이 없을 경우 시민으로서의 그 약속들은 터무니없고 압제적인 것이 되어 엄청나게 악용되기 쉬울 것이다.

이 모든 득실을 요약해보자. 사회계약으로 인간이 잃는 것은, 그의 자연적 자유와 마음이 끌려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제한적인 권리다. 반면에 그가 얻는 것은, 시민적 자유와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이다.

사회상태에서 득이 된 것으로는 앞에서 말한 것 외에 정신적인 자유를 덧붙일 수 있을 텐데, 그것만이 인간을 자신의 참된 주인이 되게 만든다. 왜냐하면 오로지 욕망의 충동에만 따르는 것은 노예와 같은 예속상태이며, 스스로에게 규정한 법률에 대한 복종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제2부

그러므로 나는 주권은 일반의지의 행사일 뿐이기에 결코 양도할 수 없으며, 집합적인 존재인 주권자는 집합적인 존재 자체에 의해서만 대표될 수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 권력은 이양될 수 있지만 의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개별적 의지는 어떤 점에서 일반의지와 일치하는 일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일치가 지속적이고 항구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별적 의지는 그 성격상 편파성을 향하며 일반의지는 평등을 향하기 때문이다.

주권은 양도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분할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의지는 보편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거나 하기 때문이다. 의지는 인민 집단의 의지이거나, 아니면 일부분의 의지일 뿐이다. 전자의 경우 그 의지의 공표는 주권 행위로 법률이 된다. 후자의 경우 그것은 개별적 의지이거나 행정 행위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껏해야 법령일 뿐이다.

… …

전체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대개 큰 차이가 있다. 일반의지는 오로지 공동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인 데 반해, 전체의지는 개인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개별의지들의 총합일 뿐이다. 그런데 이 개별의지들로부터 지나친 것과 모자란 것을 제거하면 그 차이의 합계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

법은 일반의지의 행위이다. 법은 의지의 보편성과 대상의 보편성을 결합하고 있기에, 그가 누구이든 한 인간이 독단적으로 명령하는 것은 절대로 법이 아니다. 주권자가 명령하는 것이라 한들, 그것이 개별적 대상에 관한 것이라면 법이 아니라 행정명령일 뿐이며, 주권 행위가 아니라 행정 행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모든 국가를, 그것이 어떤 형태의 정부로 다스려지든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오로지 그때에만 공공의 이익이 지배하고, 공적인 일이 중요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합법적인 정부는 공화제다.

제3부

국가가 더 잘 구성될수록 시민들의 마음속에서는 공적인 일이 사적인 일보다 더 중시된다. 사적인 일은 훨씬 더 작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왜냐하면 공동의 행복의 총계는 각 개인의 행복의 총계보다 더 큰 몫을 제공하기에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개별적인 노력이 더 적게 들기 때문이다. 잘 운영되는 국가에서는 모두 총회에 날듯이 달려간다. 하지만 나쁜 정부에서는 아무도 그곳에 가기 위해 발을 떼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행해지는 일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그곳에서는 일반의지가 지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며 마지막으로 집안일을 돌보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아버리기 때문이다. 훌륭한 법은 더 훌륭한 법을 만들지만, 악법은 더 나쁜 악법을 낳는다. 누군가가 국가의 일에 대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한다면 그 국가는 이미 망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주권은 양도할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대표될 수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일반의지에 있다. 그런데 이 의지는 절대로 대표될 수 없다. 그것은 그것일 뿐이거나 아니면 다른 것이다. 그 중간은 없다. 그러므로 인민의 대의원은 그들의 대표자도 아니며 대표자가 될 수도 없다. 그들은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그들은 아무 것도 확정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인민이 직접 승인하지 않은 법은 어떤 법이든 무효다. 그러므로 그것은 법이 아니다. 영국 인민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의회의 의원 선출 기간에만 자유로울 뿐이다. 의원을 선출하자마자 그들은 곧 노예가 되며 별 것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제4부

본래 만장일치의 동의를 요구하는 법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다. 바로 사회계약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시민적 결합은 세상에서 가장 자발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자신의 주인이기 때문에 어떤 구실로든 동의없이 그를 예속시킬 수 없다.

국가가 수립될 때 그곳에 거주하는 것은 곧 그 국가 수립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영토 안에 거주하는 것은 주권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정리

  • 사회계약이란 일반의지에게 복종하는 것
  • 일반의지는 공익을 추구하는 의지
  • 주권은 일반의지의 행사
    • 주권은 양도, 분할, 대표될 수 없기에(인민주권) 간접민주제는 글러먹음
  • 법률은 일반의지를 문서화한 표현
    • 법치만이 공익(일반의지)를 위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이며 법치국가를 공화국이라 함
  • 그러므로 직접민주정 공화국이 가장 좋은 정체, 국체임
  • 자유의 강요
    • 일반의지에 반하는(공익에 반하는) 자에게는 일반의지를 강제할 수 있음이 사회계약에 함축된 뜻임.
    • 일반의지에 복종했을 때만이 자연적 자유보다 더 우월한 시민적 자유가 가능해진다.
    •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계약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므로 가장 중요한 부분
  • 역사적 사례를 봤을 때 완전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기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정치적 이상으로서 유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