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절대주의와 공중

중세 말 근대 초의 변화

  • 9-13세기: 주종제에 입각한 봉건적 지배체제 (지방분권적)
  • 14-16세기: 신분정치체제, 신분제 의회 등장
    • 강해진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직속 군사력의 유지 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소요.
    • 세금 인상에 따른 영주들의 반발 → 군주가 신분제 의회 소집
    • 각 신분(성직자, 봉건귀족, 시민)의 대표들은 군주의 법안(주로 조세 입법안)에 대해 찬반 의사표현
    • 군주와 신분제 대표들이 이원적 대립구도 형성, 정치적 타협과 대결의 초기 형태
  • 16-18세기: 근대국가로서 절대주의국가 체제
    • 절대주의란: 영토에 입각한 군주의 중앙집권적인 지배체제 i.e. 국가의 모든 권력이 군주의 배타적 권위에 의존하며 오직 그것(군주의 권위)에 의하여 행사되는 통치방식이자 정치체제
    • 근대국가의 삼대요소 - 국민, 주권, 영토 개념이 이 시기부터 유래.
    • ‘국가간체제’ — interstate system, 실제 능력 면에서는 평등하지 않지만 법적, 규범적 차원에서는 평등한 것으로 간주되는 다수의 근대국가들이 공존하는 상태
    • 해외에서의 식민지 쟁탈 전쟁, 유럽 본국에서의 왕위계승전쟁 — 끊임없는 전쟁. 하지만 어느 소국을 완전히 없애버리거나 특정 국가가 대제국으로 팽창하는 일도 없음
    • 규범적으로 정당한 껀수가 없는 이상 외국의 내정에 불간섭 → "주권국가" "주권의 상호 인정"이라는 공존의 규범, 규칙 수립 → 비로소 주권의 개념 탄생

주권

주권의 정의

  • 정해진 영토 내에서 국가가 보유하는 최상의 권위
  • 법을 제정하거나 정책을 수립하여 한 국가의 영토 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법이나 정책을 복종할 것을 명령할 수 있는 국가의 최종적 권위
  • 이것을 최초로 명문화한 사람 — 16세기 프랑스의 장 보댕(1530년-1596년)
    • 『국가론』(1576년) — 주권이란 국가의 절대적이며 영구적인 권력이다. 주권은 군주에게 있으며, 군주는 오로지 신의 자연법에 대한 의무만 있다. 주권군주는 군주 자신이 제정한 실정법에 종속되지 아니한다.

국가란 다수의 가족과 그들의 공유물로 이루어진, 주권에 의한 정당한 통치다.

장 보댕, 『국가론』 제1장

주권이란 국가의 절대적이며 영구적인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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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권력이 영구적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한시적으로 한 개인에게 또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그 시한이 만료되었을 때 그들은 그저 평범한 백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권력을 갖고 있을 때에도 결코 주권 군주라고는 불리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권력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자에 지나지 않으며 군주나 인민의 소환이 있으면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들은 언제나 타인에게 장악되어 있는 수동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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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인민과 영주들은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즉 국가 전체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도록, 또한 그러한 권리를 원하는 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영구적인 주권을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누군가에게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은 소유주가 단순하고도 명료하게, 자신의 의사 말고는 다른 어떤 이유도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재산을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증 행위다. 그리고 일단 완전한 기증 행위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더 이상의 조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의무와 조건이 수반된 기증은 진정한 기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 군주에게 조건과 의무가 수반된 권력이 부여되었다면, 그것은 주권도 절대 권력도 아니다.

주권자는 결코 타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며, 백성들에게 법을 제정해줄 수 있어야 하고, 불필요한 법을 폐지하거나 무효화하거나 아니면 다른 법으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법에 종속된 자 또는 누군가의 명령을 받는 자가 이 같은 일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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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에 따른 결정을 스스로에게 명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왕은 자신이 제정한 법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교회법 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교황은 결코 행동의 자유를 구속받지 않는다. 주권 군주도 마찬가지여서 설사 원하더라도 스스로를 구속할 수 없다. 우리는 법령 말미에서 “짐의 뜻이 그러하노라”라는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주권 군주가 제정한 법이 정당하고 분명한 이유에 따라 정해졌다 하더라도 결국 그 법은 오로지 자유로운 군주의 의지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군주는 신법과 자연법에 복종한다. 신성모독죄를 짓지 않는 이상 또는 마땅히 그 권위에 굴복하고 존경과 두려움으로 머리를 조아려야 할 대상인 신에게 전쟁을 선포하지 않는 이상 군주는 자신의 권력으로 이를 위반할 수 없다. 이렇듯 군주의 절대적인 권력과 주권적 영주권은 결코 신법과 자연법을 침해하지 않는다.

만일 군주가 살인을 금지하고 살인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제정하면 군주 자신은 이 법에 구속될 것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살인과 관련된] 이 법은 왕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신께서 만드신 법이자 자연의 도리다. 그러므로 왕은 그 어떤 신하보다도 더 이 법을 지켜야 하며, 원로원도 인민도 이러한 도리로부터 군주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왕은 언제나 신의 판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솔로몬의 말대로 신은 매우 엄정하게 이를 가르쳐주신다. 법관이 개인을 재판하듯이 왕은 법관을 재판하고, 그 왕을 재판하는 것은 바로 신이라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군주가 인간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면 왜 굳이 군주의 권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협약과 유언은 모두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에 의존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거니와 이러한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 군주는 자신의 칙령만큼이나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도 그 어떤 의무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권리가 부당한 것으로 드러나면 군주는 자신의 왕국에서 칙령을 통해 이를 위배할 수도 있고 백성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금지할 수도 있다. 모든 인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왕국의 노예들이 지닌 권리에 대해 국왕이 내린 결정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국왕은 다른 비슷한 경우에도 그것이 신법을 거스르지 않는 한 언제든 이와 유사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정의가 법의 목적이고 법 제정이 군주의 몫이라면, 군주는 신의 이미지다.

장 보댕, 『국가론』 제2장


(장 보댕, 임승휘 옮김, 『국가론』 (책세상, 2005; 초판 1576))
  • 보댕의 국가론의 배경
    •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1572년)로 위그노 전쟁, 나라가 두쪽남
    • 주권을 소유한 군주의 권위를 확고히 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하고자 한 것
    • 아직까지 왕권신수설의 지경은 아님
  • 이 시기 민중들의 정치적 지위
    • 정치권력은 유일 주권자인 군주와 그 주변의 소수 귀족만이 향유했을 뿐
    • 대다수 민중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주권자가 아니고, 주권자에게 복종하는 신민일 뿐
    • 민중의 정치 참여 수단은 군주에게 직소하거나 폭동(군주와 관료들에 대한 일시적 교섭력을 얻기 위한 실력행사)을 일으키는 등 간접적 수단 뿐

공중의 형성

  • 18세기에 이르러 전반적으로 유럽의 정치적 안정, 경제적 번영, 문화적 발전으로 공적 영역(독서실, 커피하우스, 살롱, 아카데미, 선술집, 학회, 문예협회, 프리메이슨 롯지 등)에서 독서와 토론 모임 확장
  • 신문과 잡지를 읽고 거기에 실린 정치, 사회, 경제적 문제들에 대하여 토론하고, 개인적 의견들을 교환하고, 여론을 함께 형성하는 ‘공중’ 탄생
  • 이성적으로 논의하고 능동적으로 토론하는 시민정신(정치의식)을 지닌 개인들, 곧 여론의 담지자인 공중(public)
  • 18세기 후반에 공중이 형성되면서 이제껏 통치의 대상에 불과했던 백성이자 신민이 국민이나 인민이라는 가상의 새 주권자로서의 시민으로 전환될 수 있는 토대가 놓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