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세도시와 부르주아

중세의 세계관

(서)로마 제국의 멸망

  • 상업과 도시의 쇠퇴. 모두 농촌화.
  • 바이킹, 이슬람, 마자르의 침공
  • 중세에는 동로마 제국을 제외하면 국가다운 국가(그 기준은 무엇인지?)가 없었음
  • 권력이 분산된 봉건제도 — 무력과 토지의 소유자들이 각 지방에서 할거. 농촌사회와 더해져 장원을 형성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

  • 종교적 권위가 지배하는 중세의 질서 하에서 고대의 ‘정치적 시민’ 관념은 크게 위축
  •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기보다는 신이 정한 신분과 질서 속에서 신과 소통하면서 사는 존재로 인식
    • 이 세상에는 그저 왔다 가는 것, 게다가 아담의 원죄 이래 우리는 모두 속죄하는 삶을 살아야…
  • 고대 이후 고전적 그리스의 시민 개념 즉 정치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 사상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절대주의 붕괴될 때까지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함

중세 도시와 부르주아

  • 11세기부터 상업이 부활하면서 교역의 중심지에 시장과 함께 차츰 도시 형성되기 시작
  • 도시의 주민 즉 ‘부르주아(bourgeois)’ — 주로 상인, 수공업자
  • 부르주아는 인신적으로 자유롭고 법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지닌 자유인이자 서약자
  • 12세기에 대다수의 도시들은 영주로부터 자치권(행정권, 사법권) 획득, 영주의 (자의적)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독자적인 도시법에 기초한 자치도시 형성
  •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시공동체에 대한 영주의 통치권은 소멸되지 않고 영주의 도시 지배는 지속.
  • 하지만 도시공동체는 점차 도시에 대한 특권 승인과 영주(주군)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을 연계 — 도시를 지배하는 귀족에게 정기적으로 최종적 권위를 인정한다는 충성서약을 하되 그 대가로 자치권을 얻음.
  • 결국 영주에 의해 양도된 특권을 향유하는 도시공동체의 주민들인 부르주아지는 모든 구성원들의 동의, 합의, 연대, 자결을 존중 (우리는 예속된 농노들과는 다르다는 자치의식이 충만)
  • 12세기부터 빈부격차 심화, 부유한 도시귀족이 형성되어 유력 가문들이 시 행정을 장악. →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도시 내부 하층민들의 소요, 폭동, 분열 (충만했던 자치의식 소멸)
  • 중세 도시 대부분은 그 자체의 경계를 넘어 통합된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 발전 하지 못한 채 중세 말, 근대 초에 이르러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정치 체제 속으로 편입됨 — 봉건 영주보다 더 강력한 국왕의 지배하에 왕국의 일개 도시로 자치가 더욱 축소됨.
  • 그러나 서양 중세 도시들이 성취한 특권들, 인신적 자유, 정치적 동의 및 자결 등은 프랑스 혁명 이후 근대 시민사회의 기본 이념 제시

부르주아 용어의 축소화

  • 처음에는 그냥 도시(부르-)에 사는 사람(-주아)
  •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민 중에서도 잘 사는 상인, 수공업자만이 부르주아
  •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그냥 잘 정도가 아니라 직접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자, 지대추구자, 금융업자, 단순 부자까지 부르주아라고 칭하게 됨
  • 마르크스가 정의한 부르주아란 — 생산수단(토지, 기계, 공장)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사적 부를 확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종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