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주차 - 제8편 제26장 및 27장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

제26장 시초축적의 비밀

  1. 자본의 축적 - 잉여가치 - 자본주의적 생산 - 자본의 축적… ⇒ 끝없는 순환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결과로서의 축적이 아닌, 그 출발점으로서의 시초축적의 생각할 필요(979)
  2. “근면하고 영리하며 특히 절약하는 특출한 사람”은 부를 축적, “게으르고 자기의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리는 불량배”는 빈곤
    • 정치경제학의 역사에서는 정의와 노동이 유일한 치부수단
    • 현실의 역사에서는 정복, 노예화, 강탈, 살인 등 폭력이 큰 역할을 했다. (980)
  3. 화폐와 상품은 일정한 사정 아래에서 자본으로의 전환 가능. 즉, 아주 다른 두 종류의 상품 소유자들이 서로 대면하고 접촉해야 함. 한 편은 화폐/생산수단/생활수단의 소유자. 한 편은 자유로운 노동자(노동의 판매자). (981)
    • 자유로운 노동자의 두 의미
      • 생산수단의 일부(노예, 농노)가 아님
      •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진 자(자영업자, 자영농민)가 아님
      • “따라서 이른바 시초축적은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인 분리과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981)
  4. 봉건사회의 해체는 자본주의 사회 경제구조 요소들을 해방시켰다 (981)
    •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농노적 예속과 길드의 속박으로부터 노동자가 해방되는 측면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폄으로 이러한 시초축적의 작용은 노동자로부터 그들의 생산수단과 봉건제도가 제공하던 생존보장을 박탈(수탈)했다. (982)
  5. 산업자본가의 등장은 봉건영주와 그들의 특권에 반대하는 투쟁, 길드와 그 속박을 반대하는 투쟁의 승리의 성과로 보여진다. 그러나 사실 산업자본가들은 그들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사건들을 이용함으로써, 비열한 방법으로 이들을 제패한 것이다. (982)
    • 자본가, 임금노동자 탄생의 출발점은 노동자의 예속상태. 봉건적 착취를 자본주의적 착취로 전환.
  6. 시초축적의 역사 “많은 인간들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노동시장에 투입” (983)
    • 이 수탈의 역사는 나라마다 그 광졍이 다르며, 전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은 영국에서 뿐이다. (983)

제26장 요약

  • 자본주의 사회(16세기부터 시작)의 경제구조는 봉건사회의 경제구조에서 성장해 나옴 (981)
  • 생산자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역사적 과정: (982)
    • 농노적 예속과 길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
    • 모든 생산수단과 종래의 봉건제도가 제공하던 일체의 생존보장을 박탈
  • 자본가계급의 탄생
    • 시작: 노동자의 예속상태를 봉건적 착취로부터 자본주의적 착취로 전환
    • 획기적 변혁: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로 노동시장에 투입
  • 농업생산자인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수탈하는 것이 전체 과정의 토대 (983)

제27장 농촌주민으로부터의 토지수탈

영국의 토지 수탈과정

  1. 14세기 말 ~ 15세기 중반
    • 영국에서는 농노제가 14세기 말에 사실상 소멸하여 주민의 압도적 대다수가 자영농민. 공유지의 이용, 소농민 경영이 대부분
    • 도시의 번영과 함께 국민의 부가 발달하였으나 이 사정이 자본 형태의 부를 허락한 것은 아니었음
  2. 토지 수탈의 시작: 15세기 초 ~ 16세기 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토대를 만든 변혁의 시작)
    • 왕권의 절대적 주권 획득 노력
    • 대봉건영주(농민을 토지에서 축출하고 공유지를 횡령)
    • 직접적 동기부여 - 플랑드르의 양모 공장제수공업 번영과 그에 따른 영국 양모가격 등귀.
    • 결과: 봉건적 가신집단의 해체, 대량의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가 노동시장에 투입.
  3. 16세기
    • 종교개혁. 당시 많은 영국 토지으 봉건적 소유자였던 가톨릭 교회의 몰락
  4. 스튜어트 왕정복고(1603년) 뒤 봉건적 토지제도 철폐, 토지의 근대적 사유권 확립, 거주법 제정(993)
  5. 명예혁명(1688년) 이후
    1. 공유지의 횡령
      • 공유지 엔클로저법: 지주가 국민의 토지를 사유지로 자기 자신에게 증여하는 법령. (995)
      • 이전에 조심스럽게 행해지던 국유지의 횡령이 방대한 규모로 실행되어 사유지에 병합
      • 부르주아적 자본가의 비호: 토지를 자유매매의 대상으로 전환, 대규모 농업생산 영역 확대.
      • 농촌으로부터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 공급 증가가 목적.
    2. 농업혁명
      • 임의자치농업가의 등장, 대규모 농장의 팽창, 공업을 위한 프롤레타리아로의 농촌인구 유리
      • 실제로 공유지의 횡령과 농업혁명 때문에 농업노동자의 임금은 최저한도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공적 빈민구호금에 의해 보충
    3. 18세기 중반 ~ 18세기 말: 자영농민 멸종
    4. 18세기 ~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사유지 청소’(1000 ~ 1005)
  • 결론: 무자비한 폭력 아래에서 수행된 공유지의 횡령, 교회재산의 약탈, 국유지의 사기적 양도, 봉건적 및 씨족적 소유의 약탈과 그것의 근대적 사적 소유로의 전환 — 이것들은 모두 기초축적의 목가적 방법이었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적 농업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으며, 토지를 자본에 결합시켰으며, 도시의 산업을 위해 그것에 필요한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를 공급하게 되었다.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