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주차 - 제7편 제24장

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24장 잉여가치의 자본으로 전환

제1절 확대재생산과정, 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이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으로 전환.

  • 확대재생산 또는 축적
    • 축적: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것(788)
    • 확대재생산: 축적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재생산
    •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수입과 축적분/자본화분으로 분할되나 일단 전자를 사상.
  • 확대재생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 연간 총생산물의 구성이 다음을 충족해야 한다.
    • 1년동안 소비된 자본의 대체분
    • 새로운 자본의 물적 구성요소 - 추가적 생산수단과 노동자의 생계 유지 수단
    • 착취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경우 추가적 노동이 필요. 노동계급을 임금에 의존하는 계급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이를 배려.

[상략] 따라서 연간 총 생산물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는 연간 총생산물 자체의 구성에 의존하는 것이지 결코 그 유통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연간 생산물은 1년 동안에 소비된 자본의 물적 구성부분들을 대체할 수 있는 모든 물건(사용가치)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을 공제한 나머지 부분은 잉여가치가 포함되어 있는 순생산물, 즉 잉여생산물이다. 그러면 이 잉여생산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모두가 자본가계급의 필요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물건들, 그들의 소비재원에 속하는 물건들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남김없이 탕진될 것이며, 오직 단순재생산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는 물건들(생산수단)과 노동자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물건들(생활수단) 뿐이다. 따라서 연간 잉여노동의 일부는 투하된 자본의 대체에 필요한 양을 넘는 추가적 생산수단과 추가적 생활수단의 생산에 충당디오어ㅑ 한다. 한마디로 말해,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잉여생산물[이것의 가치가 잉여가치]이 이미 새로운 자본의 물적요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성요소들이 실제로 자본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본가계급은 추가적 노동을 필요로 한다. 만약 이미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착취가 외연적으로나 내포적으로나 증대될 수 없다면, 추가적 노동이 고용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적 생산의 메커니즘은 노동자계급을 임금에 의존하는 계급으로 재생산함으로써 이미 배려하고 있다.

790쪽

  • 자본의 축적을 누진적으로 증가하는 규모의 자본의 재생산으로 귀착. 새로 형성되는 자본과 함께 최초의 자본도 자기재생산, 잉여가치의 재생산을 계속.
  • 단순재생산에서는 모든 자본이 결국 축적된 자본/자본화된 잉여가치로 전환. 확대재생산의 경우 최초의 총투하자본은 축적된 자본에 비하면 무한소.

소유법칙의 취득법칙 전환 - 서론: 로크 및 고전경제학 비판

  • 로크 및 고전파: 부의 근원은 자기노동의 투하 및 선조들의 소유의 상속 (즉 근면함과 근면 못함의 차이)
  • 마르크스: 선조들에게 상속받은 소유가 자본이면 자기노동뿐 아니라 그 자본을 통한 잉여가치까지 취하게 된다.
  • 상품생산의 소유법칙: 자기생산물 및 자기생산물의 등가교환물은 정당한 자신의 소유이다.
    • 어느 시대에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
    • 그러나 그 생산물도 자신의 노동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님(예컨대 생산에 기여한 자연적 자원과 과학기술적 지식은 특정인의 소유랄 수 없음)
  • 자본주의적 취득법칙:
    • 자본을 소유한 자는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자본이 없는 자는 잉여가치를 착취당한다
    • 유통 과정만 보면 공정한 교환인 것 같아도 생산과정을 들여다보면 불공정한 착취가 발생

[상략]
이와 같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교환관계는 유통과정에만 속하는 단순한 외관일 따름이며, [거래 그 자체의 내용과는 관계가 없고 도리어 그것을 모호하게 할 뿐인] 단순한 형태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동력의 매매는 단순한 형태에 불과하며, 그것의 내용은 자본가가 이미 대상화된 타인노동의 일부를 아무런 등가물도 지불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취득하고, 그것을 더 많은 양의 살아있는 타인노동과 끊임없이 교환한다는 것이다. 최초에는 소유권이 한 인간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그와 같이 가정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시장에서는 오로지 동등한 권리를 취득하는 수단은 오직 자기 상품을 양도하는 것 뿐인데, 이 자기 자신의 상품을 얻는 유일한 길은 노동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유가 이제는, 자본가의 측에서는 타인의 불불노동 또는 그 생산물을 취득하는 권리가 되며, 노동자의 측에서는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취득하지 못하는 것으로 된다. 노동과 소유의 분리는 노동과 소유의 분리는 노동과 소유의 동일성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법칙의 필연적 결과로 된다 (i.e.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이 상품생산의 소유법칙에서 필연적으로 결과된다)

794쪽


상품생산이 그 자체의 내재적 법칙에 의해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전환되는 정도에 따라, 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은 변증법적 역전을 겪지 않을 수 없고 이리하여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으로 전환된다

800쪽

  •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오해: 자본주의 시기 이전에 단순상품 생산시기가 있어서, 상품생산에 내재된 법칙이 자본주의적 법칙으로 이산적으로 변화한 별개의 존재 같은 인상

“이러한 결과는 노동자 자신이 노동력을 상품으로 자유로이 판매하게 되자마자 불가피한 것으로 된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비로소 상품생산은 보편화되며 전형적인 생산형태로 된다. 즉, 이때부터 비로소 모든 생산물은 처음부터 판매를 위해 생산되며, 생산되는 부 전체가 유통의 영역을 통과한다. 임금노동이 상품생산의 토대로 될 때 비로소 상품생산은 자신의 전체 사회에 강요한다”

799쪽

  • 변증법적 표현으로 인한 신비화
  • 오해의 해소: 단순재생산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은 1인 자영업.
    • 자영업은 오늘날에도 있음. 그러나 오늘날 시대가 자본주의 시대인 이유는 오늘날의 압도적인 생산방식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기 때문
    • 자영업이 압도적 생산비율을 점한 역사는 없었음. 때문에 단순상품 생산시기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음

제3절 잉여가치가 자본과 소득으로 분할. 절제설

자본가가 인격화한 자본인 한, 그의 활동동기는 사용가치의 획득과 향락이 아니라 교환가치의 획득과 증식이다. 그는 가치증식을 무자비하게 추구하며, 그리하여 무자비하게 인류에게 생산을 위한 생산을 강제한다. 이리하여 자본가는 사회의 생산력의 발전과, 또 [각 개인의 완전하고도 자유로운 발전을 그 기본원칙으로 삼는] 더 높은 사회형태의 유일한 현실적 토대로 될 수 있는 물질적 생산조건의 창조에 박차를 가한다.

806쪽

  • 마르크스도 자본주의의 생산력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 - 생산력이 늘어나면 노동시간이 줄어드므로 해방적 잠재력이라 할 수 있음
  • 그러나 두 가지 측면(반인간적, 반생태적)에서 자본주의는 비판할 수밖에 없다
  •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수입과 축적(자본에 재투하)으로 분할된다.
    • 이 분할 및 분할비율은 자본가의 의지, 절제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작용의 메커니즘 [중략]의 작용으로 나타난다”
    • 그 이유: 자본주의적 생산은 끝없는 확대재생산이고, 생산을 위한 생산이며, 축적을 위한 축적. 경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법칙(i.e. 이윤의 무한추구)을 외적인 강제법칙으로 각 개별 자본가에게 강요.

자본가는 절대적 취부욕을 수전노와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수전노의 경우에는 개인의 열광으로 나타나는 것이 자본가의 경우에는 사회적 메커니즘 — 여기서 자본가는 하나의 나사에 지나지 않는다 — 의 작용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한 사업에 투하되는 자본액을 끊임없이 증대시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며, 그리고 경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법칙을 외적인 강제법칙으로 각 개별 자본가에게 강요한다. 경쟁은 그로 하여금 자기의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확대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데, 그는 누진적 축적에 의해서만 자기의 자본을 확대할 수 있다.

807쪽


축적을 위한 축적, 생산을 위한 생산, 이 공식으로 고전파 경제학은 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표현했다.

811쪽

  • 축적을 통한 자본가의 직간접적 지배의 확대
  • 생태적 측면에서의 함축

vs. 시니어의 절제설

  • 시니어: 자본가의 부는 자본가의 절제에서 나온 것이다
  • 마르크스: 자본가의 부는 자신의 개인적 소비의 절제가 아닌 잉여노동의 착취에서 유래한다

고전적 자본가는 개인적 소비를 자신의 신성한 직분에 반하는 죄악으로서, 축적의 ‘절제’로 낙인찍지만, 근대화된 자본가는 축적을 향락의 ‘포기’로 간주할 수 있게 된다.

“아아! 그대의 가슴에는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항상 떨어지려 하고 있구나.” [파우스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 새벽 — 벼락부자가 된 개별 자본가는 이 역사적 단계를 개별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 에는 치부욕고 탐욕이 지배적인 열정으로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향락의 세계를 창조할 뿐 아니라 투기와 신용제도의 형태로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많은 원천을 개발한다. 일정한 발전정도에 이르면, 어느 정도의 낭비는 부의 과시로써 또 신용획득의 수단으로써 ‘운이 나쁜’ 자본가의 사업상의 필요로까지 된다. 사치는 자본의 교제비에 포함된다. 더욱이 자본가는 수전노처럼 자기의 개인적 노동이나 자기의 개인적 소비의 삭감에 비례해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의 노동력으로붙 어러마나 짜내며 또 노동자에게 생활상의 쾌락의 포기를 얼마나 강요하는가에 비례해 부유해진다. 따라서 자본가의 낭비는 호탕한 봉건영주의 낭비가 가지는 솔직한 성격을 가져본 적이 없고 도리어 그 배후에는 언제나 가장 더러운 탐욕과 세심한 타산이 숨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의 낭비는 그의 축적을 결코 방해하지 않고 축적의 증대와 더불어 증대된다.

809쪽

  • 1795년 애이킨의 저서 인용

맨체스터의 공업은 4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에는 공장주들이 자기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노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제2기에는 그들은 약간의 재산을 얻기 시작했지만 종전과 같이 열심히 노동했으며(왜냐하면 노동을 직접 착취하는 데는 노동이 들기 때문이다) 또 종전과 같이 검소하게 생활했다 [중략] 제3기에는 사치가 시작되었으며, 사업은 영국 안의 모든 상업도시들로 주문을 받기 위해 말 탄 사람을 파견함으로써 확대되었다 [중략] 1609년 이전에는 공업에서 획득한 자본이 3천 파운드 내지 4천 파운드에 달한 적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대략 이 시기에 또는 그보다 좀 늦게 공업가들은 이미 화폐를 축적했고 목조가옥인 토담집 대신 벽돌집을 세우기 시작했다.

810쪽

제4절 잉여가치가 자본과 소득으로 분할되는 비율과는 관계없이 축적의 규모를 결정하는 사정들. 즉 노동력의 착취도, 노동생산성, 사용하는 자본과 소비되는 자본 사이의 차액의 증대, 투하자본의 크기

축적되는 자본의 크기는 잉여가치의 양에 의존한다. 따라서 잉여가치량을 결정하는 사정들은 축적의 크기에 작용한다. 이 절에서는 잉여가치량을 결정하는 4요소를 축적에 대한 영향과 관련하여 고찰한다.

  1. 노동자 착취도
    • 노동자의 필요소비재원을 축적재원으로: 임금을 노동가치 이하로 삭감하여 노동자를 쥐어짬
    • 착취도 증대가 추가노동력 투하보다 유리한 이유
      • 임금의 절약(새 노동자에게 줘야 하는 임금)
      • 생산수단의 절약(새 노동자가 사용할 기계나 도구 따위)
      • 자본에 결합된 노동력, 과학, 토지는 자본의 탄력적 힘을 구성

채취산업 예컨대 광업에서 원료는 투하자본의 구성부분이 아니다. 이 경우 노동대상은 과거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라 자연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중략] 기타 조건이 같다면 생산물의 양과 가치는 지출노동량에 정비례해 증가한다. [중략] 노동력은 신축성이 있기 때문에 축적의 크기는 불변자본 규모의 사전적 확대 없이 확장된다.
농업에서는 종자와 비료의 추가적 투하가 없으면 경작지는 확대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투하가 일단 이루어지면 토지 그것의 순전히 기계적인 경작만으로도 생산량은 놀랄 만큼 증대한다. 그리하여 종전의 노동자 수에 의해 수행된 더 많은 양의 노동은 [노동수단에 대한 새로운 투하 없이도] 토지의 산출량을 높인다.

823쪽


제조업에서는 추가적인 노동은 그에 상응하는 원료에 대한 추가지출을 전제로 하지만, 노동수단에 대한 추가지출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채취산업과 농업은 제조업에 원료 및 노동수단의 원료를 제공하므로, 채취산업과 농업이 [자본의 추가지출 없이] 생산한 추가적 생산물은 제조업에도 유리하다.
그리하여 일반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본은 부의 두 본원적 창조자인 노동력과 토지를 자기와 결합시킴으로써 팽창력을 획득하는데, 이 팽창력은 자본으로 하여금 자기의 축적요소들을 일정한 한계를 넘어 증대시킬 수 있게 한다.

824쪽

  1. 사회적 노동의 생산성 수준
    • 개별 자본이 특별잉여가치 획득을 위해 생산성 향상
    • 동종업계에서 모두 따라서 생산성을 향상시켜 상대적 잉여가치 발생
    • 잉여가치율(V/S) 증대
    • 개별 자본은 또다시 특별잉여가치를 추구
    • 노동생산성의 지속적 증가(재생산규모의 확대, 축적 촉진)
    • 그에 따른 잉여가치율의 지속적 증대

자본 축적의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사회적 노동의 생산성 수준이다.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따라 일정한 가치[따라서 또한 일정한 크기의 잉여가치]가 체화되어 있는 생산물의 양이 증가한다. 잉여가치율이 불변이라면[또는 떨어지는 경우조차도 노동생산성이 상승하는 것보다 완만하게 떨어지는 한], 잉여생산물의 양은 증가한다. 그러므로 수입과 추가자본으로의 잉여생산물의 분할이 불변인 경우, 자본가의 소비는 축적기금의 감소 없이도 증대할 수 있다. [중략] 노동생산성의 증대에 따라 노동자의 값이 싸지며 따라서 잉여가치율이 높아진다. 비록 실질임금이 높아지는 경우에도 그렇다. 실질임금은 결코 노동생산성에 비례해 증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동일한 가변자본가치가 더 많은 노동력을, 따라서 더 많은 노동을 운동시킨다. 동일한 불변자본가치는 더 많은 양의 생산수단으로 [중략] 표현되며, 따랏 서애산물과 가치를 형성하는 요소들[즉 노동을 빨아들이는 요소들]을 더 많이 제공한다. 그러므로 추가자본의 가치가 불변인 경우에는 물론이거니와 감소하는 경우에도 축적은 촉진된다. 재생산의 규모가 물질적으로 확대될 뿐 아니라 잉여가치의 생산도 추가자본의 가치보다 더욱 급속하게 증대한다.

824쪽

  1. 사용하는 자본과 소비되는 자본 사이의 차액의 증대
    • 건물, 기계, 도구 등의 노동수단들의 가치량과 소재량은 증대하는데, 점차적으로 마멸되어 그 가치를 조금씩 상실한다.
    • 고정자본의 비중이 커지면 자연력 및 과학기술의 무료봉사도 커져서 축적에 유리.
    • 축적을 위해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해당 부분으로의 신규자본의 진입이 어려워진다.
  1. 투하자본의 크기

노동력의 착취도가 일정할 경우에는 잉여가치량은 동시에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노동자의 수는 [비록 일정한 정비례 관계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본의 크기에 상응한다. 계속적인 축적에 의해 자본이 증대하면 할수록 [소비재원과 축적재원으로 분할되는] 가치량도 증대한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더 사치스럽게 살면서 동시에 더 ‘절제’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 투하자본량에 따라 생산의 규모가 확대하면 할수록, 생산의 모든 추진력이 그만큼 더 탄력적으로 작용한다.

830쪽

제5절 이른바 노동기금

우리는 동일한 양의 자본을 매우 상이한 정도로 작용하게 하는 유통과정의 모든 과정들은 도외시했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한계성을 전제했으므로[즉 순전히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온 사회적 생산과정을 전제했으므로], 현존하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할 수 있는 더욱 합리적인 온갖 결합은 도외시했다.

831쪽

  • 자본주의적 생산성 vs. 자본주의보다 더 합리적 계획적인 결합(공산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