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수걸이 악당

이 클리셰의 가장 모범적인 예는 [배트맨 2]의 초반에 나옵니다. 죽었다가 초능력을 얻고 되살아난 셀리나 카일은 새로 맞추어 입은 캣우먼 옷을 입고 돌아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여자를 터는 강도를 만납니다. 강도를 혼내 준 캣우먼은 고마워하는 여자에게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죠.

미국식 수퍼영웅을 다룬 영화나 만화 과반수가 이런 식의 마수걸이 악당들을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막 초능력을 얻은 주인공이 이 힘을 어디다 쓸까 고민하며 돌아다니다가 꼭 여자를 터는 강도를 만나는 거죠. 물론 설정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는 없지만 가장 뻔한 게 여자를 터는 강도입니다. 오늘 제가 시사회에서 본 [고스트 라이더]에도 고스트 라이더로 변한 주인공 블레이즈가 수퍼 영웅 첫날 밤에 그런 강도를 만나더군요.

물론 그들은 철저한 설정의 희생자들입니다. 막 수퍼영웅이 된 주인공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만들려면 그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그 장면에 진짜 악당들을 등장시킬 수는 없죠. 고로 상당히 위험하지만 초능력은 없고 척봐도 역겹고 조잡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시시한 악당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수걸이 악당들을 쓰는 수퍼영웅들 대부분이 조금 어둡고 모호한 구석이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겠군요. 수퍼맨과 같은 밝고 개방적인 영웅은 결코 첫삽을 뒷골목에서 뜨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구하고 다리 밑으로 떨어질 뻔한 기차를 살리면서 요란하게 시작하지요. (07/04/04)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