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차

우린 인간이 지구를 정복했다고 믿고 있지만, 정말 그렇지는 않죠. 지도에서 보면 사람들은 선으로 연결된 점 위에서 삽니다. 물론 확대해서 보면 그 선이나 점은 모두 3차원의 공간을 점유하고 있지만, 지금 요점은 그게 아니죠. 제 말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들이 은근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대도시이건 작은 읍이건 말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태어난 마을을 떠나는 건 바로 몇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대모험이었습니다. 산에서는 호랑이가 나왔지요, 산적들은 어두컴컴한 구석에 숨어 희생자들을 노리고 있었지요, 게다가 길은 엄청 길었어요…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없는 이 나라에서도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려면 몇 주는 잡아야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반나절 안에 어디로도 갈 수 있지만 말이에요. (물론 분단 상황을 무시한다면 말이죠.)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크다고 할 수 없는 작은 영역권 안을 빙빙 돌며 살 수밖에 없었어요.

기차와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활동공간이 넓어진 것이죠. 이제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만약 자동차가 고장나거나 중간에 기름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죠?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알고 식습관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생명체인 말과는 달리 자동차는 융통성 없는 기계입니다. 고장나면 정말 대책이 없어요. 사람 사는 동네라면 전문가를 부를 수 있지만 꼭 차가 그런 곳에서만 고장나는 건 아니죠. 아까도 말했잖아요. 우린 선으로 연결된 점에서 살고 있다고. 만약 차가 선 한가운데에서 고장난다면 어떻게 되지요?

여기서 설정이 생깁니다. 편리하지만 다소 불안정한 문명의 이기를 타고 자기네한테 허락된 안전지대를 벗어나 금지된 영역을 질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 한가운데에서 고립되는 겁니다. 그 나라가 미국처럼 땅덩이가 큰 곳이라면 더 끔찍해지겠죠? 호러 영화가 탄생하는 겁니다. 수많은 미국 호러 영화들이 자동차 고장으로 이야기를 여는 것도 당연해요.

이 설정은 경계선을 그을 수 있을만큼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길을 잃기도 하고, 기름이 떨어질 수도 있고, 수상쩍은 사람들에 의해 차를 강탈당하기도 하며, 절대로 가서는 안 되는 위험지대에 자발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딜리버런스]나 [구타유발자들]처럼 고정된 장르나 교통수단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경고의 의미는 분명해요. 일단 타지에 갈 때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거죠. 외지는 결코 그네들이 살던 동네처럼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말이에요. 뻔한 경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효과는 큽니다. 그만큼 그 공포가 보편적이라는 뜻이니까요. (06/05/22)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