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로 열리는 문

얼마 전에 목동에 새로 생긴 메가박스에 갔었는데, 방화셔터가 올라가 금속문만 달랑 걸려 있는 곳이 있더군요. 근처에서 놀러온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문을 열고 닫으면서 놀고 있더라고요. 문을 열고 처음 만난 것처럼 친구에게 인사를 하거나 오늘 처음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는 척도 하면서요.

문이란 건 좀 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 이건 별 게 아니에요. 두 개의 닫힌 공간 또는 하나의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을 일시적으로 차단했다가 연결해 주는 도구지요.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생각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문은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다른 어떤 곳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마법의 통로입니다. 물론 그 마법이란 게 다소 뻔한 것이라 주로 복도나 마당밖엔 갈 수 없지만, 마법이라는 건 늘 불안하고 변덕스러운 게 아닙니까? 늘 우리에게 복도만 선사한다는 법도 없지요. 어느날 눈을 비비고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자 오즈의 왕국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법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마법의 통로들이 생겨납니다. 어떤 건 그냥 문이기도 하고 어떤 건 일반적인 문과 수상쩍을 정도로 닮은 벽장 문이기도 하고 어떤 건 옷장이기도 하죠. 가장 유명한 건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의 처녀작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입니다. 영화 중에선 [몬스터 주식회사]가 그 고전적인 설정을 본격적으로 꺼내다 쓴 작품이 될 거고요. 워너브라더즈의 [루니 튠즈] 만화에서도 이런 식의 통로들은 존재했습니다. 벅스 버니나 로드 러너는 그림으로 그린 문을 열고 그 너머에 있는 신비스러운 세계로 들어갔지요.

이런 이야기들은 문의 존재에 대해 논리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에요. 수많은 SF 소설이나 영화들이 시공간의 왜곡을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과학적 장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타 트렉: 딥 스페이스 나인]에서 웜홀은 다른 세계로 우리의 주인공들을 연결시켜주는 통로이고 문이죠. [스타게이트]에서 주인공들을 다른 행성으로 보내주는 건 정말로 문처럼 생긴 장치였고요.

여기엔 다양한 변주도 있습니다. 두 편의 [앨리스] 소설에서는 토끼굴과 거울이 그런 역할을 하죠. [장화, 홍련]에서 옷장문은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혼란스럽고 광포한 이야기 속에서 숨겨진 과거와 현재의 주인공을 연결시킵니다. [여고괴담 4: 목소리]에서는 물리적인 문을 빌리는 귀찮은 짓은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허공 중에서 과거로 통하는 스타게이트를 만들어내지요.

이런 문들은 소설보다는 영화 쪽에 더 어울리는 장치입니다. 옷장 저편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C.S. 루이스의 주장은 건 '왼쪽 복도 끝에 사무실이 있어요'라는 말보다 특별히 더 마술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간단한 편집과 세트로 시간과 공간을 뒤트는 영화라는 장르 안에서 문을 열고 다른 세상으로 걸어들어가는 행위는 진짜 마법입니다. (06/05/01)

DJUNA